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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에 큰아이하고 '흙 옮기기'를 했습니다. 우리 집 처마를 따라 빙 두른 빗물받이가 있는데, 집 뒤쪽에 있는 빗물받이에는 흙이 쌓였습니다. 이 흙을 긁어서 마당 한쪽에 있는 앵두나무 둘레에 뿌려 주기로 했습니다.

나는 뒤꼍 감나무 옆에 서서 '빗물받이에 쌓인 흙'을 꽃삽으로 긁습니다. 빗물받이에 쌓인 흙은 처음부터 흙이지는 않았습니다. 집 뒤꼍에 감나무가 우람하게 자랐는데, 감나무에서 풋감이 떨어지고 감잎이 떨어집니다. 때로는 하늘타리나 호박이 지붕까지 뻗습니다. 이러면서 이 넝쿨줄기가 겨우내 삭습니다. 나뭇잎이랑 풀잎이랑 풀줄기랑 풋 열매는 한 데 어우러져서 천천히 삭습니다. 빗물받이가 거름통 구실을 하는 셈입니다.

작은아이는 누나랑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물총놀이를 합니다. 누나가 있는 집 뒤쪽으로 왔다가, 아버지가 있는 뒤꼍으로 올라옵니다. 뒤꼍에서 감나무랑 석류나무한테 물을 주기도 하고, 고들빼기나 모시풀한테 물을 주기도 합니다. 이 자그마한 아이한테 물총은 물뿌리개와 같습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섬... '즐거운 앞날'을 그리다

겉그림
 겉그림
ⓒ 남해의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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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무에 쫓기던 스물다섯의 어느 날, 불현듯 마음속에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도대체 내 앞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 나는 인간이 본래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등산과 도보 여행을 통해 배웠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그런 것이 생활 속에서 조용히 틀어지고 만다. 조금 깊이 들여다보니 자본주의 등 문명의 발전만을 중시해 온 사회 시스템의 한계가 아닐까 싶었다. … 회사는 자신의 전문 분야를 특화하면 된다. 그러나 시골에서는 부분이 아닌 전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부분이 아닌 전부를 해 나갈 수 있어야만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 - <우리는 섬에서 미래를 보았다> 본문 18, 21, 57쪽 중에서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섬에서 '즐거운 앞날'을 바라보면서 크지도 작지도 않은 회사를 열어서 산다는 젊은이들이 쓴 <우리는 섬에서 미래를 보았다>라는 책을 읽습니다. 스물을 조금 넘긴 젊은이들은 처음에 도시에서 '커다란' 회사에서 일했다고 하는데, 이들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섬으로 삶자리를 옮깁니다. 돈을 넉넉히 모아서 섬(시골)으로 가지 않습니다. 뭔가 대단히 잘 알기에 섬으로 가지 않습니다. 귀농이나 귀촌이라는 이름이 아닌, 그저 '삶'을 생각하면서 섬으로 갑니다.

섬이나 시골에서 젊은이가 회사를 열어서 '돈을 벌'거나 '먹고살' 만할 수 있을까요? 섬이나 시골은 젊은이가 꿈을 품고 삶을 누릴 만한 터전이 될 수 있을까요?

"도시에는 생태학이나 지속가능한 사회에 대해 배울 기회가 풍부하다. 그러나 시골에는 그것을 실천하는 데 필요한 일자리가 부족하다. … 조금이라도 빨리 지역으로 들어가 땀과 눈물을 흘리며 나 자신의 언어로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지금 바로 아마로 간다'는 선택지를 고르게 됐다. … 이익 창출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익만을 창출하는 건 도시에서도 할 수 있다. 그 행사를 통해 섬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좀 더 깊이 고민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게 됐다." - <우리는 섬에서 미래를 보았다> 본문 33, 37, 53쪽 중에서

'돈' 아닌 '삶'을 보아야 '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본다면 언제나 돈만 보이기 마련이라고 느낍니다. 돈을 더 모으고 자꾸 모으는 길로만 가는구나 싶어요. 삶을 본다면 언제나 삶을 마주하면서, 이 삶을 곱게 가꿀 꿈으로 나아가기 마련이라고 느낍니다. 삶을 보기에 꿈을 생각할 수 있고, 꿈을 생각하기에 삶을 사랑으로 가꾸는구나 싶어요.

돈을 버는 일이 나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돈만 버는 일'이라면 삶이 없을 뿐입니다.

돈'을' 버는 건 괜찮지만... 돈'만' 벌면 안 된다

섬(시골)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젊은이
 섬(시골)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젊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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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님이 엮은 <전쟁교본>이라는 사진책이 있습니다. 이 사진책 첫머리를 보면, 철공소에서 일하는 노동자 사진이 나옵니다. 철공소 노동자는 '먹고 살려'는 뜻에서 쇠붙이를 다룹니다. 그러면, 철공소에서 노동자는 어떤 일을 할까요? 장갑차를 만들고 탄환을 만듭니다. 비행기도 만들고 총도 만듭니다. 온갖 전쟁무기를 철공소에서 만듭니다.

먹고살아야 한다면 '전쟁무기 만드는 공장'에서라도 일거리를 얻어서 돈을 벌어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쟁무기 만드는 공장에서 일거리를 얻어서 돈을 벌고, 이 돈으로 밥을 사다가 먹는다면, 우리 삶은 어디로 나아갈까요? 철공소 노동자한테는 쇠붙이를 다루는 재주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군수공장에서 일거리를 찾아야 할까요? 쇠붙이 다루는 재주를 내려놓고, 삶을 가꾸는 길로는 갈 수 없을까요? 손수 논밭을 갈아서 손수 밥을 얻는 길로 나아갈 수는 없을까요?

"얼굴을 마주보는 관계가 되면 이분법 개념이 아닌, 함께 걸어 나갈 길을 찾는 관계가 된다. … 고향의 감정을 느끼게 해 주는 시골은 정신문화를 보존하고 있다. 그 문화가 거창한 것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세계유산일 필요도 없고 중요문화재일 필요도 없다. … 콩은 내가 밭에서 직접 키운 검은콩을 썼고, 간수는 근처 아키야 해안에서 퍼온 바닷물을 질냄비에서 뭉근히 끓여 소금과 간수를 분리해 썼다. 완성된 두부에 직접 만든 소금을 뿌려 먹었는데 그게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 <우리는 섬에서 미래를 보았다> 본문 80, 101, 165쪽 중에서

<우리는 섬에서 미래를 보았다>에 나오는 젊은이는 섬(시골)에서 젊은 나날을 보내며 새로운 삶을 날마다 깨닫는다고 합니다. 도시에 있던 큰 회사에서는 '몇 가지 일만 전문으로 하면 끝'이었으나, 섬에서는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할 줄 알아야 한다지요. 도시에서는 언제나 '전문직 일꾼'이었지만 섬에서는 언제나 '종합 일꾼'이어야 한다지요.

도시에서 온 젊은이는 시골에서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한테서 논일이나 밭일을 처음으로 배웁니다. '논 투어'라는 행사도 꾀해서, 나락을 손수 베어 말리는 체험도 한다고 합니다.
 도시에서 온 젊은이는 시골에서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한테서 논일이나 밭일을 처음으로 배웁니다. '논 투어'라는 행사도 꾀해서, 나락을 손수 베어 말리는 체험도 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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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마땅합니다. 시골사람은 씨앗을 심거나 뿌린 뒤, 씨앗을 돌보고, 씨앗에서 돋아서 핀 꽃이 지고 열매를 맺기까지 지켜보며, 열매가 무르익으면 거두어서 갈무리한 다음, 이 열매를 스스로 다듬고 손질해서 '먹을거리'로 가꾸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이 다 해내야 하는 몫'입니다.

시골에서는 전화 한 통으로 끝낼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스스로 실마리를 찾아서 요모조모 해 보고 다듬어 보고 고꾸라져 보기도 하면서 스스로 배웁니다. 스스로 부딪히지 않고서야 알 수 없습니다. 스스로 온몸으로 겪지 않고서야 배울 수 없습니다.

섬으로 간 젊은이들이 "섬에서 미래를 보았다"고 말할 수 있는 바탕은 이러한 자리에 있다고 느낍니다. '앞날'이란 앞으로 살아갈 나날입니다. 예순 살 남짓이 되어 연금을 받으면서 '일할 걱정이 없어도 되는 삶'이 앞날일 수 없습니다. 일흔 살이 되고 여든 살이 되어도, 내 삶을 스스로 가꾸고 돌볼 수 있는 나날이어야 비로소 '앞날'이라고 느낍니다.

'돈이 없어도 되는 살림'이 아닙니다. '돈이 아니어도 되는 살림'입니다. 오직 돈만 바라보도록 내모는 오늘날 물질문명 사회에서, 삶을 마주하고 사랑을 바라보면서 꿈을 지을 수 있다고 깨달았기에, 여러 젊은이가 섬(시골)에서 날마다 새로운 기쁨을 누린다고 합니다.

"미래에 대한 다양한 가설을 지역에서 만들고 그 가치를 전국으로 발신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앞으로 일본이 존재할 곳'은 도시가 아니라 지역이 될 것이다. … 요즘 같은 시대, 도시와 시골 생활 양쪽 모두를 경험하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지역과 미래를 연결하는 모두의 일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게 훨씬 더 만족스럽다고 말이다." - <섬에서 미래를 보았다> 본문 197, 205쪽 중에서

스스로 생각하면, 길을 열 수 있다

시골에서는 철마다 삶이 다릅니다. 시골에서는 달마다 삶이 다릅니다. 시골에서는 날마다 삶이 다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철에 따라 다 다른 삶입니다. 날마다 동이 트는 때가 다르고, 해가 하늘에 걸린 길이가 다릅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새롭게 자라면서 날마다 새로운 놀이를 찾습니다.

크지도 작지도 않아 아름다운 섬에서 젊은이가 꿈을 키웁니다. 한국에도 이처럼 '크지도 작지도, 유명하지도 안 유명하지도 않은' 사랑스러운 시골이 곳곳에 있습니다.
 크지도 작지도 않아 아름다운 섬에서 젊은이가 꿈을 키웁니다. 한국에도 이처럼 '크지도 작지도, 유명하지도 안 유명하지도 않은' 사랑스러운 시골이 곳곳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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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 밝고 아침이 찾아오면, 나는 맨 먼저 잠에서 깨어 일어나 하루를 그립니다. 새벽물을 길어서 쌀을 헹구고 낯을 씻으면서 하루를 그립니다. 마당과 뒤꼍을 돌며 우리 집 나무한테 인사를 하는 동안 하루를 그립니다. 오늘 하루는 아이들하고 어떤 삶을 지을 적에 함께 웃고 노래하면서 기쁠까 하고 생각을 짓습니다.

스스로 생각하면 길을 열 수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길을 엽니다. 먹고 입고 자는 세 가지를 스스로 건사하는 길을 생각하면서, 아이들은 저마다 재미있게 놀이를 찾고 생각을 빛냅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여러 젊은이가 섬마을에서 '기쁜 앞날'을 찾았다면, 나는 이 나라 시골마을에서 아이들하고 '기쁘며 재미난 앞날'을 찾으려 합니다. 흙을 만지고 밟으면서, 흙이 새롭게 태어나는 얼거리를 느끼고 배우면서, 바람이 흙을 살찌우고 햇볕이 흙을 북돋우는 숨결을 헤아리고 알아차리면서, 스스로 숲 노래를 부르는 착한 숲 사람으로 사는 길을 찾으려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우리는 섬에서 미래를 보았다>(아베 히로시·노부오카 료스케 지음 / 정영희 옮김 / 남해의봄날 펴냄 / 2015.6 / 1만4000원)

이 글은 최종규 시민기자의 누리사랑방(http://blog.aladin.co.kr/hbooks)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섬에서 미래를 보았다

아베 히로시.노부오카 료스케 지음, 정영희 옮김, 남해의봄날(2015)


태그:#우리는 섬에서 미래를 보았다, #시골살이, #시골노래, #삶노래,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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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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