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서른둘 갑작스러운 갑상샘암 선고와 투병 생활로 망가진 몸. 그로 인해 바뀌어 버린 삶의 가치와 행복의 조건. "갑상샘암은 암도 아니잖아"라며, 가족조차도 공감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죽음의 문턱에서 깨달았다.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란 것을. 꿈이 있다면 당장 시작하라! '내일'이면 늦을지도 모른다. - 기자 말

침상의 이불과 환자복을 정리해 두고 퇴원 수속을 마쳤다.
▲ 퇴원 준비 침상의 이불과 환자복을 정리해 두고 퇴원 수속을 마쳤다.
ⓒ 강상오

관련사진보기


2014년 1월 1일 새해가 밝았다. 드디어 지옥같던 2박 3일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제야의 종소리도 듣지 못했고 새해 일출도 보지 못했지만, 2박 3일간 혼자 외로운 사투를 벌이던 병실의 창문 밖에서 불어 들어오는 기분좋은 겨울 바람이 새해가 밝았음을 알려 주었다.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리느라 잠도 못자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 기운이 없어 멍하니 앉아 있는데 병실 전화기가 울렸다. 전화기 넘어로 '핵의학과' 교수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생 많으셨고 퇴원 하시면 됩니다. 오늘은 휴일이라 퇴원 수속을 하려면 본관 지하1층 응급실옆에 있는 수납 창구로 가서 수납 하시고 퇴원 수속 밟으세요."

퇴원해도 된다는 전화였다. 얼마나 반갑던지 환자복을 입은 채로 지하로 뛰어 내려갔다. 병원비 정산을 하고 병실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짐을 챙겼다. 여전히 속은 울렁거리고 더부룩했지만 집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에 기뻐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새해 첫날 이렇게 퇴원을 해서 집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더 의미 있게 느껴졌다. 안좋았던 기억들을 지난 해와 함께 말끔히 털어 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2014년 내 새해 소망인 '일상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설레었다.

2박 3일만에 퇴원을 하지만 내 몸에서 방사능이 모두 배출된 것은 아니다. 집으로 돌아가서도 가족들과 며칠간은 대면하지 않고 지내야 한다. 여전히 땀이나 분비물에 방사능이 배출되기 때문에 화장실을 사용하고 나면 깨끗히 청소를 하고 나와야 하고, 소변을 볼 때도 혹시라도 주변으로 튈지 몰라 앉아서 봐야한다. 갈아 입은 옷도 다른 가족들의 옷과 함께 빨아서도 안되고 식기류 역시 함께 접촉하지 않아야 한다.

특히나 어린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더 위험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받고 나면 집이 아니라 방사성 요오드 치료자들을 받아주는 요양병원을 찾아서 다시 입원하기도 한다. 결혼을 한 사람들이라면 부부관계도 6개월간은 임신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방사능으로 인한 기형아 출산율이 높다고 했다. 다행히 나는 아직 미혼에 아이도 없고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며칠간 방에서만 생활하기로 하고 집으로 갔다.

'맛없는 파닭'에서 감동을 느꼈다

방사성 요오드 치료의 부작용이 호전되고 처음으로 먹은 음식
▲ 파닭 방사성 요오드 치료의 부작용이 호전되고 처음으로 먹은 음식
ⓒ 강상오

관련사진보기


수요일 아침에 퇴원을 했다. 그리고 다음주 월요일 아침에 방사성 요오드 치료에 대한 확인검사가 예약되어 있다. 그 사이 약 일주일의 시간동안 병원이 아닌 집에 갇혀서 두번째 외로운 사투가 시작됐다.

퇴원을 하고 나서도 몸 컨디션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저요오드식을 하면서 먹고 싶었던 음식이 최소 100가지는 넘었던 것 같은데, 퇴원하면 왕창 먹어버릴 것이라는 다짐도 잊은채 식욕이 뚝 떨어져 있었다. 여전히 소화는 안 되었고 먹기 싫은 물도 계속 마셔야 했다. 방안에 틀어박힌 채 꼼짝 못하고 괴로워 하는 나를 보는 어머니는 안절부절 하지 못하셨다.

소화가 계속 안 돼 식사를 계속 걸렀다. 가끔 뭘 조금씩 먹어도 미각이 상실된 건지 제대로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70대이신 어머니에게 '밥'이란 젊은 세대들에게 '한끼 정도는 굶어도 되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다. 어렵고 먹을 것이 없던 시절에 자라오신 터라 끼니 때 밥을 안 먹는다고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소화가 안 되고 구토가 날 것 같아 괴로운데, 식사 때가 되어도 밥을 먹지 않는 나를 가만히 두지 못하셨다.

어머니는 30분에 한번씩 방문을 두드리면서 밥 안 먹을 거냐고 물으셨다. 그런 어머니께 '힘드니 제발 좀 내버려 달라'고 짜증을 내며 소리쳤다. 아마 힘들어 하는 아들을 옆에서 바라보면서 해줄 것이 없는 미안한 마음을 따뜻한 밥상으로 표현하고 싶으신 거였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끝날 것 같지 않던 부작용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괜찮아져 갔다. 3일쯤 지났을 무렵에 '배고프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화불량이 괜찮아진 거다. 여전히 미각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지만 뭔가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방안에서 나갈 수 없으니 마땅히 먹을 수 있는게 없었다. 그러다 스마트폰을 열어 배달음식 어플을 켜고 '파닭'을 주문했다. 거의 3주만에 처음으로 먹는 '사제 음식'이었다.

미각이 아직 다 돌아오지 않아 그렇게 맛있게 느끼지는 못했지만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이 밀려왔다. 평소에는 느낄 수 없던 '작은것에 대한 감동'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닳았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버텨온 지난 한달...그런데 또?

방사성 요오드 치료 후 전신 스캔의 변화 양상
▲ 전신 스캔 방사성 요오드 치료 후 전신 스캔의 변화 양상
ⓒ NAVER

관련사진보기


그렇게 시간은 흘러 병원에 가는 날이 되었다. 아침 8시에 '전신 스캔' 검사가 예약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찍 서둘러 병원으로 갔다. 지하에 있는 핵의학과로 내려가 스캔 검사 받으러 왔다고 말하니 안쪽 검사실 앞에서 대기 하라고 했다. 방사성 요오드 치료로 입원을 했을 때 내 옆방에 입원했던 아저씨도 오늘 스캔 검사를 하러 오셨다. 나는 부작용 때문에 힘들었던 걸 이야기 하니 아저씨는 별 부작용이 없었다고 하셨다. 사람마다 다르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무리 없이 끝났다는 말씀에 조금은 부러웠다.

검사용 가운으로 갈아 입고 스캔 장비위에 누웠다. 전신 스캔 장비는 수술전 CT 찍을 때 장비와 비슷하게 생겼다. 5분도 채 되기 전에 검사가 끝났던 CT촬영과 달리 전신 스캔은 30분정도의 검사 시간이 걸렸다. 눈을 감고 편안하게 누워 있으면 아무런 느낌 없이 검사가 끝난다.

검사를 마치고 진료실 앞에 앉아 대기를 하고 있으니 핵의학과 교수님이 출근을 했다. 내 이름이 불려지고 진료실에 들어가 앉았다. 한쪽 모니터에는 내 전신 스캔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연한 회색의 희미한 사람 형상이 보이고 곳곳에 검정색 원형들이 보였다. 검정색으로 보이는 곳이 '방사성 요오드'가 집중 되어 있는 곳이라고 했다.

수술 부위 근처에 가장 진한 검정색 원형 2개가 있었는데, 그 부분이 내 몸에 남은 갑상샘 세포라고 한다. 6개월 뒤 다시 전신 스캔을 했을 때 이 검정색 원형이 없어져야 치료가 잘 된 거란다.

교수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보니 6개월 뒤에 다시 전신 스캔을 하려면 방사성 요오드 치료 전의 과정을 다시 겪어야 한다는 거였다. 방사성 요오드 용량은 '검사용'으로 아주 약한걸 복용 한다지만, 신지로이드 복용 중단과 저요오드식은 똑같이 해야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는 지난 한달간의 지옥같은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이 악물고 버텨온 지난 한달이 허무해지는 순간이었다.

○ 편집ㅣ김미선 기자



태그:#갑상샘암, #방사성 요오드, #동위원소, #전신 스캔, #부작용
댓글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