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연평해전>의 포스터.

영화 <연평해전>의 포스터. ⓒ NEW


한 장면, 한 시퀀스를 향해 내달리는 영화들이 있다. 수많은 감독이 대개 클라이맥스에 위치하는 그 결정적 장면을 위해 캐릭터를 창조하고, 이야기를 짜고, 영상 미학을 고민한다. 단 하나의 명장면만으로도, 영상 예술인 영화는 그 가치를 인정받기도 한다. 그러나 무릇 영화란 힘을 한껏 준 장면들의 성취만이 전부일 수 없다. 수많은 개별 요소의 아귀가 맞고 앙상블을 이뤘을 때 전체 영화의 완성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개봉한 <연평해전> 역시 단 한 시퀀스를 위해 90분을 투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2년 6월 29일 서해 연평도 NLL 인근에서 발생한 '제2 연평해전' 전투 말이다.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당한 이 전투 장면을 실감 나게 재현하기 위해 김학순 감독은 3D와 2D로 촬영했고, 커버팅(2D 평면 화면을 3D 입체 영상으로 바꿔주는 것)을 거쳐 3D 상영을 병행하고 있다. 그만큼 전투 장면의 질감과 현실감, 그리고 간간이 발휘되는 3D 효과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실제 전투 시간에 맞추려 노력한) 그 30여 분의, 단 한 번 길게 등장하는 전투 장면을 마주하기까지 <연평해전>은 참을 수 없이 평이하고도 평면적이다. 어찌 보면 제목만큼이나 순백에 가까운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마치, 예정된 이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경건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듯이. 

2002년으로부터 13년, 2015년 6월은 한국전쟁 65주년이자 제2연평해전 13주기다. 북한이 최근 부표를 설치하고 있다는 서해북방한계선(NLL)은 여전히 남북은 물론 여야 간 갈등의 온상이 되고 있다. 소재 자체가 논쟁적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정치적 의도는 없었다"는 김학순 감독의 의도를 120% 이해한다고 해도, 이미 영화가 놓인 외적 상황은 개봉 전부터 어떤 입장을 유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자체를 놓고 보면, 그 입장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2012년 6월 29일 월드컵에 잊힌 그 사건, 연평해전

 영화 <연평해전>의 한 장면.

영화 <연평해전>의 한 장면. ⓒ NEW


'해군 출신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아들'인 참수리 357호 정장 윤영하 대위(김무열 분), '한 아내의 든든한 남편'인 참수리 357호 조타장 한상국 하사(진구 분), '한 어머니의 하나뿐인 아들'인 참수리 357호 의무병 박동혁 상병(이현우 분). 그리고 그의 가족들과 참수리 375호의 대원들, 그들의 상관들.

초중반까지 <연평해전>은 우리는 알지만 영화 속 그들은 아직 모르는 전투 직전의 평온했던 그들의 일과들을 온정어린 시선으로 스케치한다. 까칠한 원칙주의자 윤영하는 해군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아내에게 육지에서 근무하라고 종용받는 한상국은 조타장으로서 치명적인 결함을 갖고 있다. 청각 장애인 어머니를 고향 안산에 두고 온 박동혁은 선임 병장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중이다. 그 외에도 전형적인 캐릭터에 걸맞은 예상 가능한 사연과 인간적인 면모가 전투 장면 전에 나열된다.

나열.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나열이다. 그 어떤 드라마적 파고 없이 흘러가는 그들의 사연은 뉴스 화면 만큼이나 무미건조하게 기술된다. 실화라는 무게에 짓눌리고 추모라는 의미에 포획 당한 영화는 전쟁 영화, 액션 영화 또는 군인 드라마라고 분류하기도 애매하다. 아마도 '군 홍보' 영화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영화적 '연출'이 섬세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그렇게 예정된 희생자들을 '우리의 자식과 아들들'이라는 절대적 위치에 가져다 놓은 <연평해전>은 그 반대편에 있는 북한군을 매우 단편적으로 묘사하고 지나간다. 한국군에게 상상의 적이 아닌 '주적'으로서 현존하는 위험인 것은 맞지만, 영화 속 북한군은 극적 구성 면에서 불성실하게 그려진 것이 사실이다.

윤영하를 위시한 357호 대원들은 어민으로 위장해 어선을 타고 NLL 부근으로 남하한 북한군과 대치한다. 하지만 윤영하의 경고에도 월드컵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려는 해군 당국은 그들을 그대로 돌려보낸다. 얼마 후 이 접촉이 계획된 공격을 위한 북한군의 정탐인 것으로 밝혀진다. 이어 대사 없이 등장하는 북 고위층의 묘사 이후 전투 장면 전까지 그들은 자취를 감춘다.

모든 의미 있는 전쟁(이나 전투를 그리는)영화는 '반전' 영화의 성격을 띤다. 이와 달리 적을 지우는 쪽이라면 군인 개개인의 내적 고뇌를 파고들거나, 전쟁이나 전투의 외적·상황적 요인을 진지하게 기술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유감스럽게도, <연평해전>은 그 어느 쪽도 아니다. 오로지 후반부의 전투신과 그 전투에서 맞은 황망한 죽음, 그리고 이를 기억해야 하는 자들의 당위에 초점을 맞춘다.    

<연평해전>이 끊임 없이 '대한민국'을 호명하는 이유

 영화 <연평해전>의 한 장면.

영화 <연평해전>의 한 장면. ⓒ NEW


한편으로 <연평해전>은 '대한민국'을 끊임 없이 호명한다. 영화 전편을 지배하는 월드컵 분위기와 "대한민국"이라는 응원 구호로. 이는 영화 안팎에서 이중 효과로 작용한다. 그 당시 시대적 배경과 대원들의 들뜬 분위기를 환기하는 지시적인 효과, 그리고 월드컵에 쏠린 국민적 관심에 가려진 전사자들의 죽음을 방치한 국가의 책임을 묻는 사회적, 주제적인 차원 말이다.  

그러나 신중할 필요가 있다. 추상적이고 박제된 '국가'를, 불특정 다수의 이상화된 '국민'을 호명하는 영화는 프로파간다로 빠지기 쉽다. 여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꼭 봐야 할 영화"와 같은 마케팅의 수사가 현혹과 상술의 기술인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독소들을 상쇄하는 것이 인물과 사건의 개연성과 독창성이리라. <연평해전>이 아쉬운 혹은 자승자박의 결과를 낸 요인이 여기에 있다.

<연평해전>은 (상상의 관객 설정이 용이한) 실화 영화라서 빠지기 쉬운 신화화의 함정, 13주기를 맞은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라는 주제적인 무게, 그리고 전투 장면과 전투 이후 실제 인물들의 증언을 넣고야 말겠다는 강박 아닌 강박이 영화의 가능성을 스스로 주저앉히고야 만다. 그 한계 속에서, 영화적인 가능성은 3D 전투 장면의 도전이라는 기술적인 범위로 국한된다. 

남은 것은 '애국심 고취'로의 예정된 전환이다.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는 이 영화의 전제이자 주제다. 후반부는 명확해서 진이 빠질 정도다. '연출'이야말로 이런 '나이브'함을 교란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다. 그러나 30여 분의 짧지 않은 전투 장면 이후, 추도식과 남겨진 자들의 슬픔을 묘사하는 장면의 길이 역시 그에 못지않다. 특히 실제 기록 영상과 영화 장면이 속수무책으로 뒤엉킬 때는 이 영화가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어리둥절하기까지 하다. 언제나, 넘침보단 부족함이 나은 법이다.

영화 장면과 실제가 뒤섞인 에필로그가 지시하는 바 역시 단순 명확하다. 대원들을 죽게 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영화는 대원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윤영하 모습을 통해 5단계 교전 수칙이 결국 공세적인 대응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고 말한다.

당시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 평화 무드를 조성했던 정권의 영향이 컸다는 것이다. 윤영하의 아버지가 장례식장 내 TV로 월드컵 결승전을 관람하기 위해 일본으로 간 김대중 대통령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장면이 결정적이다. 이는 개봉 직후 <연평해전>이 정치적 의도로 수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영화 밖 현실이 훨씬 더 극적이다. 

영화보다 더 극적인 영화밖 현실

 영화 <연평해전>의 한 장면.

영화 <연평해전>의 한 장면. ⓒ NEW


"어제 당원 100명과 연평해전 단체 관람. 대통령 한 번 잘못 뽑으면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다음 대통령은 아예 NLL을 적에게 헌납하려 했었죠. 엔딩크레딧에 후원했던 제 이름이 나와 신기했고요."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연평해전>의 개봉일 SNS에 올린 글이다. 화끈한 감상이 아닐 수 없다. 이 영화에 대한 정치권과 보수 언론의 구애는 이례적이고 또 특별하다. 개봉 이튿날인 지난 25일엔 국회 시사회가 열렸다. 여야 정치인이 공동 주최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이날 참모진 20여 명과 영화를 관람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역시 관람을 예정 중이다.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의 영화 관람이 흥행한 작품이거나 개봉 후 이슈가 되는 작품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꽤 이례적이다.

<조선일보>도 개봉 당일 영화관 풍경 스케치 기사를 내보냈고, YTN과 종편 역시 연일 <연평해전>을 언급하는 중이다. MBC는 지난 25일 <리얼스토리 눈>은 '연평해전의 영웅들'을 재조명하며 영화를 주요 소재로 다뤘다. 여기에 일간베스트저장소 내에서도 <연평해전>은 뜨거운 이슈다. 영화계보다 정치권과 언론들이 더 신이 난 모양새다. 심지어 지난 24일 북한은 대남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왜곡 날조된 불순반동영화"라는 의견을 냈다.

알려졌다시피, <연평해전>은 제작비 등 여러 내부 문제로 재캐스팅과 재촬영 등을 거듭한 끝에 2년여 만에 개봉했다. 김진태 의원의 경우처럼 일반 시민의 크라우드펀딩으로 제작비 일부를 모았다. 공식적으로는 '메르스 여파'를 이유로 들었지만, 6.25 65주기 전날로 개봉 일을 2주 연기하기도 했다. 그 만큼 말도 많고 우여곡절도 많았다.

이렇게 자의든 타의든, <연평해전>은 그 명징한 제목만큼 현실을 강력하게 소환하고 그에 소구하는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 그리고 그에 화답하는 관객이 분명히 존재한다. '블록버스터 + 애국심' 코드도 나쁘지 않다. 개봉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초반 흥행을 예약한 것이 이를 반증한다. 영화판에 굳어진 정설처럼 결국 영화에 대한 평가도, 흥행도 제 운명대로 흘러 가는 법이다.

우려되는 것은 영화가 지시하는 의미보다 훨씬 더 나아간 해석과 정치적 입장들일 것이다. <연평해전>을 둘러싼 분위기는 태생부터 그런 입장이나 의견들이 확대 재생산되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이미 우리는 <국제시장>을 비롯한 여러 논쟁에서 영화를 압도하는 입장이나 의견들이 주는 피로감을 경험한 바 있지 않은가. 어쩌면, 그 피로감을 즐기는 이들의 움직임이 이미 시작됐는지도 모르겠다.

○ 편집ㅣ조혜지 기자


연평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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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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