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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당신을 위한 책갈피'는 매주 독자를 선정하여 책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거나 이 책이 꼭 필요하다 싶은 당신에게 권합니다. - 기자 말

"정당은 이길 줄 알아야 하고, 또는 확실한 아이디어나 핵심 정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 중 아무것도 못한다면 존재할 이유가 없는거죠. 새누리당의 경우에는 전자를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은 둘 다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6월 10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한 다니엘 튜더가 손석희 앵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두 정당,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코노미스트> 특파원이었던 그는 최근 한국에서 <익숙한 희망 불편한 절망>이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그 내용은 앞서 인용한 발언으로 압축된다. 영국에서 온 그가 보기에, 한국은 "(제대로 된) 좌파도 우파도 없는 이상한 정치"가 지배하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철학이 없는 보수와 네거티브에 매달리는 진보

JTBC <뉴스룸>에 출연하여 손석희 앵커와 대화를 나누는 다니엘 튜더.
 JTBC <뉴스룸>에 출연하여 손석희 앵커와 대화를 나누는 다니엘 튜더.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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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인 질문을 던진 것은 매우 유효하다고 생각한다"는 손석희 앵커의 말. 다니엘 튜더가 의문을 제기한 지점은 분명 깊게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물론 이런 식의 비판이 지난 수년간 한국 정치판을 두고 거듭 계속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사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정치'를 떠올리면 저도 모르게 혀를 차곤 하지 않나. 이런 시각은 특히 자주 인용되는 '부패한 보수'와 '무능한 진보'라는 단어로도 압축되곤 한다. 이제는 흔한 표현이 되어버린 수식어들에 대해서 다니엘 튜더는 "정치에 대한 절망과 실망이 일상화"된 한국 현실을 지적한다. 익숙해진 탓인지, 정치계에서 부패와 추문이 일어나도 더 이상 사람들이 크게 놀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니엘 튜더는 한국의 보수진영이 수치화된 경제적 지표에 집착할 뿐 통치 철학이 없다고 꼬집는다. 더불어 진보세력은 확실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보수진영의 메시지에 반대하는" 수준에서 그친다고 말한다. 또한 그가 한국 정치인들의 홈페이지를 방문할 때마다 '희망', '소통', '미래' 등의 구호가 여야 할 것 없이 가득하지만 구체적인 정책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드물다고도 지적한다.

민주화 이후 모든 연령대에서 투표율이 떨어졌는데, 이는 유권자들이 정치에 실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노년층은 정치에 불만이 있어도 투표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젊은 층은 정치에 대한 기대가 있고 긍정적인 요인이 있을 때만 투표장에 나타난다. (본문 38쪽 중에서)

이런 상황은 '정치에 대한 환멸'을 부추기고, 특히 젊은 층의 정치 참여율을 저조하게 만든다고 튜더는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보수화되고 기득권을 지지하는 것은 세계 어디에서나 나타나는 현상인데, 저자는 "(한국)정치권이 청년 관련 문제 해소를 위해 사실상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고 악순환의 배경을 짚는다.

불리한 조건이 계속되면서 야권이 매번 패배하는 상황, 다니엘 튜더는 진보정당의 위기 탈출법은 '전면적 전략 수정'이라고 말한다. 'MB 정권 심판'을 내걸고 두 번의 선거에서 졌던 2012년의 결과에서 교훈을 얻으라는 것이다.

"저격이 아니라 건설을 원한다"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야당이 잘 작동해야 한다. 또한 합리적 중도좌파 정당도 필요하다. 애석하게도 현재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은 잘 작동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으며 중도좌파 정당도 아니다. 솔직히 말해 필자는 새정치연합의 정체를 도통 모르겠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리라. (중략) 안타깝기 그지없는 현실이다. 사실 새정치연합에는 좋은 사람이 많다. 새정치연합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은 소속 의원 개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정당 전체, 역사, 정파 문제 탓이다. (본문 115~116쪽 중에서)

다니엘 튜더는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정부 심판론'이 야당의 화두로 나오는 것을 보고 이미 여당의 승리를 예상했다고 한다. 네거티브 전략으로 인한 진흙탕 싸움이 젊은 세대의 투표 의지를 떨어트린다는 분석도 '포지티브 전략'이 절실한 이유라고 말한다. 상대 진영보다 도덕적 우월성을 강조하는 차원을 넘어서, '우리가 집권해야 하는 이유'를 구체적인 철학이나 정책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본문에서 "새정치연합은 유권자를 설득하는 일에 젬병이다"라고 혹평한다. 새누리당 비판과 정부 인사들의 스캔들을 공격하는 등 어부지리식 승리에만 기댈 뿐이라는 이야기다. 바꿔서 말하자면 '더 나은 나라를 위한 비전을 제시'하는 일에 서툴다는 뜻이기도 하다. 젊은 영국인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야권의 네거티브 전략들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에 전혀 쓸모가 없다'는 결론도 추려낼 수 있겠다.

다니엘 튜더가 한국의 야권을 비판하는 대목에서는 약간의 안쓰러움과 애정이 느껴진다. 책에서 박근혜 정부는 "불통"이라고 언급하고, 새누리당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반면 새정치연합에는 비판 이후에 나름의 방향을 제시하고 문제의 이유를 짚어내는 점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설득하라"고, 유권자는 "저격보다 건설을 원한다"고 충고한다. 보수진영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적인 미래를 보여주고 신뢰를 재건하는 일이 먼저라는 것이다.

여성 의원의 비율, 성소수자나 이주노동자 문제 등의 사안에서도 보수진영에 앞서나가지 못하는 진보정당의 현실. 이미 다니엘 튜더는 지난 1월 <중앙일보>에 기고한 칼럼에서도 이를 지적한 바 있다. 이자스민 의원을 배출한 새누리당이 언젠가 먼저 성소수자 비례대표 의원을 선보일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한 것(관련기사 : '동성애' 언급 튜더 칼럼 실은 <중앙>의 속내는? )이다. 그는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에서도 "이자스민을 비례후보로 공천한 것은 매우 영리한 전략이었다"고 적었다. 이런 공천이 "새누리당이 미래 지향적 기지를 발휘해 지지층의 저변을 확대했다"는 것이다.

이런 '확장의 시도'는 득표의 파이를 넓히는 차원에서도, 또는 유권자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꿀 현실 정치를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새누리당의 영리함으로 평가할 것인지는 의견이 갈릴지라도, 이자스민의 공천이 지지층의 저변을 확대하기에 충분한 전략임은 사실이지 않은가. 야권이 이런 부분에서 미진한 까닭은, 새로운 정책과 변화를 생각하기보다 '보수진영 반대'에 그치는 수준에 머무르기 때문은 아닐까. 다니엘 튜더의 말처럼 말이다.

튜더의 말이 틀렸다고 새정치연합이 증명할 수 있을까

다니엘 튜더의 책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표지사진.
 다니엘 튜더의 책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표지사진.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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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제 설정에서 보수 진영보다 앞서 나가지 못하고, 혹은 프레임 싸움에서도 밀리는 새정치연합을 보면 미국 드라마 <뉴스룸>의 유명한 대사가 떠오른다. "사람들이 왜 민주당을 싫어하는지 알아요? 지니까 그런거야. 똑똑한 사람들이 왜 맨날 지고 자빠졌냐고"하던 바로 그 말, 한국 야당에 고스란히 적용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다니엘 튜더는 본문에서 "나쁜 정치인에게 정치에 무관심한 대중은 최고의 선물이다"라고 표현했다. 나는 이 문장을 "보수진영에게 선거에 지기만 하는 진보정당은 최고의 선물이다"라고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지난 몇 년간 선거에서 늘 패배했던 새정치연합이 들었던 비판은, 결국 보수 정권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드러냈던 무기력한 모습 때문이지 않았던가.

물론 이 책을 제대로 읽어보자면 불편하게 느껴질 부분도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저자는 본문에서 전혀 새정치를 보여주지 못하는 '새정치연합의 해체'를 거론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09년 이탈리아 정치계에 새로운 진보정당의 탄생을 가져온 풀뿌리 정치모임 '5성 운동'을 한국식으로 시도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한국 정치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셈이다.

JTBC <뉴스룸>에 출연했던 방송분에서 말했던 다니엘 튜더의 의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야당이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손석희 앵커의 질문에 다니엘 튜더는 "안타깝게도 '야권이 변하기에는 너무 늦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답했다.

부디 이 부분만큼은 그가 틀렸기를 바라본다. 최소한 '아직은' 그가 말한 "너무 늦었다"는 평가가 보류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기사를 혹은 이 책을 읽은 새정치연합 소속 정치인이 있다면, 소속 정당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 아마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이 틀렸다는 것을 직접 증명해보는 것은 어떨까?

또한 그런 점에서, 프레임 싸움과 미래지향적 전략 구성에 있어서 참고할 부분이 많은 이 책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에게 권하고 싶다. 언제까지 유권자 탓, 기울어진 운동장 탓을 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음 국회의원 선거인 20대 총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지금, '만년 야당'의 이름을 지울 수 있는 기회는 새정치연합의 변화 여부에 달렸다. 책의 제목처럼 절망에 익숙함을 느낄 것인지, 혹은 불편하더라도 희망을 보여줄 것인지는 온전히 제1야당이 해나가기 나름이라는 것을 기억해주길.

덧붙이는 글 |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다니엘 튜더 씀/ 송정화 옮김/ 문학동네/ 2015.6.8/ 1만4800원)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 서양 좌파가 말하는 한국 정치

다니엘 튜더 지음, 송정화 옮김, 문학동네(2015)


태그:#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다니엘 튜더, #한국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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