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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영산(八影山)은 이름처럼 여덟 개의 봉우리가 있습니다. 첫 번째 봉우리는 유영봉입니다.
▲ 유영봉 팔영산(八影山)은 이름처럼 여덟 개의 봉우리가 있습니다. 첫 번째 봉우리는 유영봉입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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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힘들어요? 천천히 오세요."

날씨가 흐립니다. 비가 올 모양입니다. 큰애와 둘째가 성큼성큼 산을 오릅니다. 뒤따르는 저는 온몸이 땀으로 젖었습니다. 산에 오른 지 10분 만에 몸이 망가집니다. 큰애와 둘째가 나를 바라봅니다. 눈빛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윽고 두 아들이 한목소리로 말합니다. 힘들면 천천히 따라 오랍니다.

충격입니다. 저는 작년까지만 해도 두 아들 앞세우고 막내를 목말 태워 산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저는 두 아들 뒤통수만 바라보면 힘겹게 산을 오릅니다. 당연히 제 어깨 위에 막내는 없습니다. 제 한 몸 추스르기도 버겁습니다. 돌부리가 바쁜 걸음을 붙잡습니다. 예전에 없던 일입니다.

힘이 달립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사십대 중년의 나잇살이 포착됩니다. 순간 깊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출렁이는 뱃살은 나잇살이 아닙니다. 고백컨대, 슬픈 배는 게으름의 다른 표현입니다. 그동안 퍼마신 숱한 '세월의 술'이 뱃속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지난겨울 추위를 핑계로 동네 뒷산을 거부한 탓이기도 합니다.

팔영산 입구에 닿으니 구름은 한층 더 많아졌습니다. 이대로 산에 올라도 괜찮은지 국립공원 직원에게 물었더니 별일 없을 거란 대답입니다.
▲ 팔영산 팔영산 입구에 닿으니 구름은 한층 더 많아졌습니다. 이대로 산에 올라도 괜찮은지 국립공원 직원에게 물었더니 별일 없을 거란 대답입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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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갱이’ 놀던 마을에 가자! 그 소리 들은 세 아들이 벌떡 일어납니다. ‘꼬갱이’는 최근 아이들이 흥미롭게 읽고 있는 책 제목입니다.
▲ 꼬갱이 ‘꼬갱이’ 놀던 마을에 가자! 그 소리 들은 세 아들이 벌떡 일어납니다. ‘꼬갱이’는 최근 아이들이 흥미롭게 읽고 있는 책 제목입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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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영산 오르는 길, 산철쭉이 예쁘게 피었습니다.
▲ 산철쭉 팔영산 오르는 길, 산철쭉이 예쁘게 피었습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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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갱이' 놀던 마을에 가자! 아이들에게는 현장교육이 최고

지난 20일 오전, 아내가 아이들을 깨웁니다. 전남 고흥 팔영산에 올라야 합니다. 간만에 떠나는 가족 산행입니다. 하지만 세 아들이 이불 속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아내가 다시 한 번 길을 재촉하지만 아이들은 쉽게 자리를 털고 일어서지 않습니다. 상황이 심상찮습니다. 널 부러진 아이들을 보며 저는 비장의 카드를 꺼냈습니다.

'꼬갱이' 놀던 마을에 가자! 그 소리 들은 세 아들이 벌떡 일어납니다. '꼬갱이'는 최근 아이들이 흥미롭게 읽고 있는 책 제목입니다. '꼬갱이'라는 책을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꼬갱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여자 아이가 갑작스러운 이사로 하루아침에 서울에 살게 되면서 고향인 전남 고흥 팔영산 아래 시골마을 이야기를 전하는 내용입니다.

세 아들은 책에 등장하는 팔영산과 주변 마을이 어떻게 생겼는지 몹시 궁금했나 봅니다. '꼬갱이'와 '팔영산'이라는 말을 꺼내자 세 아들이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납니다. 역시 아이들에게는 현장교육이 최고입니다. 그렇게 세 아들 앞세우고 고흥 팔영산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날씨는 기대만큼 좋지 않습니다. 비를 잔뜩 머금은 구름이 사방에 퍼져 있습니다. 산에 오르기 적당한 날은 아니지만 그나마 뜨거운 햇볕은 피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팔영산 입구에 닿으니 구름은 한층 더 많아졌습니다. 이대로 산에 올라도 괜찮은지 국립공원 직원에게 물었더니 별일 없을 거란 대답입니다.

아이들이 산을 오릅니다. 두 아들 뒤통수만 바라보면 힘겹게 산을 오릅니다. 당연히 막내는 제 어깨위에 없습니다. 제 한 몸 추스르기도 버겁습니다.
▲ 산행 아이들이 산을 오릅니다. 두 아들 뒤통수만 바라보면 힘겹게 산을 오릅니다. 당연히 막내는 제 어깨위에 없습니다. 제 한 몸 추스르기도 버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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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애와 둘째가 바위를 흔들어봅니다. 하지만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산길에서 상처받은 자존심을 회복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 흔들바위 큰애와 둘째가 바위를 흔들어봅니다. 하지만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산길에서 상처받은 자존심을 회복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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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영산은 기암괴석이 많습니다. 산세도 험준해 등산객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 바위산 팔영산은 기암괴석이 많습니다. 산세도 험준해 등산객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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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애의 뜨거운(?) 배려... 속상합니다

국립공원 직원의 말과 산에 오르는 주변 길동무들을 보며 용기를 냈습니다. 세 아들은 벌써 신이 났는지 저만치 앞서 걷습니다. 저와 아내는 다람쥐처럼 산을 오르는 아이들을 보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깁니다. 하지만 아내는 몇 걸음 떼지 않아 가쁜 숨을 몰아쉽니다. 아내 체력이 말이 아닙니다.

반면, 제 다리는 아직 멀쩡합니다. 저는 숲으로 사라지는 아이들을 쫓아 바쁘게 걸었습니다. 하지만 산 중턱에 펼쳐진 가파른 길에서 저질 체력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숨은 차고 땀이 비 오듯 쏟아집니다. 그 모습 바라보던 아이들이 저를 위로합니다. 너무 급하게 자신들 따라오지 말랍니다.

큰애가 안쓰러운 얼굴로 제게 던진 한마디, 뜨거운(?) 배려 같은데 감동이 밀려오지 않고 속상한 마음이 고개를 듭니다. 그렇게 산길에서 아이들 '폭풍 격려'를 들으며 팔영산을 오릅니다. 다행히 산 중턱에 쉼터가 보입니다. 그곳에서 아이들을 붙잡고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쉼터 옆에 커다란 바위가 있습니다. 큰애와 둘째가 바위를 흔들어봅니다. 하지만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산길에서 상처받은 자존심을 회복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저는 큰 바위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 온 힘을 다해 바위를 흔들었습니다.

팔영산은 전남 고흥군 점암면에 있습니다. 1998년 7월 30일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가 2011년에 국립공원으로 승격됐습니다.
▲ 계단 팔영산은 전남 고흥군 점암면에 있습니다. 1998년 7월 30일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가 2011년에 국립공원으로 승격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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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르기 적당한 날은 아니지만 그나마 뜨거운 햇볕은 피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팔영산 입구에 닿으니 구름은 한층 더 많아졌습니다.
▲ 구름 산에 오르기 적당한 날은 아니지만 그나마 뜨거운 햇볕은 피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팔영산 입구에 닿으니 구름은 한층 더 많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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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봉우리는 유영봉을 오른 뒤 성주봉과 생황봉을 거쳐 사자봉, 오로봉, 두류봉, 칠성봉을 거쳐 마지막 제8봉인 적취봉에 올랐습니다.
▲ 적취봉 첫 번째 봉우리는 유영봉을 오른 뒤 성주봉과 생황봉을 거쳐 사자봉, 오로봉, 두류봉, 칠성봉을 거쳐 마지막 제8봉인 적취봉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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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영산,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지구에서 유일한 산악지역

하지만 덩치 큰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세 아들이 잽싸게 제 옆으로 다가와 눈을 크게 뜨고 바위를 바라봅니다. 저는 다시 한 번 온 힘을 다해 바위를 흔듭니다. 그러자 바위가 조금 흔들립니다. 아이들 환호가 이어집니다. 저는 팔을 들어올려 커다란(?) 알통을 아이들에게 내보였습니다.

힘자랑을 마치고 또 다시 산을 오릅니다. 여전히 저의 출렁이는 뱃살이 발걸음을 무겁게 만듭니다. 팔영산은 전남 고흥군 점암면에 있습니다. 1998년 7월 30일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가 2011년에 국립공원으로 승격됐습니다. 또,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지구에서 유일한 산악지역이기도 합니다.

팔영산(八影山)은 이름처럼 여덟 개의 봉우리를 갖고 있습니다. 첫 번째 봉우리는 유영봉입니다. 다음은 성주봉이고 세 번째 봉우리는 생황봉, 네 번째는 사자봉입니다. 그 뒤로 제5봉인 오로봉과 제6봉인 두류봉이 있고 칠성봉을 거쳐 마지막 제8봉인 적취봉까지 이어지는 바위 능선입니다.

팔영산 하산 길에서 만난 참나리입니다.
▲ 참나리 팔영산 하산 길에서 만난 참나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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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가 다도해를 바라봅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 적취봉 막내가 다도해를 바라봅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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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이 산을 내려갑니다. 날로 커가는 아이들 모습 보며 저는 ‘마징가 아빠’라는 환상 깨지는 날을 최대한 늦추고 싶습니다.
▲ 하산 세 아들이 산을 내려갑니다. 날로 커가는 아이들 모습 보며 저는 ‘마징가 아빠’라는 환상 깨지는 날을 최대한 늦추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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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징가 아빠' 환상 깨지는 날, 최대한 늦추고 싶다

팔영산에는 기암괴석이 많습니다. 산세도 험준해 등산객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여덟 개 봉우리를 모두 올라 선 뒤 산을 내려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들과 약속을 했습니다. 주말이면 꼭 동네 뒷산이라도 오르렵니다. 세 아들과 자전거도 타겠습니다.

늘어진 제 뱃살이 순식간에 사라질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막내를 목말 태우고 산에 오를 일은 없겠지만 과거의 영광은 되찾겠습니다. 아직까지 세 아들은 저에 대한 믿음 저버리지 않은 듯합니다. 아이들 눈에 여전히 아빠는 산에 오를 때만큼은 마징가입니다.

날로 커가는 아이들 모습 보며... 저는 '마징가 아빠'라는 환상 깨지는 날을 최대한 늦추고 싶습니다. 나잇살이라는 핑계로 부푼 뱃살을 품고 살아가는 40대 아빠들에게 감히 권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면 뱃살 저절로 사라집니다. 덤으로 가족의 화목도 챙기시기 바랍니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과 '전라도뉴스'에도 송고합니다.



태그:#팔영산,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꼬갱이, #뱃살, #나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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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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