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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는 영화 <경성학교>의 주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영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 청년필름·비밀의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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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개봉한 영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은 분위기상으로는 공포 영화 같지만, 실은 일본제국주의의 비인도적 만행을 고발한 영화다. 영화의 배경은 서울(경성) 주변의 소녀 전용 요양학교인 경성학교다. 이 학교에서는 허약한 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공부와 체련단련을 병행한다. 학생들은 특히 멀리뛰기에 주력한다. 이들 사이에서는 멀리뛰기를 잘하는 학생이 부러움을 산다.

경성학교에서는 체력이 좋아진 학생 두 명에게 동경(도쿄) 유학의 기회를 주겠다는 약속을 내걸고 학생들을 분발시킨다. 소녀들은 1930년대의 세계 정상급 국가인 일본의 수도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열심히 체력을 증진시킨다. 그들은 매일 밤 취침 직전에 학교에서 제공하는 모종의 알약을 삼키면서 자신들이 체력적으로 왕성해질 그날을 꿈꾼다.

하지만 모든 것은 거짓이었다. 경성학교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인간 생체실험의 일환이었다. 학교에서 원하는 학생은, 체력적으로 건강해진 학생이 아니라 초인적인 괴력을 갖게 되는 학생이었다. 인간이 얼마만큼의 괴력을 갖게 될 수 있는지를 연구할 목적에서 소녀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밤마다 제공하는 알약도 그런 목적에서 주는 것이었다.

이런 비밀이 학생들 사이에 알려지면서, 조용하던 영화는 갑자기 긴장감 있는 영화로 바뀐다. 그동안 친구들이 하나둘씩 사라졌던 이유가 드러나면서, 학생들은 공포감에 떨게 된다. 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이 와서 학생을 데려갔다고 둘러댔지만, 사실 그 학생들은 차가운 물이 담긴 유리관에 갇혀 냉각된 채로 죽어갔다.

폐병 치료를 목적으로 경성학교에 입학한 주인공 주란(박보영 분)은 급우들이 보기에는 절대로 동경에 갈 수 없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학교 측이 보기에는, 주란이야말로 동경에 백번 보내도 아깝지 않은 학생이었다. 왜냐하면, 주란이 본인도 모르게 괴력의 소유자로 변했기 때문이다. 일본제국주의가 세계 정복을 목적으로 키우는 비밀 전사가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 <경성학교>의 스토리는 그렇게 흘러간다.

<경성학교> 속 생체실험, 실제론 더 잔혹했다

 중국 하얼빈에 있었던 일본 731부대.
 중국 하얼빈에 있었던 일본 731부대.
ⓒ 위키피디어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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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이전만 해도, 아시아에서 일본의 지위는 청나라 다음인 2위였다. 그랬던 일본이 1894년에 발발한 동학농민전쟁을 빌미로 조선에 침입하고, 여세를 몰아 청나라를 격파했다(청일전쟁). 이로써 아시아 최강이 된 일본은 자국의 4년 반치 예산에 해당하는 3억 6천만 엔의 전쟁배상금을 청나라로부터 받아낸 뒤, 그걸 밑천으로 일본 산업을 근대화하고 조선을 강점했다.

그런 다음, 일본은 영국과 더불어 세계 최강을 이루던 러시아를 1905년에 격파하고 세계 정상급에 올랐으며(러일전쟁), 뒤이어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이 된 뒤 1930년대 후반부터 동아시아·태평양·미국을 상대로 세계 정복전쟁을 벌였다.

일본이 이렇게 단기간에 세계 정상급으로 발돋움한 것은 오키나와·대만·조선을 강점하여 몸집을 불린 덕분이기도 하고, 청나라한테서 배상금을 후하게 빼앗은 덕분이기도 하고, 서양문화를 남들보다 잘 이용한 덕분이기도 하다.

이런 요인들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일본 지배층의 잔혹성이다. 일본 지배층은 겉으로는 신사적인 무사도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비인도적 잔혹성을 무기로 인류와의 대결에 나섰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버릴 수 있다는 잔혹성이 있었기에, 그토록 짧은 시간 내에 광활한 영토를 강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잔혹성을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731부대와 마루타로 상징되는 생체실험이다. 영화 <경성학교>에서는 신체에 이상한 알약을 주입하거나 차가운 물이 가득한 유리관에 사람을 집어넣는 수준의 생체실험이 묘사되었지만, 이런 장면들은 실제의 생체실험과 비교하면 그저 약과에 불과했다.

최근, 주한미군이 서울·오산·평택·군산 미군기지에서 탄저균 실험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건조 상태로 10년 이상 생존할 수 있다는 탄저균은 인간에게 쇼크를 주거나 급성 사망을 일으킬 수 있는 강력한 생물학 무기다.

일본군 731부대에서도 탄저균을 이용한 생체실험을 실시했다. 중국 만주에 주둔한 731부대는 탄저균을 쥐나 가축에 주입한 뒤, 그런 쥐들을 일반 민가에 퍼뜨렸다. 그런 다음에 군인들을 동원해서 주민들이 마을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저지했다. 주민들 사이에서 탄저병이 얼마나 빨리, 어떻게 퍼지는지를 연구할 목적이었던 것이다.

731부대는 인간을 차갑게 얼린 뒤에 몽둥이로 내리치면 신체가 어느 정도나 손상되는지도 실험했다. 인간에게 열을 가하면서 말려 죽이는 실험도 했다. 사람의 한쪽 팔에서 피를 뽑고 다른 쪽 팔에는 말의 피를 주입하면 어떻게 되는지도 실험했다.

얼마만큼의 피를 뽑아야 사람이 죽는지를 알아내고자 실험대상자의 혈액을 한없이 추출하기도 했다. 사람들을 일렬로 세워놓은 뒤 옆구리에 총알을 쏘면 몇 명이나 쓰러지는지도 실험했다. 이 부대의 비인도적 실험방식을 열거하자면 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탄저균.
 탄저균.
ⓒ 위키피디어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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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에까지 마수를 뻗친 일본 731부대

일본인들이 제2차 대전 중에만 그런 일은 한 것은 아니다. 1945년 8월 15일 무조건 항복 뒤에도 일본은 생체실험 같은 비인도적 행위를 그만두지 않았다. 그들은 동아시아 주둔 미군의 지원을 받아 그런 행위를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한국전쟁 전문가인 후지메 유키 오사카외국어대 교수가 2001년 9월호 <민족 21>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일본이 자신들의 기술을 한국전쟁 때도 활용했을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다. 물론 단독으로 한 것은 아니고, 미군과의 협력 하에 그렇게 했을 가능성이 높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요시타 시게루 일본 총리는 7월 15일 국회에서 행한 시정방침 연설에서 "조선전쟁은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라며 일본의 개입을 독려했다. 일본은 7천에서 8천 명 정도의 육군을 미군과 한국군 사이에 끼워 넣는 데 그치지 않았다. 다양한 기술을 가진 일본인들이 이 전쟁에서 군인으로 활약했다. 약 30만의 일본 민간인은 미군의 전쟁수행을 돕는 노동자로 복무했다. 최소한 340명 이상의 일본인 위안부(성노예)는 전쟁 중인 미군 부대에서 성적 착취를 당했다.

일본은 위와 같은 방법들을 구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2차 대전 때 못다 했던 생체실험이나 세균전을 한국전쟁에서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후지메 유키 교수는 지적했다. 그가 제시한 증거는 한둘이 아니다.

제2차 대전 때 731부대에 대량의 쥐를 공급한 오자와 시부로는 종전 뒤에는 미군을 위해 복무했다. 한국전쟁 직전에 그는 6천 가구의 농가에서 위탁 사육한 실험용 쥐들을 주일미군 406부대 등에 제공했다.

406부대에는 1000명 정도의 일본인 연구원이 있었고, 그중 상당수는 731부대 출신이었다. 또 731부대 관계자인 기타노 마사지, 후다츠키 히데오, 미야모토 고이치 등은 한국전쟁 당시 일본 빈민들로부터 혈액을 구입한 뒤 이것을 한반도에 판매하여 거액의 이익을 남겼다.

미군이 731부대의 노하우는 물론이고 인력까지 넘겨받고 731부대원들과 함께 생체실험과 관련된 일을 했으며 이런 협력관계가 한국전쟁 중인 한반도 안에까지 이어졌다면, 731부대 잔존세력이 미군과 함께 한국전쟁에서 실험대상을 찾아다녔으리라는 후지메 유키 교수의 추론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미군이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과 중국군을 상대로 세균전을 했으며 그 기술이 일본군한테서 나왔다는 내용의 이른바 '니덤 보고서'가 공개됐다. 이 점을 보더라도 일본이 한국전쟁 당시 미군과 협력하여 한반도를 못된 실험의 대상으로 삼았을 확률이 한층 더 높아진다. 

이렇게 일본은 생체실험이나 세균전 같은 비인도적 방법까지 불사하면서 세력팽창을 시도했다. 어쩌면 그들 입장에서는 생체실험이 비인도적 방법이 아니라 최첨단 방법이기에 양심의 가책을 덜 받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최첨단 방법을 좋아하던 일본이 1945년 8월 두 방의 최첨단 무기를 맞고 항복한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처럼 비인도적 방법까지 불사하다가 결국 패망한 일본인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있다. 그들 중 일부는 '어느 나라든지 힘이 있으면 세계 정복을 시도하기 마련이고, 우리 역시 그렇게 하다가 운수가 없어서 실패했을 뿐'이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있다.

그런 일본이 한국군 군사정보의 공유와 평화헌법의 개정, 자위대의 국제분쟁 개입,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등을 노리고 있으니, 동아시아 사람들로서는 일본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처럼 위험한 일본을 경계하지 않는다면 <경성학교> 속의 '사라진 소녀들'처럼 동아시아 안에서도 사라질 나라들이 생겨날지 모른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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