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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미례 다큐멘터리 감독
 류미례 다큐멘터리 감독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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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단비가 내린 다음날 류미례(45) 감독과 만나기로 했다. 류 감독이 두어 차례 약속시간 변경을 요청했다. 강화도에 사는 그녀의 밭이 촉촉해진 터에 콩을 심겠다는 친정어머니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분주하게 움직였을 그녀는 편한 차림에 전혀 치장하지 않은 모습으로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416연대 미디어팀 회의가 서울에서 있다고 했다. 서울 종로에 있는 독립영화관 인디스페이스에서는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이라는 행사를 하고 있다. 류 감독이 '6월의 감독'으로 선정돼, 그녀의 작품이 상영 중이다. 그녀는 바빴다.

사학과 졸업생, 작은 카메라를 들다

"1989년에 고려대 한국사학과에 입학했어요. 그 당시는 민주화 운동이 대세였던 때였죠. 학교를 졸업하고 노동현장으로 가려했는데 못 갔어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에서 '민족예술'이라는 잡지를 만들었는데, 거기서 편집기자를 했어요."

그때 그녀는 김명준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 소장과 인터뷰하면서 '노동자가 안 돼도 노동운동에 복무하는 일이 있구나. 영상으로 노동운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후 다큐멘터리 제작 관련 강좌를 듣고 노동자뉴스제작단에서 하는 강의도 들었다. 그리고 1998년에 다큐공동체 '푸른영상'에 합류했다. 1991년에 만들어진 푸른영상은 환경문제, 위안부, 비전향장기수, 장애인, 빈민 등을 주제로 한 다큐를 지금까지 제작하고 있다.

"소외 받는 인권을 비추는 카메라 집단이라 지향이 같았고, 1인 제작시스템이 저와 맞았어요. 1인 제작은, 작은 카메라 하나 들고 어디든 갈 수 있잖아요. 음질이나 화질 등 기술력은 좀 떨어지지만 기존 방송카메라가 가지 않는 곳을 비추는 게 좋았습니다."

1인 제작시스템이란 기획단계에서부터 촬영과 편집 등까지 혼자서 다하는 것을 말한다. 보통은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나가면 피디(PD)·촬영감독·조명담당·음향담당 등 최소 4명이 움직이는데, 기동성과 등장 인물과의 친밀도가 떨어진다.

"1999년 작품인 <동강은 흐른다>의 조연출을 할 때였어요. 세 집만 사는 정선군 제장마을에서 먹고 자면서 찍었죠.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이 분리되지 않고 동강 사람들처럼 같이 살았어요."

영화보다 삶이 중요한 독립다큐 감독

류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집단을 크게 네 가지로 분류했다.

"저와 같은 독립다큐가 하나 있고요. 그 외 독립피디, 미디어아트, 극영화로 나눌 수 있죠. 작년에 개봉한 박찬경 감독의 <만신>은 미디어아트로 보면 되고, <고양이를 부탁해>라는 영화를 만든 정재은 감독의 <말하는 건축가>는 극영화로 보면 됩니다."

그 중 가장 많은 다큐 감독들은 독립피디로 구분된다. KBS 대표 다큐 프로인 <인간극장>도 방송국 정규직 피디가 만드는 게 아닌 외주 제작자인 독립피디가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독립피디들은 먹고 살기 위해 방송다큐를 만들기도, 자신의 작품세계를 위해 독립다큐를 만들기도 한단다. 그런데 '방송'과 '독립'의 차이는 뭘까?

"다큐를 찍으려면 관객과 등장인물, 감독. 이렇게 삼자가 있어요. 예를 들면, 독립다큐는 등장인물과 함께 지내면서 일체가 되는 순간을 선망하죠. 등장인물이 카메라 앞에서 진실한 모습을 내어놓는 순간이 행복해요. 하지만 방송다큐는 관객 중심인 경향이 크죠. 피디의 의도대로 내레이션과 음악을 삽입해, 보여 주고 싶은 것만 보여줘요.

<동강은 흐른다>를 보면 할머니가 울면서 노래하는 장면이 나와요. 어둑하고 흐릿한 화면이지만 우리는 할머니의 감정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라이트를 켜지 않았어요. 방송다큐는 그런 상황이라면 라이트를 켜거나 만약 어두운 장면이라면 사용하지 않죠. 감독이 누구를 먼저 생각하느냐의 차이죠."

18년 경력의 류 감독은, 방송이 파급력도 있고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되지만 독립다큐를 고집한다.

"어떻게 해야 관객들을 울리고 흥행에 성공하는지 모르지 않아요. 제가 푸른영상에 들어갔을 때 선배들이 그랬어요. '독립다큐는 영화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삶의 방식이 중요하다'라고요. 제가 선택한 거죠."

독립다큐의 지향이 뚜렷한 류 감독도 잠깐 방송국에 몸 담았던 적이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 MBC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방송국에 자료가 빈약하다 보니 독립다큐를 제작하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류 감독은 '조봉암과 진보당 사건'을 만드는 데 합류했다.

고통과 슬픔의 올림픽 하고 있는 대한민국

간첩조작사건을 다룬 <22일간의 고백>과 <동강은 흐른다>의 조연출을 거쳐 류 감독은 2000년 첫 연출작인 <나는 행복하다>를 찍었다. 지적장애인을 다룬 다큐다.

"푸른영상 사무실이 관악구 봉천동에 있었는데, 가난한 동네였어요. 대한성공회에서 운영하던 사회선교기관이 있었고, 거기서 장애인들을 처음 만났는데 그들이 제 마음 속에 들어오더라고요."

 류미례 감독의 다큐 ‘아이들’ 한 장면.
 류미례 감독의 다큐 ‘아이들’ 한 장면.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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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속작으로 지적장애인을 다룬 다큐 <친구>를 제작했지만 그 후 결혼과 출산으로 작업을 계속할 수 없었다. 아이를 업고 카메라를 든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류 감독은 카메라를 가족으로 돌렸다. 하은·한별·은별, 세 남매가 주인공인 다큐 <아이들>을 완성했다. 지금은 416연대 미디어팀과 탈핵 미디어팀에서도 활동한다.

"저는 여성 관련한 주제에 관심이 많아요. 그런데 몇 년 전, 밀양 할머니들이 싸우고 있는데 내 작업만 생각하고 다른 세상에 관심이 없는 제 모습을 발견한 거예요. 제 작품과 무관하게 카메라를 들고 시민으로 참여한다는 생각으로 밀양에 갔죠. 그게 계기가 돼 세월호 관련 미디어팀에도 합류했어요."

류 감독은 자신의 작품 활동과 사회참여 활동까지 하기에는 초인적인 힘이 필요해 요즘 많이 힘들다는 속내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 곁을 떠날 수는 없단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의 부모들과 도보행진을 할 때였어요. '무엇을 찍을까요'라고 물었더니, '그냥 카메라가 옆에 있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밀양도 그래요. 경찰은 예닐곱 대의 카메라로 계속 채증해요. 제가 카메라를 들면 경찰이 좀 조심하더라고요. 옆에 없을 수가 없죠. 제가 처음으로 카메라를 잡았던 이유기도 하니까요.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은 더 처절하고 비극적인 게 덜 처절하고 비극적인 것을 묻고 가리는 상황이에요. 밀양도 처절한데 세월호가 거의 다 가리고 있는 상황이죠. 고통과 슬픔의 올림픽을 하고 있는 거 같아요."

매력적인 인천에서 작품 활동 하고 싶어

서울 관악구 봉천동 대한성공회 사제였던 남편을, 류 감독은 <나는 행복하다>를 찍을 때 처음 만났다. 2010년 강화도로 발령 난 남편과 함께 그곳에 정착해 인천시민이 됐다. 마음이 잘 통하는 인천여성영화제 관계자들을 알게 됐고, 인천독립영화협회(아래 인독협) 회원으로 활동하며 인천에서, 인천 사람들과 작업하고 싶은 생각이 많아졌다.

류 감독은 "생각보다 인천이란 도시는 훨씬 매력적이에요. 이국적인 느낌도 있고, 원도심의 정겨운 거리가 공존하죠"라고 한 뒤, 지금 살고 있는 강화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도 했다.

"문화적 환경이 상대적으로 척박한 강화에서 영화를 만들어본다는 건 매력적이고 훌륭한 경험이에요. 지금 인독협에서 주최하는 미디어교육을 제가 하고 있는데, 우리 동네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싶어요. 하고 싶은 작품은요? 모성 이데올로기,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반격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모성을 강조해 일하는 엄마들이 죄책감을 갖게 하거나 정상가족이라는 말로 부모가 없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세상에,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덧붙이는 글 | <시사인천>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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