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수의견>의 공식포스터

영화 <소수의견>의 공식포스터 ⓒ (주)시네마서비스


<변호인>이 있었다. <또 하나의 약속>도 그랬다. 그 이전엔 <도가니>와 <부러진 화살>을 기억한다. 실화를 모티브 삼아 관객을 법정 속으로 초대하는 한국 작품들은 언제나 논쟁적이었다. 노무현이 있었고, '삼성 반도체'가 드리워졌으며, 장애인 아동 성폭력과 사법 제도의 모순이 고발됐다. 그리고, 2015년 우여곡절 끝에 <소수의견>이 왔다.

지난 24일 개봉한 영화 <소수의견>은 굳이 실화가 아니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이 의미는 이렇게 풀이된다. 영화는 2009년 1월 일어난 '용산 참사'를 모티브로 한 손아람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실제로 영화는 북아현동 뉴타운 재개발을 위한 강제 철거 현장에서 일어난 살해 사건을 다루는 법정극이다.

강렬한 오프닝으로 시선을 잡아끄는 <소수의견>은 한국 사회 특정 생태계의 실태를 끊임 없이 환기한다. 그 뚝심은 끝내 우리가 마주해야 할 어떤 진실을 목도하게 만든다. 누구는 사법 체계의 이면을, 누구는 검찰 조직의 배타성과 이기주의를 볼 것이며, 또 누구는 청와대까지 연결된 권력층의 검은 '커넥션'을 볼 것이다.

의문에서 시작해 흥미로운 서사를 집대성해가는 <소수의견>은 그리하여 다시금 '용산참사'의 의미를 기어이 되돌아보게 만든다. 사건 이후를 연상하고 기억하게 만드는 지극히 한국적인 상황을 녹여낸 법정 드라마를 통해서 말이다. 그 진실의 문으로 입장하는 입구는 '두 청년의 죽음'이다.

<변호인> <또 하나의 약속>을 잇는 또 하나의 웰메이드 드라마  

 영화 <소수의견>의 한 장면.

영화 <소수의견>의 한 장면. ⓒ (주)시네마서비스


아들이 죽었다. 그것도 아버지의 두 눈 앞에서, 다름 아닌 경찰의 손에. 1년 넘게 강제 철거를 막기 위해 투쟁을 벌이던 바로 그 현장이었다. 용역 깡패들에 이어 경찰들이 들이닥치고, 물대포가 쏟아지던 그 건물에 하필 열여섯 아들이 투쟁 중인 아비를 보기 위해 들렀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 와중에 또 다른 아들이 죽었다. 자기 아들을 때려눕힌 경찰(의경)을 보다 못한 그 아버지가 쇠파이프를 휘두르기에 이른 것이다. 곧 사실은 은폐되고, 보도도 깨끗하게 묻힌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경찰을 죽인 현행범으로 체포, 살해 혐의로 재판정에 선다. 훗날 그 재판정에선 의경의 아버지가 '철거민' 아버지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사건을 배정 받은 한 국선 변호사. 처음엔 그저 단순한 철거민 관련 살인 사건이라 여겼다. 그런데, 초기 경찰 수사 기록을 차단 당하고, 검찰이 각을 세우면서 "아들을 죽인 건 용역 깡패가 아닌 경찰"이라는 철거민 아버지의 주장에 귀 기울이게 된다. 더욱이, 사건의 대강을 지켜봤던 한 기자가 집요하게 진실을 촉구하고 동참을 요구하면서, 이 변호사 역시 사건에 구린 구석이 있음을, 더 나아가 국가와 경찰 고위층의 은폐 시도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된다. 

'용산 참사'를 소환하게 만드는 과거 사건 현장을 거친 질감과 비관습적인 카메라로 선명하게 각인하는 <소수의견>은 이후 2년 차 국선 변호사 윤진원(윤계상 분)의 입장에서 서사를 진행해 나간다. 그는 법조계에서 보면 초짜 변호사에 불과하다. 사무실도 이혼 전문 변호사인 선배 장대석(유해진 분)에게 더부살이 하는 신세다.

처음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윤진원이 아버지 박재호(이경영 분)의 사건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계기 역시 정의감이 전부는 아니다. 사회부 기자 공수경(김옥빈 분)의 소개로 만난 한 야당 국회의원에게 이 사건이 변호사로서 이름값을 날릴 수 있는 '대박' 사건임을 직감하고 난 뒤 그의 태도는 몰라보게 적극적으로 돌변한다.

다소 구구절절 설정을 설명한 이유는 여기에 이 영화의 어떤 태도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마저 관심 없던 그 사건의 거대한 은폐 시도는 특종을 갈망하는 공수경도 몰랐던 사안이다(더욱이, 노회한 야당 정치인이 사건의 배경을 알려준다는 설정은 여러 의미로 꽤 '정치적'이기도 하다). 그 윤진원 변호사가 박재호의 심정을 공감하게 되는 것도 자신이 변호사로서 물리적인 피해를 당한 후반부가 돼서야 가능한 일이다.

아직 '내부 공범자'가 되기엔 이른 초짜 변호사가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과정이야말로 법정 드라마의 정석과 같은 구조일 터. 윤진원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소수의견>은 그 설정 자체로 '용산 참사' 자체를 잘 알지 못하는 관객에게까지 흡입력을 부여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런 캐릭터 구성과 사건 전개가 계속될수록 영화의 비판적인 화살은 윤진원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검사 홍재덕(김의성 분)이 대변하는 검찰 조직에 집중적으로 쏠리게 된다. 

현재형이라 더 생동감 있는 법조계와 한국 사회 조망기

 영화 <소수의견>의 한 장면.

영화 <소수의견>의 한 장면. ⓒ (주)시네마서비스


<소수의견> 속 재판은 두 가지로 진행된다. 하나는 박재호의 의경 폭행 치사 사건에 대한 정당 방위를 입증하는 국민참여재판이고, 또 하나는 청구 금액이 단돈 100원인 국가배상청구소송이다. 둘 모두 박재호의 정당 방위를 입증하고,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절차. 이 두 재판 과정 안팎으로 고군분투하는 두 명의 변호사와 한 명의 기자의 활약은 사실 '열혈' 직업인의 묘사에 가깝다.

그 와중에 윤진원은 홍재덕으로 대변되는 검찰 조직과 지속적으로 맞부딪힌다. 영화는 국민참여재판으로의 전환이나 변호사 징계위원회 회부, 거대 로펌의 횡포, 느닷없는 압수 수색과 같이 윤진원을 코너로 내모는 법조계 디테일을 꽤 넓고 상세하게 묘사한다. 물리고 물리는 영화적인 구성과 함께 현실감을 상승시키는 요소다.

물론 사건을 은폐하고 재판을 무위로 돌리려는 검찰 조직에 대한 묘사는 그 자체로 한국 사회의 권력 지향적이고 위계적인 조직 문화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으로 기능한다. <소수의견>의 장점이자 영화적인 약점은 그 비판의 지점에서 인물의 감정이나 연출의 개입을 최대한 배제하고 냉정을 유지한다는 점이리라. 후반부의 한방 대신 끝내 지킨 냉정함 말이다. 

시민단체의 표변이나 박재호의 변심, 공수경과 언론사의 앞서 나간 '헛발질'을 놓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법정 자체의 극적 장치보다 그 안팎의 상황 묘사에 더 눈길이 가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렇게 때로는 냉철하고 지적으로, 때로는 감정의 파고를 적절히 유지하는 형태로 차곡차곡 싸이는 에피소드들은 왜 한국 사회에서 '법'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기가 쉽지 않느냐하는 고발 드라마로 귀결된다.

마찬가지로, <소수의견>이 획득한 시대적인 공기는 소중할 수밖에 없다. 앞서 서술했듯, 비단 실제 사건을 구체적으로 지시해서는 물론 아니다(오히려 사건 자체에 대한 구체적인 상황과 증거는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문>에 더 자세히 묘사돼 있다).

사법부와 정치 검찰에 대한 불신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시대, 각자 지닌 직업적 소신과 정의를 법을 통해 밀고 나가는 주인공들을 마주하는 일은 그 자체로 분명히 의미를 지닌다. <소수의견>이 흥미로운 지점은 그 반대 편에 선 인물들에 대한 묘사 역시 구체성을 띤다는 데 있다. 

"국가를 위해 누군가는 희생하고, 누군가는 봉사를 한다. 나는 국가를 위해 기꺼이 봉사했다. 윤진원, 너는 그래서 무엇을 했느냐"는 홍재덕의 마지막 대사가 던지는 펀치는 그래서 더욱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취임한 총리의 삶을 궤적을 보라. 공안 검사였고 법무부 장관까지 지낸 그의 이력과 활약의 총합은 아마도 <소수의견> 속 검사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으리라.

그렇게 <소수의견>은 이 사회의 '소수의견'들을 묵살하며 정권을 유지했던 이들이 얻는 권력의 비열함과 그 이면의 작동 구조를 현재적으로, 영화적으로 자연스레 폭로한다. 그 어떤 저항에도 지금껏 끄떡없는 그 공고한 성채를 말이다. 구체적으로는, 사건 이면에 개입한, 청와대와 건설 회사, 검경이 움직이는 권력 관계와 수사 기관의 작동 구조가 꽤 직접적으로 언급되고 있기도 하다.

이 모든 장점이 원작 소설에 일정 정도 빚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선과 악이 아닌 '입장'만이 존재하는 법정과 그 법정을 둘러싸고 있는 법조계 '식구'들의 커넥션, 이에 대한 디테일한 영화적 묘사만으로도 <소수의견>은 그간 한국영화가 다다르지 못한 정통 법정 드라마의 지위를 획득해 냈다고 볼 수 있다. "너는 그래서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자기 성찰적 질문도 잊지 않은 채로.

김성제 감독 "<소수의견>은 '염치'에 대한 영화"

 영화 <소수의견>의 한 장면.

영화 <소수의견>의 한 장면. ⓒ (주)시네마서비스


<소수의견>은 개봉까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촬영 후 개봉하기까지 2년여가 걸렸고, 그 사이 투자 배급사가 교체됐다. 실체 없는 외압설이 떠돌기까지 했다. 그러나 영화가 대중에게 공개되고 있는 지금, "이 정도 영화가 도대체 왜?"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제작진은 지극히 정공법의 영화를 만들었고, 그간 관객이 실화 영화에 단련되기도 했다(그리고 소재의 문제가 아닌 해석의 차원에서 과하게 덧씌워진 영화들도 많았다).

여기에 <소수의견>은 연기자들의 호연이 더해지며 일종의 '웰메이드' 상업 영화로 관객을 만날 채비를 마쳤다. '젊은' 윤계상과 김옥빈의 활력 사이에서 능청스럽지만 인간미 넘치는 유해진이 여유를 잡아주고, 이경영, 김의성, 권해효와 같은 중견 배우들이 탄탄한 연기력으로 균형을 잡아 준다. 배우들에 대한 신뢰감이 영화의 신뢰감까지 높이는 전형적인 케이스다.

다만, 다소 긴 상영 시간 안에 차곡차곡 쌓아 올린 사건들의 영화적인 구성이 성기게 느껴지는 것이 흠이라면 흠일 수 있다. 더불어 냉정함과 냉철함을 유지하려는 욕심에 라스트의 공분과 같은 감동 코드와도 결별을 선언했다. 바로 이 점이 일반 관객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프로듀서와 작가로 영화판에서 잔뼈가 굵은 김성제 감독은 데뷔작인 <소수의견>을 두고 "결국 '염치'에 대한 영화"라고 정의한다. 이는 정의와 법, 국가 앞에서 선 개개인의 '소수의견'을 무시하고 욕망과 이익만을 쫓는 한국 사회 권력층이 회복해야 할 가치에 대한 것이리라.

그것은 영화 속 박재호가 그랬던 것처럼 제 '의견'을 지닌 모두가 지녀야 할 덕목이기도 할 것이다. '용산 참사'와 원작 소설을 경유해 조금 늦게 도착한 <소수의견>은 분명 '지금'이라서 더 고마운 영화다.  

○ 편집ㅣ조혜지 기자


소수의견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