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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가 대한민국에 끼친 영향은 방역과 보건분야만이 아니었다. 메르스 바이러스가 확산되던 시점인 6월 초,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디시 인사이드에는 메르스 바이러스 관련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메르스 갤러리가 생겼다.

메르스 갤러리가 지금과 같은 분위기로 변한 것은 이 때 홍콩에서 메르스 증상을 보인 한국인 여성 2명이 격리 조치를 거부했다는 뉴스가 전해진 시점이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아니나 다를까, 온라인 상에서는 예의 '김치녀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의 여성혐오성 발언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들이 의사소통 문제로 실랑이를 벌였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사태는 급변했다. 여성들이 메르스 갤러리를 거점 삼아 반격의 글을 쏟아냈다.

메르스 갤러리가 여성 혐오에 대응하는 글로 가득하자, 디시 인사이드는 여성이 역으로 남성을 조롱하는 '김치남' 등의 부정적 키워드를 쓸 수 없도록 하거나 로그인 한 사람만 추천할 수 있게 하는 조치를 취했다. 심한 여성 혐오성 글이 올라와도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던 그간의 디시 인사이드 행보와 비교해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여성혐오에 반박하는 글을 작성하던 메르스 갤러리 이용자들은 게시판 이용의 어려움을 피해 이명박 대통령 갤러리를 거쳐 현재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 갤러리에 자리를 잡았다.

이 와중에 한 누리꾼이 여성이 지배하는 세상을 다룬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을 빗대어 메르스 갤러리 이용자를 '메갈리안'이라고 불렀다. 이 '메갈리안'이라는 라벨링은 메르스 갤러리에서 여성혐오를 반박하고 페미니즘 정서를 공유하는 이들을 상징하는 용어가 되었고 이들을 한데 묶는 역할을 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도 '메갈리안'이라는 이름을 자처하며 메르스 갤러리의 움직임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메르스가 SNS상에서 페미니즘 논쟁에 색다른 불을 지핀 것이다.

험한 여성현실을 드러내는 메갈리안의 글

 메갈리안을 나타내는 로고. 원 속 손모양은 양성평등을 의미한다.
 메갈리안을 나타내는 로고. 원 속 손모양은 양성평등을 의미한다.
ⓒ 행동하는 메갈리안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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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갈리안이 쏟아내는 글들은 기존의 여성혐오를 정면으로 '조롱'하는 정서를 담았다. 여성을 비하하는 단어들인 '김여사', '김치녀', '된장녀'는 '김치남', '소추소심'으로 변형됐다.

'3일에 한번 여성을 패야한다'는 '삼일한'은 '숨쉴 때마다 남성을 패야한다'는 '숨쉴한'으로 바뀌었다. 나아가 메갈리안은 지금까지 일간베스트(일베)나 네이트판 등에 게재됐던 유명한 여성혐오 글들의 주인공 성별을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꿔 다시 작성해 올리며 반격의 날을 세웠다.

비록 날것이고 정제되지 않은 언어라 해도, 메갈리안들의 '남성혐오' 글은 여성들이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코피노(필리핀 원정 성매매를 통해 태어난 아이들)와 데이트 폭력, 강간, 성매매 등과 같은 범죄행위가 그것이다.

메르스 갤러리에서 사용된 단어 중에 '안전이별'이 있다. '안전이별'이란 연인관계가 끝났을 때 여성이 남성의 폭력이나 협박없이 무사히 헤어지는 상태를 말한다. 이별할 때조차 '안전이별'을 하지 못하는 여성들의 불안한 현실을 나타내는 단어다.

'안전이별'의 심각성은 뉴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일에는 20대 남성이 헤어지자는 말에 격분해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충북 제천 한 야산에 암매장한 사건이 벌어졌다.

메르스의 역설, 페미니즘은 전진하나

메갈리안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혐오에 혐오로 맞섰기 때문이다. 비이성적 여성혐오를 조롱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도 눈쌀을 찌푸릴 정도로 저속한 텍스트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올바른 일인가라는 지적도 있다.

긍정적 면도 있다. 메갈리안이 조롱을 위해 재생산한 글이 여성혐오에 적극 동참하던 사람들에게 여성이 느끼던 불쾌함을 공감하게 만든 것이다. 일베에서조차 '여자들이 일베 볼 때 어떤 느낌인지 알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메르스 갤러리의 글은 여성혐오의 본진이라 할 수 있는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도 영향을 미쳤다.
 메르스 갤러리의 글은 여성혐오의 본진이라 할 수 있는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도 영향을 미쳤다.
ⓒ 일간베스트저장소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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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갈리안은 SNS와 연계하여 피해여성을 돕는 실천운동으로 이어갔다. 네이버 해피빈의 '행동하는 메갈리안'에는 지난 13일부터 시작해 22일 현재 약 13만 개의 콩이 모금됐다. '콩' 하나 100원을 산정하면 1300만 원에 달하는 액수다.

기부받은 돈은 투표를 통해 코피노 문제, 성폭력 피해자 지원, 미혼모 지원, 성범죄 피해 아동, 여성 인권단체 지원 등에 기부될 예정이다. 메갈리안들은 피해여성 구조에 그치지 않고 음란물 공유 사이트인 소라넷의 불법몰카 근절 프로젝트를 계획 중이다.

레베카 솔닛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서 "뜻밖의 사건이 가하는 압력을 받아 어느 순간 확 전진하곤 한다"는 '단속적 평형' 개념을 빌려 페미니즘 운동을 설명한다.

메르스 사태는 국민의 안전을 위협한 국가적 재난이었다. 역으로 메르스는 페미니즘 담론에 '엄청난 기회이자 위기의 순간'을 제공했다. 메르스 갤러리를 시작으로 한국의 페미니즘 담론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한 여성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이다. 여성 혐오에 맞서는 페미니즘에 대한 전략을 다시 고민하고 실천하는 기회도 마련했다.

"여성혐오 발언이 자꾸 터지는 건, 페미니즘 운동 성공하라는 신의 계시인가봐요." 

지난 3월, 여성의 날 만났던 한 취재원이 말했다. '페미니스트가 싫어 IS에 지원한다'는 김군의 말이 상징하듯, 한국은 지금 페미니즘을 주창하는 목소리와 여성 혐오를 내세우는 남성들의 폭력이 아슬아슬하게 줄타기중이다.

변화는 항상 익숙했던 것들이 붕괴하고 새로운 가치가 재창조될 때 일어난다. 당연히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설치고 생각하고 말하는 메갈리안들의 실험이 비판과 혼돈 속에서 어떤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낼지기대가 크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와 위키트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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