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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이들은 책을 안 읽는다."

나는 '요즘 젊은이'다. 읽으라는 책은 안 읽고 TV, SNS와 같은 쓸데없는 미디어를 즐긴다. 독서는 힘겹다. 그럼에도 '요즘 젊은이' 딱지를 떼기 위해 꾸역꾸역 책을 삼킨다. 요즘 젊은이로 살다가는 취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에 독서는 '스펙'이다.

문학은 아직 버겁다. 재미는 있는데 지식이 곧바로 쌓이지 않는 느낌이다. 취업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그런데 요즘엔 문학적 소양 또한 요즘 젊은이가 갖춰야 할 '스펙'이 되었다. 읽어야 한다. 외국 작품은 인물 이름이 너무 헷갈린다. 그나마 한국 작품이 내 정서에 맞다.

오랜만에 한국 소설을 손에 잡았다.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기자가 쓴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작품이다. 소설의 배경은 행복 지수 세계 1위 덴마크이고, 핵심 소재는 '자유, 안정, 평등, 신뢰, 이웃, 환경'이다.

이 책이 소설이 분명한 이유

오랜만에 한국 소설을 읽었다. 행복사회 덴마크의 이야기를 담은 오연호의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오랜만에 한국 소설을 읽었다. 행복사회 덴마크의 이야기를 담은 오연호의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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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가 로맨스인지 판타지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이 소설임에는 틀림이 없다. 몇 가지를 살펴보자.

"그들은 마치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듯 애써 걱정거리가 무엇인지 한참 궁리하다가 결국 별로 없다고 말했다."

요즘 걱정거리가 무엇이냐는 오연호 대표의 질문에 반응한 덴마크 시민들의 한결같은 모습이다. 걱정거리가 떠오르지 않는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당장 나와 내 주변만 봐도 취업이 안 돼서, 되더라도 연봉이 적어서, 많더라도 회사의 부속품으로 살게 돼서, 결혼해야 해서, 노후 대비 등. 걱정할 것이 이리도 많은데, 덴마크 시민의 반응이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고서야 무엇이겠는가?

"덴마크의 실업자는 외롭지 않다."

덴마크 정부는 실업자에게 생활 자금을 준다. 기존 월급의 90퍼센트를 2년간 지원하여 안정적인 상태에서 새로운 직업을 찾게 한다. 노동자와 경영자, 정부가 서로 신뢰하는 관계와 협력하는 구조를 형성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에 오 대표는 덴마크가 '유연 안전성'을 가졌다고 설명한다. 보수와 진보 중 누가 정권을 잡든 상관 없다. 덴마크의 유연 안전성은 견고하다.

정부와 경영자가 파트너 관계라는 점은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노동자와 경영자, 또는 노동자와 정부가 협력하고 신뢰한다는 것이 정녕 가능한 일인가? 심지어 덴마크에서는 실직이 기회라고 한다. 한국에서 실직은 절망이다.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갑을오토텍 사태를 겪은 우리가 "실업자는 외롭지 않다"는 나라를 꿈꿀 수 있을까.

덴마크를 보며 좌절할 즈음에 오 대표는 대안을 제시한다. 시민의 조직된 힘으로 만들어진 신뢰 사회다.

"기쁜 마음으로 세금을 냅니다. 나도 우리 아이들도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이런 복지 제도 덕분에 서로를 믿는 사회가 됐잖아요."

덴마크는 OECD 국가 중 1인당 세율이 가장 높은 나라인데 납세자들의 불만이 없다. 위 답변을 한 사람은 수입에서 무려 56퍼센트를 납세하는 고소득자다. 증세에 대한 사회 전반의 저항 때문에 '증세 없는 복지'라는 해괴한 수사까지 등장한 대한민국이다. 내가 내는 세금이 나를 위해 쓰이는 사회, 우리도 형성할 수 있을까?

이처럼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에 담긴 이야기들은 잠자던 상상력을 깨운다. 택시 기사 밀보씨의 행복학 강의, 자유로운 스콜레(학교) 이야기를 들을 때면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문학적 상상력과 즐거움을 갖춘 이 책, 소설이 확실하다. 다시 책 표지로 돌아가 저자 소개를 살펴보자.

"중학교 때 김유정의 농촌 소설을 읽고 우리 동네 이야기도 소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다. 소설가가 되려고 연세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소설보다 더 급한 일이 있음을 깨달았다."

글쓰기가 평생의 밥벌이인 오 대표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소설을 쓰기 위해서였다. 소설 집필은 그의 꿈이었다. 대학생 시절 '소설보다 급한 일'에 뛰어든 아쉬움이 남았을 터. 그의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집필은 소설 쓰기의 행복을 겪기 위한 중년의 '에프터 스콜레' 작업은 아니었을까? 지상의 낙원 덴마크를 대면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가슴이 뛰었을지, 그가 부러워진다.

설령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가 (물론 그럴 리 없겠지만) 내 확신과 달리 소설이 아니더라도, 집필 과정에서 그의 꿈인 소설 쓰기 못지않은 커다란 행복을 안겨다 주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적어도 오연호 대표 본인에겐 소설이자 행복이다.

신앙 서적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사회 덴마크의 교육철학에 담긴 그룬트비 정신. 기독교 목회자인 니콜라이 그룬트비는 "깨어 있으라, 공부하라"는 말을 남겼고, 그의 정신은 깨어있는 시민이 조직한 신뢰 사회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행복사회 덴마크의 교육철학에 담긴 그룬트비 정신. 기독교 목회자인 니콜라이 그룬트비는 "깨어 있으라, 공부하라"는 말을 남겼고, 그의 정신은 깨어있는 시민이 조직한 신뢰 사회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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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도권 교육을 통해 '요즘 젊은이'로 만들어졌다. 중학교 때 내신 성적, 고등학교 때 수능 등급, 그리고 대학교 때 학점과 토익, 대외 활동 경험 등을 쟁취하기 위해 달려왔다. 끝나려면 한참 남았다. 나는 아직도 숨 가쁘게 달리는데, 덴마크 학생들은 여유롭다. 이것 참 억울하다. 더 억울한 건, 덴마크의 모든 학교 등록금이 무료라는 것이다. 나는 이미 학자금 대출로 천만 원 이상의 빚을 졌다.

덴마크 학교는 점수와 등수를 매기지 않는다. 교실엔 왕따가 없다. 시험을 못 봤다고 낙오자가 되지 않는다. 대학에 가지 않아도 아무 지장이 없다. 대학은 덴마크 학생들의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스스로의 답을 찾는 과정이 대학에 입학하는 것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덴마크의 자유롭고 평등주의적인 교육 철학은 "깨어 있으라, 공부하라"는 말을 남긴 니콜라이 그룬트비의 영향을 받았다. 그룬트비는 "학생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자극하고 도전하게 만드는 것"이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그룬트비 정신으로 무장한 덴마크 교육은 깨어있는 시민이 조직한 신뢰 사회를 만들었다.

기독교 목회자였던 그룬트비는 예수의 정신을 삶으로 구현하려는 신앙인이었다. 부채춤 추며 동성애 반대하는 것이 신앙이 아니다. 예수의 가르침이 진리라고 믿고 실천하는 것이 신앙이다. 그룬트비에게 영향을 받은 덴마크 시민의 삶엔 자연스럽게 예수의 정신이 스며들었다. 국민의 80퍼센트가 교인인 것에 비해 교회 출석률은 3퍼센트 정도로 매우 낮다. 이 현상에 대해 오 대표는 주기도문의 한 구절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다' 행복지수 조사에서 늘 최상위권에 속하는 나라가 덴마크다. 이 나라 사람들은 땅에서 이미 천국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굳이 교회에 나가지 않는 것일까?"

나는 이 대목에서 천국이 어디 있느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답한 예수의 말이 떠올랐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아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말할 수도 없다.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누가복음 17장 20-21절)

예수가 말한 천국은 교회에 있지 않다. 삶에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만들어지는 것이 천국이다. 덴마크는 일상을 천국으로 만들었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곳. 그곳이 교회고 천국이다.

기독교인임에도 성경을 잘 읽지 않는 '요즘 젊은이'인 내가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읽으며 수차례 성경을 뒤적였다. 이 책, 신앙 서적이 될 수도 있겠다.

요즘 젊은이여, 덴마크의 손을 잡자

"권력은 표준을 만들어내고 그 표준을 타인에게 강제하는 힘에서 나온다."

오연호 대표가 <대한민국 특산품 오마이뉴스>라는 책에서 한 말이다. 한국의 권력은 행복의 표준을 어떻게 정했을까? 청소년에겐 명문대 입학, 대학생에겐 대기업 입사, 청장년에겐 결혼과 내집마련, 전 국민에겐 경제성장... 오 대표는 기존 한국 사회가 가진 행복의 표준에 균열을 일으킬 질문을 던진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오연호가 묻고 덴마크가 답한 이 책의 결론은 뭘까? 다소 허무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답은 '연대'다. 연대를 통해 사회 안전망을 탄탄하게 하고 사람 사이에 신뢰를 형성하는 것. 이질적으로 느껴지지만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다면 누구와 연대를 해야 할까?

우리 사회엔 아직도 부당한 해고와 착취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불안전한 사회가 침몰시킨 탐욕의 배에서 희생당한 학생들의 유가족이 있다. 송전탑과 해군 기지에 삶의 터전을 빼앗긴 이웃이 있다. 등록금에 치이며 최저임금으로 생계에 허덕이는 '요즘 젊은이'가 있다.

그들의 손을 잡자. 우리의 손을 잡자. 우리도 행복할 수 있다. 불가능하지 않다. 오연호 대표는 우리 사이에 덴마크를 불러오자고 호소한다.

"덴마크는 유토피아가 아니다. 신의 나라도 아니다. 다만 불완전한 인간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선의 나라 가운데 하나다. 그러니 그들의 장점부터 먼저 배워보면 어떨까."

현실의 벽은 상상력의 다이너마이트로 무너뜨릴 수 있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의 상상력은 우리에게, 특히 사회의 벽에 부딪힌 '요즘 젊은이'들에게 한 뭉치의 수류탄이 되어줄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이여, 덴마크를 꿈꾸자. 우리도 행복할 수 있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 행복지수 1위 덴마크에서 새로운 길을 찾다

오연호 지음, 오마이북(2014)


태그:#오연호, #덴마크,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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