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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징비록>의 최근 방영분에서는, 명나라와 일본 간에 휴전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조선이 전쟁 분위기를 유지하고자 애쓰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 지난 20일 방송된 제37회에서는 휴전을 거부하는 조선 선조 임금을 압박하고자 명나라 경략 송응창이 '이런 식으로 나오면 임금 자리를 빼앗길 수도 있다'며 협박을 하는 장면이 있었다. 참고로, 경략(經略)은 '임시 사령관' 같은 것이다.

드라마 속의 장면은 좀 과장된 것이기는 하지만, 명나라가 조선의 의사를 무시하고 휴전 협상을 임의로 추진했다는 사실은 조선·명나라 동맹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잘 보여주었다. 그것은 약소국과 강대국의 동맹은 결국 강대국의 이익을 위해 작동될 수밖에 없는 엄연한 이치를 가르쳐주었다. 이런 점은 명나라가 자국의 귀한 장정들을 조선에 파견한 이유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명나라가 이 전쟁에 참가한 진짜 동기는 일본의 침략 가능성으로부터 자국의 안보를 지키는 데 있었다. 명나라 입장에서 볼 때, 수도인 북경과 가장 가까운 외국은 조선이었다. 그래서 조선이 무너지면 명나라의 심장부가 위태해질 수밖에 없었다.

명나라가 보기에, 조선은 입술이고 자국은 치아였다. 입술이 없으면 치아가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이것을 표현하는 말이 순망치한(脣亡齒寒)이다. 조선과 명나라는 순망치한 관계라는 것이 명나라의 판단이었다. 그래서 파병을 단행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압록강 이남의 세력이 압록강을 넘으면 만주 평원을 지나 북경을 점령하는 게 쉬워진다. 그래서 압록강 바로 아래에 적성국을 두는 것은 북경 정권한테는 위험하다.

 명나라 황궁인 자금성의 내부.
 명나라 황궁인 자금성의 내부.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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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역시 이런 인식을 갖고 있었다. 자국과 일본이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것만큼은 피해야 한다고 봤던 것이다. 적어도 대동강 이남이나 임진강 이남에 일본이 묶여 있어야 한다는 게 그들의 판단이었다. 명나라와 일본 사이에 강이 많으면 많을수록 일본의 명나라 침공이 그만큼 지연될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그래서 일본군을 한반도에서 완전히 쫓아내는 게 최선이지만, 그게 안 된다면 차선책으로 대동강이나 임진강 이남으로라도 쫓아낼 수 있다면 다행이라는 게 명나라의 입장이었다. 이런 입장은 일본과의 휴전협상 과정에서 그대로 표출됐다. 

이런 전략을 갖고 왔기 때문에,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군대의 태도에는 이중적인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일본군을 격퇴하려고 하는 것 같으면서도 일본과의 타협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모습이 조선 정부의 눈에 포착됐던 것이다.

그 같은 명나라의 태도는 일본과의 협상을 주도한 명나라 사신 심유경의 태도에서도 드러났다. 음력으로 선조 25년 12월 3일자(양력 1593년 1월 5일자) <선조실록>에 따르면, 일본군과의 회담에서 "평양을 명나라에 내줄 테니 대동강 이남을 일본이 가질 수 있도록 해달라"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제안을 심유경은 뿌리치지 않았다.

심유경 역시 대동강 이남을 일본에 할양하는 선에서 전쟁을 마무리하고 싶어 했던 것이다. 이 점은 명나라 제독 이여송의 입으로도 증명됐다. 선조 25년 12월 12일자(1593년 1월 14일자) <선조실록>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명나라는 국가 말기적 징후들을 노출하고 있었다. 재정위기에 봉착한 상태에서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명나라 입장에서는, 일본과의 전투에 전력을 기울이기보다는 어떻게든 빨리 전쟁을 마무리하고 또 다른 적대세력들을 응징하는 데 힘을 쏟아야 했다. 명나라는 일본이 자국을 침공하지 않는다는 보장만 있으면 전쟁을 가급적 빨리 끝내는 게 유리했다. 그래서 조선 영토의 할양까지도 고려했던 것이다.

물론 명나라한테는 조선 영토의 할양을 고려할 권한이 없었다. 그럴 권한도 없었고 힘도 없었다. 그런데도 조선 영토 할양을 고려할 수 있었던 것은 명나라가 조선·명나라 연합군의 지휘권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명나라가 전시작전통제권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전작권을 보유하다 보니 조선 영토 처분권에까지 눈길을 돌릴 수 있었던 것이다.  

명나라는 대동강 이남을 일본에 주고서라도 전쟁을 종결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그들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명나라와 일본 간에 교감이 오가던 시기에 조선인들은 전쟁 수행에 대한 의지를 강렬하게 표출하고 명나라 군대를 전쟁터로 끌어냈다. 만약 조선인들이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조선 땅은 북위 39도 이북(대동강 이북)으로 축소되었을 것이다.

'대동강 이남 할양'은 조선군이 명나라군을 이끌고 평양성을 수복하고 뒤이어 남진을 단행함으로써 물 건너갔지만, 조선 영토 할양을 향한 명나라·일본의 음모는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그 후로는 조선 팔도의 절반을 놓고 휴전 협상을 벌였다. 대략적으로 북위 38도 이남을 일본 영토로 인정하는 선에서 전쟁을 종결짓기 위한 움직임을 벌였던 것이다. 명나라는 전투 때는 조선군과 연합하고, 협상 때는 일본군과 연합하는 이중적인 나라였다.  

하지만, 명·일 휴전협상은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으로 타격을 받았다. 한강의 요충지인 행주산성에서 권율 부대가 일본군을 대파함에 따라, 조선 팔도의 절반을 일본이 안정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행주대첩 때문에 분노한 것은 일본뿐만이 아니었다. 명나라도 격노했다. 자국의 협상 전략에 타격을 줬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명나라는 권율 장군에게 경고를 표시했다. 일본군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다. 일종의 레드카드를 꺼내든 셈이다. 명나라가 그렇게 했다는 점은 선조 26년 3월 28일자(1593년 4월 29일자) <선조실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명나라의 동맹국이 조선인지 일본인지 헷갈리게 하는 대목이다.

조선은 어떻게 해서든 '명·일 연합군'의 조선분할 계획을 저지하고자 했지만, 두 나라의 휴전 협상은 행주대첩 이후에도 여전히 계속됐다. 두 나라 사이에는 '일본은 명나라에 조공하고 명나라는 조선 땅을 책임지고 일본에 넘겨주는 방안'을 두고 협상이 계속해서 벌어졌다. 명나라 입장에서는 일본이 자국의 속국이 되고 자국을 위협하지만 않는다면 조선 땅 일부가 일본에 넘어가든 말든 신경 쓸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명나라 황제들의 무덤인 명십삼릉(明十三陵)을 알리는 표지석.
 명나라 황제들의 무덤인 명십삼릉(明十三陵)을 알리는 표지석.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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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발발한 1592년에 시작된 명·일 협상은 1596년 하반기까지 계속 진행됐다. 임진왜란이 1593년 하반기부터 1596년 연말까지 소강 국면을 보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명·일 연합군'의 협상이 이 기간 동안에 진지하게 진행됐기 때문에 조선군이 전투를 벌이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기간에 이순신 장군도 '개점휴업' 상태에 있어야 했다. 명나라 때문에 전투를 치를 수 없는 현실에 분개했을 이순신은, 거북선의 머리를 동쪽인 아닌 서쪽으로 돌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임진왜란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6년간 벌어진 전쟁이지만, 강도 높은 휴전협상으로 인한 3년간의 소강상태를 제외하면 실제로는 3년간 벌어진 전쟁이다. 3년이면 끝났을 전쟁이 명·일 양국 때문에 6년씩이나 장기화됐던 것이다. 이렇게 장기화됐기 때문에 조선 기술자들이 일본에 끌려가고 조선 국토가 유린되는 현상이 심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애당초 조선 지도부가 조선보다 강한 외세를 이 땅에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조선이 통제할 수 없는 외세를 끌어들인 탓에 조선의 이익을 위한 전쟁 수행이 처음부터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명나라가 일본과 손잡고 조선 국토를 놓고 거래하는 일까지 생길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외세의 본질을 이미 충분히 경험할 대로 경험한 한민족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외세의 본질을 배우기 위한 '체험 학습'을 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서글픈 일이다. 1945년 이후로 이 땅을 통제하는 미국이 명나라보다도 훨씬 더 대한민국을 능욕해 왔다는 점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제까지 해왔던 것도 모자라서, 미국은 최근에는 한층 더한 일을 벌이고 있다. 미일동맹 강화를 통해 자위대의 힘을 실어주고 자위대가 세계 어디든지 출동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줌으로써, 자위대가 한반도에 침투할 수 있는 합법적 기회까지 만들어주고 있다.

또 미국·일본·한국의 세 군대가 군사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길까지 추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일본군이 한국군의 군사정보까지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외세의 본질이 무엇이고 동맹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미국의 최근 행보로부터 한층 더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명나라군을 끌어들인 탓에 3년에 끝냈을 전쟁을 6년간이나 질질 끌고 그로 인해 국토와 인재의 손실을 겪은 조선왕조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외세의 손아귀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는 방법을 우리 스스로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징비록> 속의 임진왜란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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