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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자전거길 여행, 그 대망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5월이라고는 해도 간밤에 강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텐트의 지퍼를 잘 여미어 놓지 않았더라면 새벽에 한바탕 난리가 났을지도 모를 정도였다.

이렇게 여행을 떠나와 보니 평소에 잊고 지냈던 일상 속의 작은 것들의 소중함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집에 있을 때는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아도 끼니 때마다 밥상 앞 내 자리에 앉기만 하면 그걸로 그만인데 나와보니 내 손을 거치지 않고서는 밥 한 톨, 반찬 한 젓가락이 어림없는 일이다. 또 밥 숫가락 놓기 무섭게 돌아오는 다음 끼니 걱정은 어떤가?
이래저래 군소리 한 번 없이 세 끼 살뜰히 챙겨주는 고마운 사람, 아내가 떠오른다.

텐트 앞 문을 열어 아침을 맞이하고는 곧이어 여행 마지막 날의 아침을 준비했다. 이제 준비한 음식 재료도 대부분 다 써버린 상태라 자발적으로 단촐해진 아침 메뉴는 참치김치찌게와 김뿐이다. 굳이 반찬 하나를 더 보태자면 눈 앞에 펼쳐진 멋진 섬진강의 풍경이랄까?

먹는 게 어떻든 그 자체는 좋은 일이지만 치우는 일은 늘 고역이다. 게다가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이 제한되어 있어 양껏 쓰지 못하니 끼니 때마다 나오는 설거지거리가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물' 쓰듯 사용하던 물이었는데 막상 6.5리터짜리 한 통으로 세수와 양치 그리고 끼니 때마다 음식준비에 설거지까지 해결하다보니 인간의 삶에서 물이 차지하는 비중을 아는 데는 캠핑만큼 좋은 게 없는 것 같다.

어제 일찍 야영을 한 탓에 오늘 타야할 거리가 다소 늘었다. 그래봐야 이제 남은 거리는 30 km 남짓.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매실나무에서 매실을 따 오독오독 먹는 누리

누리야, 출발 준비 다 됐지?
▲ 네번째 맞는 아침 누리야, 출발 준비 다 됐지?
ⓒ 정상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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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행정구역도 광양시를 달리게 된다. 매화축제가 열리는 3월 말쯤에 왔다면 온 산이 새하얀 눈에 쌓인 듯한 장관을 보며 달렸을텐데, 그 아쉬움은 매화꽃이 떨어진 자리에 주렁주렁 매달린 탐스런 매실로 달래본다. 이 주변에는 이쪽도 저쪽도 보이는 것은 모두 매실나무뿐인 듯하다.

매실을 보자 호기심이 발동한 누리, 매실 맛을 봐야겠단다. 덜익은 거라고 말려봐도 도통 듣지를 않더니 기어이 가로수로 심어진 매실나무에서 그나마 실해보이는 매실 한 알을 따더니 이내 오독오독 씹어먹기 시작했다.

"엄청 시지 않니?"
"아니, 맛있는데? 아빠 이 매실 좀 따가면 안돼?"
"절대 안돼!"


4일은 휴일이 아니어서인지 자전거 여행자들도 거의 보이지 않아 자전거길은 더더욱 한산했다. 섬진강도 어느새 강폭이 넓어져 그 폭이 백미터도 훨씬 넘는 큰 강이 되어 있었다. 시작은 좁고 느린 여울이었지만 방향만 제대로 잡고 있다면 천천히 흘러흘러 결국에는 바다와 만나게 된다.

섬진강이 곧 바다가 됩니다.
▲ 넷째날 아침풍경 섬진강이 곧 바다가 됩니다.
ⓒ 정상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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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누리는 동생이 자꾸 생각나는지 빨리 버스타고 집에 가고 싶다고 난리다. 누리보다 여섯 살이나 어린 둘째, 한울이는 성격이 보통이 아니다. 까탈스럽기 그지 없고 툭하면 던지고 울며 떼쓰는 천방지축이다. 그래서 누리는 늘 양보하고 손해보는 입장이니 동생이 그리 예쁘지 만은 않을 텐데 며칠 떨어져 지내보니 그립긴 했나보다. 동생이라고 전화통화할 때마다 바꿔달래서 목소리를 들려주고, 보고 싶다고 하는 것을 보면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한 것 같다.

'그 마음 부디 오래도록 간직하길.'

그 덕에 오늘은 그리 닥달하지 않아도 자전거 속도가 꽤 빠른 편이어서 점심무렵이면 광양에 도착할 것 같았다. 길 자체도 몇 개의 큰 오르막을 제하면 대체로 내리막 위주여서 라이딩은 더더욱 경쾌했다. 누리와 자전거를 타고 가다보면 종종 사진을 찍히는 일이 있다. 이 날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타고 가던 차까지 한쪽에 세워둔 채로 우리를 향해 셔터를 눌러대는 중년 남자 두 사람을 발견했다. 처음이라서 사진 찍나보다 싶어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는 한 5분쯤이나 달렸을까? 길모퉁이를 막 돌아서니 다시 조금 전 그 두 사람이 멀리서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사진을 찍어댔다. 세워둔 차를 보니 무슨 스튜디오라고 적여 있는 것 같고 사용하는 장비도 고급스러운 것이 전문 사진작가인 듯했다.

"아빠, 저 사람들 좀전에도 우리 찍었는데 또 찍고 있어. 우리가 꼭 모델이 된 거 같아."
"그러게. 좀 전에는 제대로 안 찍혀서 다시 찍나 봐. 손 한 번 흔들어 주자."


지나치고 나서 생각해보니 모델을 서줬으니 사진이라도 받게 연락처를 받아둘 걸 싶었다.
이제 다시 멈추지 않을 텐데...

"아빠, 사진 찍던 사람들, 또 기다렸다 우릴 찍을까?"
"글쎄, 아빠 생각에는 두 번이나 찍었으니까 원하는 사진 다 찍고서 가지 않았을까?"


매화마을 인증센터에서 한숨 돌리고 다시  헐떡거리며 언덕 하나를 넘고서 시원하게 내리막을 달리는데 우리 눈 앞에 두 사람이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아예 작정하고 뻥 뚫리고 배경이 멋진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누리야, 마침 잘 됐다. 연락처 받아서 잘 나온 사진이나 달라고 해보자!"

실컷 피사체가 되어 준 후 멈춰서서 물으니 아니나 다를까 광양에서 사진작가로 활동중인 분이란다. 서울로 돌아와 찾아보니 백억선이라는 분으로 유명한 사진작가였다.

"저희 사진 찍으신 거예요?"
"광양 팔경 홍보용 사진을 의뢰받아 촬영중인데요. 아빠와 아들이 나란히 자전거길로 달리는 모습이 너무 멋져서 몇 컷 찍었습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모델 한 번 제대로 되주세요."


얼떨결에 모델이 되서 작가분이 요청한 대로 저 뒤로 다시 돌아갔다가 다정스럽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육중한 화물차들과 나란히 달리며 태인대교를 건넜다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 전문가의 솜씨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 백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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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카메라를 들고 오긴 했지만 막상 달리다보면 좋은 곳을 만나도 쉽게 카메라에 손이 가질 않는다. 게다가 아무리 실력 좋은 사진가라고 해도 아들과 자전거 타는 모습을 그것도 멋지게 찍어내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니 거부할 이유가 없다. 연락처를 교환하고 사진도 보내주기로 약속을 받았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유독 관심이 많은 누리는 TV 뉴스에 한 번 나와보는 게 소원이란다. TV는 아니었지만 난생 처음으로 사진작가의 모델이 되어서 기분이 한층 좋아진 누리의 자전거 패달이 한결 경쾌해졌다.

비릿한 바다냄새가 코를 간지럽히고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와 통통거리는 작은 어선들이 보이는 것을 보니 이제 목적지가 무척 가까워진 것 같다. 횟집들이 쭉 늘어선 거리에 들어서니 저 너머로 공장 굴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친 바닷바람을 맞으며 육중한 화물차들과 나란히 달리며 태인대교를 건넜다.

중마터미널 가는 길
▲ 이제 다시 도시로... 중마터미널 가는 길
ⓒ 정상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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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리만 건너면 배알도 수변공원 인증센터. 섬진강 자전거길의 종점이다. 애초에 누군가에게 인증하는 것이 목표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이번 여행을 마무리를 해야할 상징적인 곳이 필요했고 가장 적절한 곳이기도 했기 때문에 우리도 이곳으로 향했다. 어제의 강바람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매알도 인증센터에서의 인증사진을 마지막으로 154km의 대장정을 마칠 수 있었다.

154km. 3만 9958번의 패달질. 남들보다 느리게 왔지만 그만큼 더 자세히 살피고 느끼며 달려온 길이었다.

머리가 엉망입니다만 기분은 얼굴 표정에 그대로 나타나 있네요.
▲ 마침내 도착 머리가 엉망입니다만 기분은 얼굴 표정에 그대로 나타나 있네요.
ⓒ 정상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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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휴식 후 다시 서울행 버스를 타고 가게 될 중마터미널로 향했다. 1시 30분 동서울행 고속버스에 자전거와 짐을 싣었다. 지그시 두 눈을 감으니 지난 4일의 시간들이 빨리감기한 듯이 머릿속을 빠르게 지나갔다.

계획 대로 되지 않았지만 오히려 계획했던 것보다 더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비를 좀 맞는다고 해서 무슨 큰 일이 생기는 게 아니었음을 알았다. 자전거로 빗속을 달리는 것이 꽤 신난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여행이 주는 큰 선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루 세 끼를 챙기는 것의 고단함을 알게 되었고, 누리는 힘들어도 좀처럼 내색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4일 동안 많은 것들을 비워내고, 그 자리에 새로운 것들로 다시 채운 채로 버스는 다섯시간쯤 달려 서울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시 일상이 시작되었다.

[여행 뒷이야기]

너무 강렬해서 도저히 잊혀질 것 같지 않았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차갑기만한 현실 앞에 그것은 그저 '희망사항'이었을 뿐. 현실로 돌아오자마자 그 시간들은 '추억'이라는 이름의 작은 조각들로 나뉘어 기억속으로 빠르게 사라져 갔다. 여행내내 서로 의지하며 '부자간의 정이란 바로 이런 것'임을 보여주던 우리 사이도 어느새 데면데면해졌다.

동생 한울이가 너무나 보고 싶고 그립다며 한울이가 좋아하는 빼빼로까지 사들고 대문으로 뛰어가던 누리는 다시 만난 지 겨우 두 시간만에 '아, 한울이 너무 짜증나!' 하며 이내 예전 모습으로 돌아와 버렸다.

캠핑용품들 제자리에 하나 둘씩 정리되어 갈 무렵, 나의 신분도 어느새 자전거 여행자에서 평범한 회사원으로 돌아와 있었다. 여행을 위해 잠시 내려놓았던 내 삶의 무게들을 다시 어깨에 올려놓고 보니 금세 어깨가 살짝 쳐져 보였다. 그 짐의 무게가 다시 점점 무겁게 느껴질 때가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날이 될 것이다.

집을 떠나 길에서 보낸 4일간의 섬진강 자전거 여행은 어떻게 기억될까? 내리쬐는 태양, 쏟아지는 비, 이를 악물고 패달을 밟아야만 했던 맞바람 그리고 호환, 마마보다 무서웠던 오르막들. 부족한 것 투성이인 텐트생활 중에서도 편안한 잠자리가 됐던 정자와 멋진 풍경들, 자전거 여행자들의 힘찬 격려와 박수소리, 햇빛을 피해 그늘에서 마시던 시원한 물 맛, 시리도록 차가웠던 섬진강물에 발 담그던 그 순간, 빗속의 라이딩과 간이정류장 벤치에서 쪼그려 앉아 먹던 라면까지.

그 순간에는 좋고 나쁜 일이었을 뿐이지만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 돌아보면 그저 '추억'이라는 두 글자로만 기억될 것이다.

"누리야, 아빠랑 또 자전거 여행갈거야?"
"음... 이제 1년쯤 뒤에?"


누리는 1년 뒤라고 했지만 나는 여전히 여행이 고프다. 이제 또 다른 새로운 여행을 위해 누리가 덥석 물 것 같은 떡밥을 다시 찾아 봐야겠다.

덧붙이는 글 | 멋진 시간 보낼 수 있게 배려해준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못했네요. "고맙습니다." 저와 누리에게 작품같은 사진을 찍어주시고 사용하도록 허락해주신 백억선 작가님께도 감사의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태그:#섬진강, #자전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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