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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군 강구항 입구에서 본 영덕대게 상징물
 영덕군 강구항 입구에서 본 영덕대게 상징물
ⓒ 정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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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이라면 대뜸 대게가 떠오른다. 하지만 여행에서 아무리 먹을거리가 중요하다고 해도 대게에 영덕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대게를 먹기 위해 자녀와 함께 영덕 바닷가를 찾은 부모가 포식만 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간다면 그다지 교육적이지 못하다 하겠다. 영덕에서 몸의 양식은 대게로 구했다면 마음의 양식은 무엇에서 얻을 수 있을까?

영덕의 또 다른 얼굴이 떠오른다. 푸른 동해 바다, 영덕의 이미지다. 실제로 영덕에는 울진을 바라보며 북향하여 달리는 길 중간쯤에 '푸른 바다'라는 이정표도 세워져 있다. 그만큼 영덕의 동해는 푸르다. 황해라는 별칭이 말해주듯 서해는 누르스름한 빛깔이 연상되고, 남해는 따뜻한 쪽에 있는 탓인지 아열대의 온기가 겹치지만, 영덕의 바다는 독도를 바라보며 언제나 푸르게 빛나고 있다.

영덕에서 보는 동해바다
 영덕에서 보는 동해바다
ⓒ 정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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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바다는 천혜의 것이다. 동해 자체를 영덕 사람들이 궁리하고 피땀흘려 만들어낸 노력의 소산이라고 강변할 일은 아니다. 동해안을 따라가며 난 길에 '블루 로드'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영덕 사람들의 뛰어난 의미 부여이지만 그 길도 역시 사람이 걸어야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 길을 걸은 옛사람을 찾아보았다. 평민 의병장의 역사를 새로 쓴 신돌석(1878-1908) 장군이 생각났다. 그의 생가가 복원되어 있고(경상북도 기념물 87호), 기념관도 내실 있게 건립되어 있다. 특히 신돌석은 울진 월송정에 올라 시까지 남겼으니 그가 구국의 번민에 사로잡힌 채 푸른 바닷길을 걸은 것은 틀림없는 역사적 사실일 터이다.

누각에 오른 나그네, 문득 갈 길을 잊은 채
낙목이 가로누운 단군의 터전을 한탄하노라
남아 27세에 무슨 일을 이루었는가
잠시 가을 바람이 부니 감개가 뭉클하도다

이색기념관에서 '블루로드'로 들어가는 산책로 입구가 왼쪽에 숲길로 나 있다. 푸른 소나무들이 바다의 이미지를 한껏 보여준다. 오른쪽 길은 괴시리마을에서 이색기념관으로 올라오는 길이다.
 이색기념관에서 '블루로드'로 들어가는 산책로 입구가 왼쪽에 숲길로 나 있다. 푸른 소나무들이 바다의 이미지를 한껏 보여준다. 오른쪽 길은 괴시리마을에서 이색기념관으로 올라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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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돌석보다 아득한 예전에도 블루로드를 걸은 이가 있었다. 고려말 삼은의 한 사람인 이색(1328~1396) 선생이다. 목은은 영덕 괴시리에서 출생했다. 바닷가에서 고래들이 뛰어노는 것을 본 목은이 괴시리 옆 해수욕장에 고래불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나, 중국에 다녀온 목은이 이곳 호지마을의 땅모양과 거기서 본 괴시의 지형이 흡사하다면서 마을이름을 괴시마을이라 고쳐부르기 시작한 것은 목은과 괴시리의 친근성을 잘 말해준다.

개경에 살면서도 목은은 늘 어머니의 고향이자 자신의 고향인 영덕과 괴시리를 그리워했다. 그래서 <영해동명간출일(寧海東溟看出日)>이라는 시도 남겼다. 영해는 영덕의 옛날 대표 이름이고, 동명은 <동명일기>에서 배웠듯 동해를 가리킨다. 즉 <영해동명간출일>은 '영해 동녘바다 해돋이를 보다'는 뜻이다.

외가댁은 적막한 바닷가 마을에 있는데
풍경은 예로부터 사람들 입에 올랐었네
동녘 바다 향하여 돋는 해를 보려 하니
갑자기 슬퍼 두 눈이 먼저 캄캄해지누나

이색 기념관(왼쪽)과 생가의 모습. 기념관 왼쪽 끝에 하얗게 보이는 조형물이 이색 동상이다.
 이색 기념관(왼쪽)과 생가의 모습. 기념관 왼쪽 끝에 하얗게 보이는 조형물이 이색 동상이다.
ⓒ 정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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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 생가터는 괴시리 마을 맨 뒤, 가장 높은 지점에 있다. 마을 복판을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곧장 올라가면 이윽고 종점이 나오고, 산등성이에 저절로 조성된 듯 보이는 분지 모양의 지형 끝에 복원된 생가와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기념관 왼쪽에는 순백의 빛깔이 눈부신 선생의 동상도 있고, 기념관 안에는 선생의 사상과 생애, 연혁, 역사의 자취 등을 일목요연하게 알려주는 전시가 연중으로 펼쳐져 있다.

찾아온 나그네들이 동상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는 모습이 보인다. 이미 620여 년 전에 암살로 추정되는 삶의 막을 내렸는데도 여전히 사람들이 찾아오고, 더불어 사진이 되어 남기를 소망하는 후대인들이 있는 것은 그만큼 선생이 우리 역사에 강렬한 정신을 남겼기 때문이다. 물론 권력과 물신에 찌든 혼탁한 이름으로가 아니라 하얗도록 맑고 곧은 영혼의 성인으로 선생은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      

흑백으로 전환하여 본 괴시리의 골목
 흑백으로 전환하여 본 괴시리의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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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그레인 효과로 본 괴시리의 풍경
 필름 그레인 효과로 본 괴시리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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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마을들이 다들 그렇듯이 괴시리의 골목 풍경 또한 정겹기 그지없다. '달리는 흉기'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차량들이 다니지 않고, 시멘트 담장 대신 토담이 끝없이 이어지며, 우리 민족 고유의 삶을 말해주는 기와집들이 줄을 짓고 있으니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풍경을 마음에 담기 위해 멀리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현상을 나는 현대인의 귀거래 의식이 발동한 것으로 해석한다. 도시인인 현대인들이 괴시리와 같은 전통마을을 찾는 것은 벼슬을 하다가 그만두게 되면 고향으로 돌아와 하인을 두고 살아가는 조선 시대 상류층의 유유자적한 귀거래와는 차원이 다르다. 전원에서 태어난 바 없지만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 본성에 이끌려 현대인들은 고향 아닌 고향마을을 찾는 것이다.    

반쯤 열린 한옥의 대문이 도시에서 온 나그네를 유혹한다. 대문! 과거에는 권위주의의 상징이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게다가 자물쇠도 채워져 있지 않고, "이리 오너라"를 외치지 않아도 되게 늘 개방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전원의 풍경이다. 현대인들로 하여금 귀거래를 꿈꾸게 하는 정경이다. 이 정경을 한 점 그림으로 화폭에 담아 보았다.

그림으로 그려 본 괴시리의 골목
 그림으로 그려 본 괴시리의 골목
ⓒ 정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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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 열려 있는 고택의 대문을 만나면 문득 안으로 들어가보고 싶어진다.
 반쯤 열려 있는 고택의 대문을 만나면 문득 안으로 들어가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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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소와고택 입구에 본 '관광객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등 훼손 행위를 하기 때문에 출입을 금합니다'는 요지의 안내판은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물소와고택 입구에 본 '관광객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등 훼손 행위를 하기 때문에 출입을 금합니다'는 요지의 안내판은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 정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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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실마을에는 30여 호의 전통가옥들이 보존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괴정, 영감댁, 사곡댁, 해촌고택, 물소와고택, 구계댁, 경주댁, 영은고택, 주곡댁 등 13호의 고택들이 문화재청의 문화재자료로, 영양남씨 괴시파 종택이 경상북도의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오늘 답사의 한 점 안타까운 일을 기록으로 남겨두어야겠다. 영양남씨종택이 한창 보수 작업 중이라 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지난 5월 3일부터 공사에 들어갔는데 9월 30일이 되어야 끝난다는 안내판을 보면서 아쉽게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또 하나, 물소와고택을 제대로 못 보았다. 집 앞에 "방문객 여러분께 죄송한 말씀을 드립니다"면서 "일부 방문객이 문창살 훼손 및 오물(캔, 유리병, 담배꽁초, 대소변 등) 투기로 유지 보존에 애로가 많아 부득이 출입을 통제하오니 이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게시판만 분명하게 보았다.

목은 선생이 "예로부터 사람들 입에 올랐다"고 격찬한 괴시리 풍경인데 외지인이 그처럼 훼손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게시판의 내용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문화재 보호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여겨 지금 기사 속에 적어둔다. 다음에 괴시리를 방문했을 때는 물소와고택 앞에 게시판이 없기를 바라면서.  

(왼쪽) 찾아온 방문객이 문화재를 훼손하고 오염시키기 때문에 출입을 통제한다는 취지의 물소와고택 입구 안내판은 아직도 미숙한 우리의 문화수준을 잘 말해준다. 안타까운 일이다. 답사자들의 보다 성숙한 인식이 요구된다. (가운데) 영양남씨 괴시파종택이 보수에 들어가 올해 9월 30일이 되어야 종료된다는 안내판이다. 모처럼 찾아왔는데 종택을 못 보고 돌아가게 되어 아쉽다. (오른쪽) 영덕군 홈페이지의 영양남씨 괴시파 종택
 (왼쪽) 찾아온 방문객이 문화재를 훼손하고 오염시키기 때문에 출입을 통제한다는 취지의 물소와고택 입구 안내판은 아직도 미숙한 우리의 문화수준을 잘 말해준다. 안타까운 일이다. 답사자들의 보다 성숙한 인식이 요구된다. (가운데) 영양남씨 괴시파종택이 보수에 들어가 올해 9월 30일이 되어야 종료된다는 안내판이다. 모처럼 찾아왔는데 종택을 못 보고 돌아가게 되어 아쉽다. (오른쪽) 영덕군 홈페이지의 영양남씨 괴시파 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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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괴시리, #영덕, #이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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