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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세상에 나온 사랑이와 힘든 출산의 과정을 견뎌낸 아내. 두 사람 사이에는 제가 가장 끈끈한 유대감이 벌써부터 생겨납니다. 이제 저도 서둘러야 겠습니다. 아빠의 목소리 아빠의 손길을 나눠야 할 시간입니다.
▲ 이미 친한 사이 막 세상에 나온 사랑이와 힘든 출산의 과정을 견뎌낸 아내. 두 사람 사이에는 제가 가장 끈끈한 유대감이 벌써부터 생겨납니다. 이제 저도 서둘러야 겠습니다. 아빠의 목소리 아빠의 손길을 나눠야 할 시간입니다.
ⓒ 추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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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디자이너와 마주 앉아 순대국밥에 새우젖을 넣습니다. 참 힘든 순간을 막 겪어내고 나서일까요? 기분이 묘합니다. 전 막 20분 전에 아빠가 되었습니다. 총각인 김 디자이너는 절대 알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순대국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냥 빨리 병원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만 듭니다.

아이를 낳은 뒤에 아빠사원들이 집으로 빨리 돌아가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토끼같은 내 새끼, 여우같은 아내가 기다리고 있으니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엉덩이도 가볍습니다. 고생한 아내의 얼굴만 아른거립니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분만실로 돌아오니 출산 후처치가 끝난 아내가 병실로 입실했다고 합니다.

요즘은 메르스 때문에 대다수 사람들이 접촉에 민감합니다. 더군다나 산모는 몸에 큰 부담이 되는 일을 해내고 난 이후입니다. 무리를 해서라도 가능하면 1인실을 꼭 잡고 싶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산모들이 많았는지 이미 병실은 만실이었습니다.

2인실에 입실하였습니다. 돌이켜보니 그 시간이 아내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동료 출산모와 대화를 하며 여러 경험을 나누었기 때문이지요. 자연 분만의 경우에 대개 2박 3일동안 입원을 하는데 병실에는 먼저 온 산모가 있었습니다. 하루 일찍 자연분만을 한 산모였는데 남편과 함께 이리저리 병원을 거닐고 다녔습니다. 그 산모를 보면서 하루 지나면 아내도 저렇게 나아지겠구나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되었습니다.

우선 오늘 하루동안 제가 해야할 가장 큰 일은 아내의 자궁을 마사지 하는 것입니다. 배꼽 주변에 동그랗게 뭉쳐지는 자궁을 손가락 마디 전체로 지긋히 눌러줘야 하는 일입니다. 지난해 먼저 출산을 한 친한 친구 상호가 한 말이 떠올랐습니다.

"현호야, 저번에 알려준 침술원 거기 어디랬지? 나 침 좀 맞아야 겠다."

재수씨가 밤에 아이를 낳아 상호는 밤새도록 마사지를 해야했습니다. 아침이 되자 담이 걸려서 목이 안 돌아간다면서 내게 전화를 했었지요. 두 시간째 마사지를 하고 나니 온 몸에 땀이 나면서 담이 걸렸다는 상호의 말이 와 닿았습니다. 이 저질 체력. 머리가 어질합니다. 

마사지를 하면 아내의 자궁 안에 남아있는 태반과 혈액 덩어리들이 나온다고 합니다. 자궁이 초반에 자리를 잘 잡고 나와야 한다고 간호사는 몇 번이나 제게 알려주었습니다. 온 몸이 땀 범벅이 되고 있으니 옆 침대의 남편이 제게 말을 건넵니다. 하루 먼저 아이를 낳아 무척이나 여유로운 모습입니다.  마치 군입대 후에 선임병의 여유로운 모습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그거 제대로 하셔야 해요."

그는 말하면서 제게 콩두유를 하나 건넵니다.

"힘드실 텐데 드시고 하세요."

고마웠습니다. 그 부부는 울산에서 생활하는데 친정집 근처로 산부인과를 잡았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아내가 산후조리를 하기에는 친정집 부근이 나을 테죠. 산부인과에서 분만실에 기다릴 때도, 입원실에서도 대부분의 중년의 어머니들은 친정어머니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장모님이 안 계셨다면 저는 정말 꿔다 놓은 보릿자루였을 것 같네요. 장모님은 든든한 힘이 되어주셨습니다. 아내에게는 물론이거니와 저에게도 말이죠. 어른들의 위대한 힘이 느껴지는 하루였습니다.

10달을 한달에 한 번, 2주에 한 번 그렇게 산부인과를 드나들며담담의사선생님과도 참 친해졌습니다.

"아기집이 보이네요. 축하해요. 임신입니다."
그 말을 들었을때의 기쁨.

"아기가 심장이 잘 뛰어요. 건강해요."
모퉁이에 서서 아기의 심장소리를 들을 때 뛰던 나, 예비 아빠의 심장. 

"검사결과가 다 정상이고 건강하게 잘 크고 있어요."
졸이고 졸이던 검사결과가 정상으로 나와서 하늘에 감사하던그날의 감동.

"이제 진통이 오면 아이 낳으러 오시면 돼요."
이제 조마조마한  D-day(그 날)이 다가오고있다는 설렘, 기다림 그리고 걱정.

이 모든 감정들이 바로 출산이라는 하나의 단어에 담겨있는 종합선물세트였습니다.

출산과정에서 자연분만의 경우에는 회음부를 어느정도 절개 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꿰매어 놓기에 회음부 상처 또한 잘 관리를 해줘야 합니다. 그래서 좌욕과 연고를 잘 바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출산 후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살이 아물 동안은 따갑습니다. 그래서 출산모들은 회음부 방석이라는 도넛처럼 생긴 방석을 이용합니다. 이전에는 몰랐던 세계입니다. 그렇게 저는 아이의 아빠가 되면서 아내의 몸과 마음에 대해서도 더 자세히 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알아가는 만큼 아내에 대한 고마움도 커지고 있습니다.

2박 3일 동안 아내는 병원에서 철분제, 비타민제를 맞고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아버지, 어머니, 친정집의 식구들이 아이를 보러 면회를 잠시 왔습니다.  지인들이 꽃도 보내주셨지만 알레르기 등의 이유로 꽃은 문밖에 두고 오가며 보며 큰 기쁨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퇴원날 저희 손에는 출생증명서가 놓여졌습니다. 신기합니다. 출생신고를 앞둔 아빠의 기분이 이런 것이군요. 혼인신고할 때의 기분과도 또 다릅니다.

덧붙이는 글 | 출산 직후 병원에서는 다양한 후처치가 이뤄집니다. 남편은 이때 아내 곁을 떠나지 말고 힘을 보태어주어야 합니다. 아내는 10달 동안 뱃속에 있던 태아를 밖으로 내놓는 과정에서 아주 많이 지쳐있습니다. 심리적으로도 공허하고 허무한 감정이 올 수 있습니다. 산후 우울증이라는 그 어려움이 안 그래도 벅찬 산후의 조리 과정에 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때 아내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관심과 사랑 그리고 휴식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남편이 할 역할입니다.



태그:#출산, #육아, #태교, #아내, #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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