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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기타 제조업체 콜트-콜텍의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를 당했습니다. 그 뒤로 계속된 투쟁과 농성. 지금도 그들은 인천에 있는 옛 콜트악기 부평공장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해고자 임재춘씨는 오늘도 그곳을 지키며 굵고 거친 손으로 펜을 꾹꾹 눌러 글을 씁니다. 임재춘씨가 농성장 촛불문화제에서 낭독한 '농성일기'를 연출자 최문선씨의 해설과 함께 독자 여러분들께 전합니다. [편집자말]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좋은 인연과 나쁜 인연을 만들며 살아가는 게 우리 인생이 아닌가 생각한다. 부모와 자식들은 하늘이 맺어준 필연이다. 하지만 돈 때문에 형제들이 싸우는 것을 많이 보기도 한다. 가족 안에서도 부모와 좋은 인연이기도 하고 나쁜 인연이기도 하다. 나는 사회 생활을 하면서 마음 속으로는 좋은 인연만을 만들려고 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나와의 인연이 나쁜 인연이 될 수도 있다.

학교 졸업 후 한 친구와 시골에서 농사 지으면서 부모님 모시고 평생 같이 하자고 약속했다. 그러나 시골 생활이 넉넉지 않아 나는 직장 생활을 하기로 결정했다. 1984년 즈음 나는 첫 직장에서 첫 월급을 타고 설레는 마음으로 시골에 내려갔다. 그리고 그 친구와 함께 하루를 보내고 일요일 저녁에 회사 기숙사로 올라왔다. 그런데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으니 그 좋은 친구가 생을 마감했다는 비보를 들었다.

어린 마음에 충격이 컸다. 약속하는 인연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처음 느꼈다. 지금까지 내게 가장 슬픈 인연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도 어려운 일과 괴로운 일이 생기면 그 친구가 추억처럼 떠오르곤 한다.

이렇게 짧은 인연도 평생을 잊지 못하고 살아가는 게 우리의 삶이다. 옛 속담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했는데... 요즘 우리의 삶은 사람과의 연을 쉽게 생각하는 듯하다. 우리의 삶은 너무 돈에 매어 있어 답답할 정도로 나 자신만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기타 노동자로만 살았기 때문에 요즘은 기타 회사에서의 인연만 생각난다. 한 때 기타 노동자였던 지인은 자립해 기타 회사 사장이 됐고, 옛 인연들이 같이 모여 일을 한다. 내게도 같이 하자는 제안이 오곤 했다. 아직까지는 처음 기타 공장에서 맺은 인연은 좋은 인연으로 남아 있는 듯하다.

처음 기타 노동자로 일한 곳은 경기도 북쪽에 있는 성음악기(주) 회사다. 성음악기를 창립한 회장은 일선을 떠났다. 현재는 그 아들에게 회사 경영을 대물림해 수출과 내수 판매를 한다. 성음악기의 경영주는 노동자들에게 공을 돌리며 선후배 간 좋은 인연을 쌓았다. 경영도 안정적이다.

성음악기는 조그마한 평수의 회사부터 시작해 화재도 있었고, 여러 번 경영 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재기했고, 세 번의 이사를 거치며 공장 규모를 키워갔다. 지금은 대한민국 통기타 제조 공장에서는 최고가 됐다.

어떤 (기타) 회사든 안정되려면 자재 납품과 액세서리 보급도 잘 돼야 한다. 직원과 경영진은 상부상조해 좋은 인연으로 연결돼야 한다. 그 회사는 직원들과 소통이 원활했고, 사명감으로 회사를 키우고 있다. 콜텍에서 퇴사한 후배들도 성음이 평생 직장이라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기타 노동자로 통기타를 만들고 있다. 최근엔 그 후배들과 동료를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나도 정리해고를 당하기 전에는 좋은 회사에 있다고 가끔 자랑한 적도 있었다. 세계에서 최고의 기타를 만들던 콜트-콜텍은 10년 전 한국의 노동자들을 정리 해고하고 중국과 인도네시아로 공장을 이전했다. 콜트-콜텍 악기 정리해고 노동자들은 콜트-콜텍 악기 사장(박영호)을 악인으로 기억하고 있다(관련 기사 : 9년이면 마음 식죠, 그래도 '할 만큼 했다' 마세요). 

한 나라에서 같은 직종에 있으면서 경영주와 좋은 인연과 나쁜 인연으로 나뉘는 것은 왜일까? 성음악기 사장은 직원과 대화를 하지만, 콜텍 사장은 그렇지 않다는 차이가 많이 느껴졌다. 콜텍-콜텍 사장은 기타를 돈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직원과 소통을 하지 않았다. 사람이 사업으로 성공하려면 인덕을 많이 쌓으라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있다.

정리 해고로 농성을 이어오면서 좋은 인연으로 연결돼 있는 사람도 많다. 우리가 투쟁을 정리하면 그들과의 좋은 인연은 유지될까? 요즘 들어 가끔 이런 저런 질문을 내게 던져본다. 인생에서 우연한 인연은 있을까?

음악, 영화, 미술, 연극 등을 하는 예술가들. 농성으로 우연히 시작했던 그들과의 인연은 그저 스치는 우연만은 아니다. 연극을 하면서 나는 성격이 변했다. 미술인들이 농성장에 와서 항상 웃던 모습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농성장에서 작품 전시를 했던 그들은 우리가 공장에서 쫓겨날 때 작품을 잃어버렸다. 그런데도 그들은 웃으면서 "예술은 영원하다"고 말했다. 그 인연은 내게 무엇인가를 남긴다.

또 나를 스쳐 간 인연은 국회의원, 방송인들이다. 국회의원들은 장기 투쟁 사업장의 이야기에 잠시 관심 갖다가도 금세 우리를 잊는다. 방송인들의 관심도 그 때 뿐이다. 방송인들이 장기 투쟁 사업장에 관심을 조금 두고 한국의 노동 현실을 자주 보도했으면 좋겠다. 정리 해고자 중에도 자신의 싸움이 끝나면 직장으로 돌아가 다른 해고자들을 잊고 연대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그들은 내게 스치는 인연이다.

현재 (콜트-콜텍 천막) 농성장에는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다. 그래서 너무 외롭고 답답하다. 농성자들이 무엇을 잘못했나, 반성도 한다. 연대한 사람들에게 나쁜 말과 행동을 했는지 돌이켜보곤 한다. 한때 끈끈했던 인연들은 어디 갔을까?

2015년 6월 18일 콜텍 해고자 임재춘

그리워하고 있음을, 알려주세요

이란희감독과 콜밴, 콜밴 주연의  단편 영화 시나리오 구상을 하며
▲ 농성일기27화 농성장에서 시작된 또다른 인연 이란희감독과 콜밴, 콜밴 주연의 단편 영화 시나리오 구상을 하며
ⓒ 최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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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가 완전히 물러난 후 김경봉 조합원은 천막에 놓여있던 난로를 치우고 그 자리에 커다란 테이블을 만들어놨다. 버려지거나 쓰임새를 잃은 농성장의 이런저런 목재들을 활용한 것이다. 테이블 위에는 농성장에서 즐겨하던 보드게임 판이 그려져 있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농성자들과 친숙하게 연대해온 사람들은 하루 일정이 끝난 늦은 시간에 보드 게임을 즐겼다.

김경봉 조합원은 합판에 페이트 칠을 하다 그 양이 모자라 다른 색을 넣으려 했고, 그러다 보니 보드게임 용 밑그림을 넣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단다. 칠이 마른 후 농성장의 몇몇 지인들은 김경봉 조합원이 나눠둔 칸칸 마다 보드게임의 룰을 매직으로 그려 넣었다.

그러나 그날 이후 그 보드게임을 즐기는 일은 없었다. 농성장을 찾는 발길이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두런두런 모여 수다 떨며 게임을 하다 막차 시간에 맞춰 농성장을 빠져나가던 방문자들의 그 모습이 김경봉 조합원은 많이도 그리울 것이다.

임재춘 조합원은 몇 주 전 젊은 시절 그의 첫 기타 회사였던 성음악기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날 임재춘 조합원은 내게 이 싸움이 캄캄하고 답답해 그곳에 간다고 했다. 한때는 그도 그곳의 일원이었고, 그 곳의 사람들과 동료애를 나눴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은 자신과 그들의 삶을 비교했을 것이다. 왜 회사를 옮겨서 이 모양이 되었나, 후회했을 것이고, 왜 대전에서 인천까지 따라와 농성을 했나, 그냥 오라는 회사를 갈 걸 후회했을 것이다. 그 후 임재춘의 농성 일기는 인연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 갔다. 초고에는 박영호와의 악연이 얼마나 자신을 고통에 빠뜨렸지 폭로하고 또 폭로했다. 지금 자신은 옛날 좋은 인연을 잃고, 그나마 연대하던 사람들도 이제 사라져가니 이처럼 허무할 수 없다고, 이게 다 돈 때문이고 박영호 때문이라는... 한이 가득한 말을 털어놓곤 했다.

농성 이래 함께 싸우던 동료들은 꾸준히 떠나갔고, 떠나가는 사람들의 처지가 빤하니 붙잡지 않으며 인연의 끝에 익숙해졌다. 지지와 연대로 맺어지는 인연도 생겼지만, 이제까지 남은 인연보다 잊히는 인연이 더 많다. 그렇다 하더라도 매달리거나 서운해 하지 않는다. 농성자들이 보여주는 그 담담한 태도는 아무래도 학습의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임재춘 조합원은 콜트-콜텍 공장에서 만난 미술인들과의 인연이 깊게 새겨졌다 말한다. 김경봉 조합원은 인천의 모 단체에 있는 'T'라는 사람이 가장 잊히지 않는다고 한다. 두 농성자들이 깊은 인연으로 기억하는 그들은 일로 맺어지기 전에 모두 이웃처럼 다가왔고, 식구처럼 곁에 있던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렇게 보고 싶으면 먼저 전화해서 한 번 오라고, 왜 이제는 오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건 어떠냐고 내가 묻자, 임재춘 조합원은 "부담줄까 봐, 미안하잖아"라고 했다. 김경봉 조합원은 "부담 준다는 이유로 아무 말 없는 거, 그게 우리의 문제고, 한계야"라고 말했다.

농성장을 떠나는 인연이 더 많지만 여전히 새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올 초부터 이란희 감독은 콜텍의 세 농성자(김경봉, 이인근, 임재춘)와 옴니버스 형식의 단편 영화를 만들고 있다. 인천 사람인 이란희 감독에게 농성자들과의 만남은 새로운 이웃이 생기는 일이었다고 한다. 이란희 감독에게 이웃은 '보이지 않아도 생각하는 존재'다.

"멀리서 아는 콜밴(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이 만든 밴드)은 내게 스타였어요. 그러다 그들과 영화를 찍으면서 그들의 민낯을 보게 됐고, 그들이 멋있는 일을 하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그 속사정에는 인간의 문제가 어김없이 있었죠. 속사정이란 말 속에 있는 그 인간 문제를 새삼 다시 깨닫고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게 이 분들과의 인연으로 생긴 저의 변화예요."

올봄 김경봉조합원은 테이블을 만들던 차에 연대하는 사람들과 할 수 있는 보드게임판을 만들었다. 브루**이란 이 게임의 구체적인 룰은 여러사람들이 조금씩 그려넣어 완성했다. 농성자들은 연대하는 시민들과 일상의 소소한 재미를 나누던 시간들이  최근 부쩍 그리워진다.
▲ 농성일기27화 김경봉 조합원이 만든 천막농성장의 테이블 올봄 김경봉조합원은 테이블을 만들던 차에 연대하는 사람들과 할 수 있는 보드게임판을 만들었다. 브루**이란 이 게임의 구체적인 룰은 여러사람들이 조금씩 그려넣어 완성했다. 농성자들은 연대하는 시민들과 일상의 소소한 재미를 나누던 시간들이 최근 부쩍 그리워진다.
ⓒ 최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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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속사정을 낱낱이 알아가는 것은 어떤 것이냐고 또 물었다. 이란희 감독은 이에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다는 인식에서 그들이 그 무엇을 왜, 어떤 마음으로 하고 있는지를 짐작하는 버릇이 생겼어요. 그리고 그전에는 무엇을 더 물어봐야 할까 생각했는데, 지금은 무엇을 묻지 말아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변화가 생겼어요. 이해하게 되니 배려하게 되더라고요"라고 답했다.

이란희 감독은 가장 아픈 이야기만큼은 영화 속에 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웃은 소재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이 주인공인 이상, 그들에게 가장 아픈 이야기를 재현해달라고 할 수 없다.

영화감독과 배우로 인연이 맺어지기 전 이란희 감독은 농성자들 앞에선 언제나 부족한 사람이었다. 제대로 이 싸움을 거들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미안하기만 했다. 그래서 공장이나 천막농성장의 행사에 참석해도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가만히 있다 가곤 했다. 농성자들이 떡국을 내밀어도 자신이 먹을 자격이 되는지 몰라 주저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들 곁에서 어떤 단역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농성자들이 내놓는 밥그릇을 당당하게 비운다고 말한다.

나는 이란희 감독의 이야기를 들으며, 떠나간 인연들에게 부담줄까 봐 연락하지 않는다는 임재춘 조합원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떠나는 이유가 제각각이라 하더라도 이웃처럼 다가와 식구처럼 지낸 마음들이라면, 보이지 않아도 이 농성장에서의 일과 관계를 생각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또 농성자들이 걱정하는 것과는 달리, 의외로 많은 이들이 단역이든, 조연이든 이 기나긴 싸움에서 자신에게 역할이 부여되는 것을 긍정하기도 할 것이다. 그들이 지금은 곁에 없어도 그들에게 그리워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 또한 좋았던 인연에 대한 인간의 예의일 것이다. 이웃은 그런 것이다. 

또 이란희 감독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농성자들이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이 농성 투쟁에 큰 공을 세우거나 많은 일을 한 사람이기보다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켜봐 주고, 같이 웃고 떠든 기억의 존재들이니 영화를 찍기 전에도, 구체적인 연대의 역할이 없다 하더라도 그렇게 미안해하며 주눅들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농성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결국 자신들의 존재가 누군가에게서 지워지는 것이지 않을까? 그러니 잊지 않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인연은 지속되며 가치를 갖는다.

○ 편집ㅣ조혜지 기자



태그:#임재춘, #콜트 콜텍, #정리해고, #콜밴, #농성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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