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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나도 평범한 모습의 비짐 바칼 채소 가게.
 너무나도 평범한 모습의 비짐 바칼 채소 가게.
ⓒ 신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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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이 더 이상 평범함이 아니라 무능함처럼 여겨지는 세상 속에서, 다수의 사람이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을 추앙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또한,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도시에서의 삶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사람은 일상적인 삶의 공간의 평범함을 누리기보다는 영화 속, 사진 속 그리고 드라마 속의 외국 도시만의 특별해 보이는 장소만을 바라본다.

브랑겔 동네(Wrangelkiez)는 젠트리피케이션 일어날 만큼 시민들에게도 매력적인 동네이고, 투어리스티피케이션(관련기사: '디즈니 랜드' 되어버린 서울, 머지 않았다)이  일어날 만큼 관광객들에게도 인기 있는 동네다. 그만큼 기존 거주민의 삶이 안정적이지 못한 동네다. 지난 17일 수요일 저녁 베를린의 한 거리에서 평범함을 위한 평범한 사람들의 모임이 있었다.

 동네 모임을 통해 주민들은 각자 할 수 있는 것들을 함께 공유한다. 악기 연주를 하고, 이웃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고, 음식을 나눠 먹는다.
 동네 모임을 통해 주민들은 각자 할 수 있는 것들을 함께 공유한다. 악기 연주를 하고, 이웃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고, 음식을 나눠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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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어로 '우리의 가게'라는 뜻의 Bizim Bakkal(비짐 바칼)은 이 동네의 평범한 채소 가게를 위한 모임이었다. 가게를 운영하는 아흐멧 챨리스칸(아흐멧 Çalışkan) 가족은 지난 28년간 이 동네에서 장사를 해왔다. 현재 베를린의 수많은 터키인이 그렇듯 아흐멧씨는 1974년 부모를 따라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에 정착했다. 그는 1987년 아버지와 함께 채소가게를 열어 장사를 시작했고, 이제는 그의 아들과 함께 3대째 운영 중이다. 짧지 않은 역사만큼 단골손님도 많다. 하지만 지난 3월 그는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올해 9월 말까지 가게를 정리해야 한다.

올해 초 프랑크푸르트 인근의 한 부동산 회사가 1층에 Bizim Bakkal 채소 가게가 위치한 임대주택건물을 사들였고, 개보수를 하여 개인소유주택으로 판매하기로 했다.

가족의 유일한 수입원인 채소 가게를 현재 자리에서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아흐멧씨는 부동산 회사에 계속 연락을 하였다.  심지어 그는 스스로 임대료를 더 올리자는 계약을 제안하기도 하였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게다가 작년에 새로운 냉장고를 들이고, 가게 내부 공사를 하며 큰돈을 지출했기 때문에 다른 곳에 새 매장을 여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채소 가게 창문에 붙어 있는 언론 기사와 홍보물.
 채소 가게 창문에 붙어 있는 언론 기사와 홍보물.
ⓒ 신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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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손님들과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돕기 시작했다. 사건을 공론화하고, 소식지를 배포하고, 또한 함께 모여 대책을 생각했다. 시민 단체를 만들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그룹을 만들어 채소 가게를 지키기 위한 행동을 시작했다. 자료를 조사하고, 인터넷에 홍보하고, 거리에서 행동으로 옮기고, 미디어와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6월 3일 첫 공식 동네 모임(Kiezversammlung)이 열렸다. 약 150명의 주민이 모였다. 채소 가게 앞 브랑겔 거리(Wrangel Str)가 가득 찼다.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페이지가 생겼고, 서명 운동이 시작됐다. 주변 건물의 창문에는 하나, 둘 지지 스티커 혹은 포스터가 붙기 시작했다. 두 번째 모임에는 약 200명이 그리고 세 번째 모임에는 약 250명이 모였다. 거리에는 차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통행하기도 어려워졌다. 매주 모이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하며, 주요 언론들도 앞다투어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항하는 채소가게와 주민들의 모습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방석, 담요를 가져와서 소풍처럼 즐겨라!’ 는 요구에 아이들도 어른들도 이 동네 모임을 즐기고 있다.
 ‘방석, 담요를 가져와서 소풍처럼 즐겨라!’ 는 요구에 아이들도 어른들도 이 동네 모임을 즐기고 있다.
ⓒ 신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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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기에 축제처럼 보이는 이 모임은 실제로 하나의 소풍처럼 꾸며졌다. 이웃들은 집에서 테이블과 의자, 담요, 방석 등을 가지고 나와, 거리에 앉아 음식을 나눠 먹는다.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은 동네 모임의 시작을 알리는 흥겨운 곡을 연주한다. 사진을 찍고, 영상을 찍고, 자기 생각을 사람들과 나누고, 서명 운동을 하고, SNS에 소식을 알린다. 그리고 이 모든 사람이 이 장소에 함께 있어 준다. 이 모임을 통해 이웃 가게들도 비슷한 상황에 부닥쳐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함께 모여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거리에서 저녁을 먹는 가족도 있다.
 아이들과 함께 거리에서 저녁을 먹는 가족도 있다.
ⓒ 신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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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이 사라진다. 근처 가게에서 일하던 이웃 상점의 주인은 '그다음은 나 혹은 다른 상점일 것이다' 라고 이야기한다. 28년간 동네의 채소가게로, 동네의 아저씨로 지역 사회 속에서 작은 역할을 하던 연결점 하나만 사라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다.

약 50여 년 전 미국의 저명한 도시사회학자 제인 제이콥스는 Bizim Bakkal과 같은 평범한 동네 상점 등이 도시의 일상에서 얼마나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이런 평범한 동네 상점들이 어떻게 도시의 단조로움을 막고 다양성을 높이는지 알린 적이 있다. 하지만 50년이 지나도록 그녀의 제언을 존중하며, 다양성과 사회적 기능을 하는 평범한 상점들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하는 도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평범함을 지키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거리를 가득 채웠다.
 평범함을 지키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거리를 가득 채웠다.
ⓒ 신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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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네가 유명해진다 싶으면, 임대료는 오르고 기존의 상점은 쫓겨난다. 그리고 그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 상점 혹은 고급 상점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수년, 수십 년 같은 자리에서 일하며 지역 사회의 일원이 되던 동네 상점은, 매년 혹은 매달 직원이 계속 바뀌는 상점으로 바뀐다.

브랑겔 동네는 주변으로 수많은 관광 명소가 연결되는 접근성 좋은 동네지만, 사실 동네 그 자체로만 놓고 보면 이 정도의 관심을 받기는 어려운 평범한 베를린의 주거 지역 중 하나다. 하지만 그 거리에는 주민들이 이용하는 평범한 빵집, 베를린에서 가장 오래되었지만 평범한 생선 가게, 28년차의 평범한 채소 가게, 동네 자전거 가게, 동네 편의점 등이 거리를 채우고 있다. 그들이 만들어낸 다양성과 삶은 이 동네가 부동산 투자가, 시민, 관광객 등 수많은 사람에게 인기 있는 장소가 될 수 있었던 주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법적 절차를 정상적으로 거친 아흐멧 씨네 가게 계약 해지는 아무런 법률적 문제가 없다. 이 문제를 주시하고 있는 지역 의원들 역시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누군가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가치이고, 법은 지켜주지 못하지만, 주민들은 함께 지켜야겠다고 느끼는 가치를 위해 거리에 함께 나와 있다. 그것은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고, 나와 미소를 주고받던 이웃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일 수도 있다.

 비짐 바칼은 남는다-우리도 남아있을 것이다. 브랑겔 동네에 (젠트리피케이션, 강제퇴거 등 같은) 억압은 없다!
 비짐 바칼은 남는다-우리도 남아있을 것이다. 브랑겔 동네에 (젠트리피케이션, 강제퇴거 등 같은) 억압은 없다!
ⓒ 신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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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브랑겔 동네는 지역 보호법(Milieuschutz)으로 보호받는 몇 안 되는 동네 중 하나다. 지역 보호법은 건물 소유주가 건물 수리, 철거, 용도변경 혹은 추가적인 건축 변경 시 특별 허가 절차를 밟도록 하여 지역의 무계획적인 변화에 대응하고, 지역의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는 개발을 방지하여 기존의 상태를 지키는 데 목적을 둔 법이다.

이 법에는 올해 3월 '임대주택에서 개인소유주택으로 변경을 금지'한다는 조항이 추가되었다. 하지만 아흐멧 씨 가게의 계약해지와 임대주택의 개인소유주택으로 변경 허가가 내려진 것은 새로운 조항이 추가 되기 전인 3월 이전이었다.

최근 베를린은 월세 제동책(Mietpreisbremse)을 바탕으로 임대주택 안정화에 노력을 가했다. 그리고 지역 보호법은 젠트리피케이션과 투어리스티피케이션 등의 외부 요인에 의한 지역 변화를 보호하는 데 노력을 가하고 있다. 하지만 그 두 법안 모두 부동산 투기꾼들이 피해 나갈 수 있는 충분한 예외조항을 두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비짐 바칼을 위한 주민들의 모임은 현재 법이 완벽히 지켜주지 못하는 사회의 가치와 공동체의 가치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지키기 위한 지역 사회의 연대이다. 그리고 지역의 평범한 모습을 존중하지 못하는 개발에 대한 저항이다. 지난해 말 이 동네에는 세탁소를 쫓아내고, 유기농 상점과 카페 등을 지으려는 계획을 주민들의 연대와 저항을 통해 지켜냈던 경험이 있다.

현재 채소 가게로 가는 거리에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있다. "비짐 바칼은 남는다(Bizim Bakkal bleibt)". 많은 이웃의 바람에 지난해 동네 세탁소가 남을 수 있었던 것처럼 아흐멧씨 역시 이곳에 남아있을 수 있길 희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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