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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의 계파 논란에는 약이 없는 것 같다. 어떤 처방을 내리더라도 다시 전염병처럼 번진다. 증세가 더욱 심각해진 건 문재인 대표의 취임 이후다. 문 대표는 계파 수장으로 지목 받는 자신만이 "친노-비노 계파 논란을 종식시킬 수 있다"라고 했지만 잘못된 진단이었다. 결정적으로 지난 4·29재보궐 선거 패배로 증세는 악화됐고, 당은 전면전이 벌어지기 직전에 가서야 '김상곤 혁신위원회'라는 긴급처방을 받았다.

그러나 고질병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비슷한 양상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하나의 논란이 잠겨갈 때, 또 다시 계판 논란을 부추기는 사건이 발생한다. 4·29재보선 패배의 책임논란이 정리돼 갈 때, 정청래 최고위원의 '공갈 발언'이 나왔다. 이는 주승용 최고위원의 사퇴를 불러왔다. 이 같은 소란을 의원워크숍과 혁신위원회로 덮으려 할 때 소위 친노 인사로 분류되는 김경협 의원의 "비노는 새누리당 세작" 발언이 논란이 됐다.

여기에 새로운 당직 인사를 두고도 잡음이 이어지고 있다. 문 대표가 최재성 의원을 사무총장에 임명하려는 것에 소위 '비노'에서 반발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최 의원이 '범친노'라는 이유다. 지난 원내대표 선거 때도 친노가 최 의원을 지지했다고 한다. 사무총장은 내년 총선에서 공천 관련 실무를 담당하기 때문에 민감한 자리일 수 있다. 결국 인사를 결정하는 최고위원회의에서는 고성이 오갔고, 인사 발표는 미뤄졌다.

이 같은 새정치연합의 '친노-비노' 논란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이는 그대로 '친노'라는 계파와 '비노'라는 계파가 대립하고 정쟁을 벌인다고 생각하는 건 단순하다. 그 안에는 분열과 통합을 반복해 온 새정치연합의 오랜 역사, 총선을 앞둔 당내 이해관계 등 많은 요소들이 녹아 있다. 여기서는 최근에 발생한 사건을 중심으로 새정치연합의 '친노-비노' 논란의 이유를 정리해봤다.

[하나] 새정치연합 의원들도 익숙해진 '친노-비노' 프레임

김경협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리는 의원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김경협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리는 의원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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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노-비노 논쟁은 이제 새정치연합 구성원들에게도 관성이 돼 버린 듯하다. 계파 갈등이 자신들의 최대 문제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친노-비노'라는 말을 스스로 아무렇지도 않게 쓴다. 소위 친노로 분류되는 인사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친노라는 계파는 없다"라고 말하지만 개인적인 만남에서는 '비노'라는 말을 서슴없이 쓰는 걸 볼 수 있다. '비노'로 분류되는 인사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스스로를 '비노'로 규정하는 것에도 망설임이 없는 편이다.

결국 '친노-비노'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를 발생시킨다. 김경협 의원의 발언도 '비노'라는 말을 잘못 사용하면서 발생했다. 김 의원은 지난 12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서 한 사용자에게 "비노는 당원 자격 없음. 새누리당원이 잘못 입당한 것"이라며 "새누리당 세작들이 당에 들어와 당을 붕괴시키려 하다가 들통났다"라는 말을 남겼다. 언론은 "비노는 새누리당의 세작"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고, 당 내에서는 거센 비난이 이어졌다.

김 의원은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한 걸까? 그 말이 나오기까지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 의원은 자신에게 당의 계파문제를 제기하는 트위터 사용자에게 "새정치민주연합은 김대중·노무현 정신계승, 즉 친디제이(DJ)·친노는 당원의 자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사용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계승하지 않는 당원도 있다고 반박했고, 여기에 김 의원이 또 다시 대응하면서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사실 김 의원의 말에서 '비노'라는 말만 지운다면 큰 문제가 될 게 없다. 새정치연합에서 두 전 대통령을 부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대화의 대상이 자신을 '비노'로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다고 변명하고 싶을지 모른다. 그러나 '비노'는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지 않는 자'를 뜻하지 않는다. '비노'는 당내 자신의 반대세력, 비주류를 뜻한다는 점을 기억했어야 한다.

미국의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자신의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프레임'이란 세상을 보는 방식"이라며 "프레임은 언어에 의해 자극받고 언어로 표현된다"라고 말했다. 프레임을 깨기 위해서는 그 언어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것은 "우리는 친노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 문 대표가 "계파의 'ㄱ'자도 나오지 않게 하겠다"라고 한 말을 실천에 옮겨야 가능하다(관련기사 : 노무현은 민주당 내 보이지 않는 손?)

[둘] "우리가 못할 말 했나?" 친노라 불리는 인사들의 안일함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리는 의원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리는 의원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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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계파 논란이 있을 때마다 소위 친노로 불리는 인사들은 "친노라는 계파는 없다"라고 항변한다. 그들의 주장은 이렇다. '계파라고 한다면 수장이 있어야 하고, 구성원들은 수장의 말에 복종해야 한다. 그러나 친노가 따로 모이는 경우도 없다.' 이런 주장은 일면 타당하기도 하지만, 그 역시 계파를 과거형으로 해석한 것이다. '비노'가 '노무현을 따르지 않는 사람'을 표현하지 않는 것처럼 '친노'라는 말도 과거형의 계파를 뜻하지 않는다.

친노로 불리는 인사들이 생각하는 강한 결속력의 계파로서 '친노'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친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 대표가 있고, 그의 측근 인사가 있다. 어쨌거나 당권을 쥐고 있는 '주류세력'으로 존재한다. '친노'는 새정치연합 내부에서 다른 말로 '주류'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만큼 당을 장악한 적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주류가 있다면 비주류도 있다. 그리고 보통 이런 구분은 주류에서 만들어진다. 즉 배타성의 문제다.

계파 논란의 문제는 이런 주류 인사들의 안일한 인식에서도 발생한다. 논란의 원인을 제공하는 행동을 하고 나서도 큰 문제가 없다는 식의 생각이다. 또 분란을 일으키는 발언이 나왔을 경우에는 '말이 과격해서 그렇지 못할 말을 한 건 아니'라는 의식도 깔려 있다. 노영민 의원을 중심으로 한 '비선' 논란과 공천 지분 문제를 제기한 문재인 대표의 글이 유출된 사건에서도 그런 경향을 찾아 볼 수 있었다.

노 의원은 박정희 시대에 민주화운동을 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는 김근태 전 상임고문과 가까운 인물이다. 새정치연합 내 정파그룹인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소속이기도 하다. 그러다 지난 대선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의 비서실장을 맡았고 이후로 '친노'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을 살펴보면 그는 '친노'라기 보다는 '친문'이라고 불리는 게 맞다. 그가 비선 논란에 중심에 서게 된 건 지난 4·29재보선 패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였다.

문 대표는 선거 패배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하지만 여기서 자신의 거취 문제를 거론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이날의 메시지를 정하는 것과 이후 광주 방문 등 일정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최고위원회와 상의를 하지 않았다. 이런 결정 과정에 노영민 의원이 개입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고, 그 상태에서 노 의원이 문 대표가 발표한 메시지와 유사한 말을 먼저 해버리는 일이 벌어졌다(관련기사 : 주승용이 말한 '친노 패권주의'는 무엇인가?).

또 최근에는 노 의원이 사무총장 등 당 정무직 인선에 관여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사자는 강하게 부인했지만 비선 의혹을 받고 있는 노 의원이 계속 거론되는 것은 좋지 못하다. 그러나 소위 친노로 분류되는 인사들은 이런 의혹들을 대부분 '비노들의 문재인 대표 흔들기'라는 인식으로 바라본다. 투명하고 공적체계를 통한 의사결정을 통해 비선 의혹을 불식시킬 방법을 찾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문 대표의 글이 유출됐을 때도 같은 인식이 드러난다. 선거에 패배하기는 했지만 사퇴 요구는 과도한 대표 흔들기이고,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개혁해야 할 대상이라는 인식이 담겨 있다. 그러한 내용이 문제가 될 것이라는 지적 때문에 발표는 취소됐지만 문건이 유출됐고, 결국 공개돼 또 한 번 논란을 일으켰다. 이때도 소위 '친노'로 분류되는 몇몇 인사들은 "공개 안 하기로 한 거니까 문제없다, 그리고 못할 말 한 것도 아니"라는 태도를 보였다.

문재인 대표는 선거에 졌다. 이번 재보선뿐 아니라 지난 2012년 대선에서도 패배했다. 그 직전에 총선도 한명숙 전 대표 체제로 치렀지만 사실상 패배했다. 물론 '친노'가 패배한 것이 아니라 당이 패배한 것이다. 그러나 소위 '친노'는 리더로서 책임이 크다. 그런 책임을 묻는 비판과 계파 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목소리를 구분하지 못하고, 모든 반대 목소리를 혁신해야 할 '구태'로 뭉뚱그리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셋] 언론에서 편 가르면 내부에 호응... 논란의 재생산 구조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으로 참여한 조국 서울대 교수(맨 왼쪽)가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권재민 혁신위원회 제1차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새정치연합 혁신위 회의 참석한 조국 교수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으로 참여한 조국 서울대 교수(맨 왼쪽)가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권재민 혁신위원회 제1차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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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새정치연합의 '친노-비노' 논란을 만드는 것은 언론이다. 최근 언론은 당에서 어떤 일이 생기던지 '친노-비노'의 구도를 만든다. 그렇게 보는 것이 당내 갈등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조중동 등 보수 언론뿐 아니라 이제는 대부분의 언론이 친노-비노 구분을 사용한다. 일부 정치인들은 이런 언론을 탓하기도 하지만 한쪽에서는 이를 이용하기도 한다. 언론과 정치권이 '논란의 재생산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관련기사 : '친노 프레임'... 왜 민주당 '블랙홀' 되었나?).

최근의 사례로는 혁신위원회 구성을 두고 발생한 논란을 들 수 있다. 김상곤 위원장은 지난 10일 당내외 10명의 인사로 구성된 혁신위원 명단을 발표했다. 일부 언론은 이번 혁신위원의 구성을 '운동권 출신의 친노'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특히 우원식 의원,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인호 부산 사하갑 지역위원장, 임미애 경북 북부권 규제개혁협의회 위원장 등이 소위 '친노'로 꼽혔다.

그러나 이들을 전통적인 계파 개념의 '친노'로 구분하기는 어렵다. 우원식 의원은 김근태 전 상임고문의 측근인사였고, 지난 대선 경선에서는 손학규 후보를 지지했다. 이후 문재인 후보의 총무본부장을 맡았지만 그것만으로 친노라고 보기 어렵다. 임미애 혁신위원 역시 지방 기초의회에서 활동을 해왔고 조국 교수는 실질적인 정치 참여가 처음이다. 노 전 대통령의 의원시절 비서였고, 총선 출마 경혐이 있는 최인호 혁신위원 정도만 그런 분류가 가능하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이를 칼로 두부 자르듯이 나눴고, 그 논란은 정치권에서 재생산됐다. 조경태 의원은 "혁신위원들은 문재인 대표 전위부대"라고 공격하면서 또 다시 친노-비노 대립구도를 만들었다. 조 의원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발언을 비판한 김상곤 혁신위위원장을 향해 "문재인 대표와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닌가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김 위원장은 '막말 인사'들에게 공천 불이익을 시사했다.

새정치연합의 한 중진 의원은 이러한 당내 '친노-비노' 논란에 대해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부터 당의 분열, 열린우리당의 창당, 탄핵사태, 대통합민주신당의 창당, 그리고 또 다시 수차례 통합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난치병'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난치병이라고 한다면 다행이다. 고칠 방법이 전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니까. 그러나 그 병이 10년이 넘게 차도가 없다면 고칠 능력이 없거나, 고칠 의지가 없거나, 고치는 방법이 잘못된 것이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김경협, #조경태, #문재인, #김상곤,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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