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찮게도 맨 마지막 차례에 인터뷰를 하게 됐다. 그동안 그가 동고동락했던 인물과 이별하는 날, 그것도 '정말 작별을 고해야 할' 마지막 시간에 만나는 셈이니 배우의 속내가 어떨지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12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마주앉은 배우 권율은 그런데 "홀가분하게 이별할 수 있는 것 같다"는 말부터 꺼냈다.

하긴 생활고 때문에 그 좋아하는 음악을 포기하고 사채업자에게 손목을 내어 주거나(<피에타>), 집안은 멀쩡한데 '잉여' 신세를 면치 못하고(<잉투기>), 사랑하는 사람이 알고 보니 자신의 부모님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흉이었던(<우와한 녀>) 일들을 떠올려 보면 tvN <식샤를 합시다2> 속 이상우 사무관은 권율이 연기한 인물들 중 "비교적 밝고 많은 걸 가지고 있는 친구"였다.

"이상우는 그동안 (시청자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데다 앞으로도 건강하고 밝게 잘 살 수 있는 친구라서 마음이 놓여요.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웃음) 그간 이상우를 연기하며 가까웠던 친구를 만난 기분이었어요. (촬영) 당시 가장 잘 알고 싶고, 친해지고 싶고, 보호해 주고 싶으면서도 자랑하고 싶은, 그런 친구였죠."

"이상우, 깊이 공감할 수 있었던 인물...잘 소개해 주고 싶었다"

 tvN 1인가구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2>에서 이상우 역의 배우 권율이 12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tvN 1인가구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2>에서 이상우 역의 배우 권율이 12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tvN 1인가구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2>에서 이상우 역의 배우 권율이 12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 '가까웠던 친구'라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그런데 당신의 연기를 통해 이상우를 시청자에게 훨씬 멋지게 소개해 준 느낌이다.
"이상우를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을지 많이 알려주시고, 또 내가 더할 수 있는 부분을 열어 놓아 주셨던 작가님과 감독님이 있었던 덕분이다. 어떨 땐 (내가) 오버해 표현할 때도 있었지만 그것도 온전히 매력으로 보일 수 있게 정제해 주신 것 같다."

- 제작진에게 모든 공을 돌리는 건가. 스스로 '이만하면 잘했다'고 생각할 법도 한데.
"물론 다른 캐릭터보다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았던 친구이긴 했다. 그래서 스스로 '잘 했다'고 생각하기보단 '많이 공감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 친구와 소통하는 게 그리 길지 않았다. 딱 보면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어' '내가 더 잘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하는 느낌이었다."

- 과거 인터뷰들을 살펴보니, 연기하기 전에 그 인물의 일대기를 미리 작성하는 습관이 있다고 하더라. 이상우의 일대기도 만들었나.
"당연히! 처음 연기를 배우고 공연을 올릴 때부터 당연하게 생각했던 작업이다. 내 나름대로…공식적인 건 아니지만 질문지를 만들어서 갖고 있다. 예전에 미니홈피에서 유행했던 백문백답 같은 거다. (웃음) 좋아하는 음식과 색깔, 걸음걸이나 말투, 취미와 특기, 자주 가는 곳, 형제관계 등등 지금 보면 쓸데없다 싶은 질문도 있긴 하지만, 그 인물을 잘 소개해 주려면 그런 부분까지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그렇다면 이상우의 일대기 중 연기할 때 가장 핵심이 되는 질문은 무엇이었나. 개인적으로는 가족관계가 굉장히 궁금하다. 외동아들이었을 것 같기도 하고.
"나는 형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상우는 로열패밀리 출신은 아니지만 '보여주기'가 강한 집안에서 부모님이 바라는 모습으로 자랐을 것 같다. 사실 넘치는 끼와 그걸 분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형이 너무 부모님이 원하는 모습대로 잘 돼서 어쩔 수 없이, '이 집안의 질서를 흐트러지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공부도 하고 행정고시까지 응시했을 거다. 만약 외동아들이었다면 자신의 본심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느 식으로든 표현되지 않았겠나.

사실 상우가 결핍 없이 자라난 것 같지만 그 집안의 정서에 눌려 있었던 걸 표현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랬다면 이상우가 좀 더 입체적으로 보였을 수도 있겠지. 어쨌든 절제해야만 하는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되고 사무관이 된 뒤, 그러니까 '주변의 시선에 대한 책임'을 완수한 뒤에 자신이 살고 싶었던 삶을 즐기고 있지 않았을까. 서울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었던 것처럼."

"드라마 통해 '현대인들이 갖고 있는 상처' 표현했으면 했다"

 tvN 1인가구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2>에서 이상우 역의 배우 권율이 12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tvN 1인가구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2>에서 이상우 역의 배우 권율이 12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 이런 해석이라면 이상우가 '호기심'으로 사귀기 시작한 백수지(서현진 분)에게 반하게 되는 것도 납득이 된다. 절제해야 했던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던 사람이었으니 확 끌렸겠다.
"이상우에게 백수지는 바라던 삶의 한 부분, 이상향, 그런 모습이었다고 생각한다. 늘 홍민아(허가윤 분) 같은 여자만 만나보다가 술 먹고 주정도 부리고, 자전거를 타다 엉망이 된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백수지가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거다.

구대영(윤두준 분)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 모두 어디에 얽매이지 않은 채 자신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었지 않나. 그들을 만나 자신이 갖고 있던 선에서 엉금엉금 기어 다니기만 했던 이상우가 일어설 수 있었고, 마음을 열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번 마음을 열었으니 온전히 모든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을 거다. 자신도 마음을 열었을 때 그게 어디까지 깊어질지 미처 몰랐을 수도 있을 거고."

- 사실 관료제의 문제가 '그들이 사는 세상' 속에만 머무른다는 거다. (웃음) 하지만 이상우는 다른 세계도 경험해 봤으니, 분명 좋은 일을 하는 공무원이 됐을 것 같다.
"(고개를 끄덕이며) 좋은 리더가 됐을 거다. 아직 백수지와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결혼 생각은 당분간 없겠지만…그래도 앞으로 선은 안 볼 것 같다. 자신이 직접 만나고 겪어 본 사람과 관계를 맺어가게 될 거다."

- 말하자면 또 다른 관점에서 <식샤를 합시다2>는 '이상우의 성장기'라고도 볼 수 있는 건가.
"맞다. 또 보여주고 싶었던 건 현대인이 누구나 갖고 있는 상처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은 적도 있고, 상처를 준 적도 있었다. 점점 사람을 만나기 어려워지고,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기 두려운 부분이 생기는 게 사실이다. <식샤를 합시다2>를 통해 마음을 조금씩 열면, 자신을 숨기며 살아가지 않아도 충분히 자신을 사랑해 주고 이해해 줄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줬으면 했다."

* 인터뷰 2편에서 이어집니다

권율 식샤를 합시다2 서현진 윤두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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