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의 결말과 결정적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영화란 무릇 이미지와 이야기로 묘사하는 장르이기에, <무뢰한>은 두 지점에서 오롯이 진한 인상을 남긴다. 공을 들여 찾아낸 미장센과 오랜 시간 묵히고 다듬어온 시나리오의 힘이 발현된 이유다.

영화는 모든 에너지를 마지막 장면을 향해 쏟는 듯하다. 퇴락한 마담 김혜경(전도연 분)이 무례한 형사 정재곤(김남길 분)을 사랑하며 증오하는 감정으로 칼을 찌르게 되는 결말, 이 전개를 위해 영화는 흘러간다. 찌르는 이와 베이는 자 사이에 시공간은 사라진다. 찌르는 자와 베이는 자 모두 그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스틸컷 두 남녀는 서로 사랑하지만 결국 상처를 남긴다.

▲ 영화 스틸컷 두 남녀는 서로 사랑하지만 결국 상처를 남긴다. ⓒ (주)사나이픽쳐스


한 인터뷰에서 언급되었듯이, <무뢰한>은 형사 정재곤의 뒷모습으로 시작해 앞모습으로 끝난다. 사건을 향해 들어가는 모습은 당연히 뒤를 드러낼 수밖에 없고 온갖 추악하고 때론 진실된 감정이 발가벗겨지면 앞이 보일 것이다. 보이고 싶지 않은 나의 내면도 같이 드러난다. '앞과 뒤'가 아니라 '뒤와 앞'이라는 전도는 그래서 타당하다. 인물들이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알게 되고 상처주는 것은 결국 후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뒤와 앞, 인물의 내면이 드러나는 방식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형사 정재곤이 마담 김혜경을 만난다. 김혜경은 살인자의 여자다. 정재곤은 '정의'를 추구하는 것 같지 않다. 그냥 본인이 살아남기 위해 직업처럼 살인자를 쫓고 잠복한다. 상사였던 선배 형사가 결국 변질하고마는 상황에서 본인 역시 어쩔 수 없는, 올가미에 갇힌 느낌을 갖는다.

그는 아내와 이혼했다. 정재곤은 무슨 목표가 있어서 '형사질'을 하는 것 같지 않다. 그저 그 자리에서 걷고 있을 뿐. 이런 면에서 김혜경은 닮아 있다. 주식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모든 돈을 날리고 퇴물이 된, 한때 잘 나가던 술집 마담. 마지막 남은 건 자존심 하나. 허무한 삶을 살고 있다는 점에서 둘은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접점이 생긴다.

김혜경의 애인 박준길(박성웅 분). 사건의 중심엔 박준길이 있다. 살인과 도박을 일삼는 그이지만 김혜경에 대한 마음은 애틋하다. 사랑하지만 박준길 역시 '무뢰한'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여자를 이용만 할 뿐이다. 후반부에 골목에서 만난 박준길은 김혜경에게 해외로 떠날 것을 제안하며 돈을 마련해보라고 한다. 그게 진심이었을까. 3천만 원을 또다시 마련해 오면 그땐 정말 떠나는 것일까. 김혜경은 불안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의 사랑이다. 믿는 수밖에.

김혜경에겐 남자 둘이 있지만, 몸을 허락하는 건 둘만이 아니다. 콜이 오면 서슴없이 모텔에도 찾아간다. 사랑 없는 사랑을 하기 위해서다. 김혜경은 박준길을 사랑하지만 바로 내 앞에 있는 정재곤에게도 몸과 마음을 허락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터득한 생존비법은 아닐까. 강한 혹은 연민이 느껴지는 남자에게 이끌리는 감정은 단순히 외로움과 서러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를 이용해야 박준길을 위한 돈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런 형식적인 감정 속에서도 생채기를 드러내고 말았다. 그리고 작은 사랑이 발아했다.

김혜경에겐 박준길과 정재곤이라는 개성보단 남자라는 보편성이 더 강렬하게 자리 잡은 것 같다. 마치 자석처럼 이 두 명의 남자가 더 특별했던 건 그래도 김혜경의 곁에 있어주(었)기 때문이다. 얼음을 안주 삼아 씹어먹으며 독한 술을 들이키는 김혜경이다. "나 김혜경이야"라고 외치는 그녀는 살아갈 희망이 없어보인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박준길)이 사랑하는 또다른 사람(정재곤)에게 죽었다. 그리고 정재곤이 거짓말을 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상처 위에서 꽃이 필 것"이라는 믿음은 "상처 위에 상처'라는 영화 카피처럼 무너진다. 다시 한 번, 찌르는 자와 베이는 자 사이에 틈이 사라진다.

강하고 측은한 남자보다 내 곁에 있는 사람

형사가 살인자의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설정은 흔히 보았다. 그러나 감정을 이끌어가는 영화의 힘은 매력적이다. 또한 전도연과 김남길이라는 배우는 빛났다. 전도연은 허무하지만 순수한 속내를, 김남길은 메마르지만 마지막 인간애는 남아 있는 인물을 잘 드러냈다. 흔히 살아가는 건 상처를 주는 긴 여정이긴 하지만 희망이 남아 있다고 한다.

과연 정말 그러한가. 사랑에 배신 당한 사람에겐 아무 의미가 없다. 삶은 진공 상태처럼 시공간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김혜경이 정재곤을 찌른 이유이다. 정재곤이 김혜경을 밀쳐내지 못하고 그냥 자리를 뜬 이유다. 상처 위에 상처는 사랑이라기보단 증오에 가깝다. 그런데 역설적인 건 두 번째 상처는 사랑을 먹고 잉태한 자식이라는 점이다.

영화 제목 '무뢰한'은 인물들에 대한 묘사임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함의하는 바가 크다. 김혜경을, 박준길을, 정재곤을 혹은 우리 모두를 '무뢰한'으로 만드는 배후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회 체제인가 개인의 운명인가. 개인의 의지만으로 '무뢰한'을 극복할 수 있는가.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김혜경마저 '무뢰한'으로 만들었다.

살인자의 여자에서 살인자로 탈바꿈 시킨 것이다. 물론 결말은 열려 있다. 김혜경을 탐하는 남자들이나 그 남자에게 복수하는 김혜경이나 그 죗값은 똑같다. 어쩌면 영화는 개인들이 변하는 모습으로 하여금 우리 사회의 모순을 이야기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나저나 지금도 앞으로도 내 삶에서 '무뢰한'은 만나고 싶지 않다.

덧붙이는 글 영화 감상평입니다.
무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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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문화, 과학 및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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