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쥬라기 월드>의 한 장면.

영화 <쥬라기 월드>의 한 장면. ⓒ UPI 코리아


급작스럽게 재난과 같은 흉포한 사태가 발생한다. 최고 권력자는 '무능'하다. 당연히, 초기 대응에 실패한다. 딴생각만 가득하다 나중에야 정신을 차리지만, 별 효과가 없다. 정보 공개에도, 인명에도 관심이 없다. 그저 '돈'과 '현상유지' 생각뿐이다. 열심히 뛰는 현장 인력에 비해, 관리직들은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피해를 입는 건 고스란히 일반인들이다. 이 사태, 어떻게 해결이 날까.

'세월호 참사'를 거쳐 '메르스 사태'까지 직면한 2015년 6월 11일 기이한 울림을 줄 수밖에 없는 블록버스터 한 편이 당도했다. 포악한 공룡들이 테마파크를 날뛰며 인간들을 위협하는 바로 그 영화. 그렇다. 20세기, 스티븐 스필버그가 우리를 즐거이 흥분시켰던 <쥬라기 공원>의 네 번째 프랜차이즈가 22년 만에 찾아왔다.

그에 대한 기대를 방증하듯, <쥬라기 월드>는 개봉 4일만에 18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질주 중이다. 해외에서 역시 세계 67개국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싹쓸이했고, 개봉 첫 주 전세계 흥행 수입만 5억 불을 돌파했다. 가히 신기록 행진이다. 게다가 이번엔 시리즈 처음으로 IMAX와 3D 포맷으로도 상영 중이다. 

공룡이라면 환호하는 못 쓰는 청소년이나 마니아 관객들도, 22년 전으로부터 추억을 길어 올린 세대들도, 여름용 블록버스터 무비를 찾는 관객들에게도 이 <쥬라기 월드>는 분명 구미를 당길 대중영화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이견이 있을 순 있지만, 그 결과물만 보면 직전 작품인 3편보단 훌륭하다(1993년 <쥬라기 공원>이후 시리즈는 <쥬라기 공원2- 잃어버린 세계>(1997년), <쥬라기 공원3>(2001년)으로 이어졌다).

꽤나 묵직한, 과학적인 동시에 인문학적인 질문을 던지던 1편과 달리 오락성 본연에도 충실했다고 보면 맞다. 반대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대중적인 거장임을 증명하는 본보기로 이 속편이자 리메이크인 <쥬라기 월드>가 호명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그런데, 작품 속 주인공들이 겪는 재난이 왠지 남의 일이 아닌 듯 공감하게 되는 건 왜일까.

거대 공룡들을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듯 풍성한 볼거리 

 영화 <쥬라기 월드>의 한 장면.

영화 <쥬라기 월드>의 한 장면. ⓒ UPI 코리아


공룡이 탈출했다. 게다가 이 녀석은 역사책 속에서도 보지 못했던 '인도미누스 렉스'다. 당연하다. 티아노사우루스 렉스를 뛰어 넘는 영화 속 이 거대 공룡은 교배종은 '더 크고 더 자극적으로'라는 모토로 만들어진 유전자 교배종이다. 오징어나 청개구리를 포함해 동물들의 다양한 본능들을 필요에 의해 조합해 만들어졌다. 보호 본능이 대표적이다.

<쥬라기 공원>으로부터 22년, 지상 최대의 테마파크로 자리 잡은 '쥬라기 월드'에서 일어난 이 재난이 바로 이 인도미누르 렉스의 우리 탈출이다. 한 번도 다른 생물체를 본 적이 없는 이 포식자의 출현은 그야말로 카오스다. 예상 가능하듯, 관리자들의 부주의와 과신이 낳은 재난은 세계 10대 부자가 만든 이 테마파크를 쑥대밭으로 만들게 된다.    

4편에서 활약하는 주인공은 당연히 '공룡'과 '인간'으로 나뉜다. 인도미누스 렉스 외에 1편부터 우리에게 서스펜스를 안겨줬던 랩터는 4종으로 늘었고, 티아노사우르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이 외에 수중 공룡 모사사우루스 역시 결정적 한방을 날리며, 공룡계의 타조라는 갈리미무스는 '귀요미'로 기능하고, 영화 중반부를 수놓는 '익룡'들의 활개는 히치콕의 <새>를 작정하고 오마주 한 듯 인상적인 장면으로 태어났다. 사실 이 공룡들을 보는 것만으로, <쥬라기월드>의 만족감은 대부분 충족된다.

한편으로, 가족주의를 전편에 까는 시리즈 특성상 아이들의 활약이 중요할 터. 이모인 클레어(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분)가 센터 총괄자로 일하는 덕분에 주말 VIP 이용권을 얻게 된 그레이와 자크 형제가 그 아이들이다. 그리고 무능한 고위층 대신에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인도미누스 렉스의 폭주를 막고자 노력하는 오웬(크리스 프랫 분)이 이 소동극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다.

그밖에 '쥬라기월드'의 후원자이자 기획자인 갑부 사이먼(이르판 칸 분)과 유전학 박사로 인도미누스 렉스를 창조한 헨리(B.D. 윙 분), 호전적인 인젠사 직원 모턴(빈센트 도노프리오 분), 소소한 재미를 주는 센터 직원 커플 등이 조연으로 등장한다. 안타까운 점은 아이들을 비롯해 클레어나 오웬까지도 평면적인 인물에 그쳤다는 점이다.

특히나 1, 2편에서 카오스 이론을 역설하던 말콤 박사를 비롯해 4편의 오웬의 위치인 그랜트 박사, 이 재앙을 끌고 온 쥬라기 공원의 수장 존 해먼드, 영특하게 활약하는 꼬마들까지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개성적인 인물들로 넘쳐났던 스필버그의 캐릭터들에 비하면 예상 가능한 인물들이 넘쳐난다고 할까.

1편과 다른 길 선택한 신인 감독의 패기 

 영화 <쥬라기 월드>의 한 장면.

영화 <쥬라기 월드>의 한 장면. ⓒ UPI 코리아


그러거나 말거나, <쥬라기 월드>에 열광할 관객들은 아마도 팔 할이 업그레이드 된 공룡과의 액션과 서스펜스에 집중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쥬라기 월드>의 평면적인 캐릭터와 복잡하지 않은 이야기를 품은 화면들은 분명 매끄럽고 술술 흘러가는 측면이 있다. 깊이보다 흥미, 은유보다 직유를 택한 전략이 일정정도 먹혀들어간 탓이다.

신인에 가까운 두 번째 작품에서 스필버그에 발탁된 콜린 트레보로우 감독은 '감추기'보다는 '드러내기'에 더 관심이 있어 보인다. 두 렉스가 대결하는 클라이맥스가 대표적이다. 이빨을 드러내고 시원시원하게 맞부딪히는 두 거대 공룡의 대결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거기에 랩터까지 콩콩대며 끼어드는 형국은 이 장면 하나로 중반부까지의 구태의연함이 용서될 정도다. 이 장면은 분명 IMAX 시대에 최적화된 스케일을 자랑한다.

그럼에도 <쥬라기 월드>의 액션이나 장면 구성들은 꽤나 이질적이다. 1억 5천만 달러라는 이 블록버스터 영화에 시시콜콜한 농담과 B급 감성이 녹아 있다. 몰려 드는 익룡에게 저리 치이고 이리 날아가는 일반 관람객들의 모습은 비극적인데 왠지 코믹하다. 또 대놓고 '스크루볼 코미디' 속 남녀 관계를 구현하는 오웬과 클레어의 로맨스가 딱 그러하다.

장면 구성에 있어 창의적이었던 스필버그의 미장센 대신 대놓고 낄낄대고 때려 부수는 쪽을 선택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고도 이 드라마나 액션이 술술 흘러가니, 이 이 신인감독의 연출력이 신묘하다는 것이다. 이는 22년간 변화된 관객성과 관계가 있을 것 같다. 이제는 작고한 마이클 클레이튼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쥬라기 공원>이 카오스 이론을 바탕으로 과학과 인간에 대한 꽤나 진지한 고찰을 담은 과학 소설이었다는 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진중함 따위 안중에도 없는 <쥬라기 월드>는 이보다 인간과 공룡의 교감이나 휴머니즘을 내비치고, 호전적인 전쟁광이나 자본가를 슬쩍 비판하는 듯하면서도 시종일관 자신의 목표를 절대 잊지 않는다. 테마파크에서 즐기는 듯한 체험으로서의 영화 말이다. 또, 이제는 B급 영화의 감성이 오히려 더 세련되고 쿨하게 받아들여지는 시대다. 기이한 안티히어로를 낳은 <킥애스>나 작년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가 좋은 예다.

<쥬라기 월드>를 보면서 떠오르는 몇가지 것들

어쨌건, 캐릭터나 직설화법, 체험을 강조하는 화면 등 1편과 비교해 떨어지는 깊이에도 불구하고 <쥬라기 월드>는 승승장구 할 것이다. 그간 각종 슈퍼히어로 프랜차이즈에 지겨울 법한 관객들에게 이 단순명쾌한 영화는 분명 매력적일 수밖에 없을 테니. 게다가 22년 전에 단관 영화관에서 공룡을 즐겼던 추억의 세대까지도 관람에 동참하고 있으니 말이다.

더욱이, 앞서 개봉한 <샌 안드레아스>가 지진을 배경으로 한 진짜 재난영화라면, <쥬라기 월드>는 괜시리 우리 현실과 묘한 공명감을 일으키기까지 한다. 무능한 권력자가 벌이는 재난의 연쇄 반응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하는 일반 관람객들의 모습에서 관객들은 허탈하게 '메르스 사태'를 맞고 있는 작금의 대한민국을 떠올리게 될지 모를 일이다. 아니, 공룡을 보러 갔다 한국을 봤다고 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어찌됐건, "<쥬라기 월드>는 <쥬라기 공원>의 꿈을 이룬 공간"이라는 스필버그의 말마따나, 이 22년 만에 돌아온 4번째 속편은 분명 마주하는 것 만으로도 어떤 묘한 감흥을 던져주는 영화임에는 틀림 없어 보인다. 그러고 보니, 1946년생인 스필버그 감독의 나이도 우리나이로 벌써 70세. 시대를 뛰어 넘는 비주얼리스트가 창조했던 이 공룡 세계가 이렇게 진화했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쥬라기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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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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