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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암에서 본 능선 물결
 수도암에서 본 능선 물결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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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명산에는 대찰이 있고, 대찰에는 웅숭깊은 암자들이 있다. 삼보사찰을 보라! 가야산 해인사와 영축산 통도사, 조계산 송광사의 숲 속에는 백련암, 극락암, 불일암 등 수많은 암자들이 진리의 불을 밝히고 있다.

지리산 천은사는 화엄사의 유명세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고즈넉한 사찰이었다. 번다한 화엄사에 비해 깊은 고요가 있는 천은사는 마음 한 자락 내려놓는 산사였다. '고요히 앉아 궁구하고 있는 내 마음이 부처가 아니고 무엇인가'라는 깨달음이 절로 생기는 곳이었다.

이처럼 맑고 호젓했던 천은사는 근래에 입장료 문제로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곳이 되어 버렸다. 국립공원의 입장료 징수가 없어졌음에도 이곳에는 여전히 공원문화유산지구라는 명목으로 입장료를 받고 있다. 사유지의 무단 사용에 따른 사용료를 부과할 뿐이라는 사찰, 이를 방관하는 지자체 때문에 이곳을 지나는 애먼 시민들만 '통행세'를 내고 있다. 대승적인 이해와 지혜로운 해결이 필요하다.

암자에 놓인 고무신 한 켤레

천은사에는 모두 일곱 암자들이 있다. 종석대 아래의 유서 깊은 우번대와 상선암을 비롯하여 그 아래로 수도암, 도계암, 삼일암이 절의 오른쪽에 깃들어 있고, 사찰을 들어서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감로암과 견성암이 있다. 오른쪽의 암자들이 깊은 산중이라 수행처로 제격이라면, 왼쪽의 두 암자는 산중의 여염집처럼 포근하고 편안하여 머물기에 좋다.

 삼일암 가는 길
 삼일암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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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암에 먼저 들르기로 했다. 그다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암자로 가는 길에서 '이야!' 하며 짧은 탄성을 두어 번 지르게 된다. 도로 옆인데도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소나무들이 장관인 솔숲 때문에 한 번, 다음으로는 푸른 대숲 때문이다. 솔숲이 끝나자 이윽고 울울한 산죽 숲. 길은 터널처럼 뚫려 자연스레 암자로 이어진다. 처음의 솔숲이 외부로 향하는 풍경이라면 대숲은 내면의 소리를 들려준다.

암자는 양명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스님을 불렀으나 들려오는 건 졸졸졸 물소리뿐. 법당을 돌아 스님이 거처하는 곳을 찾으니 뒷마당에서 샘물이 쉼 없이 흘러나왔다. 다람쥐 한 마리가 인기척소리에 숲에서 뛰쳐나왔다.

텅 빈 암자에서 나는 또 묻는다. 지금 왜 여기에 왔는지를. 내가 암자를 찾는 것은 스님들의 말씀이나 가르침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다. 밖에서 오는 지식이 아니라 내 안에서 움트는 지혜가 필요해서다. 그저 텅 빈 암자에서 처음 한 생각을 지켜보아 마음을 살필 뿐이다.

 고무신 한 켤레
 고무신 한 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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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암자에 놓인 고무신 한 켤레를 보며 문득 법정 스님을 떠올렸다. 어느 날인가, 법정 스님은 청도 운문사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운문사를 다녀온 뒤 스님은 그곳의 섬돌 위에 놓여 있던 수백 켤레의 흰 고무신들이 인상 깊었다고 했다. 백 마디의 말보다 문 앞에 가지런히 놓인 신발 한 켤레가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것. 유태교 신비학파의 한 수도자가 '늙은 랍비를 찾아간 것은 그에게서 율법을 배우려는 것이 아니고, 다만 그가 신발 끈 매는 것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는 고백처럼…. 죽은 경전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실천된  삶을 보고자 함이었으리라.

산길로 도계암을 갈까 하다 이내 발길을 돌렸다. 숲이 하도 울창해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여전히 두려움이 남아 있어 완전한 자유를 얻지 못하는 미덥지 못한 자신을 돌아본다.

4형제가 출가한 수도암의 스님

수도암은 호방한 무인의 기질을 가진 암자였다. 지리산 암자 중에서 이처럼 호방한 기운을 지닌 암자가 또 있을까. 어찌 보면 아주 투박해 보이는 건물과 지나치게 크고 과장된 담장이 생경스럽기는 하지만 스케일이 남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암자 앞으로 펼쳐진 광활한 풍경을 염두에 둔다면 그 투박하고 과장됨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내면의 동의가 절로 생겼다.

 허공을 열다
 허공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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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눈의 외국인이 법당에서 나왔다. 그 옆으로 스님 한 분이 나란히 계단을 내려온다. 큰스님이 계시던 곳이라고 했다. 큰스님은 화엄사 주지를 지냈던 평전 종수 스님이다. 종수 스님의 글귀가 법당 왼쪽과 뒤에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저 멀리 허공을 스님 한 분이 걸어 나온다. 스님께 암자를 멀리 휘감고 있는 산들에 대해 물었다. 스님은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조계산, 동리산, 모후산, 무등산이라고 했다. 스님의 법명은 철우. 철우 스님은 4형제가 모두 출가했다고 했다. 장남인 자신이 제일 먼저 출가하고 5년이 지나 둘째가 출가를 해서 4형제 모두 불교에 귀의하여 수행자가 됐다. 셋째는 동화사 종정 스님의 상좌로, 철우 스님과 나머지 두 형제는 이곳 수도암에서 정진 중이다. 수도암에는 모두 9명의 스님이 있다.
"얼마 안 됐어요. 법랍이 겨우 30년이요. 50년은 돼야 절밥 먹었다 하지. 30년으론 어림도 없어. 오늘은 바빠서 안 되겠고 다음에 차나 한 잔 합시다."

깨달음을 얻은 후 붓다도 아들과 이모 등 친족이 출가했고, 부설거사도 부인인 묘화와 아들 등운, 딸 월명이 출가했고, 26살 때 손가락 네 개를 불에 태워 소신공양할 정도로 치열한 구도의 길을 걸었던 일타 큰스님의 일가친척 41명도 출가했지만, 근래에 4형제가 모두 출가한 일은 흔치 않은 일이다.

 천은사 숲길
 천은사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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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은사의 숨은 길

천은사로 내려왔다. 부도전을 지나 일주문을 지난다. 일주문에는 원교 이광사가 썼다는 '지리산 천은사' 글씨가 유려하다. 구불구불 흐르는 물줄기 같은 두 줄의 세로글씨는 문외한이 봐도 예사롭지 않다. 일주문을 지나자마자 오른편 층계를 올라 오솔길로 접어든다. 생태관찰로이다. 많은 이들이 천은사를 오가지만 이 길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이렇게 아름다운 길이 알려지지 않은 게 여행자로선 오히려 다행이다 싶다. 혼자 호젓한 길을 탐하는 것, 지나치지는 않으리라. 숨겨진 길은 천은사를 왼편에 끼고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깊이 침잠하는 길이다. 원시 숲의 청량함이 온몸으로 파고들고 맑은 새소리와 뺨을 스치는 바람이 부드럽기 그지없다.

소낙비다.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끼더니 비를 퍼붓는다. 비를 피할 곳을 찾는데, 멀리 암자가 보인다. 견성암이다. 암자는 산중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너른 평지에 있었다. 예쁜 전원주택처럼. 쪽마루에 스님과 아주머니 보살 세 분이 걸터앉아 소일거리를 하고 있다. 세 칸의 소박한 건물에 견성암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견(見)'자에 눈 모양을, '성(性)'자에 마음의 형상을, '암(菴)'자에는 풀의 생김새를 그린 글씨가 눈길을 끈다.

 견성암 가는 길
 견성암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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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성암에서
 견성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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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 300년이 넘은 소나무 한 그루 너머로 천은사 경내가 보인다. 선방에 잠시 들렀다. 계곡가에 있는 선방은 천은사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이다. 그림자 없는 수행자 수월 선사의 체취가 느껴진다. 최근에는 템플 스테이로 일반인들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고요한 정적이 감싸는 적요한 곳, 묵직한 법당 너머로 계곡 물소리 법문이 들리는 선방은 적막하다.

천은사를 휘 둘러보고 호숫가 감로암에 들렀다. 스님은 간데없고 주인 떠난 자리에 개만 짖어댄다. 객 홀로 암자를 서성이다 산문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곳이 다시 출발점이다. 길을 떠난 선재동자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처럼…. 그제야 스님 한 분이 암자로 향한다. 그를 따를까 하다 발길을 돌린다. 수홍루 아래로 흐르는 계곡물이 세찼다. 암자를 나와 호숫가에 앉았다. 15세기 인도의 시인 까비르의 시를 읽는다.

 감로암 가는 길
 감로암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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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로암 가는 길
 감로암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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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의 물고기가 목말라한다는 말을 듣고 나는 웃는다.
진리는 바로 그대 안에 있다.
그러나 그대 자신은 이것을 알지 못한 채
이 숲에서 저 숲으로 쉴 새 없이 헤매고 있다.
여기,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진리를 보라.
그대가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보라.
이 도시로 저 산속으로
그러나 그대 영혼을 찾지 못한다면
세상은 여전히 환상에 지나지 않으리.

- '물속의 물고기는 목말라하지 않는다', 까비르

 천은사 일주문
 천은사 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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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은사 일주문
한때는 천 명이 넘는 스님들이 있었다는 천은사는 인도 승려인 덕운 선사가 828년에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에는 경내에 이슬처럼 맑고 차가운 샘물이 있어 감로사라고 했다. 그런데 임진왜란 때 절이 불타고 중건할 때 샘가에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 잡아 죽였더니 더 이상 샘이 솟아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샘이 숨었다 하여 천은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절 이름을 바꾼 뒤에는 원인 모를 화재가 잦았다. 사람들은 절의 수기(水氣)를 지켜주는 뱀을 죽여서 그런 것이라며 두려워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조선 4대 명필 중의 한 사람인 원교 이광사가 '지리산 천은사'라는 글씨를 물 흐르듯 써서 걸었더니 이후로는 불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일주문 글씨를 보고 있노라면 구불구불한 글씨가 정말로 물이 흐르는 듯하다. 아니, 물 흐르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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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