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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영 씨가 지난 8일 전남 영암 장암정의 대청마루를 생들기름을 이용해 닦고 있다. 김 씨는 문화재예방관리센터에 소속돼 일하고 있다.
 김대영 씨가 지난 8일 전남 영암 장암정의 대청마루를 생들기름을 이용해 닦고 있다. 김 씨는 문화재예방관리센터에 소속돼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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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여행을 함께 하는 것 같아서 좋아요. 일하러 가는 길이 여행이고, 여행하는 기분으로 가서 일도 하고요. 그래서 늘 재밌어요."

김대영(28·전남 목포)씨의 말이다. 김씨는 문화재예방관리센터에 소속돼 지역의 각종 문화재를 돌보면서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지난 8일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장암마을에 있는 장암정(場岩亭)에서 그를 만났다.

장암정은 장암 대동계에서 1669년(현종 9년)에 동약(洞約)의 모임 장소로 지은 정자다. 동약은 조선시대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규칙이다. 좋은 일은 권하고 잘못은 서로 바로 잡아주며, 어려운 일은 서로 도와주는데 목적이 있다.

마을의 유생들이 모여 향약을 읽으며 잔치를 하던 향음주례와 백일장, 회갑연 등의 장소로 쓰였다. 국경일이나 국상 때에도 중요한 공간으로 활용됐다. 지역주민들의 터전인 오늘날의 마을회관과 비슷한 공간이다.

'장암정기', '장암정중수기'와 각종 시문(詩文) 24개의 현판이 보관돼 있다. 장암정 현판은 명필 김이도의 친필로 전해지고 있다. 부속 건물로 고직사(庫直舍)와 강신소(講信所)가 있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돼 있다.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장암마을에 자리하고 있는 장암정. 장암 대동계에서 1669년에 동약의 모임 장소로 지은 정자다.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장암마을에 자리하고 있는 장암정. 장암 대동계에서 1669년에 동약의 모임 장소로 지은 정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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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암 대동계의 모임 장소였던 영암 장암정.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이뤄진 정자다.
 장암 대동계의 모임 장소였던 영암 장암정.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이뤄진 정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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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먼저 꽉 닫혀있던 마루방의 문을 들어 올려 환기를 시켰다. 정면 4칸, 측면 3칸 모두 12칸의 대청이 시원하게 뚫렸다. 여기저기 묵은 먼지가 수북했다. 마을주민들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됐음을 직감할 수 있다. 정자 앞 들녘에선 밭작물 수확과 모내기가 한창이다.

김씨는 빗자루를 들고 정자의 다락에 설치된 서고의 먼지를 털었다. 거미줄도 걷어냈다. 다음엔 마루방과 우물마루를 깐 대청을 깨끗이 쓸었다. 띠살창을 한 창호의 먼지도 털어냈다. 허옇게 내려앉아 있던 먼지가 그의 비질에 의해 한쪽으로 모였다. 부근에 널브러진 쓰레기를 줍고 치우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김대영 씨가 지난 8일 마른 수건에 생들기름을 무쳐 대청마루를 닦고 있다. 김 씨는 문화재예방관리센터에 소속돼 일하고 있다.
 김대영 씨가 지난 8일 마른 수건에 생들기름을 무쳐 대청마루를 닦고 있다. 김 씨는 문화재예방관리센터에 소속돼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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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부터 문화재예방관리센터에 소속돼 문화재 돌봄 일을 하고 있는 김대영 씨. 김 씨는 일을 하면서 여행까지 겸하는 것 같아서 즐겁다고 했다.
 지난 3월부터 문화재예방관리센터에 소속돼 문화재 돌봄 일을 하고 있는 김대영 씨. 김 씨는 일을 하면서 여행까지 겸하는 것 같아서 즐겁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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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만해요. 일은 조금 힘들어도. 일반인들이 접하기 어려운 문화재를 만나는 것도 복이고요. 주 5일 근무에다 제때 출·퇴근하죠. 야근도 없고요. 주말과 휴일을 고스란히 쓸 수 있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보수는 많지 않아요. 근무여건을 생각하면 괜찮은 편이에요."

김씨의 말이다. 그의 비질에 먼지 수북했던 대청마루가 깔끔해졌다.

"재작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어요. 2년 동안 준비를 했는데, 갈수록 매력이 떨어지더라고요. 제 적성에도 안 맞을 것 같고요. 다른 일거리를 찾던 중에 우연히 알게 됐죠. 지난 3월부터 일을 했으니까, 이제 100일이 됩니다. 재밌어요. 오래도록 할 것 같아요."

김씨가 문화재 돌봄 일을 하게 된 계기다.

지난 8일 문화재예방관리센터 서부1팀이 찾은 영암 장암정. 팀원들은 자동차에 관련 장비를 싣고 와서 문화재를 정비하고 보수하는 일을 했다.
 지난 8일 문화재예방관리센터 서부1팀이 찾은 영암 장암정. 팀원들은 자동차에 관련 장비를 싣고 와서 문화재를 정비하고 보수하는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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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예방관리센터 서부1팀 소속 팀원들이 지난 8일 영암 장암정의 마루를 정성껏 닦고 있다.
 문화재예방관리센터 서부1팀 소속 팀원들이 지난 8일 영암 장암정의 마루를 정성껏 닦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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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김씨의 동료들은 마루 밑에 쌓인 물건들을 치웠다. 한옥의 구조상 통풍이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미관을 해치는 잡목과 죽은 나뭇가지도 정비했다. 썩어서 훼손된 대청마루의 바닥 부분을 드러내고 새 나무판으로 바꾸는 일도 했다. 나무판 하나 바꾸는 일인 데도 정성을 다 쏟았다. 녹이 슨 철물을 닦고 훼손된 벽체 부분도 보수했다.

가까운 기사식당에서 점심 끼니를 때우고 온 팀원들은 바로 대청마루 닦기에 들어갔다. 그냥 물걸레로 가볍게 문지르는 게 아니었다. 마른 수건에 생들기름을 묻혀서 닦았다.

"저희 매뉴얼입니다. 생들기름을 써야 오래 가요. 팀원들도 모두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죠. 대영이도 그렇고요. 목수 경력을 지닌 친구가 나무를 깎고 교체 작업을 하고요. 우리 센터가 인력관리와 작업공정 매뉴얼을 만들고 책으로도 펴냈어요. 전국에서도 가장 모범적인 활동을 하고 있답니다."

김근순(50) 문화재예방관리센터 서부1팀장의 말이다.

문화재예방관리센터 팀원들이 일을 하다가 잠시 앉아서 쉬고 있다. 문을 들어서 고정시킨 덕분에 마루방과 대청마루가 넓게 보인다.
 문화재예방관리센터 팀원들이 일을 하다가 잠시 앉아서 쉬고 있다. 문을 들어서 고정시킨 덕분에 마루방과 대청마루가 넓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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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순 문화재예방관리센터 서부1팀장이 지난 8일 작업 중 쉬는 틈을 이용해 장암정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김근순 문화재예방관리센터 서부1팀장이 지난 8일 작업 중 쉬는 틈을 이용해 장암정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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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날 장암재의 주변 환경을 정비하고 훼손된 부분을 보수한 팀을 이끌었다. 문화재예방관리센터 서부팀에 소속돼 있다. 전남도내에는 서부권과 중부권에 각 3팀, 동부권에 2팀 등 팀당 4, 5명씩 모두 8개 팀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관리대상 문화재는 대략 600여 곳에 이른다.

서부1팀이 장암정의 보수와 주변 정비를 하고 가면, 제초팀이 와서 안팎의 잡초를 제거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시스템으로 그동안 강진의 다산초당(茶山草堂), 영암의 영보정(永保亭)과 장동사(長洞祠) 등을 청소하고 정비했다. 장암정 다음 행선지는 강진 향교라고 했다.

"치아의 스케일링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저희가 하는 일이요. 평소 스케일링만 잘해 놓아도 큰 돈 안 들어가잖아요. 관리를 잘못해 두면 큰 돈 들여서 인플란트를 해야 하고요. 저희들이 큰 돈 들어가지 않도록 평소 관리를 잘해두겠습니다."

김 팀장의 말이다. 이들의 노고 덕분에 주변의 문화재가 친근하게 다가서는 것 같다. 여행객과 문화재와의 기분 좋은 만남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장암정 앞에서 본 장암마을 앞 들녘. 모내기가 이뤄진 들녘 너머로 월출산이 구름에 가려 희미하게 보인다.
 장암정 앞에서 본 장암마을 앞 들녘. 모내기가 이뤄진 들녘 너머로 월출산이 구름에 가려 희미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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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장암정, #문화재예방관리센터, #김대영, #김근순, #장암대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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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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