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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메르스 특별 진료소 당번인 날이었다. 더운 날씨에 하루 종일 방호복을 입고 있어, 몸이 온통 땀으로 젖고 콧잔등은 마스크로 눌려 빨간 피부염이 생겼다. 추레한 몰골로 보건소 앞 중국음식점에 저녁을 먹으러 찾아갔다.

"저... 보건소 직원들 저녁식사 되나요?"
"예, 그럼요! 먹고 싶은 거 시켜서 배부르게 드세요!"

사장님께서 환한 미소를 보이며 환대하셨다. 사장님은 시킨 식사 이외에 따로, 작은 접시에 탕수육을 수북이 담아주었다. 지친 몸과 마음에 얹어, 왠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최근 들어 언론에서 일선 의료인 및 보건공무원에 대한 격려가 기조화 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이런 일을 겪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보건소에서 민원을 담당하는 직원들도 비슷한 말을 했다. 예전에는 받고 끊을 때 욕 듣는 것을 참기가 어려웠는데, 요새는 전화를 끊기 전 "수고하세요" 한 마디씩 하는 민원인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한국인에서 무언가 재난이 터지면, 앞장서서 책임자를 찾아내어 처벌의 기조를 올리고 자신에게 인기를 집중시키기 바쁘다. 명망있는 인사들이 '남의 자식 군대 안 간 것 찾기'에 혈안이 되는 것을 보면서, 시민들은 서로 간에 신뢰를 잃어간다. 사과하지 않고 궤변을 내세우는 모습을 보고, 길거리의 작은 접촉사고에도 사과를 하면 왠지 지는 것 같아 목소리를 크게 내어 상대방을 제압하려고 애쓴다.

두 명의 농구팀 감독이 있다. 둘 다 농구에 문외한이지만, 지역의 유지로 추대 받아 감독이 되었다. 한 감독은 "이번 경기에서 지면, 낮은 성적을 낸 선수를 경질하겠다"고 하였다. 다른 감독은 "최선을 다해 뛰면, 시합 끝나고 내가 한 턱 낼게!"라고 하였다. 그리고 두 팀은 모두 경기에서 졌다.

전자의 감독은 분노하여 주장을 해임시키고, 가장 득점을 못한 선수를 팀에서 방출시켰다. 선수들은 우울해했고, 농구를 시작한 것 자체에 회의를 느끼기도 하였다. 후자의 감독은 힘 빠진 선수들을 독려하기 위해 회식을 열고, 다같이 소주를 기울이며 우애를 다졌다. 다음 시합에서 승리를 거둔 팀은 어떤 팀일까?

최근 메르스라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일선의 보건의료인을 격려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들의 '영웅화'가 아니다. 메르스라는 재난 속에서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서로를 독려하며 힘을 모아 극복할 수 있는 저력이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의료인만이 영웅이 아니다. 모든 국민이 각자의 자리에서 용기를 내어, 최선을 다해 생업에 종사하고 서로를 믿어주며 시민의식을 발휘하여, 개인 위생을 지키고 자발적으로 성실한 격리에 임하는 등 감염이 확산되지 않도록 애쓴다면, 모든 국민이 메르스라는 '외적' 에 맞서 싸우는 전사(戰士)이며 영웅일 것이다.


태그:#메르스, #격려, #극복,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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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고통을 수용하지만, 문제는 외면하면 더 커져서 우리를 덮친다. 길거리흡연은 언제쯤 사라질까? 죄의식이 없는 잘못이 가장 큰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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