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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청소년일 때만 해도 가족 모두가 한상에서 밥 먹을 일이 더러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성년이 되면서 이젠 그럴 기회가 거의 없다. 이러니 가족 모두 여행하긴 더욱 어려워졌다. 가족 모두는커녕 딸이나 아들 중 하나만 데리고 여행을 하는 것조차 이제는 쉽지 않은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얼마 전 딸과 내가 평일 하루를 집에서 함께 쉴 수 있게 되었다. 5월 29일과 6월 1일, 우리는 그래서 남이섬으로 갔다.

"어디 갈까? 가고 싶은 곳 없어? 1박 2일이면 갈수 있는 곳이 정말 많은데 딱 하루라 아쉽다. 조금만 일찍 결정됐다면 밤기차 타고 갈 수도 있는데 말이야. 그래도 이게 어디니."

"아주 이른 새벽이라도 깨우면 일어날 테니까 꼭 깨워줘. 못 일어난다고 안 깨우고 그럼 집에서 하루 종일 보내야 하잖아. 히~!(웃으며) 안 일어나면 뺨 한대를 쳐서라도 꼭 깨워야 돼."

딸은 이미 잠든 지 오래. 생각나는 곳들을 찾아 이런 저런 것들을 훑어보니 이른 새벽에 출발해야 그나마 아주 조금 여유 있게 놀고 늦은 밤에나 겨우 도착할 수 있을 곳 뿐이다. 혼자라면 얼마든지 갔다 오겠지만, 아직 여행의 참맛을 거의 알지 못하는 딸에게 시간 다투며 갔던 곳으로 기억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하게 된 곳이 남이섬이다.

초옥공방이다. 한국전쟁 때도 살아남은 방하리 한 건물을 옮긴 것이다. 한때 직원들 숙소로 썼던 이 건물은 지금은 남이섬의 창작물들이 태어나는 곳이다. <겨울연가> 촬영도 이곳에서 결정됐다고 한다.
 초옥공방이다. 한국전쟁 때도 살아남은 방하리 한 건물을 옮긴 것이다. 한때 직원들 숙소로 썼던 이 건물은 지금은 남이섬의 창작물들이 태어나는 곳이다. <겨울연가> 촬영도 이곳에서 결정됐다고 한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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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크레이션을 하고 있는 60~70대 모임 사람들 옆 의자에서 30여분 동안 쉬면서 구경했다. 쉬고 싶을 때 자리 없어서 쉬지 못할 일은 없을 정도로 크기와 형태가 다양한 시설물들도 많다
 레크레이션을 하고 있는 60~70대 모임 사람들 옆 의자에서 30여분 동안 쉬면서 구경했다. 쉬고 싶을 때 자리 없어서 쉬지 못할 일은 없을 정도로 크기와 형태가 다양한 시설물들도 많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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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동안 저들처럼 앉아 쉬며 딸과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처럼 하염없이 앉아 쉴 수 있는 곳들이, 쉬고 싶은 곳들이 많다.
 한참동안 저들처럼 앉아 쉬며 딸과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처럼 하염없이 앉아 쉴 수 있는 곳들이, 쉬고 싶은 곳들이 많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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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을 착각할 정도로 고운 단풍나무

휴일을 하루 앞둔 금요일이나, 그래도 평일이니 사람이 별로 없으리란 지레짐작과 달리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특히 외국인들이 많았다. 우리말보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더 자주 스쳤다. 얼핏 우리와 차이가 그리 없으나 쓰는 말이 전혀 다른 이국인들 사이를 다니노라니 "중국인들이 너무 많이 와 시끄러워 두 번 다시 가기 싫다"던 친구 말이 떠올랐다.

20여 년 전, 남편과 연애할 때도 갔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남이섬에 왔었나?' 싶을 정도로 남이섬은 몰라보게 많이 변해있었다. 무엇보다 외국인들을 찾게 하는 계기가 된 <겨울연가>(드라마) 관련 조형물들을 눈에 띄게 많아졌다. 그리고 둘째, 나무 종류가 다양해졌고, 굵고 큰 나무들이 많아졌다.

남이섬을 대표하는 풍경은 메타세쿼이아 길이다. 실제 본 길은 낭만스러웠다. 그러나 유독 사람들이 많아 사진 찍는 것도 쉽지 않았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어느새 누군가 나타나 등을 보이며 지나가거나 사진 찍는 포즈를 하곤 했다. 아쉬운 대로 사진 몇 장을 찍은 우리는 유명한 길들과 시설물들을 좀 더 구경한 후 입구에서 좀 떨어져 한적한 곳을 찾아 걷거나 쉬곤 했다. 

남이섬은 눈에 띄도록 숲이 잘 가꾸어져 있었다. 잣으로 유명한 가평임을 새삼 생각하게 하는 잣나무 숲도 있고, 굴참나무 숲도 있었다. 어지간한 어른 몸통보다 굵은 튤립나무들도 보였고, 자작나무 군락도, 하얗게 꽃을 피운 산딸나무들도, 산뽕나무 등도 보였다. 특히 눈을 끌었던 것은 계절을 착각할 정도로 여러 가지 색들의 단풍이 고운 단풍길이었다.

이 풍경만 보면 단풍이 막 시작되는 계절 같다. 그러나 5월 29일 남이섬이다. 나무들의 특성을 존중해 자연스럽게 가꾼 숲들이 많아 좋았다.
 이 풍경만 보면 단풍이 막 시작되는 계절 같다. 그러나 5월 29일 남이섬이다. 나무들의 특성을 존중해 자연스럽게 가꾼 숲들이 많아 좋았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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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20년 전에도 이 나무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생각했던 튤립나무 길이다. 딸이 팔을 벌려 안아보았으나 반절 정도만 안길 정도로 굵게 자라 있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간식을 나눠 먹는 사람들이 유독 많이 보였던 길이다.
 '아마 20년 전에도 이 나무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생각했던 튤립나무 길이다. 딸이 팔을 벌려 안아보았으나 반절 정도만 안길 정도로 굵게 자라 있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간식을 나눠 먹는 사람들이 유독 많이 보였던 길이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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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우면 자작자작 소리가 난다고 자작나무'들이 자연스럽게 자라 그늘을 만들어 참 편했던 길이었다. 이처럼 자연스럽게 방치한 듯 가꾸는 나무들이 많았다.
 '태우면 자작자작 소리가 난다고 자작나무'들이 자연스럽게 자라 그늘을 만들어 참 편했던 길이었다. 이처럼 자연스럽게 방치한 듯 가꾸는 나무들이 많았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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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나무는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아주 흔한 나무다. '단풍'이란 이름이 '붉게 물든다'에서 유래한다던데, 진한 빨강색부터 노란색에 가까운 연둣빛까지 잎의 색깔이 다양하다. 게다가 비교적 작고 아담하게 자라기 때문인지 여러 그루의 나무들이 서 있는 공원이나 아파트 단지 등에 어김없이 한두 그루 꼭 심어져 다양한 풍경을 연출하는데 한 몫 하는 약방의 감초 같은 나무다.

단풍길을 걸으며 때 이른 단풍 풍경에 감탄을 터트리는 딸에게 "저마다 잎의 색깔이 다른 단풍나무의 특성을 애써 생각하지 못했다면 나오지 못할 그런 길"이라고 말해줬다. 외에도 남이섬에는 카메라만 들이대어도 멋진 사진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을 것 같은 아름다운 나무들과 길들과 숲들이 많다. 나무들 사이를 걷다가 쉬고 싶으면 몇 시간이고 눌러앉아 쉴 수 있을 것 같은 아늑하고 편안한 나무 그늘들과 의자나 원두막 같은 시설물들도 많다.

외국인이 많아서 싫다던 친구, 내 생각은...

"외국인들이 많이 와 그만큼 돈을 많이 쓰고 가면 좋지. 그런데 외국인들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그들 위주로만 개발했다는 느낌이 강해."

남이섬에 중국인들이 많아 시끄러워 두 번 다시 가기 싫다던 친구는 이런 말도 했었다. 글쎄 사람에 따라 보고, 느끼는 것도, 그리고 감동도 다를 수밖에 없겠다. 내 친구와 같은 생각을 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남이섬에는 <겨울연가> 관련 조형물들이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다는 생각도 든다. 시끄러워서 돌아보면 외국인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많은 외국인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그런데 내 생각은 친구와 많이 다르다.

많은 사람들에게 국가 혹은 지자체가 관리하는 국민관광지 정도로 인식되어 있는 남이섬은 개인 소유다. 1944년 청평댐 조성으로 주변 지역들이 수몰되면서 섬처럼 남은 곳이다.  이후 인근 주민들이 드나들며 일부 땅을 개간해 땅콩 등을 심었으나 거의 많은 부분이 버려졌었다고 한다. 이런 땅을 민병도씨가 매입해(1965년) 가평의 특산물인 잣나무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나무들을 심어 가꾸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찾는 남이섬의 시작이다.

현재 남이섬에는 일일이 이야기 할 수 없을 정도로 여러 종류의 참 많은 나무들이 잘 가꾸어져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생김새와 성격이 저마다 다른 것처럼 같은 종류의 나무일지라도 자라는 모습이나 서 있는 곳에서 적응하는 그 특성이 다르다.

남이섬에 몇 시간 머물면서 무엇보다 많이 느낀 것은 저마다 다른 나무들의 특성을 최대한 존중해 자연스럽게 자라도록 잘 가꾸었다는 것이다. 때문일까. 잘 자란 나무들이건만 인위적인 느낌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20여년전 남편과 왔을 때 이처럼 그리 굵지 않은 나무들이 많았다. 그 나무들이 참 많이 자랐다. 셔터를 누르며, 잠시 숲에 서서 훗날 딸도 나와 함께 찾았던 날들의 나무들을 기억하고 지금의 나처럼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나이 들어갔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20여년전 남편과 왔을 때 이처럼 그리 굵지 않은 나무들이 많았다. 그 나무들이 참 많이 자랐다. 셔터를 누르며, 잠시 숲에 서서 훗날 딸도 나와 함께 찾았던 날들의 나무들을 기억하고 지금의 나처럼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나이 들어갔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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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딸나무들이 줄지어 선 길이다. 남이섬의 총 면적은 13만평, 둘레는 6km에 달한다. 입구에서 좀 더 들어가면 다양한 나무들을 만날 수 있으며 한적하고 멋있는 길과 숲들이 많다.
 산딸나무들이 줄지어 선 길이다. 남이섬의 총 면적은 13만평, 둘레는 6km에 달한다. 입구에서 좀 더 들어가면 다양한 나무들을 만날 수 있으며 한적하고 멋있는 길과 숲들이 많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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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병과 작은 옹기 등을 이용해 한 벽면을 장식한 이 건물은 화장실이다. 남이섬에는 이처럼 버려지는 것들을 재활용한 건물들과 설치물들이 많다.
 소주병과 작은 옹기 등을 이용해 한 벽면을 장식한 이 건물은 화장실이다. 남이섬에는 이처럼 버려지는 것들을 재활용한 건물들과 설치물들이 많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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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좋았던 점은 국내 여러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놀이기구들이나 게임시설들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주병을 이용한 건물 등 독창적이며 친환경적인, 그래서 개념 있는 시설물들이 눈에 띄도록 많다는 것이다. 이후 갑자기 또 주어진 6월 1일에도 남이섬에 갔다. 두 번째 날 좀 더 돌아보고서야 "이 정도면 아쉬운 대로 볼만큼 봤지?"에 비로소 수긍할 정도로 보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았다.

다양하고 풍성한 나무들과 독창적인 시설물들을 구경하다보면 많이 걸을 수 있고, 그만큼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유심히 본 사람들은 봤을 것이다. 자전거 등을 타고 숲길을 달리거나 삼삼오오 짝지어 이야기를 나누며 숲길을 다니는 외국인들이 참 많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외국인들은 우리나라를, 그리고 남이섬을 나무와 숲과 함께 기억할 것이다. 한 개인이 이런 관광지를 조성했음에 고마움과 함께 감동할 수밖에.

다른 사람들에게 남이섬은 어떻게 보였으며, 어떤 관광지 혹은 여행지로 기억될지 모르겠다. 여하간 내게 남이섬은 우리나라 그 어떤 곳보다 매우 생태적이며 친환경적인 관광지로, 그래서 계절마다 몇 번씩 가보고 싶은 곳으로 우선 기억되고 있다.

스물 갓 넘은 딸에게도 남이섬은 좋았나 보다. 며칠 후인 6월 1일에도 갑자기 쉬게 됐는데, 남이섬에 다시 가자고 했다. 두 번째로 간 날. 가을에도, 겨울에도 꼭 다시 오자고, 가능하면 아빠 오빠와 함께 오자고, 남이섬 호텔에서든 펜션에서든 하룻밤 꼭 자면서 남이섬의 새벽을 만나봤으면 좋겠노라고 내게 다짐이라도 받을 듯 말한 것을 보면 말이다.

무엇보다 딸과 여유 있게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한 여행이라 더욱 더 좋은 여행지로 기억될 것 같다. <겨울연가>로 유명한 곳,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다운 숲과 그에 깃들여 사는 멋진 나무들이 많은 그런 곳으로 더 많이 기억되었으면, 또 찾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ITX청춘열차 타려면 반드시 기차표 구입을...
남이섬은 워낙 유명하다. 남이섬에 가서야 알았는데, 연간 300만 명이 찾는단다. (제주도는 연간 1천만 명이란다) 서울·경기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남이섬에 가려면 지하철(전철) 경춘선을 이용하거나, 용산역이나 청량리역에서 ITX청춘열차를 타고 가평역까지 간 후 남이섬 선착장까지 걸어가거나(2km 정도), 택시를 타면 된다. 버스도 다닌다.

우린 지하철을 타고 용산역으로 이동한 후 ITX 청춘열차를 이용해 가평역까지 가 택시를 탔다. 두 차례 왕복 4회 모두 대기해 있던 택시를 탔다. 2015년 6월 1일 현재 용산역 출발 가평역까지 ITX 청춘열차 요금은 4800원, 55분 걸렸다(청량리역에서는 38분. 4000원) 가평역에서 남이섬 선착장까지 택시요금 3000~3400원을 T머니카드로 결재했다. 여기까지는 남이섬에 들어갈 수 있는 배를 탈 수 있는 곳까지. 남이섬으로 가려면 어른 기준 한사람 1만원이(왕복 뱃삯과 남이섬 이용 요금) 더 든다.

두 번째로 남이섬을 찾은 6월 1일. 기차가 서울을 막 벗어날 무렵 역무원이 우리 앞에 앉아 있는 승객과 몇 마디 주고받더니 부당승차 과태료를 청구했다. ITX청춘열차와 지하철(전철) 경춘선은 같은 선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같은 승강장에서 타고 내릴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앞에 앉은 승객처럼 ITX청춘열차표를 구입하지 않고 타거나, 모르고 타는 사람들이 많단다. 이를 알리는 방송이 여러차례 나왔다. 적발될 경우 앞에 앉았던 여성 승객의 경우처럼 몇 배에 달하는 과태료를 청구한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태그:#남이섬, #메카쉐쿼이아, #가평역, #ITX청춘열차, #겨울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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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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