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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가뭄으로 바닥을 하얗게 드러낸 소양강.
 긴 가뭄으로 바닥을 하얗게 드러낸 소양강.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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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주민들이 가뭄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다. 가뭄이 일 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겨울에는 그 흔한 폭설 한 번 내리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큰 눈이 내리지 않아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눈이 내려야 할 때 눈이 내리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 2014년 하반기 내내 물 부족에 시달리던 주민들은 크게 낙담했다.

올해 봄에도 가뭄이 지속됐다. 3월에 이미 소양강댐 수위가 1974년 준공 이래 역대 4번째 최저 수위를 기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횡성댐에서는 15년 전 댐을 건설하면서 물 아래 깊이 잠겼던 마을의 집터와 도로들이 수몰 이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횡성댐 근처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댐이 생긴 이래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눈과 비가 내리지 않으면서 곳곳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지역 경제가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빙어축제로 유명한 인제군은 지난겨울 소양강의 수위가 심하게 낮아지는 바람에 아예 축제 개최를 포기했다. 구제역이 확산되는 걸 막기 위해 축제를 취소해야 했던 적은 있지만, 겨울가뭄으로 축제를 열지 못한다는 건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소양강이나 한탄강에서 래프팅을 즐기던 관광객들의 발길도 뚝 끊겼다. 강에서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던 어부들의 손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밭과 논에는 제때 물을 주지 않아 작물들이 누렇게 말라가고 있다. 백두대간의 고랭지 채소밭들 중에는 아예 파종하지 못한 곳도 있다. 덩달아 농부들의 가슴도 바짝바짝 타들어 가고 있다.

지자체에서 지원한 급수 차량이 논에 물을 대고 있다.
 지자체에서 지원한 급수 차량이 논에 물을 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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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물 걱정 해 본 적이 없는데..."

가장 큰 문제는 이 질긴 가뭄이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강원도는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급한 대로, 급수차량을 운영하고 여기저기 관정을 파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급기야 도내 일부 지역에서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우제를 지내는 곳까지 생겨났다. 강원도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비 소식에 갈급해 있다.

10일 강원도 화천군 서오지리의 한 농가. 급수차량이 서둘러 논에 물을 대고 있다. 논바닥이 쭉쭉 갈라지면서 이제 겨우 한 뼘 정도 자란 모들이 전부 말라죽기 일보 직전이다. 일부는 이미 말라 죽었다. 물이 한 방울도 없었던 논을 보면서 애를 태웠던 농부 백남윤씨는 이제 겨우 논바닥에 물이 차는 걸 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는 "지금까지 물 걱정을 해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논바닥이 갈라질 때까지 논에 물을 대지 못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바짝 마르고 갈라진 논바닥. 일부 모가 죽어 있는 것이 보인다.
 바짝 마르고 갈라진 논바닥. 일부 모가 죽어 있는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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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바짝 마른 개천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는 농부.
 물이 바짝 마른 개천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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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씨가 경작하는 논 옆으로 작은 실개천이 흐르고 있다. 백씨는 매년 그 개천에서 물을 끌어올려 농사를 지어 왔다. 하지만 지금 개천 바닥은 물이 흐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말랐다. 개천 바닥에 잡초만 무성하다. 그로 인해 지금은 당장 급수 차량이 아니면 농사를 짓기 힘들게 됐다. 그런데 언제까지나 급수차량에 의존해 농사를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장 논바닥을 적시긴 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계속 농사를 지어야 할지 걱정이 태산이다. 50여 평가량 되는 작은 논배미 하나를 적시는 데만 해도 급수차량이 3번은 왔다 가야 한다. 길 건너 다른 논배미에는 아직도 물을 대지 못했다. 백씨도 군청의 도움을 받아 논 옆에 관정을 뚫었다. 하지만 그 관정에서도 물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백씨 입에서 "요즘 농사짓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몰라", 하소연이 길게 이어졌다.

가축들도 식수 부족으로 고생하고 있다.
 가축들도 식수 부족으로 고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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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수확량이 심하면 반토막 날 수도..."

화천군의 또 다른 마을, 원천리 가마니골. 가마니골은 국도에서 벗어나 산기슭으로 조금 더 들어가야 나오는 마을 중 하나다. 오지는 아니지만, 요즘 이곳에 사는 주민은 때아닌 오지 생활을 체험하는 중이다. 며칠째 생활용수가 완전히 바닥이 난 상태다. 씻을 물과 먹을 물이 모두 동나고 말았다. 밭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물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 마을에는 상수도가 설치돼 있지 않다. 마을 주민들은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1000톤가량 되는 탱크에 가둬 생활용수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가뭄이 길어지면서 최근에 그 큰 물탱크가 텅텅 비어 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그 바람에 며칠째 수도꼭지에 물이 흐르는 구경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이날 처음 군청에서 생수를 공급받았다. 물탱크에는 급수차량이 오가며 물을 채우는 중이다.

식수가 없어 그동안 생수를 사다 먹었다는 주민들.
 식수가 없어 그동안 생수를 사다 먹었다는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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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부족으로 애를 먹고 있는 건 사람들뿐만이 아니다. 고생스러운 건 가축들도 마찬가지였다. 가마니골 주민들은 "소들이 며칠째 물을 마음껏 먹지 못해 고생"이라고 말했다. 밭에서는 호박잎이 누렇게 말라가고 있다. 애호박은 화천에서 재배되는 대표 작물 중에 하나다. 이제 겨우 열매를 맺기 시작했는데, 비가 오지 않아서 농부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가마니골 이장 오흥복씨는 "봄에 종자를 심고 나서 밭에 물을 한 번도 주지 못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 이장은 "가뭄이 계속되면 밭작물이 정상적으로 열매를 맺기도 힘들고, 심할 경우 수확량이 반 토막이 날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그는 "콩, 들깨는 지금 파종을 해야 할 시기인데 손조차 대지 못하고 있다"며, "아무리 '가뭄 가뭄' 해도 농부들이 물 때문에 겪는 고통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말했다.

검게 타들어가는 호박잎.
 검게 타들어가는 호박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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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에 속수무책, 기우제까지 지내는 사람들

인제군 수내리 양구대교 위. 다리 아래로 소양강이 흐른다. 그런데 물이 가득 차 있어야 할 강이 바닥이 훤히 드러나 있다. 강바닥으로 물이 흐르긴 흐른다. 하지만 강이라기보다는 하천이나 개천으로 불러야 할 정도로 얕은 물줄기가 흐르고 있다. 고기잡이배들은 모두 휴업 상태다. 일부는 강바닥에 얹힌 채, 그대로 잡초에 파묻혀 있다.

올해 가뭄은 유독 지독하다. 40년 만에 겪는 최악의 가뭄이란다. 오죽하면 강줄기까지 말라붙을까? 이런 가뭄이 얼마나 더 오래 지속될 지 알 수 없다. 가뭄 피해는 시간이 갈수록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최악의 가뭄을 맞고 있는 강원도는 피해를 줄이기 위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번 달 들어 가뭄을 예방하는 종합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관계 기관을 총동원하는 등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강원도는 시·군별로 '관정 개발', '관수시설 설치' 등 논과 밭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는 계획이다. 급수 지원에는 양수기는 물론이고, 소방차와 살수차까지 동원되고 있다. 시와 군 단위 지자체에서도 가뭄 피해를 줄이는 데 필요한 일이라면 모든 노력을 다하려고 애쓰고 있는 모습이다. 평창군에서는 지난 5일 군수가 참여한 가운데 "군민의 염원을 담아 간절한 마음으로" 하늘에 기우제를 올렸다.

강원도에는 올해 최근까지 149mm의 비가 내렸다. 이 수치는 평년 강수량의 절반도 안 되는 것이다. 가뭄 피해는 영서 지역보다는 영동 지역이 더 심한 편이다. 속초시의 경우 5월까지 132mm의 비가 내려, 전년 대비 36%밖에 안 되는 강수량을 기록했다. 소양강댐 수위는 역대 최저치에 근접하고 있다. 지금은 '수도권 단수'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가뭄을 피부로 느끼는 일이 쉽지 않다. 가마니골 오 이장의 말마따나, 비가 오지 않아 기우제까지 올려야 하는 그 심정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물이 빠진 강 바닥엔 잡초만 무성하고, 그 위로 일거리를 잃은 고깃배들이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다.
 물이 빠진 강 바닥엔 잡초만 무성하고, 그 위로 일거리를 잃은 고깃배들이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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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손병관 기자



태그:#가뭄, #강원도, #화천, #소양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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