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4일 수원 kt 위즈파크에서 방송 촬영을 하고 있는 윤재인 아나운서. 생생한 화면을 전달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진 = 강윤기의 야구터치

지난 5월 24일 수원 kt 위즈파크에서 방송 촬영을 하고 있는 윤재인 아나운서. 생생한 화면을 전달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진 = 강윤기의 야구터치 ⓒ 강윤기


"성공이 아니라 그냥 문을 하나 연 것 같은 느낌이더라고. 어쩌면 우린 성공과 실패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 다가오는 문만 열어가면서 사는 게 아닌가 싶어." - 미생 김 대리

지난 2014년, 대한민국은 가히 '미생 신드롬'을 앓으며 한해를 마무리했다. 젊은이들이 느끼는 외로움, 힘들고 어려워도 버텨야만 하는 세상임을 알게 해준 우리의 이야기였다.

미생 김 대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 취업 그 자체를 목표로 삼지 않고 더 먼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 '3년차 직장인' 윤재인(28) KBSN 아나운서이다. 그녀를 지난 5월 24일, 6월 6일에 만나 인터뷰했다.

"보통 직장인들처럼 미래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커요. 특히 우리나라에서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라는 직업은 역사가 짧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길을 개척해야 하죠."

기자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다보니 대학생들에게 있어 선망의 직업이다"라는 질문에 대한 그녀의 확고한 대답이었다.

윤재인 아나운서는 스포츠 방송계에서 최고의 아나운서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유창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외국인 선수와의 인터뷰도 편하게 진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여자 아나운서 '얼굴'만 보지 인터뷰에 어떤 철학이 있고, 준비를 어떻게 하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그렇기에 윤재인이 그러한 편견과 싸우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서울대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와서 발견한 '적성'

윤재인이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겨울 가족회의가 열렸다. 똑똑한 딸을 위해 아버지는 본인이 '기러기 아빠' 생활을 감내하면서 가족들을 캐나다로 보내기 위해 준비했다.

딸에게 편견없이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며 보다 큰 세상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준비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부인과 딸 그리고 어린 아들을 보낸 아버지 윤씨는 캐나다와 한국을 오가며 생활했다.

"비록 타지에 있었지만 엄마가 만들어준 한국 음식을 먹으면서 동생과 함께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외롭지 않게 잘 지낼 수 있었어요. 성격이 워낙 활발해서 캐나다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고 동아리 활동도 많이 하면서 재미있게 잘 지냈죠.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을 많이 사귀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었어요."

당시를 회상하며 윤재인은 말했다. 아버지의 바람대로 어린 윤재인은 큰 세상을 경험하며 다양한 동아리 활동과 치어리더 활동을 통해 세상을 배워 나갔다. 특히 치어리더 활동을 통해서 배운 단체 생활의 규율의 중요성을 배웠던 부분이 지금의 윤재인 아나운서를 있게 했다.

캐나다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지자 어느덧 무력감에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무난하게 학교를 졸업한다면 '엄친딸'이 될 수 있는 의대나 치대 진학의 길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알 수 없는 답답함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단지 수학, 과학을 잘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의대에 진학하여 의사가 되는 것이 맞는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남들이 만들어놓은 길을 따라가다 뭔가 아니다 싶어 방황을 하면 늦겠다고 생각한 윤재인은 다양한 경험과 삶의 활력소를 얻고자 서울대학교 교환학생을 지원했다.

언제나 선택이란 둘 중의 하나이듯. 서울의 달은 그녀에게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 우연찮게 하게 된 리포터 생활이 그녀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 것이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제 적성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졸업을 하자마자 한국에 돌아와 아나운서 시험을 준비했죠."

그녀의 아버지 윤씨는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기자에게 말했다.

"흔히 방송일은 상처를 많이 받는 직업이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딸이 진로를 결정할 때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확신에 찬 딸의 눈빛을 보고 아버지로서 믿고 응원하기로 했습니다."

'딸 바보' 아빠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이런 에너지가 나올 수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지독하고 '절박'하게 그녀는 입사 준비에 매달렸다. 그때 심정이 어땠냐고 묻자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모든 아나운서 지망생들이 그러하듯 정말 간절했어요. 아나운서 시험은 자주 열리지 않거든요. 저 역시도 공서영 아나운서가 타사로 옮겨가면서 마침 KBSN에 빈자리가 생겨 시험을 볼 수 있었어요. 매년 1~2명밖에 뽑지 않는 시험이라 정말 열심히 시험을 치렀어요. 

어떤 옷을 입고 갈지, 어떤 헤어스타일을 하고 갈지, 어떤 목소리로 어떻게 말을 할지 철저하게 준비하고 시험을 치렀습니다. 장기자랑으로 노래도 불렀던 걸로 기억해요. 그 당시 나름 깜찍함을 어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별빛 달빛'(그룹 시크릿) 노래를 불렀던 것 같은데…… 회사에 자료가 남아있지 않길 기도해 봅니다."

취업 이후 시작된 '좌충우돌 아나운서 생활'

KBSN의 여자 아나운서들의 훈련 방식은 독특하다. 프로 경기에 투입되기 전에 아마추어 경기들을 오랜 시간 경험하며 실력을 쌓는다. 2012년 7월에 입사한 윤재인도 초등부 축구, 초등부 씨름, 아마추어 볼링, 외국인 씨름 등에 투입되며 전국을 내 집 드나들 듯 오가며 생활했다.

"아마추어 무대에서 다양한 선수들을 만나보고 이런 저런 실수도 겪어보며 자연스럽게 인터뷰 스킬을 연마했어요.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은 외국인 씨름 대회였는데 2m20cm 선수를 인터뷰 하려고 하다 보니 제 키가 작아서 선수는 의자에 앉고 저는 서서 인터뷰 하는 일화도 있었죠(웃음)."

아마추어 무대에서 내공을 쌓은 그녀는 입사 1년 후 꿈에 그리던 프로야구의 현장에 나서게 된다.

"많은 준비 끝에 현장에 나오니 큰 실수를 한 적은 없었는데 여러 가지 작은 해프닝들은 있었어요. 귀에 꼽은 인이어가 빠지거나 경기장에 불이 꺼지는 일들이 있어요. 그냥 아무 일도 없는 척 자연스럽게 행동했어요."

그녀는 더불어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로 박병호(넥센)를 꼽았다.

"지난 시즌 넥센 박병호 선수가 한 경기 홈런 4개를 쳤던 날(2014년 9월 4일)의 인터뷰가 기억이 나네요. 스포츠 아나운서들은 인터뷰 질문지를 모두 직접 작성하거든요. 그래서 경기 내내 그날의 수훈선수가 될 만한 선수들의 인터뷰를 바쁘게 준비하는데, 그날 박병호 선수가 1회, 4회 이미 멀티홈런을 만들었기 때문에 박병호 선수가 수훈선수가 될 거라고 예상하고 인터뷰 준비를 하고 있었죠.

그런데 7회 또 홈런을 만들어내더라고요. 한 경기에 홈런을 세 개나 만들었으니 질문지 내용이 아예 달라져야겠죠. 그래서 질문들을 다시 만들고 있는데 8회 또 홈런을 치더라고요. 곧 그라운드로 내려가 생방송 스탠바이를 해야 하는데 홈런을 네 개째 만들어내니 온갖 기록들이 쏟아지고 정신이 없더라고요.

그날 질문지를 고치고 또 고쳐서 인터뷰를 하러 뛰어갔던 기억이 나네요. 비록 정신없이 인터뷰 준비를 하긴 했지만 박병호 선수의 4홈런이 쏘아 올려진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했다는 것이 영광스러웠고, 그 주인공인 박병호 선수를 직접 인터뷰 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뻤습니다."

그녀에게 있어 야구는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했다. 대뜸 '기자가 야구란 뭘까요?'라고 묻자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내게 말했다.

"음...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인 것 같아요. 투수의 실투 하나, 타자의 홈런 한 방이 경기를 뒤집어 버리기도 하죠. 언제나 예기치 못한 상황들이 가득한 우리의 인생과 참 많이 닮아 있어요. 대타로 등장한 선수가 홈런을 치는 모습, 오랜 부상을 딛고 일어난 선수가 화려한 부활에 성공하는 모습 등을 보며 우리의 삶에도 저런 날이 올 수 있다는 희망을 얻기도 하고요. 신인 투수의 첫 승, 신인 타자의 첫 안타를 보며 우리의 풋풋했던 새내기 시절을 떠올리기도 하죠. 그래서 매일 야구를 보며 제 인생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스프링캠프 취재중인 윤재인은 외국인 선수와 통역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사진 제공 = KBSN

스프링캠프 취재중인 윤재인은 외국인 선수와 통역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사진 제공 = KBSN ⓒ KBSN


윤재인에게 2015년은 새해부터 특별했다. 인생에 있어 첫 스프링캠프 출장이 결정난 것이다.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취재를 위해 KBSN PD 선배가 "(윤)재인아 2주 후에 미국 갈 준비해라"라고 연락을 받자 신나서 펄쩍펄쩍 뛰는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 윤씨는 딸을 누구보다도 믿어주는 인생의 영원한 아군이 되기로 결심했다.

'KBSN 긍정의 아이콘' 답게 윤재인은 애리조나에 있던 한 달 내내 찡그리지 않은 표정으로 취재에 열성이었다. 쉽지 않은 일정이었지만 쉬는 날도 스스로 반납한 채 한 달 내내 오전 6시에 일어나 밤늦게까지 '땀' 흘리는 선수들을 취재하기 위해 똑같은 양의 '땀'을 흘렸다. 야구 감독들은 스프링 캠프를 한 시즌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준비 간으로 본다.

더운 날씨에 화장은 지워지기 일쑤였지만 본인 스스로 예쁜 모습을 보이기보다 감독, 코칭스태프, 선수들의 모습을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많은 준비를 했다.

"첫 전지훈련 취재였기 때문에 어디부터 준비를 해야 할지 몰라 그냥 다 준비했어요. 감독님들께 드리고 싶은 질문들도 선발진, 불펜, 타격, 수비, 신인, 올시즌 목표 등으로 나눠 구체적으로 준비했고요. 선수들에게 드릴 질문들도 선수 개개인마다 10개 정도씩 추려 준비했어요. FA 선수들을 따로 분류해서 각 팀 분위기나 첫 시즌에 대한 각오를 들어보기도 했습니다."

현장에서의 리포팅과 기록지 작성을 통해 수훈선수를 선정하면서 질문지를 작성하는 그녀는 '일 잘하는 아나운서'로 손꼽히고 있다. 윤재인은 "선배 아나운서들의 훌륭한 가르침 덕분이다"며 겸손해 했다. 특히 최희 아나운서가 가장 큰 가르침을 주었다면서 선배의 조언 덕분에 조금이나마 미디어의 눈이 아닌 야구인의 눈으로 바라 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어 나갔다.

 KBSN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아나운서들의 길을 열어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사진제공= KBSN

KBSN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아나운서들의 길을 열어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사진제공= KBSN ⓒ KBSN


"정말 취업이 전부가 아닌 걸 느꼈어요. 프리랜서로 일하며 다양한 종류의 방송을 하는 선배들도 있고 프리랜서로 스포츠 방송 쪽에만 집중하는 선배들도 있고요. 저는 지금 KBSN 소속으로 스포츠를 포함해 건강프로그램 등 각종 방송을 하고 있어요. 어떤 길이 더 나은 길이고 어떤 길이 더 오래 방송을 할 수 있는 길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여자 아나운서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과 기대치도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는 게 사실이고요. 여자 아나운서들끼리 모이면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해요.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야 우리의 활동 범위를 넓힐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죠.

그래서 중계에 도전하기도 하고 (윤재인은 에어로빅체조와 탁구 중계 경험이 있다), 기사를 써보기도 하고 온라인 영상을 직접 제작해보기도 하면서 울타리를 넘어보려 노력하고 있어요. 몇 년 전 처음 여자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들고 그라운드 위에 서며 '금녀의 지역'에 발을 들였 듯 불가능해 보이는 곳에서 우리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날도 올 거라 믿어요"

벌써부터 대학가는 '여름방학'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스펙 쌓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스펙 쌓기에 무수히 많은 돈을 들이고 취업전쟁을 뚫고 입사 한 훌륭한 인재가 복사기 앞에서 주구장창 복사만 하다  몇 년 만에 이직한다는 것은 회사에도 큰 타격이다.

이에 KBSN은 현재 여자 아나운서들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송에 활용하여 자체적으로 길을 열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녀에게 앞으로의 꿈을 물었다. 윤재인은 밝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는 평생 방송 쪽에서 일하고 싶어요. KBSN 최종면접 때 본부장님께서 'KBSN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뭔가요?'라고 질문을 했었는데 저는 '스포츠 국장이 되는 게 꿈입니다'고 했었거든요. 무슨 배짱으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선배님들이 그때 저를 엄청 인상 깊게 봤다고 하더라고요. 

그만큼 오래오래 일을 하고 싶어요.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사람의 직업이 평균적으로 4번인가 바뀐다고 하더라고요. 일단 제 인생 첫 직업은 아나운서인데 아나운서 일을 끝낸 후에도 방송 관련 직종에서 일하고 싶어요. 특히 젊은 시기에 일에 집중하고 싶어서 결혼은 최대한 늦게 할 생각이에요. 근데 주변 친구들이 하나 둘 시집가는 걸 보니까 조금 걱정되긴 하네요. (웃음)"

그녀는 더 좋은 방송인이 되고자 노력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의 가슴속에 이 단어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의 자부심이다."

○ 편집ㅣ박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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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인 KBSN 한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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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KU, 스포츠 야구 전문기자 , 강윤기의 야구 터치 운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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