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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 '자발성·창의성·공공성·지역성'이라는 기본정신을 통해 학교혁신 실천이라는 목표를 갖고 출발한 혁신학교는 강원도에서는 '행복더하기학교'라는 이름으로 현재 54개교가 운영되고 있다. <강원희망신문>에서는 혁신학교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사례 등을 제공하고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연중특별기획으로 '혁신학교에서 희망찾기'를 연재한다. '특별좌담회'를 시작으로, 학교현장 방문 취재 등 총 9회 연재할 계획이다. <오마이뉴스>는 <강원희망신문>의 동의를 얻어 이 기사를 함께 게재한다. [편집자말]
첫 눈에 들어온 서곡초 풍경. 한 무리의 아이들이 학교 뒷마당에 조성돼 있는 텃밭에 모여 있다. 아이들이 그곳에서 재배되고 있는 식물들을 들여다보며, 무언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멀리서 보면, 아이들이 그저 노는 시간에 학교 뒷마당에 모여 잡담을 나누고 있는 것처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도시에 있는 학교에서는 조금 낯설 수도 있는 풍경이다. 그런데 이 풍경은 현재 원주시 서곡초등학교에서 시행되고 있는 정규 수업 중에 하나다. 서곡초에서는 수업이 반드시 학교 교실 안에서만 이루어지라는 법이 없다. 수업은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장소에서 실시된다. 텃밭에서 진행되는 수업도 그런 수업들 중에 하나다.

텃밭 수업은 단순히 식물이 자라는 과정을 배우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 텃밭은 그보다 더 큰 쓰임새가 있다. 150여 평 남짓 되는 학교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은 감자, 고구마, 땅콩, 토마토, 옥수수, 상추 등이다. 아이들은 때가 되면, 자신들이 가꾼 농작물들을 직접 맛볼 기회를 갖는다.

아이들은 또 그 시간을 통해서 친구들과 함께 일해서 얻은 결과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게 된다. 텃밭 수업은 아이들이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인상적인 교육 방식이다. 서곡초는 강원도형 혁신학교인 '행복더하기학교'다. 지난 2012년에 혁신학교로 지정된 후, 올해로 4년째를 맞고 있다.

학교 텃밭에 채소 모종을 심고 있는 서곡초 아이들.
 학교 텃밭에 채소 모종을 심고 있는 서곡초 아이들.
ⓒ 서곡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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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과 하나 되는 '마을학교'

서곡초에서 실시하는 수업은 마을 주변 둘레길에서도 계속된다. 아이들은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마을을 순례하는 '공부'에 나선다. 서곡초는 도심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어, 학교 주변 환경이 시골학교와 비슷한 면이 있다. 주변에 밭과 논이 있고, 산과 들이 있다. 자연을 관찰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환경도 없다.

서곡초는 '마을학교'를 지향한다. 마을학교라는 명칭에는 마을과 학교가 협력해 아이들을 함께 교육하자는 취지가 담겨 있다. 서곡초가 그 취지에 맞는 학교가 되려면, 아이들 역시 학교 근처 마을들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결국 '마을 둘레길 걷기'는 마을학교에서 실시하는 수업 중에 하나가 되는 셈이다.

서곡초는 또 계절별로 일주일가량, 조금씩 특색이 다른 교육을 실시한다. 봄에는 마을을 산책하듯이 걸어 다니며 생태체험을 주로 하고, 여름에는 텃밭 가꾸기와 수영 등을 주로 배운다. 가을에는 아이들이 만든 작품을 일주일 동안 전시하는 '문화예술학교'를 운영한다. 그리고 겨울에는 겨울철 놀이 활동으로 스키 등을 배운다.

행복더하기학교에서 실시하는 교육은 모두 자율적이고 창의적으로 진행된다. 학교 텃밭이나 계절학교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교육은 교실 안에서도 똑같이 실시된다. 아이들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학교생활을 이어간다. 이쯤 되면, 이 학교가 어떤 목적으로 운영되는 학교인지 헷갈린다.

'행복더하기학교'의 고민

세간에 혁신학교를 두고 '공부는 안 시키고 놀게만 하는 학교'라는 오해가 있다. 그건 혁신학교를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세상에 학습을 소홀히 하는 학교는 없다. 서곡초에 다니는 아이들은 80분 수업을 하고 30분 동안 쉬는 시간을 갖는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의 놀 권리를 충분히 보장한다. 그런데 수업 시간이 너무 길어 아이들의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수업은 상당히 밀도 있게 진행된다. 수업은 대부분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형태로 짜여 있다. 아이들은 '모듬'별로 모여서, 주어진 과제를 함께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교사들은 아이들이 과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을 돕는다. 그 시간에 교사들은 또 다채로운 수업 방식을 동원해, 아이들이 흥미를 잃지 않도록 애쓴다.

학부모들 중에는 또 행복더하기학교가 아이들의 성적을 너무 등한시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굳이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서곡초에 서도 일반 학교와 마찬가지로 기초·기본 학습은 철저하게 실시한다. 계절학교에서 가르치는 것 또한, 교과서에 있는 내용을 심화한 것이 대부분이다.

서곡초에서도 공교육은 필수다. 행복더하기학교의 고민은 그런 공교육을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느냐 하는 데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공부도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서곡초는 그와 같은 생각을 실천에 옮기려고 노력하는 학교라고 할 수 있다.

서곡초 마을산책, 학교 근처 백운산 계곡에 발을 담그고 있는 아이들.
 서곡초 마을산책, 학교 근처 백운산 계곡에 발을 담그고 있는 아이들.
ⓒ 서곡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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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인 '교사회의' 운영

서곡초가 이와 같은 방식의 교육을 실시하게 된 것은 4년 전 '행복더하기학교'로 지정이 된 이후다. 서곡초는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교사들은 서곡초를 새로운 학교로 만드는 데 창의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기존에 실시하던 교육 방식으로는 '행복더하기학교'라는 이름에 걸맞은 학교를 만드는 일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먼저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교사회의'를 구성했다. 서곡초가 행복더하기학교로 자리를 잡아가는 데는 교사회의가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교사회의에서는 모든 교사가 동등한 자격을 가지고 참여한다. 교장도 교사들과 똑같은 권한을 행사한다. 교장이라고 해서 더 큰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다.

교사회의에서 결정한 사항은 바로 실행에 옮겨진다. 교사들은 권한이 커진 만큼 책임도 커졌다. 교사들은 창의적인 수업을 위해, 기존과는 다른 수업 방식을 채택해야만 했다. 새로운 수업 방식에는 자율과 창의가 강조됐다. 그 결과 아이들이 수업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교사들은 그런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교육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 이후로 교사들은 더욱더 바빠졌다. 기존에 하던 업무는 크게 줄어들지 않은 상태에서,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수업 방식을 고안해야 하는 일들이 새로 추가됐기 때문이다. 그 대신 보람은 컸다. 이전과 다른 교육을 실시하면서, 아이들이 서서히 변화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바람을 타고, 학생 수가 급격히 늘었다. 4년 전, 행복더하기 학교로 지정됐을 때만 해도 80여 명에 불과했던 학생 수가 올해 150여 명으로 불어났다. 학급 수가 늘어나는 바람에 서곡초는 최근에 학교 건물을 증축했다. 그 덕에 교사들은 이제 '학생 수가 더 늘어나면 어떻게 하나'하는 고민 아닌 고민에 빠져 있다.

양수리로 자전거여행을 다녀온 서곡초 아이들.
 양수리로 자전거여행을 다녀온 서곡초 아이들.
ⓒ 서곡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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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학교, 행복한 사회

서곡초와 같은 행복더하기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행복'이라는 것이 그렇게 먼 곳에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불행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 학교 현장에서 실시되는 교육이 아이들의 행복과는 먼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성적 지상주의'가 낳은 결과는 참담하다.

각종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행복지수와 삶의 만족도는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이런 일이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 불행한 건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불행한데, 그 아이들을 가르치고 보살피는 어른들이 행복할 리가 없다.

이에 정부는 지난 5월,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행복지수를 2019년까지 OECD 국가 평균 수준으로 올리겠다는 계획까지 발표했다. 거기에는 아이들의 놀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그런데 이런 계획이 실효를 거두려면 무엇보다 학교 교육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행복더하기학교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아이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서곡초와 같은 학교들이 더 많이 생겨나야 한다. 서곡초는 우리나라 아이들이 모두 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지속해온 것과는 다른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학교다.

올해 3월 서곡초에 새로 부임한 김종성 교장은 행복더하기학교를 "아주 많은 걸 원하는 게 아니라, 행복을 아주 조금이라도 더 더하는 학교"로 풀이했다. 그리고 "삶이 추구하는 가장 큰 목표는 행복"이라며,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하면서) 조금 더 행복을 느끼고 배울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교장은 궁극적으로는 "아이들이 행복해야 선생님들이 행복하고, 또 선생님들이 행복해야 아이들이 행복하다"는 생각이다. 그 말은 곧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일은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 서곡초와 같은 학교에서 우리 사회가 행복한 사회로 가는 비밀의 문을 찾을 수 있다.

"아이가 학교에 가는 걸 즐거워한다"
[학부모 인터뷰] 서곡초에 두 아이를 보내고 있는 강상헌씨
 
강상헌씨
 강상헌씨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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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씨는 4명의 자녀 중 2명의 아이를 서곡초에 보내고 있다. 아이들이 각각 6학년과 3학년에 다니고 있다. 학부모로서 그는 서곡초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에 속한다. 그를 만나, '행복더하기학교'와 '아이들 교육'을 주제로 짧은 대화를 나눴다. 강씨는 원주시에서 대안학교인 '길배움터'를 운영하고 있다. 길배움터는 길 위에서 배우는 '여행학교'를 지향한다.

- 서곡초에 다닌 이후, 아이들이 달라진 점이 있나?
"6학년인 첫째 아이는 원래 마음을 열고 친구를 사귀거나 하는 걸 어려워하는 성격이다. 2학년 때, 서곡초로 처음 전학을 왔을 때는 학교 가는 걸 싫어했다. 그런데 3학년 들어, 서곡초가 혁신학교로 지정된 후 재미있는 수업들이 늘어나면서 아이가 학교에 가는 걸 덜 부담스러워했다. 아이한테는 무척 잘된 일이다."

- 아이가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지금도 아이가 수학 시간 같은 걸 싫어하는 건 있지만, 전반적으로 교육 과정에 즐거움이 늘어난 걸 볼 수 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이런 것들을 없앤 것도 아이가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됐다. 통지표가 서술형으로 작성돼 있고, 학교가 아이들을 성적과 같은 것으로 등급을 매기지 않는 것도 좋은 점이다."

- 서곡초 학부모로서 다른 학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혁신학교를 미심쩍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학부모들이 있을 수 있다. 교육 과정을 놓고 학교와 학부모들이 서로 눈높이를 맞춰가는 시도가 필요하다. 학교에서 학부모교육 같은 것을 실시하는데 학부모들의 참여율이 낮은 편이다. 학교 문제는 학교와 학부모들이 함께 고민해서 풀어나가야 한다."

- 마지막으로 학교와 교사들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서곡초가 혁신학교로 지정된 지 4년째이다. 강원도교육청으로부터 예산 지원을 받는 게 올해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혁신학교가 4년으로 끝나는 건 너무 실험적이다. 혁신학교가 우리 교육 환경에서 무언가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10년 이상은 지속돼야 한다. 서곡초가 혁신학교로서 연속적이고 지속적인 교육 환경을 만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태그:#서곡초, #행복더하기학교, #혁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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