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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 혼자 걸어야 하는 좁은 오솔길
▲ 오솔길 혼자 걸어야 하는 좁은 오솔길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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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바쁜 한 주를 보내고 딸과 가까운 숲으로 산책을 갔다. 산과 숲을 좋아하지만 몸의 관절이 그다지 안 좋은 나는 가파르게 올라가는 산행을 못한다. 그러나 몇 년 전에 산 허리둘레에 나 같은 사람이 트레킹하기 좋은 숲길이 만들어졌다. 이 숲은 내가 작품을 제작하는 묵향뜨락에서 차로 2, 3분만 달려가면 입구가 나온다.

나는 최근 음악선교사를 하시던 고향분이 선교지역이었던 과테말라에서 직접 생두로 가져와 당일 날 로스팅해서 보낸 커피를 마시고 있다. 너무 순하고 향기가 좋아 하루 한 두잔씩 먹고 있다.

원래 커피를 먹으면 속이 쓰려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 커피는 속이 쓰리지 않고 부드럽게 넘어가서 서서히 중독돼 가고 있다. 그동안  몰랐던 커피의 향기와 품종의 세상에 대해서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사과의 맛이 홍옥과 부사 등등으로 갈리는 것처럼 커피의 원두 또한 그렇게 나뉘어진다는 것은 어쩌면 상식이었을 텐데... 내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왜냐하면 나는 커피라고는 원두, 아메리카노, 믹스, 에스프레소, 카푸치노 이렇게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커피는 무엇보다 향이 너무 좋아 큰 딸아이를 내 묵향뜨락으로 유혹했다.

우리 딸들은 대여섯살부터 중학교 때까지 유치원이나 학교를 마치면 항상 나를 따라 다녔다. 30대 시절, 나는 묵향뜨락에서 종일 살다시피했다. 아이들은 그때 경험으로 서실이라면 학을 떼었는지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서실에 오지 않기 시작했다. 지금은 내게 급하게 볼일이 있을 때 외에는 별로 출입하지 않지만, 나는 아이에게 좋은 차와 좋은 숲을 같이 나누고 싶다고 유혹했다.

아이와 우선 숲을 거닐었다. 마음의 숲이라고 명명한 그 숲에는 외국영화에 나오는 옛날 전화부스같은 조그만 숲속의 도서관도 있고, 나란히 정겹게 손을 잡고 오손도손 걸을 수 있는 조금은 넓은 길과, 혼자서서 오래도록 걸어야 지나갈 수밖에 없는 오솔길들이 공존한다.

숲 길 걷다 만난 작은 성당

숲 속 작은 도서관 예쁜 작은 도서관
▲ 숲 속 작은 도서관 예쁜 작은 도서관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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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고 걸어가는 길 둘이 걷기 좋은 숲 길
▲ 손잡고 걸어가는 길 둘이 걷기 좋은 숲 길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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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숲의 길을 한참 걷다 보면 언제 지었는지 모르지만 한옥으로 된 조그만 성당이 나온다. 그곳에 들어가서 함께 해서 행복하고 고마운  감사의 기도를 마음속에 올리고 물 한 컵 마실 수 있다. 때로는 어지러운 마음의 먼지를 가라앉기 위해 간절하고 절절한 기도를 하기도 한다.

작은 성당 숲길을 지나 수동에 위치한 작은 엣 성공회 성당에서 기도를 하고
돌아온다
▲ 작은 성당 숲길을 지나 수동에 위치한 작은 엣 성공회 성당에서 기도를 하고 돌아온다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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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히 숲속의 벤치에 앉아 딸아이의 생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아이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엄마! 이번 생일에는 내가 받고 싶은 것을 해주면 좋겠어!"
"그게 뭔데?"

나는 아이가 평소에 갖고 싶은 게 있는데 아마도 경비가 부족해서 그런가 싶었다. 그런데 의외로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글귀를 조그만 작품으로 써달라고 한다. 캘리그라피를 곁들여서... 작품의 제목은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라는 소설가 공지영의 글 중의 하나였다.

딸이 원한 글의 제목-공지영 글중에서 딸이 원한 글 전체를 쓰기전에 우선 제목을 우선 적어보았다
▲ 딸이 원한 글의 제목-공지영 글중에서 딸이 원한 글 전체를 쓰기전에 우선 제목을 우선 적어보았다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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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속으로 마음이 움찔거렸다. 아이는 최근 인생의 아주 큰 고비를 넘었다. 나는 대신 아파줄 수도 없고 기도하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지만 내 마음도 몹시 아팠다. 시간이 지나면서 딸아이가 일상을 변함 없이 바지런하게 영위하고 일도 늘려가고 새롭게 중국어공부도 하기에 이제 극복했는 줄 알았다.

그러나 딸이 생일선물을 말하는 순간, 갑자기 화살같은 빛 하나가 내 가슴을 찔러 파고 드는 듯이 가슴이 저며왔다. '아! 내 딸이 많이 응원이 필요하구나. 그런데도 내색 않고 씩씩한척, 안간힘을 쓰면서  내 앞에서 웃고 정말 씩씩해지려고 노력하는구나.'

아이와 손을 잡고 산책을 마치고 묵향뜨락으로 와서 나는 정성껏 차를 내렸다. 아이가 향기와 차맛에 감탄했는데 나는 정말 차 맛이 좋아서 감탄한 줄 알았다. 아이가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말했다.

"엄마! 내가 나이 든 엄마가 직접 내려주는 커피를 먹게 되는 줄은 꿈에도 몰랐어!"

하긴... 초등학교 시절 아이는 못 듣는 엄마를 위해 항상 애어른이 되어 세상과 내 사이의 소통의 역할을 했다. 중고등학교 때는 환경 탓으로 떨어져 살아야 했다. 또 내가 사회생활을 하며 계속 힘든 상황을 겪을 땐 아이도 덩달아 긴장을 했던 터였다. 그리고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옛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일이라 커피는 주는 대로 먹었던 터였다.

그러던 내가 커피품종을 설명해주고 직접 커피를 갈아서 내려주는 게 아이에게는 어쩌면 신선한 문화적 충격이었으리라. 항상 앞에서 자기가 안내하여야 세상의 문화를 이해하던 엄마였는데... 갑자기 엄마가 '엄마다움' '어른다움'으로 다가와서 뿌듯했던 모양이었다. 커피의 향기와 맛은 그 다음 순서였고….

주말... 나는 가을의 전시회와 공공기관에 내야 할 대형작품을 만드는 틈틈이 아이에게 줄 생일선물을 만들어 보았다. 종이 염색도 해가면서... 일단 제목자체가 너무 마음이 든다. 이 제목은 세상의 모든 엄마가 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고... 또는 세상의 모든 응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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