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3일 낮 일본 나라 현 남쪽 요시노에 다녀왔습니다. 이곳에서는 1300년 전부터 닥나무를 재배하여 종이를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은 펄프로 만든 종이가 많이 쓰이기 때문에 옛날 방식으로 만든 종이가 거의 사라져 버렸거나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왼쪽이 한지를 만드는 닥나무이고, 오른쪽이 종이돈을 만드는 데 재료로 사용되는 삼지닥나무입니다.
 왼쪽이 한지를 만드는 닥나무이고, 오른쪽이 종이돈을 만드는 데 재료로 사용되는 삼지닥나무입니다.
ⓒ 박현국

관련사진보기


요시노 마을 앞에는 요시노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 풍부한 물을 이용하여 마을 사람들은 종이를 만들었습니다. 한 때 요시노 강변 50km에서 옛날 종이를 만드는 곳이 300곳을 넘었던 적도 있습니다. 요시노 구즈(國栖) 마을 사람 100세대 가운데 80세대에서 종이를 만들었습니다. 이곳에서 만든 요시노 종이는 나라 현 사람들에게는 생활필수품이었습니다.

지금 요시노 구즈 마을에서 종이를 만드는 곳은 두 곳밖에 없습니다. 그 가운데 한 곳인 우에(植貞南)씨 집을 찾았습니다. 우에씨는 현재 6대째 옛날 종이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 마을을 찾는 사람들에게 종이 만들기 체험 공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에씨는 몇 년 전 한해 옛날 종이 매출액이 2500만 엔에 이른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4분의 1로 떨어졌습니다. 우에씨는 지금도 밭 1500평에 닥나무를 키워서 종이를 만들고 있습니다. 자신의 밭에서 나온 닥나무로 만든 재료는 두 달 정도 사용합니다. 나머지는 일본 시코쿠에서 생산된 닥나무 껍질을 구입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옛날 종이는 닥나무로 만듭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지(韓紙)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와시(和紙)라고 합니다. 닥나무는 뽕나무과로 뽕나무 잎사귀와 비슷합니다. 해마다 1월 닥나무 밑동을 잘라서 줄기의 껍질을 큰 솥에 넣고 삶습니다. 껍질을 벗겨서 다시 겉껍질을 벗겨냅니다. 그리고 흰 속껍질을 강물에 담가두었다가 두드려서 부드럽게 만든 다음 다시 풀과 섞어서 종이를 만듭니다.

종이를 만드는 과정은 복잡하고 여러 가지 재료를 사용합니다. 펄프로 만드는 종이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이 가능하지만 옛날 종이는 거의 대부분 손으로 만듭니다. 따라서 바쁘고 종이를 많이 사용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옛날 종이는 비효율적이고, 비능률적인지도 모릅니다.

       일본 와시로 만든 여러 가지 꾸미개와 명함 종이입니다. 종이로 만든 꾸미개는 부드럽고 은은한 맛을 줍니다. 종이 색깔은 돌이나 편백, 삼나무 따위 껍질에서 얻은 염료를 사용해서 물을 들입니다.
 일본 와시로 만든 여러 가지 꾸미개와 명함 종이입니다. 종이로 만든 꾸미개는 부드럽고 은은한 맛을 줍니다. 종이 색깔은 돌이나 편백, 삼나무 따위 껍질에서 얻은 염료를 사용해서 물을 들입니다.
ⓒ 박현국

관련사진보기


요시노에서 만든 옛날 종이는 일본 정종 술병 상표에 사용하거나 명함, 엽서, 표구나 족자 따위를 만드는 데 지금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고 재료가 많이 드는 옛날 종이가 언제까지 남아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옛날 종이를 만드는 일이 복잡하고, 재료가 많이 들기 때문에 시간이 걸립니다. 그렇지만 옛날 종이를 만드는 과정이나 재료를 지금도 사용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다름 아닌 지폐를 만드는 곳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지폐는 질겨야 하고, 구김이 없어야 하고 가능하면 빳빳한 상태로 남아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상태를 유지하는 종이는 펄프로 공장에서 만드는 종이가 아니고 비능률적으로 보이는 옛날 종이를 만드는 방식과 재료입니다. 특히 삼지닥나무 껍질에서 얻은 속껍질은 질기고 빳빳하기 때문에 지폐를 만드는 데 제격입니다. 오래전부터 사용되어온 전통기술이 현대 지폐 종이로 새로이 태어난 것입니다.

종이는 닥나무(학명, Broussonetia kazinoki Siebold)로 만듭니다. 그런데 닥나무에는 꾸지나무(학명, Broussonetia papyrifera)와 애기닥나무(학명, Broussonetia kazinoki var. humilis Uyeki) 따위가 있습니다. 이 세 나무는 각각 다른 이름을 지니고 있지만 옛날 종이를 만드는 것은 같습니다. 다만 조금씩 성질이나 쓰임새가 다르기 때문에 그동안 꾸준히 연구가 진행되어 왔습니다.

전북대학교 김무열 교수님의 현장 방문 조사와 연구에 의하면 일본에 있는 닥나무 자체가 한반도에서 일본에 건너가 자리 잡은 것이라는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한반도에는 꾸지나무, 애기닥나무, 닥나무 세 가지가 모두 자라고 있습니다.

꾸지나무는 큰키나무로 한반도 남부지방, 특히 전라북도 해안지방에서 많이 자랍니다. 그렇지만 종이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속껍질의 질이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애기닥나무는 비록 종이를 만드는 속껍질 품질이 좋지만 나무줄기가 가늘어서 생산량이 적습니다.

       애기닥나무의 위쪽과 아래쪽입니다. 애기닥나무는 속껍질이 품질이 좋지만 생산량이 적어서 실용성이 거의 없습니다.
 애기닥나무의 위쪽과 아래쪽입니다. 애기닥나무는 속껍질이 품질이 좋지만 생산량이 적어서 실용성이 거의 없습니다.
ⓒ 박현국

관련사진보기


김무열 교수님은 이 꾸지나무와 애기닥나무의 교잡종이 닥나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에서는 오래전부터 꾸지나무와 애기닥나무가 있었고, 세 나무의 형태적 특징으로 보아서도 닥나무는 꾸지나무와 애기닥나무의 중간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에서는 오래전부터 닥나무로 질 좋은 종이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것은 중국에서도 인정한 사실입니다. 지금도 남아있는 중국 베이징 자금성 벽에 바른 종이는 대부분 한반도에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한반도에서 살았던 우리 선조들이 닥나무 껍질을 활용하여 기술적,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이루어낸 것입니다. 종이의 원 생산지가 중국이라고 하는 것은 닥나무로 만든 종이가 아니고 풀이나 옥수수 껍질을 활용하여 만든 것입니다.

우리는 닥나무 종이의 종주국입니다. 옛날 종이를 만드는 방법과 관련 재료를 활용하여 체계적으로 보존, 연구, 전승, 발전을 위해서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품질 좋은 종이를 만들어 인정받아온 선조들을 위하는 길이고, 후손된 우리의 당연한 도리입니다. 
         
       종이를 만들기 위해서 벗겨놓은 닥나무 껍질과 닥나무 껍질을 물에 불려서 젓고 있는 모습입니다.
 종이를 만들기 위해서 벗겨놓은 닥나무 껍질과 닥나무 껍질을 물에 불려서 젓고 있는 모습입니다.
ⓒ 박현국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박현국 기자는 일본 류코쿠(Ryukoku, 龍谷)대학 국제학부에서 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참고 문헌> 김무열 외 1, 한국산 닥나무속(Broussonetia, 뽕나무과)의 분류학적 연구, 한국식물분류학회, 식물분류학회지, 2009년, 정재민 외 4, 충남 내륙지역 민속식물의 전통지식, 한국자원식물학회, 한국자원식물학회지, 2014년



태그:#한지, #일본 와시, #닥나무, #애기닥나무, #꾸지나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제가 일본에서 생활한지 20년이 되어갑니다. 이제 서서히 일본인의 문화와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해와 상호 교류를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발달되 인터넷망과 일본의 보존된 자연을 조화시켜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교류를 기대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