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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 5.18 기간 중 열흘 동안 나오지 못한 <전남매일신문>은 6월 2일 발행 재개를 앞두고 있었다. 사진은 6월 2일자 <전남매일신문> 대장(최종판 이전 검토·편집을 위해 만든 원장부)이다. 계엄사령부가 검열한 '빨간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이날 실릴 예정이던 김준태 시인의 109행짜리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는 33행으로 짤려 인쇄됐다.
 1980년 5.18 기간 중 열흘 동안 나오지 못한 <전남매일신문>은 6월 2일 발행 재개를 앞두고 있었다. 사진은 광주 동구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전시된 6월 2일자 <전남매일신문> 대장(최종판 이전 검토·편집을 위해 만든 원장부)이다. 계엄사령부가 검열한 '빨간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이날 실릴 예정이던 김준태 시인의 109행짜리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는 33행으로 짤려 인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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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사흘 째인 1980년 5월 20일, 당시 <전남매일신문> 기자들은 '집단 사표'를 쓰고, 이를 약 2만 장 인쇄해 금남로에 뿌린다.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 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1980. 5. 20. 전남매일신문 기자 일동. 전남매일신문 사장 귀하."

다음 날인 21일, <전남매일신문>의 발행이 중단된다. 27일 계엄군이 전남도청의 시민을 짓밟아 작전을 마무리할 때까지, <조선일보>·<동아일보> 등은 '무정부상태', '폭도', '간첩', '남침위기' 등으로 광주를 묘사한다.

항쟁이 끝난 다음 날인 28일, <조선일보>는 "계엄군, 광주 장악"이란 제목의 톱기사와 "신중을 거듭했던 군의 노고를 우리는 잊지 않는다"는 사설로 계엄군에 박수를 보낸다.

열흘 동안 나오지 못한 석간 <전남매일신문>은 6월 2일 발행 재개를 앞두고 있었다. 그날 오전 9시, 문순태 당시 <전남매일신문> 편집부국장은 김준태 시인(당시 전남고 교사)에게 전화해 "1면에 실을, 광주의 참상을 담은 시 한 편 써달라"고 부탁한다.

김준태 시인은 1시간 만에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라는 제목의 109행짜리 시를 완성한다. 하지만 인쇄돼 나온 6월 2일자 <전남매일신문>의 1면은 허전했다. 그의 시는 33행만 남아 있었다. 제목도 '아아, 광주여!' 뿐이었다.

신문 곳곳 빨간 글씨... 여기도 '삭', 저기도 '삭'

 1980년 5.18 기간 중 열흘 동안 나오지 못한 <전남매일신문>은 6월 2일 발행 재개를 앞두고 있었다. 사진은 6월 2일자 <전남매일신문> 대장(최종판 이전 검토·편집을 위해 만든 원장부)이다. 계엄사령부가 검열한 '빨간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왼쪽이 1980년 6월 2일자 <전남매일신문> 3면 대장, 오른쪽이 최종 인쇄본이다. '죽음의 거리에도 태극기 펄럭', '주인 없는 구멍가게에 돈 놓고 물건 가져가', '헌혈길 비극에 간 어느 여고생' 등의 제목과 기사가 사라졌다. 또 '광주유혈사태'는 '광주시위사태'로, '눈물과 피로 범벅됐던 광주'는 '눈물과 피로 얼룩졌던 광주'로, '응어리 씻게 신뢰회복 절실'은 '정부·국민 간 신뢰회복 절실'로 교묘하게 바뀌었다.
 왼쪽이 1980년 6월 2일자 <전남매일신문> 3면 대장, 오른쪽이 최종 인쇄본이다. '죽음의 거리에도 태극기 펄럭', '주인 없는 구멍가게에 돈 놓고 물건 가져가', '헌혈길 비극에 간 어느 여고생' 등의 제목과 기사가 사라졌다. 또 '광주유혈사태'는 '광주시위사태'로, '눈물과 피로 범벅됐던 광주'는 '눈물과 피로 얼룩졌던 광주'로, '응어리 씻게 신뢰회복 절실'은 '정부·국민 간 신뢰회복 절실'로 교묘하게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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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이 지난 2015년 6월 2일 오전, 광주 동구에 있는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을 찾았다. 지난달 13일, 옛 가톨릭센터 건물에 개관한 기록관의 2층 복판에서 그때 실려야 했던 109행짜리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의 원본을 만날 수 있었다.

당시 <전남매일신문> 대장(최종판 이전 검토·편집을 위해 만든 원장부)에 담긴 시의 원본에는 '삭'이라고 적은 빨간 글씨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삭은 '삭제'를 의미한다. 계엄사령부는 5·18 이후 처음 발행되는 광주 지역 신문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109행의 시는, 그래서 33행의 시로 변했다.

시 뿐만이 아니었다. 계엄사령부는 <전남매일> 1, 3면을 빨간펜으로 난도질했다. '죽음의 거리에도 태극기 펄럭', '주인 없는 구멍가게에 돈 놓고 물건 가져가', '헌혈길 비극에 간 어느 여고생' 등의 제목과 기사가 사라졌다. 지금 우리가 거론하는 '5·18 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는 문구다.

또 '광주유혈사태'는 '광주시위사태'로, '눈물과 피로 범벅됐던 광주'는 '눈물과 피로 얼룩졌던 광주'로, '응어리 씻게 신뢰회복 절실'은 '정부·국민 간 신뢰회복 절실'로 교묘하게 바뀌었다.

이후 김준태 시인은 25일 동안 도피 생활을 하다가 체포돼 광주 서구 화정동 보안대로 끌려가 2개월 동안 고초를 겪었다. 당시 근무하던 학교에 사표를 제출하라는 강요에 실직자가 되기도 했다.

<전남매일신문> 편집국도 군인들의 급습을 받아 몇몇 간부와 기자가 연행됐다. 이후 신군부의 '1도(道) 1사(社)' 정책에 따라 <전남매일신문>은 <전남일보>로 흡수돼 지금의 <광주일보>로 통폐합되기에 이르렀다.

원본 빼돌려 인쇄... 세계로 퍼져 나가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전시돼 있는 5.18 당시 주소연(광주여고 3학년)양이 쓴 일기장.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전시돼 있는 5.18 당시 주소연(광주여고 3학년)양이 쓴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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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진실을 갈망하는 움직임은 빨간펜을 이겨냈다. 누군가 검열 전 <전남매일신문> 대장을 빼돌려 10만부를 인쇄, 광주 시내에 몰래 뿌렸다. 이를 입수한 데이비드 매캔 미국 하버드대 교수(동아시아 언어문화학과)는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Gwangju, Cross of Our Nation'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해 AP·UPI·로이터 등에 발표했다.

이후에도 한국계 미국인인 고 송재평 미국 시카고 메리글로브 대학 교수(영문과), 유네스코 기관지 '꾸리에'에서 일한 천경자씨, 캐빈임 미국 뉴욕 시러큐스대 교수 등이 이 시를 번역해 광주의 참상을 전세계에 알렸다.

현재 5·18민주화운동 기록관에 전시된 '빨간 글씨 가득한' <전남매일신문> 대장은 이를 보관하고 있던 신용호 당시 편집국장이 2008년 5·18기념재단에 기증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신군부의 엄혹한 언론통제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전남매일신문> 대장을 뒤로하고 기록관을 나오는데, 5·18 당시 고등학생이 쓴 일기장이 눈에 들어왔다. 광주여자고등학교 3학년이던 주소연양은 일기 첫머리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우리는 민주화를 하자는 것이다. 민주화를 위해 싸운 민주 인사들을 구속시키다니 이 원통한 일이 또 어디 있는가? 소위 민주주의란 나라가 민주 인사를 죽이다니, 이 같은 일이 세계에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총과 대검, 그리고 빨간펜이 휘몰아쳐도 진실은 광주를 맴돌고 있었다. 아래는 김준태 시인의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전문이다.

아아 광주여, 우리 나라의 십자가여 - 김준태
 1980년 5.18 기간 중 열흘 동안 나오지 못한 <전남매일신문>은 6월 2일 발행 재개를 앞두고 있었다. 사진은 6월 2일자 <전남매일신문> 대장(최종판 이전 검토·편집을 위해 만든 원장부)이다. 계엄사령부가 검열한 '빨간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왼쪽이 1980년 6월 2일자 <전남매일신문> 1면 대장, 오른쪽이 최종 인쇄본이다. 이날 실릴 예정이던 김준태 시인의 109행짜리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는 33행으로 짤려 인쇄됐다.
 왼쪽이 1980년 6월 2일자 <전남매일신문> 1면 대장, 오른쪽이 최종 인쇄본이다. 이날 실릴 예정이던 김준태 시인의 109행짜리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는 33행으로 짤려 인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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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 있나
우리들의 혼백은 또 어디에서
찢어져 산산이 조각나버렸나

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가버린 광주여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만이
아침 저녁으로 살아남아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해와 달이 곤두박질치고
이 시대의 모든 산맥들이
엉터리로 우뚝 솟아 있을 때
그러나 그 누구도 찢을 수 없고
빼앗을 수 없는
아아, 자유의 깃발이여
인간의 깃발이여
살과 뼈로 응어리진 깃발이여

아아, 우리들의 도시
우리들의 노래와 꿈과 사랑이
때로는 파도처럼 밀리고
때로는 무덤을 뒤집어쓸지언정
아아, 광주여 광주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무등산을 넘어
골고다 언덕을 넘어가는
아아, 온몸에 상처뿐인
죽음뿐인 하느님의 아들이여

정말 우리는 죽어버렸나
더 이상 이 나라를 사랑할 수 없이
더 이상 우리들의 아이들을
사랑할 수 없이 죽어버렸나
정말 우리들은 아주 죽어버렸나

충장로에서 금남로에서
화정동에서 산수동에서 용봉동에서
지원동에서 양동에서 계림동에서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아아, 우리들의 피와 살덩이를
삼키고 불어오는 바람이여
속절없는 세월의 흐름이여

아아,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구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넋을 잃고 밥그릇조차 대하기
어렵구나 무섭구나
무서워 어쩌지도 못하는구나

(여보, 당신을 기다리다가
문밖에 나가 당신을 기다리다가
나는 죽었어요… 그들은
왜 나의 목숨을 빼앗아갔을까요
아니 당신의 전부를 빼앗아갔을까요
셋방살이 신세였지만
얼마나 우린 행복했어요
난 당신에게 잘해주고 싶었어요
아아, 여보!
그런데 난 아이를 밴 몸으로
이렇게 죽은 거예요, 여보!
미안해요, 여보!
나에게서 나의 목숨을 빼앗아가고
나는 또 당신의 전부를
당신의 젊음 당신의 사랑
당신의 아들 당신의
아아, 여보! 내가 결국
당신을 죽인 것인가요?)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을 뚫고 나가
백의의 옷자락을 펄럭이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다시 넘어오는
이 나라의 하느님 아들이여

예수는 한 번 죽고
한 번 부활하여
오늘까지 아니 언제까지 산다던가
그러나 우리들은 몇백 번을 죽고도
몇백 번을 부활할 우리들의 참사랑이여
우리들의 빛이여, 영광이여, 아픔이여
지금 우리들은 더욱 살아나는구나
지금 우리들은 더욱 튼튼하구나
지금 우리들은 더욱
아아, 지금 우리들은
어깨와 어깨 뼈와 뼈를 맞대고
이 나라의 무등산을 오르는구나
저 미치도록 푸르른 하늘을 올라
해와 달을 입맞추는구나

광주여 무등산이여
아아, 우리들의 영원한 깃발이여
꿈이여 십자가여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젊어져 갈 청춘의 도시여
지금 우리들은 확실히
굳게 뭉쳐있다 확실히
굳게 손잡고 일어선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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