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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의 납치혼 -무이낙 02
▲ [당신에게, 실크로드 27] 중앙아시아의 납치혼 -무이낙 02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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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의 서쪽 끝 마을 무이낙. 아랄해가 말라붙어 사막이 된 곳이다(관련 기사 : '하얀 금' 캐려다가, 최악의 재앙이 닥쳤다). 보통 여행자들은 3시간 정도 둘러보고 떠나는 마을이다. 하지만 나는 할 일 하나 없는 그 마을에서 5일을 더 지냈다.

이곳을 선뜻 떠나지 못한 것은 아랄해에 가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바다는 200km 너머에 있다. 갈 수 있는 방법은 차를 대절하는 수밖에 없다. 지프 한 대와 운전기사를 고용하는 데 보통 500달러 정도가 든다. 혼자 가기엔 부담이 큰 금액이다.

마을 입구의 버스 정류장
▲ 버스정류장 마을 입구의 버스 정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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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다른 여행자가 오기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숙박을 연장할 때마다 호텔 주인은 고마워하기보다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뭘 하고 다니는지 꼬치꼬치 물어봤다. 타슈켄트에서 만난 여행자들이 그가 경찰의 정보원이니 조심하라고 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렇다고 문제가 될 만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 딱히 할 일도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동네 한 바퀴 돌고, 배들의 무덤에 갔다 온다. 버스정류장 근처 잡화점에서 생필품이나 과일을 사기도 했다.

마을에 볼 거리가 이 곳 밖에 없었다
▲ 배들의 무덤 마을에 볼 거리가 이 곳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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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는 좀 더 좋은 휴지를 살 수 있지만 시골은 이게 최선이다. 물에 적셔 쓰면 쓸만하다.
▲ 중앙아시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장지 도시에서는 좀 더 좋은 휴지를 살 수 있지만 시골은 이게 최선이다. 물에 적셔 쓰면 쓸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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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주변엔 변변한 레스토랑도 없다. 러시아어로 이름이 '파도'인 식당도 막상 가보면 늘 음식이 없었다. 결국 감자를 몇 개 사서 휴대용 전기 포트로 삶아 먹곤 했다. 마을 중간쯤에 호수에서 잡은 생선을 튀겨 파는 식당이 있었다.

호텔은 불편하지만 방과 커튼이 파란색인 것이 마음에 들었다. 낮에 커튼을 쳐놓고 있으면 꼭 바다 같았다. 물이 없다고 생각하니 자꾸만 물을 사서 쌓아두게 된다. 바다 같은 방에 가라앉아 물만 마시는 하루하루였다.

바다가 사라진 마을에서의 하루

하루 8달러
▲ 호텔아이백의 방 하루 8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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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가 된 통조림 공장에 가기도 했다. 아이벡 호텔을 넘어 북쪽으로 가면 옛 통조림 공장이 있다. 한때 직원이 3000여 명도 넘던 지역경제의 주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뼈대만 남은 건물들만 있어 과거의 영화만 짐작해볼 수 있다. 벽에 남아있는 벽화들이 무이낙이 풍요로웠던 시간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깨진 유리창을 통해 보니 컨베이어 벨트가 아직 남아있다. 매일 기계처럼 일한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월급을 탈 생각에 기뻤을 사람들이 서 있던 곳이다. 생각하니 우울해진다. 무이낙에서는 우울도 일상이다. 활기 하나 없이 크기만한 동네를 돌아보며, 우울해 하는 거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한때 번성했던 공장의 흔적만 남아있다
▲ 통조림 공장 입구의 그림 한때 번성했던 공장의 흔적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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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통조림들이 생산되었던 컨테이너 벨트
▲ 컨테이너벨트 한때 통조림들이 생산되었던 컨테이너 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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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는 사라지고 건물 뼈대만 남아있다
▲ 통조림 공장 내부 기계는 사라지고 건물 뼈대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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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한 친구를 만났다. 이곳 지방 대학에서 영어교수로 일하고 있는 무함마드다. 가이드북 <론리플래닛>에 그가 홈스테이를 운영한다고 적혀있어서 물어봤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최근 우즈베키스탄 정부에서 홈스테이를 막았다고 한다. 외국인은 무조건 호텔에서만 묵어야 한다는 정책이 더욱 강화되었다고 한다.

실망했다. 사실 당장이라도 크고 텅 빈 호텔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밤에 잠이 깨서 손전등 켜고 아래층 화장실까지 가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다. 2층에는 나 외에는 아무도 없다. 바람이 불면 어느 방에선가는 '끼이익'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비명이 나올 거 같지만 꾹 참았다. 어차피 비명을 질러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

그는 나를 한 고려인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데려갔다. 그 마을엔 두 명의 고려인이 있었다. 그곳엔 정체불명의 한국라면이 있었다. 한국브랜드는 아니고 아마 중국에서 만든 한국식 라면 같았다. 우리는 라면을 안주삼아 맥주를 마셨다.

정체불명의 라면과 김치샐러드, 밥 대신 빵
▲ 고려인 식당 정체불명의 라면과 김치샐러드, 밥 대신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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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때 이곳에 진출해있는 한국기업과도 일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상명하달식인 한국 기업 문화가 적응이 안 된 모양이다. 두 번 다시 한국 사람과 일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너는 회사가 일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소유했다고 생각해? 돈을 준다는 이유로? 난 아니라고 봐." 

그는 아직도 '씨X'과 '아이X'를 기억하고 있었다. 

"돈 모아야 해서 먼저 납치부터..." 중앙아시아의 납치혼

저녁을 먹으며 그의 결혼에 대한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그는 지금 아내와 2명의 아이가 있지만 결혼식은 아직 안 올렸다고 한다.

"돈을 모은 다음에 식을 해야 하거든. 그래서 보통은 일단 납치부터 하고 식은 나중에 올려."

순간 귀를 의심했다.

"납치라고?"

유목민의 전통이 남아 있는 카라칼팍스탄은 전통적으로 납치혼이다. 납치혼은 말 그대로 남자가 말을 타고 여자를 납치해서 결혼하는 풍습이다. 지금은 대부분 그 형식적인 의미만 남아있다고 한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는 사람끼리 미리 약속을 하고, 납치를 한다고 한다. 프러포즈 개념인 거다. 그도 여자친구에게 "모월 모일 모시에 납치하러 갈 테니까 기다려라" 라고 말을 해놓고 친구 차를 빌려서 여자친구를 데리러 갔다고 한다.

이곳 아이들은 우즈베키스탄과는 또 다른 몽골계 외모다.
▲ 무이낙의 여자 아이들 이곳 아이들은 우즈베키스탄과는 또 다른 몽골계 외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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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첫날밤을 치르고 나면, 다음날 신부 부모가 신랑 집으로 들이닥친다. 부모들 사이에 협의가 끝나면 신부는 다시 짐을 싸서 신랑 집으로 정식으로 들어오게 되는 거다. 그후 동거를 하며 돈을 모은 후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재미있었다. 나는 환호성을 지르면서 납치혼이라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경청했다. 식당에서 무릎 꿇고 하는 프러포즈 따위 얼마나 식상한가(물론 받아본 적 없다). 어쨌든 상상해봤다. 평소 마음에 들어 하던 남자가 어느 날 눈을 찡긋하더니 "오늘 밤, 데리러 갈게"라고 속삭이는 거다. 그러면 여자는 곱게 목욕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그러면 남자는 '백마'를 타고 달려와 여자를 '납치'하는 거다.

이쯤 되면 중학생 때 읽던 할리퀸 로맨스 소설의 중앙아시아 버전이다. '말이 달리는 동안 그녀는 남자의 우람한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의 심장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그의 땀 냄새에 정신이 몽롱해지고 있었다. 드디어 둘만의 장소에 도착한 그녀와 그. 달빛 아래 언약식을 하고, 떨리는 첫날밤을...'

내가 깔깔거리며 소설을 쓰기 시작하자 그는 한심하다는 듯이 화를 냈다. 그냥 풍습일 뿐 전혀 로맨틱하지 않다는 거다. 개의치 않고 그가 수줍어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다음에 이어진 이야기가 충격적이었다. 아직도 '협의하지 않은 납치혼'이 존재한단다. 말 그대로 동네에 예쁜 여자를 찜해서 밤에 납치해 오는 거다. 상대 여성도 그 남성이 마음에 들면 상관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경찰을 부르는 일도 있다고 한다.

전통 화덕에 불을 지피고 있다
▲ 무이낙의 여성 전통 화덕에 불을 지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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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그 이후다. 아무리 납치를 거부했어도 일단 한 번 납치를 당한 여성은 다시 결혼하기 힘들다고 한다. 납치는 기본적으로 성폭행을 동반한다. 때문에 이 여성들은 이미 '순결을 잃은 여자', '한 번 갔다 온 여자' 취급을 당한다는 거다. 그래서 납치에서 돌아온 여자는 심지어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고 한다.

듣고 있던 내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모래를 한 줌 입안에 털어 넣은 기분이다. 무함마드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그날 밤 아무 일이 없었어도 누가 알겠어? 사람들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알고 보니 이 중앙아시아의 납치혼은 전혀 매혹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무함마드의 경우처럼 서로 간에 협의한 납치의 경우 '가짜 납치'라 불린다고 한다. '진짜 납치'의 경우에는 남자친구가 있는 여성이나 어린 여학생이 납치를 당하는 일도 있다. 뿐만 아니라 납치된 여성이 성폭행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폭행으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생긴다.

실제로 2004년에는 이 지역의 한 여대생이 동료 남자 대학생에게 납치를 당한 후 아세트산을 삼켜 자살을 시도해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녀는 살아남았으나 그녀 가족이 그녀를 받아들이길 거부해 동생집에 얹혀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이 지역 여성들을 보면 이 사람은 어떤 결혼 과정을 거쳤을까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 식당 아주머니 그 후, 이 지역 여성들을 보면 이 사람은 어떤 결혼 과정을 거쳤을까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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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사라지고 일 할 수 있는 젊은 남자들은 외국으로 떠나고 마을에는 여성과 아이, 노인이 남아있다.
▲ 무이낙 주택가 바다가 사라지고 일 할 수 있는 젊은 남자들은 외국으로 떠나고 마을에는 여성과 아이, 노인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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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유목민 시절 풍습인 납치혼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아직도 여성을 재산이나 사물로 보는 전근대적 인습에서 깨어나지 못해서다. 키르기스스탄이나 카자흐스탄과 같은 나라에도 아직도 납치혼이 남아있다.

하지만 이 지역의 납치 풍습이 쉽게 개선되지 않는 것엔 경제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신부를 납치하면 남성은 결혼비용이나 지참금을 피할 수 있다. 아랄해의 고갈로 나아지지 않은 이 지역 경제상황이 그들을 더욱 이런 악습에 머무르게 한다는 거다.

생각해보게 된다. 만약 이 바다가 여전히 풍요롭다면, 이런 악습이 지금보다 줄어들었을까? 아마 쉽지 않았을 것이다. 12세기부터 이어온 유목민의 관습이고, 수 천년간 이어온 가부장적 사고방식이다. 경제적 성장과는 상관없이 남성의 납치와 겁탈과 폭행은 계속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 바다가 여전히 푸르다면, 만약 이곳이 여전히 관광지이고, 이곳에 공장이 있다면 여성의 교육기회와 노동기회는 늘어났을 것이다. 남편 없이도 자립할 수 있는 여성이 더 많아졌을 것이다. 자신을 성폭행한 남자와 어쩔 수 없이 함께 살아야 하는 여성이 더 줄어들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순결을 잃은 그 여학생이 아세트산을 삼키기 전에 누군가 괜찮다고, 넌 여전히 소중한 사람이라고 말해줬을지도 모른다.

만약은 상상일 뿐이다. 현실 속 바다는 멀리 물러났고, 바다 주변의 삶도 함께 메마르고 있다. 그리고 이 사막 어딘가엔 아직도 납치당하는 여성의 비명이 울려 퍼지고 있다. 하지만 바다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무이낙에서 만난 이곳 젊은 여성들, 어떤 결혼을 꿈꾸고 있을까
▲ 카라칼팍스탄 공화국의 여성들 무이낙에서 만난 이곳 젊은 여성들, 어떤 결혼을 꿈꾸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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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박혜경 기자

덧붙이는 글 | 2014년 4월부터 10월까지의 여행 중, 실크로드- 경주, 중국,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터키, 로마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동쪽과 서쪽을 잇는 실크로드의 과거 이야기와 현재 진행형 이야기입니다. 더불어 히스테리가 극에 달한 노처녀의 한풀이이기도 합니다. 실크로드에서 건져낸 이야기를 점과 점으로 이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에 또 하나의 실크로드가 그려졌으면 합니다.



태그:#실크로드, #납치혼, #우즈베키스탄, #아랄해, #무이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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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여행작가. 저서 <당신에게 실크로드>, <남자찾아 산티아고>, 사진집 <다큐멘터리 新 실크로드 Ⅰ,Ⅱ> "달라도 괜찮아요. 서로의 마음만 이해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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