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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시에 실패해 재수를 앞둔 아들 아이와 신영복 선생을 만나 뵐 기회가 있었습니다. 말수가 적은 아들 아이가 자기소개 시간에 자신이 '저주받은 세대'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엄마인 저는 충격으로 망연자실 했지요.

어찌하든 힘을 받아 새롭게 재수 생활을 시작하라고 데려간 자리였거든요. 그때 선생님이 아들아이를 가만히 불러 한 쪽으로 데려가시더니 무슨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고개를 끄덕이던 아들아이의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아들에게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더냐고 물었지요. 아들아이가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현아, 인생 길다. 1년 늦게 시작하는 거 아무것도 아니다. 길게 봐라."

삼수를 하고서야 대학에 간 아들아이는 2년의 유예기간 동안 신영복 선생에게 들은 그 한마디가 무척 큰 힘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담론  신영복 선생의 마지막 강의
▲ 담론 신영복 선생의 마지막 강의
ⓒ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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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인생을 순례길이나 여행길에 비유합니다. 한 사람의 삶의 여정은 결코 짧다고 할 수 없겠지요. 20년이란 적지 않은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던 신영복 선생은 닫힌 공간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고전을 읽으며 생각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합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마지막 강연을 담은 <담론>은 책과 사람을 통해 깨우친 삶의 이야기입니다. 사람과의 관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식이 체화되어 머리가 아니라 가슴과 발로 뛰는 실천적 삶 속에서 어떤 열매로 나와야 하는지를 고전의 새로운 해석과 감옥에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들려줍니다.

우리에겐 또 하나의 먼 여행이 남아 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발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삶의 현장입니다.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며 가슴에서 끝나는 여행이 아니라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본문에서

1부는 고전을 통해 지식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끌어내려 열정과 실천의 결단으로 체화시키는 과정입니다.

고전 공부의 목적은 과거, 현재의 소통을 바탕으로 하여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이처럼 공부란 세계 인식과 인간에 대한 성찰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창조입니다. 역사의 어느 시대이든 공부는 당대의 문맥을 뛰어넘는 탈문맥의 창조적 실천입니다. 공부의 시작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것입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여행이 공부의 시작입니다. 공부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애정과 공감입니다.-본문에서

어렵지만 변화무쌍한 주역의 해석, 모난 돌을 둥글게 만들고 모든 더러움을 정화시키며 생명의 원천이 되는 물을 닮은 노장의 사상을 담론을 통해 읽는 것은 새롭습니다. 인간과 자연은 서로 관계를 맺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소멸과 변화와 생성을 거듭하며 삶의 노정표를 만들어 왔습니다.

묵자 사상의 정수는 겸애로 알려져 있지만 신영복 선생은 저 글귀를 많이 소개한다고 합니다.

'무감어수(無鑑於水) 감어인(鑑於人)' (물에 얼굴을 비춰보지 말아라. 사람에게 자신을 비춰보아라)"

구리거울이 나오기 전 물은 거울 역할을 했다지요. 물에는 자신의 외모만 비추어 볼 수 있지만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비추어 보면 인간적 품성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지요.

선생은 2부에서 감옥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머리로만 이해하던 사람에 대한 이해를 가슴으로 끌어 내리고 때론 발로 실천하면서 관계를 이론이 아닌 삶으로 확장해 갑니다. 2부에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사실 나와 관계 맺은 모든 것이 내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선생은 내가 대상과 맺는 관계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한 법입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인간의 대지(Terre des Hommes)>에서 생텍쥐페리가 '사랑은 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신영복 선생이 말한 동일한 입장이 바로 그런 사랑이지요. 이성 간의 사랑보다 더 깊은 관계가 동지애라고 하니까요.

1부에서는 고전을 통해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여행길을 걸어왔다면 2부에서는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관계의 완성, 여정의 완성을 향한 걸음을 이어왔습니다. 선생은 담론의 끝맺음으로 석과불식('(碩果不食)을 말합니다.

사람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그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만드는 일입니다. 사람은 다른 가치의 하위 개념이 아닙니다. 사람이 '끝'입니다. 절망과 역경을 '사람'을 키워 내는 것으로 극복하는 것, 이것이 석과불식(碩果不食 씨 과실은 먹지 않는다)의 교훈입니다. -본문에서

신영복 선생은 20년 감옥 생활에서 자살하지 않고 살아남은 이유로 '햇볕'과 '자기 성찰과 공부'를 들고 있습니다. 감옥 창살로 비치던 신문지 크기의 햇볕이 값없이 받은 자연의 은총이었다면, '자기 성찰과 공부'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가져다준 존재 이유였던 것입니다. 선생의 <담론>은 그 긴 여정에서 깨달은 길에 대한 인생 노정표인 셈입니다.

언약(言約)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라.

담론의 마지막 장에 신영복 선생이 소개한 글귀를 읇조리며 오늘 얼굴을 마주한 또 다른 나와의 만남과 인연의 소중함, 그리고 그와 어깨를 맞대고 주고받은 이야기를 떠올려 봅니다.

덧붙이는 글 | 담론/신영복/돌베개/18,000원



‘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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