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CI

KBO CI ⓒ KBO


모든 스포츠는 전쟁과 비유되곤 한다. 저명한 사회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은 자신의 저서 <지구의 정복자>에서 스포츠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오늘날 전 세계의 사람들은 전쟁에 대해 점점 더 신중해지고 전쟁의 결과를 두려워하면서 그것의 도덕적 등가물인 단체운동경기(대중스포츠)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집단의 구성원이 되고자 하는 욕망과 자기 집단이 우월하기를 원하는 욕구는 단체 운동 경기라는 의례화한 싸움터에서 자기편 전사들이 승리할 때 충족된다."

에드워드 윌슨의 표현은 학자로서의 견해이기에, 우리가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집단이 벌이는 대중스포츠가 오래 전부터 전쟁과 유사한 면모를 보여 왔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하기 힘들다. 전쟁과는 관련이 없는 스포츠 보도에, 유독 군사적인 비유를 쓰는 것이 용인돼 왔다는 역사를 봐도 그렇다. 분명 대중스포츠는 전쟁의 어떤 부분을 대체하고 있다.

최근 한국 프로스포츠의 여러 분야에서 폭력 사례들이 발생했다. 프로축구 전북의 한교원이 상대 선수를 폭행했고,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의 민병헌은 상대팀 선수를 표적으로 삼아 공을 던졌다. 대중스포츠 팬들이 소비하고 있는 전쟁의 대체물로써의 스포츠란 직접적인 폭력이 아닌 경기 그 자체를 말한다. 그러나 한교원과 민병헌은 그 현장에서 직접적인 물리력을 행사한 것이다.

스포츠는 사람이 하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 몇몇 금기들을 넘어 서게 될 수 있다. 모든 선수의 개인적 일탈을 구단이나 협회가 예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스포츠의 원래 목적에 반하는 행위가 일어났을 때, 해당 스포츠를 관장하는 기구가 그 상황을 적절히 처리해내지 못한다면 그들은 존재이유를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다.

두 사건 이후 전북과 두산, 그리고 K리그과 KBO의 대처는 달랐다. 한교원은 퇴장으로 인한 징계와 구단, 프로축구연맹의 징계를 포함해 총 8경기 출장정지와 2600만 원의 벌금, 그리고 80시간의 사회봉사를 받았다. 물론 경기와 무관한 형태의 폭력을 휘둘렀기에 처벌 수위가 약하다는 여론도 있다. 그러나 수아레즈가 아약스 소속이던 시절, 처음으로 상대 선수를 깨물었을 때 받은 징계가 7경기 출전금지였던 것을 감안하면 한교원의 징계 수위가 아주 상식선을 벗어났다고 보기는 힘들다. 

KBO와 두산의 대처는 끔찍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처참한 윤리적 수준을 서슴없이 팬들에게 내보였다.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해 있는 선수에게 공을 투척한 선수에게 고작 3경기 출전정지와 유소년 야구 봉사활동 40시간의 징계를 내렸을 뿐이다. 한교원은 징계로 인해 자신이 한 시즌에 뛸 수 있는 경기(정규리그, 챔스, 컵대회 포함 45경기 내외)의 20% 가량을 잃은 반면, 민병헌은 페넌트레이스(144 경기)의 2%정도 만을 잃었다.

두 선수의 잘못이 다르기 때문에 완전히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민병헌의 행동이 한교원의 행동에 비해 나을 것이 하나 없다는 점이다. 축구와 야구를 비롯한 집단운동은 물론이고, 개인 종목에서도 선수들 간의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야구에서는 한 시즌에도 몇 번씩 빈볼로 인한 주먹다짐이 벌어지고, 스포츠 뉴스의 해외토픽에도 메이저리그의 벤치클리어링은 단골 소재다. 축구 또한 유럽, 아시아 할 것 없이 대륙별 클럽대항전 과정에서 이런 일이 한두 차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한교원의 잘못은 우리가 으레 몇 시즌에 한두 번은 접하게 되는 유형의 것이다.

그러나 야구의 벤치 클리어링 상황에서 도구를 사용하는 행위는, 그 선수의 윤리관을 직접적으로 의심케 하는 부분이다. 야구란 종목을 대표하는 두 가지 도구인 배트와 야구공은 일반적인 구기 종목들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위험한 것들이다. 그 둘 중 어느 것도, 본래의 목적 이외의 것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 때문에 양팀의 모든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몰려나와 대치하는 벤치클리어링 상황이라 하더라도, 도구를 사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가끔 배트를 그라운드로 투척하면서 패악을 부리는 선수나 감독이 있었지만, 그 경우도 한 인간을 표적으로 삼지는 않았다.

민병헌의 행동이 특별히 위험한 이유는 그 도구를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선수에게 사용했다는 것이다. 경기 중 일어나는 몸에 맞는 볼 또한 위험하지만, 그것은 경기의 일부다. 그리고 공을 맞는 선수도 공이 날아오는 것을 바라본다. 하지만 NC의 에릭 해커는 예상할 수 없는 곳에서 자신을 겨냥해 날아온 공에 위협 당했다. 기존의 한국 프로야구사에 이런 사례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굉장히 드문 사례인 것은 분명하다.

야구공이 아닌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있는 사람이 그 공을 맞는다는 것은, 위험한 스포츠인 야구에서도 특별히 위험한 경우다. 일본 프로야구의 오타니 쇼헤이는 몇 해 전, 팀 훈련에서 외야를 거닐다 프리배팅 타구에 맞아 광대가 골절됐다. 야구장을 찾았다가 부상을 입는 관중의 대부분은 경기가 아닌 다른 곳에 시선을 두다가 공을 맞은 경우다. 프로야구 선수라면, 이런 사례를 더 많이 보고 들었을 것이다. 

에릭 해커가 그 공을 맞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다. 그러나 그가 맞지 않았다고 해서, 이 사건의 경중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민병헌은 벤치클리어링의 시작을 알리는 오는 신호탄의 역할을 하고자, 공을 하늘로 던진 것이 아니다. 명백하게 한 사람을 표적으로 두고 저격했지만 적중하지 않은 것이다. 몇몇 야구 커뮤니티에서는 에릭 해커가 그 공을 맞지 않아서 징계 수위가 덜한 것이란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동의한다.

KBO는 스포츠에서 절대로 어겨선 안 될 금기를 깬 선수에게 3경기 출장 정지를 선사했다. 한국 프로스포츠의 모든 팬들은 결코 이것을 묵과해서는 안 된다. 잘못을 범한 선수를 용서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사태가 재발되지 않는다는 말만으로, 죄송하다는 표현만으로 우리가 그것을 믿어선 안 된다. 확실한 장치와 시스템을 요구해야 한다. 그것은 행위에 응당한 처벌을 선례로 남기는 것이다. 한국 야구의, 아니 한국 프로스포츠의 팬으로서 KBO의 도덕적 해이를 규탄한다. 한국 프로스포츠 팬은 폭력이 아닌 평화를 위해 스포츠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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