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어머니, 부디 편안히 가십시오. 앞으로는 차별받지 않는 나라, 침략이 없는 나라에서 다시 태어나서 평화롭게, 아름답게 사시길 기원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이효순 할머니 추모제'에서 호상인 이경희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함께하는 마산창원진해시민모임 대표가 울먹이며 한 말이다.

이효순 할머니 추모제는 29일 저녁 창원 파티마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이 할머니는 91세를 일기로 지난 27일 저녁 숨을 거뒀고, 창원 지역 시민사회 진영은 시민장(葬)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관련기사 : 일본군위안부 피해 이효순 할머니 빈소, 조문객 줄이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이효순 할머니 장례위원회'가 29일 저녁 창원 파티마병원 장례식장에서 연 추모식에서 호상인 이경희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함께하는 마산창원진해시민모임 대표가 추모사를 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이효순 할머니 장례위원회'가 29일 저녁 창원 파티마병원 장례식장에서 연 추모식에서 호상인 이경희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함께하는 마산창원진해시민모임 대표가 추모사를 하고 있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이효순 할머니 장례위원회' 김영만 위원장이 29일 저녁 창원 파티마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이효순 할머니 장례위원회' 김영만 위원장이 29일 저녁 창원 파티마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공식적인 사과 한 마디 못 듣고..."

이경희 대표는 "얼마나 힘드셨어요. 90 평생 한 번도 그 아픔을 시원하게 누구한테 말 한 마디 못하고 하셨습니다"라며 "식민지 나라에 태어난 게, 힘 없는 나라의 백성으로 태어난 게, 차별받는 여성으로 태어난 게 죄인가요. 평생 괴로워 하셨는데 끝내 일본의 사죄 한 마디 듣지 못하고 가셨습니다. 이제 남은 우리가 힘을 합쳐 어머니의 한을 풀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고 말했다.

이날 추모제는 할머니가 살아 생전 인터뷰했던 영상이 소개되면서 시작됐다. 영상 속에서 할머니는 "그때 일본군을 만나면 뜯어 먹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회자 최은진 창원여성연대 부회장은 "할머니는 뜯어먹어도 시원찮겠다고 하셨지만 사죄도 못 받고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말했다.

김영만 상임장례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해방이 됐지만, 국가와 동포들이 그 분들을 보듬고 안아주고 위로해 줘야 하는데 방치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나 위안부 문제가 사회 이슈로 크게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그 분들은 연로하셨습니다"라며 "그 분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 한 마디였습니다. 이효순 할머니도 그렇게 듣고 싶었던 말입니다. 그러나 끝내 듣지 못하고 가셨습니다"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위안부 문제는 개인과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민족과 사회 구성원 전체의 문제입니다"라며 "이전에는 위안부 문제가 소위 말하는 좌파의 의제였고, 보수 진영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진보 보수, 여야 할 것 없이 모두 같은 마음으로 할머니의 빈소를 찾아와 조문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됐고, 그것이 정상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종교 의식이 진행됐다. 천주교 백남해 신부, 기독교 김광호 목사, 불교 자흥 스님(창원 동읍 공명사), 원불교 이광규 종무원장이 차례로 의식을 거행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이효순 할머니 장례위원회'가 29일 저녁 창원 파티마병원 장례식장에서 연 추모식에서 밀양 동명고등학교 소속 여학생이 할머니한테 보내는 편지글을 읽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이효순 할머니 장례위원회'가 29일 저녁 창원 파티마병원 장례식장에서 연 추모식에서 밀양 동명고등학교 소속 여학생이 할머니한테 보내는 편지글을 읽고 있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이효순 할머니 장례위원회'가 29일 저녁 창원 파티마병원 장례식장에서 연 추모식에서 김유철 시인이 추모시를 낭송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이효순 할머니 장례위원회'가 29일 저녁 창원 파티마병원 장례식장에서 연 추모식에서 김유철 시인이 추모시를 낭송하고 있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백남해 신부는 "미국은 더 이상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일방적으로 일본의 편을 들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정부 또한 오락가락하는 정책과 어설픈 대응으로 할머니들에게 고통을 주어서는 안됩니다"라고, 김광호 목사는 "한국 정부는 과거에 침묵하면 평화를 침탈 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적극 나서야 할 것입니다"라고, 이광규 종무원장은 "괴롭고 고통스러웠던 모든 기억은 살아남은 아들 딸들에게 맡기고, 어두운 삶의 그림자를 내려놓고 이제는 밝은 광명의 빛을 따라 가길 기원합니다"라고 빌었다.

김종대 창원시의원은 추도사에서 "아직도 20여만 명의 위안부가 있다고 하고, 그 중에 '커밍아웃'하며 정부에 등록한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라며 "이 아픔을 어떻게 할 것입니까. 우리 정부는 그 분들이 편안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하고, 지방자치단체도 관련 조례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추모 공연이 이어졌다. 경남 밀양 동명고 소속 여학생이 할머니한테 보내는 편지를 읽었고, 김유철 시인이 <또 진달래 지다>라는 제목의 추모시를 낭송했다.

"아직도 쉰 소리 일삼는 일본 정부도/잘난 것들끼리 모여 나 몰라라 하는 한국 정부도/광복절 돌아오면/미국 깃발 들고 만세 외치는 친일파 잔당들도/우리말 우리옷 우리 산하 내팽개치고/신자본주의와 글로벌 어쩌구 소리치는 못난 것들도/용서하고 훨훨 떠나소서... 하얀 저고리/검정 치마/붉은 진달래, 조선의 딸이/오늘 떨어진다/또 진달래 지다"(시 <또 진달래지다> 일부).

29일 저녁 창원 파티마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이효순 할머니 추모식에서 작곡가 조크라테스와 딸 조이빈 양이 추모곡을 부르고 있다.
 29일 저녁 창원 파티마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이효순 할머니 추모식에서 작곡가 조크라테스와 딸 조이빈 양이 추모곡을 부르고 있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이효순 할머니 장례위원회'가 29일 저녁 창원 파티마병원 장례식장에서 연 추모식에서 장순향 한양대 교수가 진혼무를 추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이효순 할머니 장례위원회'가 29일 저녁 창원 파티마병원 장례식장에서 연 추모식에서 장순향 한양대 교수가 진혼무를 추고 있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광주에서 온 작곡가 조크라테스와 딸 조이빈 양이 추모곡을 불렀고, 장순향 한양대 교수가 진혼무를 췄다. 유족 인사에 이어 참가자들이 <바위처럼>을 함께 불렀으며, 헌화 뒤 추모제가 마 마무리됐다.

1925년 의령에서 태어난 이효순 할머니는 나이 17살에 빨래하다 일본군에 붙들려 갔다. 할머니는 대만 등 여러 나라를 돌며 위안소 생활을 했고, 해방 이후 귀국했지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할머니는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지난 27일 오후 7시 50분 숨을 거뒀다. 장례위원회는 오는 30일 오전 7시 발인식을 갖고, 창원시립화장장에서 화장한 뒤, 유골을 충남 천안 망향의 동산에 안치하기로 했다.

빈소에는 박근혜 대통령, 정의화 국회의장, 홍준표 경남지사, 박종훈 경남도교육감 등의 조화가 놓여 있다.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과 윤한홍 경남도 행정부지사, 안상수 창원시장 등이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창원 파티마병원은 이 할머니의 장례식장 사용료를 받지 않기로 했고,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장례식 행정 절차 등을 돕고 있다.

29일 저녁 창원 파티마병원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이효순 할머니의 빈소를 찾은 작곡가 조크라테스와 딸 조이빈 양이 조문하고 있다.
 29일 저녁 창원 파티마병원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이효순 할머니의 빈소를 찾은 작곡가 조크라테스와 딸 조이빈 양이 조문하고 있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이효순 할머니 장례위원회'가 29일 저녁 창원 파티마병원 장례식장에서 연 추모식에서 김종대 창원시의원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이효순 할머니 장례위원회'가 29일 저녁 창원 파티마병원 장례식장에서 연 추모식에서 김종대 창원시의원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이효순 할머니 장례위원회'가 29일 저녁 창원 파티마병원 장례식장에서 연 추모식에서 장순향 한양대 교수가 진혼무를 추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이효순 할머니 장례위원회'가 29일 저녁 창원 파티마병원 장례식장에서 연 추모식에서 장순향 한양대 교수가 진혼무를 추고 있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 편집ㅣ조혜지 기자



태그:#이효순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