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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윤재옥 새누리당 의원(대구 달서을)이 교육감 직선제 폐지법안을 발의했다. 시·도지사가 지방의회 동의를 얻어 교육감을 임명하도록 하자는 게 주요 골자다. 윤 의원은 법안 발의 이유로 과도한 선거 비용, 지자체장과 교육감 간 갈등으로 인한 교육 정책 통일성 저해 등을 꼽았다고 한다.

교육감 직선제에 대한 국민 여론은 비교적 우호적이다. 지난 4월 30일 <머니투데이>가 실시한 여론 조사 결과 '향후 교육 자치 방식'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의 42.6%가 '지역 주민이 교육감을 선출하는 현재의 직선제'라고 응답했다. 대통령 임명제(19.3%), 시·도지사 런닝메이트제(14.4%)보다 훨씬 높은 수치였다.

윤 의원이 발의한 법안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현 직선제 교육감들이 스스로 존재 이유와 정당성을 보여주지 않으면 비교적 우호적인 여론도 언제든지 등을 돌릴 것이다. 이번 법안이 단순한 정치적 '해프닝'으로 끝날지, 태풍의 눈이 될지가 현 교육감들의 손에 달려 있는 셈이다. 그 중심에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의 시·도교육감이 모인 협의체인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전교협)가 있다.

전교협, 한가할 시간이 없다

지방 교육 재정난 악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지방 교육 재정난 악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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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협의 최근 활동은 지난 4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개최한 '어린이 놀이헌장' 선포식이었다. 같은 날 전국 교육감들은 서울시 교육청 회의실에서 전교협 임시 총회를 열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누리과정 예산 편성·집행과 관련해 후속 조치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고 정부를 향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일 것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그 전인 지난 3월 19일에는 경남 창원에서 경남교육청 주관으로 임시 총회를 열었다. 이날 자리에서 교육감들은 '사립학교법' 제74조 과태료 부과 기준 마련 방안, 의무 교육 대상자에 대한 무상 교육 범위에 학교 급식을 위한 식품비를 포함한 뒤 그 경비를 국가가 부담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학교급식법' 개정안의 조속 처리를 요구하는 건의문 채택 등 모두 15개의 안건을 협의했다.

전교협 활동에 관한 최근 언론 보도는 이 정도가 전부다. 어린이 놀이헌장이나 '학교급식법' 개정이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니지만, 전교협 활동이 왠지 '한가한' 느낌이 든다.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편성 문제에서 촉발된 중앙 정부와 지방교육청의 대립, 지방 교육재정 악화, 교육자치 훼손 등 굵직한 현안들이 불거지고 있는 엄중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와 국회는 직선제 교육감들의 손발을 묶는 조치들을 일사천리로 취하고 있다. 크게 두 가지다.

지난 12일 지방교육청들이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정산에 따른 세입 결함을 보전하기 위해 정부 보증으로 1조 원 한도의 지방채를 발행할 수 있도록 한 지방재정법 개정안이 국회 본 회의를 통과한 것이 하나다. 그 다음 날인 지난 13일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2015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시도교육청으로 하여금 의무 지출 경비로 지정하도록 결정한 것이 다른 하나다. 모두가 지방교육을 황폐하게 만들 수 있는 사안들이다(관련 기사 : 교육청에 빚내란 정부... 이대로 가면 '파산').

현재 구조만으로도 교육 자치 시스템은 허술한 측면이 많다. 중앙 정부는 지방교육청의 돈줄을 쥐고 있다. 지방교육청의 일반 행정을 총괄하는 부교육감을 정부가 임명한다. 조직 운용의 핵심 요소인 돈과 사람을 '주인'이 아니라 '후원자'가 좌지우지하고 있는 셈이다.

중앙 정부에서 지방교육청으로 가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부금)은 국세의 20% 정도 선에서 할당된다. 이런 연동 구조로 교부금이 지방교육청에 안정적으로 지급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연간 세수 상황이 해마다 다를 수 있어서다. 교부금이 2012년 38조 4000억  원에서 2015년 39조 4000억 원으로 0.9% 증가에 그친 것도 이와 관련된다. 같은 시기 일반 회계 세출 증가율은 4.6% 정도였다.

시·도교육청의 '2인자'인 부교육감 임명권을 중앙 정부가 움켜쥐고 있는 것 역시 진정한 교육자치 정신에 맞지 않다. 부교육감은 교육청 일반 행정직의 주요 업무를 관할한다. 교육 관련 업무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관리 감독 권한을 행사한다. 지방교육청의 전문직들이 정부가 임명한 부교육감 결재를 받으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게 교육 자치의 현주소다.

현재 부교육감직은 행정고시 출신이 맡고 있다. 중앙 행정 인력으로 뽑힌 인력들인만큼 지방교육이나 교육 자치에 대한 철학과 소신이 뚜렷하다고 보기 힘들다. 부교육감은 교육부 관료들을 위한 자리용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교육부가 부교육감 임명권을 쉽게 놓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다. 이런 현실에서 부교육감이 직속 상급자인 교육감보다 교육부 눈치를 더 볼 것임은 분명하다.

지방 교육 재정 문제는 모든 교육청의 문제다. 교육 전문가들은 앞으로 5년 뒤부터 지방교육청들이 '빚 잔치'를 벌이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부족한 예산 문제나 상충하는 관련 법령들 간의 문제 역시 개별 교육청이나 교육감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직선제 교육감 단결, 어느 때보다 필요해

박근혜 정부는 '시행령 통치'로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국회의원의 입법권을 무력화하고 있다. 17개 시도교육청과 직선제 교육감들의 단결이 필요한 이유다. 정치권이나 시민 사회 단체들과의 연대와 협력 또한 필수적이다. 이를 위한 기본 전제가 필요하다. 문제 의식의 공유다.

누리과정 예산 문제는 어린이집 보육뿐 아니라 초중고교 교육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정부는 그와 관련된 문제들을 일반적인 절차인 법률 개정이 아니라 '편법적인' 시행령 개정 방식으로 처리하려고 하고 있다. 교육 제도와 운영, 교육 재정 등의 기본 사항을 법률로 정한다는 헌법 제31조 6항의 법률 주의에 어긋난다.

현재 헌법적 가치를 '우직하게' 지키고 있는 이는 김승환 전북교육감이 거의 유일하다. 그가 헌법학자 출신이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전방위적으로 지방교육청들을 조여오는 현실에서 죽어가는 지방 교육과 교육 자치를 되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정치 행위'가 '원칙론' 사수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중 김 전북교육감 지지 성명을 낸 곳은 하나도 없었다. 지난해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13곳에서 당선된 이른바 '진보 교육감' 측에서조차 흔한 기자회견 하나 열지 않았다. 오히려 학부모 단체나 시민사회 단체가 김 전북교육감의 투쟁에 힘을 보태고 있는 상황이다.

직선제 교육감들의 '존재감'은 미미하기만 하다. 지난해 12월 교육부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자사고, 특목고를 지정하거나 지정 취소할 때 교육부 장관과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조항을 바꿔 '동의'를 거치도록 했다. 자사고에 비판적인 진보교육감들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많았다. 그럼에도 자사고 축소를 공동 공약으로 내건 진보교육감 진영에서 그런 교육부의 움직임에 일사불란하게 대처하는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현재의 누리과정 정국에서도 그와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누리과정 예산 문제는 지방교육을 고사하고 교육자치 훼손을 불러올 수 있는 '핵폭탄'급 사안이다. 시도교육감들이 일치 단결해 중앙 정부에 맞서 싸워도 해결하기 힘들다. 두 손 놓고 있으면 지방 교육이 고사하는 건 시간 문제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전교협을 비롯해 전국의 시도교육감들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분투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김 전북교육감만이 정부에 맞서 홀로 싸우고 있을 뿐이다. 그 마저 언제 '백기'를 들지 모른다. 직선제 교육감들 스스로 자신들의 존재 이유와 정당성을 허물어뜨리는 것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지난해 지방선거를 통해 국민은 13명이나 되는 진보교육감을 탄생시켰다. 상대적인 혁신주의자들인 진보교육감을 통해 4․16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와 교육 현장에 가져온 충격파를 줄이고 싶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그들이 '진보 교육'에 담긴 미래 지향적인 시대 정신을 교육 현장에서 구현할 수 있도록 합심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개별 교육감이 정부와 각개 전투하듯 대립하는 것을 뛰어넘어 전교협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교육감 정치'를 펼쳐야 한다. 다행히 29일 제주에서 열린 전교협 임시총회에서 전국 17개 시·도교육감들이 누리과정 예산 문제에 공동 대응하기로 결의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전북에 이어 서울·경기·인천·광주에서도 지방채를 발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윤 의원의 이번 발의가 일회성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도록 전국 교육감들이 더욱 분발할 것을 촉구한다.

○ 편집ㅣ조혜지 기자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태그:#진보교육감, #박근혜 정부, #어린이집 누리과정, #직선제교육감, #교육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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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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