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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민 작품 <무제>
 신동민 작품 <무제>
ⓒ 신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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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종로구 인사동의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한 전시를 관람했다. 여느 미술품 전시와는 느낌이 달랐다. 화려한 원색으로 가득 찬 그림들이 눈에 들어왔다. 뭐라고 표현할까. 단순한 선으로 그려진 이 작품들은 작가가 표현하려는 형상을 직설적으로 터칭한 듯 보였다. 이 전시는 자폐 장애를 앓고 있는 신동민(21)의 첫 개인전이다. 그는 재작년에 장애인을 위한 한 교육프로그램에서 국내 유명한 미술작가로부터 멘토링을 받아 역량을 키웠다 한다.

"자폐 발달장애를 가진 동민이는 어려서부터 혼자 그림을 그리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대안학교와 특수학교에 다니면서도 미술에 대한 관심이 많았죠. 지난 2010년 '장애인의 날'을 기념해 교회에서 개최한 전시회에 그림 몇 점을 출품한 것이 미술 활동의 시작입니다."

신군의 어머니 김완옥(50)씨는 아들의 유년시절을 이렇게 얘기했다. 그 때 전시됐던 백 호짜리 작품을 구매한 지인의 소개로 '프로젝트A'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됐고, 팝아티스트 아트놈(본명 강현하)으로부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했다.

"아트놈 작가도 말수가 적고 상당히 조용한 분이더라고요. 자폐아들이 대부분이 그렇지만 말을 길게 하지 않는 편이에요. 뭐든 물어보면 좋다, 안 좋다 이런 식으로만 짧게 대답하거든요. 둘이 처음 만났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몇 시간 동안 그림만 그리던 게 기억나네요."

아들이 아트놈에게 멘토링을 받던 장면을 이렇게 회상했다. 어머니에게 아들이 멘토와 작업하면서 겪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에 대해서 물었다.

"언젠가 장흥에 있는 작업실에서 교육을 받았어요. 원래는 두 시간만 예정됐었는데,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계속 그림만 그리더라고요. (웃음) 애초 예정된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아트놈 작가는 동민이가 완성할 때까지 보겠다고 했어요. 처음에는 둘 사이가 데면데면했는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서 동민이가 많이 의지하더라고요. 엄마는 아들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직감으로) 알 수 있어요. 남들이 아무리 (아들에게) 친절하게 해줘도 아들이 겉돌면 그게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거든요."

그렇게 엮어진 멘토-멘티 프로그램은 8개월 동안 이어졌다. 마음의 문을 연 동민이의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아트놈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아들이 어떤 꿈을 가지고 지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장애라는 게 그렇지만 엄마가 억지로 시킨다고 성공할 수는 없어요. 지금으로써는 동민이가 7~8시간씩 그림에만 몰두하는 것만 봐도 가장 좋아하는 게 어떤 건지 알 수 있어요. 저는 이것으로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미술로 행복해지는 것. 오직 그 바람뿐입니다."

신동민군이 받은 교육은 '잠실창작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 '장애아동을 위한 일대일 멘토링 프로그램'이다. 지난 2013년부터 시작한 이 사업은 국내의 유명한 팝아티스트(미술작가)와 장애아동을 멘토링으로 엮어 교육을 진행했다. 여기에 참여한 신군은 그 이듬해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컨템포러리 아트쇼'를 비롯해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소리없는 울림전', 밀알미술관의 '2014 열린행성프로젝트전' 등 다양한 전시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작가로 이름을 날렸다.

"누구든지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지 아니하고,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

▲ 잠실창작스튜디오 6기 입주작가 김경아 잠실창작스튜디오 6기 입주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경아(48)씨는 뇌병변장애 1급이면서 구족화가다. 2015년 7월 한 달 동안 KBS에서 진행하는 공익광고 'NEW CHALLENGE BEYOND CONTENTS'에서 김경아 작가가 소개되고 있다.
ⓒ 잠실창작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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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 들어오면서 상대적으로 소외받는 이들을 위한 복지정책이 쏟아져 나왔다. 이렇게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배려에 귀 기울인 지가 불과 10년이나 됐을까. 역사(?)가 깊지는 않다. 실제로 헌법 제11조 1항에 근거해 선진국 수준의 장애인차별금지와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것이 불과 2007년 4월이다.

"누구든지 장애를 이유로 정치·경제·사회·문화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누구든지 장애를 이유로 정치·경제·사회·문화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장애인을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 (장애인복지법 제8조 1항)

이런 법률적, 제도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장애예술인에 관한 실질적인 지원 정책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더 암울한 것은 장애예술인에 대한 실질적인 조사조차 상당히 열악한 실정이며, 제대로 된 연구나 대책이 부족하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지난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장애인문화예술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장애예술인에 대한 현실을 조심스럽게 가늠할 수 있다.

"장애예술인의 창작작품에 대한 발표기회가 충분하지 않다는 의견이 82.2%에 이른다. 이렇게 창작발표 기회가 적은 이유로는 '장애예술의 마케팅 부족'(36.7%), '예술계의 폐쇄적인 시스템'(22.5%), '장애인에 대한 차별'(20.1%) 등을 들고 있다. 장애예술인이 창작활동을 하는 작업공간은 주로 자체적인 별도 연습실에서 진행하는 비율이 62.1%다. 또한, 월평균 수입이 100만 원 이하인 장애예술가는 전체의 46.9%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장애예술인 실태의 구조적 원인이 교육과 생활 수준에도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낮은 수준의 예술교육과 장애예술인의 열악한 경쟁력은 창작에 전념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실제로 이것은 빈곤과 개인의 역량저하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장애로 인해 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제도적 테두리로 보호를 받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장애로 인해 차별을 받는 악순환이 멈추지 않고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의 문화생활과 체육 활동을 늘리기 위하여 관련 시설 및 설비, 그 밖의 환경을 정비하고 문화생활과 체육활동 등을 지원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장애인복지법 제28조)

장애예술가 단체의 활동이 최근 몇 년 전부터 활발하게 진행됐다. 시각장애인으로 구성된 '한빛예술단'이나 중증장애인으로 구성된 '극단 휠'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장애예술가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중심센터 역할이 중요한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오는 9월 문화체육관광부는 종로구 대학로에 있는 구 예총회관 건물을 리모델링해, '장애인문화예술센터'를 개관 예정이다. 이곳은 장애예술가들의 '희망'으로 불리기도 한다. 지방자치단체 단위에선 서울시가 2007년부터 국내 유일의 장애예술가를 위한 전용 창작공간 '잠실창작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 유일의 장애예술가 전용 창작공간

장애아동 대상 일일멘토링 프로그램인 '프로젝트A'에서 멘토링을 진행 중인 한국화가 라오미씨는 "그림을 잘 그리게 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아이가 좋아하는 것과 다른 것을 접목해, 조형적인 언어를 통해 개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프로젝트A 장애아동 대상 일일멘토링 프로그램인 '프로젝트A'에서 멘토링을 진행 중인 한국화가 라오미씨는 "그림을 잘 그리게 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아이가 좋아하는 것과 다른 것을 접목해, 조형적인 언어를 통해 개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잠실창작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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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창작스튜디오'는 잠실종합운동장 내에 위치한 '중소기업 제품전시판매장'을 활용해 조성됐다. 여기는 시각예술 분야의 장애예술가를 지원하는 공간으로, 원래는 '서울장애인미술창작스튜디오'라는 명칭으로 개관됐었다. 그러나 장애인 인식개선을 위한 명목으로 지난 2012년 7월에 '잠실창작스튜디오'로 개명됐다. 현재는 시각예술 분야의 장애예술가 12명을 선발해 창작활동을 보장하는 레지던시 운영과 다양한 참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잠실창작스튜디오는 장애예술가를 위한 창작지원뿐만 아니라 꿈나무 장애예술가를 발굴하는 장애아동 창작지원사업, 장애가족 대상 원예 힐링 프로그램까지 다양하게 전개하고 있다. 무엇보다 여기는 장애예술가를 위한 운영공간으로 특화됐지만 오로지 장애인에게만 열려 있지는 않다. '장애'와 '비장애'로 나누는 오해와 편견을 없애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조성하고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할 수 있는 창작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올해로 3년째 장애아동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느낀 점이 많다. 아이 중에는 타고난 재능을 보인 친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누군가 다른 사람(가족이나 선생님)의 의지 또는 조력자의 발견을 통해서 발전할 수 있다. 그동안 프로그램을 통해서 아이들이 그림을 잘 그리는 기술보다는 본인의 장점을 발견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과 미술수업만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아이를 둘러싼 환경, 가족들과 소통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게도 소중한 시간이었고 책임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한국화가 라오미)

"동등한 한 명의 예술가로 대우받길"

잠실창작스튜디오 강득주 매니저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장애우'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것은 잘못된 표현이다"라고 말했다.
▲ 잠실창작스튜디오 강득주 매니저 잠실창작스튜디오 강득주 매니저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장애우'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것은 잘못된 표현이다"라고 말했다.
ⓒ 이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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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잠실창작스튜디오 강득주 매니저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잠실창작스튜디오'가 '서울장애인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이름이 변경됐다. 이유가 있는가?
"여기에 입주한 작가들 사이에서 장애인이라는 명칭이 오히려 편견을 유발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작가들은 예술가 그 자체로 평가를 받고 싶어한다. 장애인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하면서도 자신 있게 드러내지 못하는 것을 봤다. 당시에는 간혹 외부에서 전시를 함에도 불구하고 명칭없이 홍보를 하는 것도 봤다. 그런 여러가지 이유로 시설명칭 변경이 필요했다."

- 잠실창작스튜디오로 명칭이 변경된 이후 반응은 어떤가?
"명칭변경 이후, 자문회의를 통해 잠실창작스튜디오가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내기 어렵지 않으냐는 반응도 있기는 했지만, 입주 작가들은 상당히 만족한다. 작가들은 장애를 가진 예술가보다는 동등한 예술가의 한 사람으로 대하는 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 장애인을 위한 예술창작 공간이라 장애인만 이용할 수 있나?
"대부분 사람들이 장애인만 이용하는 공간으로 잘못 알고 있다. 우리가 운영하는 프로그램 중에는 비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도 상당히 많다. 예를 들어, '굿모닝 스튜디오'의 '현대미술 강좌' 같은 경우는 장애예술가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열려 있다. 이밖 에도 원예 힐링 프로그램 '쁘띠 풀놀이야'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것들이다."

-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참여하는 것.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나?
"일단 '현대미술 강좌'같은 경우는 정규과정의 학교에 다닐 수 없었던 장애인 작가들이 일반 대학에서나 들을 수 있는 전문적인 이론 강좌를 접할 기회가 됐다. 그 밖에도 일반 비장애인이 장애인과 함께한다는 면에서 편견이 상당 부분 없어진 듯하다. 그리고 '쁘띠 풀놀이야'같은 경우는 장애인의 가족들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힐링을 받는 심리적 치유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 잠실창작스튜디오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을 소개해 달라.
"잠실창작스튜디오에서 운영되고 있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는 입주공모를 통한 장애예술가 입주지원과 장애예술가의 창작 역량 강화를 지원하는 문화예술 교육강좌 '굿모닝 스튜디오'가 있으며, 앞에서 언급한 장애아동 대상의 '프로젝트 A'도 있다. 이 프로그램은 제약회사인 조아제약(주)의 후원으로 3년 째 진행되고 있는데, 장애아동과 국내 유명 미술작가를 멘토와 멘티로 엮어 교육시키는 프로그램이다. 다섯 멘토아티스트도 3년 째 재능기부로 참여하고 있다. 이밖에도 장애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전문 플로리스트와 함께하는 원예 힐링 프로그램 '쁘띠 풀놀이야'와 가 대표적이다."

- 잠실창작스튜디오의 향후 운영 방향은?
"현재는 시각예술 분야로 한정해 운영하고 있다. 물론 공간이나 예산에 의한 제약도 있지만, 시각예술뿐만 아니라 공연 등 다양한 장르로 확대되어 폭을 넓혔으면 좋겠다."

- 마지막으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해주고 싶은 말은?
"아직도 많은 사람이 '장애우'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예전에 장애인의 인식 개선을 위해서 친근한 표현으로 장애우를 사용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손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도 장애우라는 말을 사용하면 실례를 범할 수 있다. 친근하게 장애우로 부르는 것보다는 장애인에 대한 호칭부터 바로 알고 쓰는 작은 변화가 인식개선의 시작이라고 본다."

잠실창작스튜디오는 국내 유일의 장애예술가 전용 창작공간이다. 잠실종합운동장 내에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총 12개의 장애예술가를 위한 창작 레지던시를 비롯해 다양한 참여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잠실창작스튜디오는 국내 유일의 장애예술가 전용 창작공간이다. 잠실종합운동장 내에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총 12개의 장애예술가를 위한 창작 레지던시를 비롯해 다양한 참여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 이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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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창작스튜디오는?
▶지상 2층 (전체 면적 512.6㎡)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로 25 종합운동장 내
▶운영시간 : (하늘연/미소띤) 월~토 10:00~18:00 / 일요일 휴관(프로그램에 따라 탄력 운영)
(꿈채운_입주실/외부작업실) 월~일 9:00~18:00 (주말, 야간은 규정에 따라 이용)
▶02-423-6673~5
▶지하철 : 2호선 종합운동장역 7번 출구 (도보 10분)
▶버스 : [B]360,361,363,730,341 [G]3217,3218,3411,3412,3414,3415,3417,3422
www.facebook.com/jamsilartspace
http://cafe.daum.netseoulartstudio




태그:#서울시창작공간, #잠실창작스튜디오, #장애인예술, #김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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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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