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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이 거창한 질문에 한 마디로 말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랑케는 '단지 그것이 어떠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정의를 통해 '사실'에 근거한 기술을 역사라고 말한다. 이를 실증주의 역사라고 한다.

이에 반해 E.H. 카는 그 유명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적 사실들을 역사가들이 선택한 것'에 초점을 맞춘다. '과거의 사실과 현재의 역사가의 대화'를 중요시한다. 이때 과거의 사실보다는 그 사실을 가지고 역사적 담론을 펴고 역사 지식을 재생산하는 해석주의 역사에 중점을 둔다.

그렇게 되면 현대 사가들이 현실 사회의 문제의식과 사회적 환경에 따라 역사를 재구성하게 된다. 역사가들의 가치관은 현재는 물론 미래에 대한 전망과 관련될 수밖에 없다. 단점은 현대 사가에 의해 사실을 왜곡·축소·은폐·누락·첨가·과소·과장 등으로 손질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카는 수백만 명이 루비콘 강을 건넜지만, 역사가들이 오직 카이사르가 건넌 것만을 중요하게 다룬다고 말한다. 모든 역사적 사실은 그 시대의 기준에 영향을 받은 역사가들의 해석상의 선택의 결과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우리는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하여 흥분한다.

일본의 역사 왜곡

<학국을 속인 거짓말> 책표지
 <학국을 속인 거짓말> 책표지
ⓒ 사닥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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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한국에 관련된 역사왜곡은 대강 이렇다. 한일합병이 일본의 안전과 만주의 권익을 위한 것으로, 합병 후 한국이 근대화되었다. 전시의 국민이기에 징용은 죄가 아니다. 군대 위안부는 강제로 동원한 적이 없고 자발적인 성매매다. 강화도 사건도 군함이 선제공격을 당해 교전한 것이다.

이밖에도 러일전쟁이 백인에 대한 유색인종 일본의 승리며, 조선통신사는 장군 계승을 축하하는 사절단이라고 한다. 고조선 역사는 없다며 임나일본부가 가야 땅에 존재했다고 한다.

더 황당한 것은 2세기경 대방군이 서울에 상주했으며, 6세기 백제왕이 불상과 경전을 야마토 정권에 헌상했다고 주장한다. 백촌강 전투가 일본이 백제를 구하는 전투였다는 주장도 한다.

이런 일본의 역사왜곡이 어떻게 가능한가. 과거의 사실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각색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역사의 왜곡이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인에 의한 한국사도 우리가 역사적 사실로 믿는 사건들이나 인물들에 대한 기록이 많이 왜곡되었다. 어떤 사안은 180도 다르게 전해지고 있다.

이런 역사왜곡이 가능한 것은 역사가 강자의 독점 품목이기 때문이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유신헌법이 가장 한국에 맞는 민주주의 헌법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이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재를 위한 헌법이었다.

왜 이렇게 달라지나. 사실이 변한 게 아니라 역사가가 변한 것이다. 역사는 항상 '갑'에 의해 쓰인다. 왜곡된 한국사를 사실에 입각해 들여다보자고 제안하는 이가 있다. 저자 이종호는 <한국을 속인 거짓말>(사닥다리 펴냄)에서 '갑질'로 심각하게 왜곡된 우리 역사를 바로잡는 데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한다.

한국의 역사왜곡

저자는 책에서 단지 관념이 아니라 역사적 문서와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몇몇 역사들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선왕조실록>에 있는 내용인데도 '갑질'하는 이들에 의해 철저히 외면당하고, 심지어는 반대로 쓰였다고 주장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청백리 황희정승'이라는 기록이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만 보면 황희는 청백리는커녕 탐관오리도 왕 탐관오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록에 기록된 경력이라면 현재 한국의 공직예정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사청문회를 통과하기는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중략)

황희의 별명은 '청백리 재상'이 아니라 '황금 대사헌'인데 요즘 말로 하면 '황금 검찰총장'과 다름 아니다. 황희의 비리에 대해 사관의 평가는 날카롭다. 황희가 '정무를 담당한 여러 해 동안 매관매직하고 형옥을 팔았다'고 기록했다."- <한국을 속인 거짓말> 109~110쪽

이는 형사사건에 개입하여 뇌물을 받았다는 뜻이다. 황희가 '비리 백화점'이지만 59년 동안이나 관직에 중용된 것은 왕의 총애와 더불어 이미지 관리가 뛰어난 인물이기 때문이라는 것. 저자는 황희만큼 역사가 정반대로 기록한 인물도 없다고 말한다. 이는 '갑질' 최고의 산물로 발생한 왜곡이다.

이순신 장군은 성웅인가. 그렇지 않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평소 생각해왔던 이순신에 대한 의구심이 풀렸다. '원균의 모함, 이순신의 백의종군' 이것이 내가 배운 역사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아마 박정희 정권이 유신헌법을 만들고 긴급조치를 남발할 때쯤으로 기억된다. 혹 이순신이 박정희가 만들어낸 영웅이 아닐까 의심한 적이 있다.

그러나 영화 <명량>(2014, 김한민)의 돌풍적 인기몰이로 영웅 이순신을 건드리는 것은 불경에 가까운 분위기가 한차례 지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균의 후손들은 지금도 줄기차게 이순신을 영웅으로 숭상하느라 원균 장군을 왜곡하고 폄훼했다고 정당한 평가를 요구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임진왜란 때 조선 수군의 원균 장군에 대비되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제3공화국의 박정희 대통령이 자신의 통치기반 강화를 위한 일환으로 많은 부분을 미화하고 과장시켰다고 설명한다."- <한국을 속인 거짓말> 177쪽

역사책의 이순신은 '완벽한 인간'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그런 본보기로 승장 이순신이 발탁된 것이다. 이순신은 선배 원균의 경상해역 전투 지원요청을 지연했고 이때부터 둘의 불화가 싹텄다. 원균은 패장이고 이순신은 승장이란 이유가 역사 왜곡의 원인이다.

선조 30년 우부승지 김홍미에게 왕이 지시한 '비망기'에 보면 이순신이 어떤 사람인지 분명하다. "조정을 기망한 것은 임금을 무시한 죄이고, 적을 놓아주어 치지 않은 것은 나라를 저버린 죄이며, 심지어 남의 공을 가로채고 모함하기까지 했다"고 쓰고 있다. 이순신은 원균과 의논하여 장계를 올리기로 협의한 걸 무시하고 자신의 공을 적어 단독으로 장계를 올려 자신만 포상을 받기도 했다.

공평무사한 역사 기록 필요

책은 이외에도 단군조선은 신화가 아니라 분명한 역사라고 말한다. 친일파 안익태의 애국가는 60%이상이 불가리아 민요를 표절했으니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조는 단종만 죽인 게 아니라 문종 역시 전의 전순의와 공모해 독살했을 수 있다고 한다. 연개소문의 패악은 당의 문헌을 참고한 김부식의 작품이라고 한다.

저자의 주장을 다 수용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의 왜곡을 그냥 두고 보는 것도 안 된다. 일본의 양심 있는 사학자들은 일본의 역사왜곡을 비난하며, 지난 25일 16개 역사학 연구·교육 관련 단체들이 합동으로 성명을 냈다. 이들은 성명에서 일본이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대한 왜곡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일본군이 '위안부'의 강제동원에 깊이 관여했다는 사실은 그간 많은 사료와 연구에 의해 실증되었다"며, "성매매 계약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배후에는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구조가 존재했다"고 말하며 일본의 우경화와 무책임에 일격을 가하고 나섰다.

그러나 우리는 <명량>에 열광할 뿐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시도는 없다. 이런 때에 저자 이종호가 나섰다. 역사적 사료들을 분석하여 나름대로 역사왜곡을 바로잡으려는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이데올로기나 정치, 특정인물에 기울어지지 않는 정확한 사실에 기초한 공평무사한 역사를 기록해 주기를 바란다. 일본에 있는 양심 있는 사학자가 우리에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한국을 속인 거짓말>(이종호 지음 / 사닥다리 펴냄 / 2015. 4 / 310쪽 / 1만5000 원)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그냥 지나치면 안 되는 길일 것 같아 그 길을 걸으려고요.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한국을 속인 거짓말

이종호 지음, 사닥다리(2015)


태그:#한국을 속인 거짓말, #이종호, #역사왜곡, #이순신, #황희 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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