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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스물여섯 살 생일날 헌법재판소는 해직교사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합헌이라는 결정으로 전교조에게 역사에 길이 남을 생일선물을 주었다.

이 조항이 국제기준에 맞지 않는 독소조항이기 때문에 국제노동기구(ILO)가 세 차례나 철회를 권고했고, 세계교원단체총연맹(EI)도 여러 차례 우리나라에 항의방문을 왔었다는 것을 알만한 이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봉건왕조 시대도 독재정권 시절도 아닌데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 대해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딱 좋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세계10위권에 드는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 급속한 경제성장과 민주화가 이루어진 나라라고 국제적 인정과 부러움을 받던 나라가 아니었나?

헌법재판소는 모든 법의 근간이자 최상위법인 헌법의 권위를 수호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기관이다. 헌법재판소는 법률조항 자체가 헌법정신에 위배되거나 법률적용이나 해석이 헌법 원리를 벗어나는 것을 바로잡아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하여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민주공화국 국체를 지켜내는 것을 그 임무로 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모든 법률적 다툼의 최후 보루로서 헌법재판소의 권위가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정당 활동에 대해 헌법의 이름으로 정당해산결정을 내린 것이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이고, 기본권에 해당하는 노동3권을 보장하는 헌법33조 1항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단결권을 침해하는 교원노조법 2조를 정당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이다.

헌법의 이름으로 헌법정신과 헌법의 원리를 파괴하고 부정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비단 헌법재판소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사법부의 일련의 판결들을 보고 있자면 정의를 지켜야 하는 사법부가 과연 정의를 지키고 있는지 근본적인 회의가 든다.

헌법의 이름으로 헌법정신을 파괴하는 일

나는 학교에서 아이들과 수업을 하는 교사다. 수업시간에 아이들과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삼권분립을 이야기하고, 사법제도를 이야기하면서 '판사나 검사가 되는 건 국민의 자유와 평등을 지켜내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일이다. 그러니 너희들 중 나중에 커서 훌륭한 법조인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고 얘기한다.

아마도 현직 판검사들은 대부분 학교 다닐 때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자랐던 사람들일 것이다. 얼마나 똑똑하고 공부 잘한다고 많은 칭찬을 받았던 학생들이었을까?

그런데 그렇게 칭찬받고 똑똑했던 학생들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검사와 판사가 되어 있다는 걸 생각하면 나는 교사로서 너무나 큰 혼란과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 검찰과 사법부의 권위가 무너지게 된 것이 개인적 의지를 넘어선 우리사회 구조의 탓이라고만 말하기에는 판검사들은 부모로부터, 학교로부터, 사회로부터 너무 많은 사랑과 인정을 받아왔던 이들이다.

나는 이제 내 제자들에게 판사나 검사가 되라는 이야기를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들 대부분이 우리 사회의 정의를 지켜내기는커녕 정의와 사회의 균형을 깨뜨리는 데 앞장 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교사로서 내 제자가 자신의 양심과 영혼을 지켜내지 못해 한 인간으로서 내면이 파괴되는 삶을 살아가는 걸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 헌재는 다음과 같은 단서조항을 달아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판결을 항소심 재판부에 넘겼다.

"조합원 자격을 재직 중인 교원으로만 제한하는 것이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하여, 설립 신고를 마치고 정당하게 활동 중인 교원노조의 법상 지위를 박탈하는 것이 항상 적법한 것은 아니다. 교원이 아닌 사람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법외노조 여부에 대한 판단은 해직자의 수, 해직자가 노조활동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하여 행정당국의 적법한 재량의 범위 안에 있는 것인지 법원이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

점점 세상이 상식이 통하지 않는 비정상의 사회, 비상식의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소수 기득권 세력 중심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돌아가고 있다. 균형을 잃고 기울어진 세상 때문에 매일 매일 토할 것 같은 현기증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 되었다.

다가올 전교조 법외노조 항소심에서 그 기울어진 것을 바로잡는 게 바로 사법부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믿고 또 확인하고 싶다. 그래서 우리 제자들에게 법조인이 되는 것도 자랑스럽고 해 볼만 한 일이라고 얘기해 주는 선생님이 되어 보고 싶다.


태그:#전교조, #법외노조, #헌재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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