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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노래를 반깁니다. 어떤 노래가 들려와도 아이는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대중노래이든 민중노래이든, 자장노래이든 놀이노래이든, 들노래이든 일노래이든, 아이는 아무것도 가리지 않습니다. 그저 노래라면 모두 기쁘게 듣고는 재미나게 따라 부릅니다.

아이는 노래를 짓습니다. 어른이 들려주는 노래를 아이 나름대로 고쳐서 부르기도 하고, 아무도 아이한테 안 들려준 노래를 아이가 처음으로 지어서 부르기도 합니다. 가락을 몰라도 노래를 부르고, 글만 덩그러니 있어도 새롭게 가락을 입혀서 부릅니다.

노래하는 아이는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습니다. 노래하는 아이는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습니다. 노래하는 아이는 맞고 틀림을 재지 않습니다. 그저 노래합니다. 마냥 웃으면서 노래하고, 여기에 춤을 곁들여서 온몸에 땀이 흐르도록 시원하게 놀 줄 압니다.

겉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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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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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몸은 이제 1학년이니까 / 초등학교 다니는 형이니까 // 친구들과 있을 때 엄마가 부르면 / 금방 대답하지 않습니다 ..  (1학년 형)

나도 아이였을 적에 노래를 몹시 즐겼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러다가 둘레 어른한테서 꾸지람을 듣습니다. 버스라든지 기차 같은 데에서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다가는 꿀밤을 맞습니다. 다른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노래를 부르지 말라고 하니까요. 학교에서도 노래를 부를 수 없어요. 길을 걸어가면서도 노래를 부를 수 없습니다.

그러면 노래는 언제 불러야 할까요? 학교에서 음악 시간이 되어야 노래를 불러야 할까요? 음악학원 같은 데를 나가야 비로소 노래를 부를 만할까요? 연예인이나 가수를 꿈꿀 때에 비로소 '노래 연습'을 해도 될까요? 아니면 노래방에 가서 돈을 내야 노래를 불러도 될까요?

.. 길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 요즘 애들은 혼자 자라서 / 저밖에 모른다 하셔 // 나는 친구들과 장난감도 / 과자도 사이좋게 나눠 먹는데 ..  (외둥이 1)

동시집 <엄마의 토끼>(난다,2015)를 읽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 성미정님이 글을 쓰고, 아이 배재경님이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빚은 동시집이라고 합니다.

어머니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동시를 씁니다. 아이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어머니는 아이를 가만히 지켜보면서 '아이가 누리는 삶'을 동시로 담습니다. 아이는 어머니도 지켜보지만, 둘레에서 마주하는 여러 가지 모습을 찬찬히 헤아린 뒤 그림에 담습니다.

.. 친구들한테 개새끼라고 했다가 / 선생님께 혼쭐난 다음부터 // 민이는 선생님 몰래 / 친구들 귀에 대고 / 개새끼라고 속삭였어 / 내 귀에도 개새끼를 넣어주었어 ..  (개새끼)

아이와 함께 빚은 동시집 <엄마의 토끼>는 다른 여느 동시집하고는 여러모로 다릅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이 한집에서 함께 누리는 살내음이 흐르고, 두 사람이 같이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흐르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학교 안팎에서 겪는 이야기가 동시로 태어납니다. 아이가 집 언저리에서 마주치는 이야기가 동시로 거듭납니다.

속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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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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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깃드는 이야기는 꼭 아름답거나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개새끼" 같은 동시를 읽으면, 오늘날 초등학교에서조차 엿볼 수 있는 쓸쓸한 모습이 흐릅니다.

참말 아이들은 왜 초등학교 다니는 나이에도 '개새끼' 같은 거친 말을 입에 담아야 할까 궁금합니다. 어떤 어른이 아이한테 이런 거친 말을 들려주거나 물려주었을까 궁금합니다. 도시뿐 아니라 시골에서도 아이들은 이런 거친 말을 아주 쉽게 내뱉습니다. 시골 군내버스에서도, 시골 면소재지 놀이터에서도, 시골 읍내나 면내 길거리에서도 아이들은 이런 거친 말을 참으로 쉽게 읊습니다.

.. 친구 따라서 피아노 학원 구경 간 날 / 피아노가 싫어졌다 // 친구가 건반을 잘못 누르면 선생님이 / 볼펜으로 친구 손가락을 때렸다 ..  (피아노)

우리는 배우려고 학교에 갑니다. 우리는 삶을 배우려고 학교에 갑니다. 아이를 학교에 넣을 적에는 '더 높은 학교'에 '더 나은 성적'으로 들어가도록 하려는 뜻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더 이름난 대학교'에 뽑히도록 어릴 적부터 길들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어른한테서 삶과 사랑과 꿈을 배워서, 날마다 새로운 기쁨을 스스로 길어올리는 아름다운 길을 걸어가도록 학교를 다닌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낳은 어버이는 아이가 씩씩하게 두 다리로 서서 두 손으로 모든 사랑과 꿈을 지어서 삶을 따사롭고 넉넉하게 가꾸기를 바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른으로서 동시를 써서 아이하고 나눈다고 할 적에는, 어른하고 아이가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새롭게 지을 삶을 담으려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현실을 고스란히 담는 동시가 아니라, 삶을 새롭게 지으려는 꿈을 담는 동시일 때에 기쁘게 노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아픈 사회와 슬픈 학교를 동시로도 보여줄 수 있습니다만, 아픔과 슬픔을 보여줄 적에도 이 아픔과 슬픔에 얽매이거나 맴도는 얼거리가 아니라, 아픔과 슬픔을 사랑과 꿈으로 삭이거나 녹이는 슬기로운 숨결을 들려줄 수 있을 때에 동시라고 하는 문학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 엄마가 되기 전의 엄마는 / 삐삐 롱스타킹이었어 / 닐슨 씨보다 나무를 잘 탔지 / 인어공주였던 적도 있어 / 왕자한테 메롱 / 지느러미 흔들며 바닷속으로 돌아갔지 ..  (엄마가 되기 전의 엄마)

뒷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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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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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집 <엄마의 토끼>는 살가운 손길로 또박또박 쓴 씩씩한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다만, 아이가 스스로 짓거나 가꾸는 사랑이나 꿈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동시는 어른이 쓰니까 아무래도 어른 눈길이나 눈높이가 될 수밖에 없는지 모르나, <엄마의 토끼>에 실린 동시는 사회현실과 학교현실은 흘러도, 이러한 현실을 씩씩하게 맞아들이면서 기쁘게 노래하는 이야기까지 뻗지는 못한다고 느낍니다.

이를테면 "수학 공부하는 일요일엔"이나 "팬지"나 "까닭이라는 닭을 본 적이 있니"나 "무지개 점수"나 "문제지 풀 때마다" 같은 작품을 보면, 고작 초등학교 1학년 모습인데에도 학교와 집에서 아이가 짓눌리는 '시험공부'나 '입시공부'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 문제지 풀 때마다 / 곁에 앉아 있는 / 엄마 얼굴을 살피는 / 내게 // 엄마는 / 이 녀석아 / 답이 네 머릿속에 있지 / 엄마 얼굴에 써 있냐 / 핀잔을 주지만 ..  (문제지 풀 때마다)

모든 동시가 언제나 노래가 될 수 있기를 빕니다. 어떤 동시이든 아이들이 읽을 적에 가락을 입혀서 흥얼흥얼 기쁘게 노래할 수 있기를 빕니다. 아무리 사회현실이나 학교현실이, 게다가 집이나 마을이나 학원에서도 으레 '시험공부'와 '입시공부'에 얽매여야 한다고 하더라도, 늘 이런 공부 이야기만 동시로 쓴다면, 아이들이 너무 힘들고 따분해 하리라 느낍니다. 아이들이 꿈을 꾸고 사랑을 헤아릴 수 있는 동시를 쓴다면, 아이하고 함께 어른도 언제나 꿈을 꾸고 사랑을 빛낼 동시를 노래한다면, 삶도 집도 마을도 학교도 모두 아름답게 새로 태어나는 바탕이 튼튼히 서리라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책이름 : 엄마의 토끼
성미정 글
배재경 그림
난다 펴냄, 2015.2.15.



엄마의 토끼

성미정 지음, 배재경 그림, 난다(2015)


태그:#엄마의 토끼, #성미정, #동시집, #동시읽기, #어린이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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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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