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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죽나무꽃의 낙화, 떨어진 꽃들이 있어 열매맺는 꽃들이 남아있는 것이니 떨어진 꽃들에게 감사를.
▲ 떼죽나무 떼죽나무꽃의 낙화, 떨어진 꽃들이 있어 열매맺는 꽃들이 남아있는 것이니 떨어진 꽃들에게 감사를.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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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폭염과 가뭄이 이어지고 있다. 자연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자연은 그저 자연스럽게, 자연답게 자신이 가야할 길을 묵묵히 가고 있었다. 질 때가 된 꽃은 떨어지고, 피어날 꽃들은 폭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피어나고 있었다.

이제 곧 누렇게 보리가 익어갈 것이다. 청보리밭에 서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하고, 어린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 보리 이제 곧 누렇게 보리가 익어갈 것이다. 청보리밭에 서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하고, 어린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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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서로 몸을 기대어 한껏 자란 보리들이 토실토실 속을 채워가고 있다. 보리를 추수하면 꽁보리밥에 고추장과 들기름과 이런저런 봄나물들을 넣어 썩썩 비벼먹으면서 보릿고개를 넘겼을 것이다. 그제서야 조팝나무, 이팝나무 꽃을 보며 밥다운 밥을 배부르게 먹어보고 싶었던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지 않았을까?

아내는 자꾸만 이름을 까먹고, 첫남성이라고 한다.
▲ 천남성 아내는 자꾸만 이름을 까먹고, 첫남성이라고 한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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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 그늘진 곳에는 천남성이 고개를 숙이고 피어있다. 아내는 이 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천남성"
"첫남성? 이름도 참 거시기 하네?"
"아, 그게 아니고, 천남성. 붉게 익은 열매를 옛날 재래식 화장실에 던져두면 구더기가 다 죽을 정도로 독성이 강한 거야."

그랬건만, 이름이 가물가물할 즈음이면, "첫남성이 아니고 뭐더라"한다.

은방울 꽃이 넓은 이파리에 숨어 수줍은 듯 피어있다. 조리개를 최대한 개방하여 아련한 이미지로 담았다.
▲ 은방울꽃 은방울 꽃이 넓은 이파리에 숨어 수줍은 듯 피어있다. 조리개를 최대한 개방하여 아련한 이미지로 담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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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방울꽃을 처음 보았을 때 이렇게 예쁜 꽃이 있을 수 있나 싶었다. 넓은 이파리 아래 숨어 피어나는 작은 꽃, 은방울 닮은 꽃, 은은한 종소리 들려오듯 피어나는 꽃이다. 수줍게 넓은 이파리에 숨어 피어나기에 뙤약볕에서도 싱글싱글하다.

세파에 맞서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지켜가는 것 같아 약간은 비겁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깨끗하고 고운 모습에 그냥 그 모습 오래오래 지켜가길 바랄 뿐이다. 자연은 좀 그래도 된다.

오월의 뜨거운 햇살도 그가 화사하게 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 작약 오월의 뜨거운 햇살도 그가 화사하게 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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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셨다. 이 뜨거운 날에 햇살을 정면으로 맞으면서 저토록 붉게 피어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오월의 뜨거운 햇살이 오히려 눈부시다할 만큼 붉게 피어난 작약, 그리고 토담과 기와는 뜨거운 햇살에 축 늘어진 나와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그래서 또 그들을 보면서 힘을 얻는다.

가시엉겅퀴에 나비 한마리가 앉아 서로를 아름답게 한다.
▲ 가시엉겅퀴와 나비 가시엉겅퀴에 나비 한마리가 앉아 서로를 아름답게 한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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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나비도 엉겅퀴 꽃을 찾았다. 한 송이 처럼 보이는 엉겅퀴 꽃에는 수많은 꿀을 머금은 꽃들이 피어있다.
▲ 가시엉겅퀴와 나비 호랑나비도 엉겅퀴 꽃을 찾았다. 한 송이 처럼 보이는 엉겅퀴 꽃에는 수많은 꿀을 머금은 꽃들이 피어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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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다. 이제 나비를 보는 일도, 꽃에 나비가 앉은 풍광을 따라다니는 일도 한발치 멀어져 있다. 그만큼 속세에 발을 깊게 들이밀고 살아가는 증거리라.

나비, 그들은 자유로운 영혼이다. 어디에 앉든지 그와 더불어 예술이며, 그들이 앉았던 자리마다 생명이 움튼다.

꿈틀꿈틀 기어다니던 애벌레가 하늘을 날아가는 현실, 꿈은 단순히 망상이 아니라 현실로 이뤄지는 것임을 말하려는 것일까? 다들, 그렇게 자기 안에 있는 꿈을 피워낼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다.

달콤한 비파열매가 맛나게 익었다.
▲ 비파열매 달콤한 비파열매가 맛나게 익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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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파열매를 만날 것이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주인이 있는 것이라 땅에 떨어진 것을 두어 개 주워 먹었다. 달콤한 맛이 입안에 가득 펴진다. 능히 이 오월에 타는 목마름을 가시게 해줄 만한 열매다. 한 겨울에 꽃을 피우고 한 여름이 오기 전, 농부들이 밭에 나가 일할 때 열매를 맺으니 기특하지 아니한가?

제주도에는 밭 가장자리에도 종종 비파나무가 있는데, 간식거리로 먹고 뱉은 씨앗이 싹을 틔워 나무가 된 것들도 많으리라. 저 비파나무를 키울 수 있는 정도의 남도, 따스한 곳에 삶의 터전을 삼고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열매다.

5월의 바람과 햇살에 덩실덩실 춤을 추는 고진감래의 꽃 씀바귀
▲ 씀바귀 5월의 바람과 햇살에 덩실덩실 춤을 추는 고진감래의 꽃 씀바귀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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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감래의 꽃, 씀바귀. 할머니 무덤가에 무성지게 피어있었다. 뙤약볕에도 불구하고 꼿꼿하게 서서 "단맛 쓴맛 인생의 모든 맛을 다 겪었는데 이 정도 가뭄과 햇살에 시들어버리면 되겠소!" 하는 듯하다.

43년 만의 5월의 무더위라고도 한다. 몸은 무더위에 한풀 꺾였지만, 힘을 내어 자연의 품으로 달려가 천천히 걷다보니 맨몸으로 가뭄과 뜨거운 햇살을 견뎌내는 그들이 나를 위로해 준다.

그래서 자연이다.


태그:#천남성, #보리밭, #작약, #은방울꽃, #떼죽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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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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