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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를 출입하는 정치팀 이경태 기자가 기사에서 미처 풀어내지 못한 청와대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말]
신임 국무총리에 내정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2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청사를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국무총리에 내정된 황교안 신임 국무총리에 내정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2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청사를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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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청문 정국'이 시작됐습니다. 여야는 28일 인사청문위원 선정을 끝냈습니다. 특히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날 첫 대책회의를 열고 '송곳 검증'을 예고했습니다. 이미 황 후보자에 대한 의혹들은 전관예우·병역기피·업무추진비 편법 집행·증여세 '꼼수' 납부 등 전방위적으로 쏟아진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6일 국회의 협조를 부탁했습니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 후 강조한 '정치개혁'도 다시 나왔습니다. 박 대통령은 "지금 정부는 경제활성화와 4대 부문(공공·교육·금융·노동) 구조개혁과 함께 부패청산을 비롯한 정치·사회개혁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추진해 나가고 있다"라며 "황 후보자가 국민적 요구인 이 막중한 과제들을 추진해 나갈 수 있도록 해달라"라고 했습니다.

즉, '정치·사회개혁'을 위해 황 후보자를 통과시켜 달라는 말입니다. 경제활성화나 4대 부문 구조개혁이 이미 오래전부터 제시됐던 국정과제라면 '정치·사회개혁'은 임기 반환점을 맞아 내놓은 새로운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지난 3월 "부패와의 전면전을 선언한다"라며 '반부패담화'를 발표한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성완종 리스트' 파문을 계기로 더 크게 발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검찰 출신에 현 정부의 법무부 장관까지 지낸 황 후보자가 이를 더욱 잘 추진할 수 있는 '적임자'로 비춰지기도 합니다. 결국 박 대통령이 집권 3년차를 맞아 '사정(司正)'을 국정과제로 삼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집권 3년차 국무총리는 모두 부패와 싸웠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수립된 역대 정권의 사례만 봐도 그렇습니다. 각자 폭과 속도에서 차이가 있을지언정 모두 '부패척결'과 '정치개혁'을 얘기했습니다. 때 맞춰 새로운 국무총리가 지명되고 그를 중심으로 '사정 정국'도 형성됐습니다.

노태우 정부의 집권 3년차 국무총리는 노재봉 총리였습니다. 그는 노태우 대통령의 정치특보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실세'로 분류됐습니다. 노 대통령은 그를 총리로 임명하기 두 달 전 '범죄와 폭력에 대한 전쟁'을 선포합니다. 이완구 전 총리가 선언한 '부패와의 전면전'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노재봉 총리는 취임 전부터 야권과 갈등관계에 있었습니다. 1988년 6월 민자당 의원연수회에서 "광주사태는 1980년 당시 김대중씨가 당권을 잡을 수 없게 되자 외곽을 때리는 노련한 정치기술을 활용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났다"고 주장해 파문을 빚었습니다. 총리 취임 후인 1991년 5월 한국인간개발연구원 조찬간담회에서는 "지금 우리 사회에는 비록 소수이지만 사회불안을 먹고 사는 조직화된 체제전복세력이 있다"라고도 주장했습니다.

학계 출신이지만 웬만한 '공안검사' 못지 않은 현실인식입니다. 당연히 야권은 '노재봉 내각'을 공안정국 조성용으로 판단했습니다. 실제로 당시 의원외유사건·수서사건 등이 연달아 터지면서 정치권은 극도로 위축됐습니다.

이에 대해 당시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의원총회에서 "의원외유사건은 특정 야당인의 정치생명을 제거해 입법부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선거를 앞두고 우리 당의 위세를 약화시키려는 정치적 음모"라며 "청와대 사정반과 검찰, 안기부 직원 20여 명이 모의한 정보를 갖고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수서사건에 대해선 당시 여당 실세로 분류된 박철언 전 의원이 지난 1994년 11월 <경향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국회의원 구속 사실을 처음 알고 검찰총장 등에게 전화했는데 '이미 청와대 사정팀, 법무부, 안기부 등 간에 관계기관 대책회의까지 다 끝났다'고 했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즉, 철저한 '기획사정'인 셈입니다. 그러나 노 총리의 재임기간은 넉 달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경찰의 '강경대 폭행 치사 사건'으로 인한 낙마였습니다. 김대중 총재는 당시 긴급 기자회견에서 "노재봉 내각 출범 이후의 공안통치가 빚어낸 필연적 결과"라고 질타했습니다.

김영삼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집권 3년차가 저물어가던 1995년 12월 이수성 국무총리가 임명됩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그를 임명하기 한 달 전 '5.18 특별법 제정'을 지시했습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겨냥한 사정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박계동 전 의원의 '노태우 비자금 계좌' 폭로로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이 한창 진행되던 때였습니다. 당시 언론은 '이수성 내각' 출범에 대해 "숨가쁜 역사청산 정국의 흐름이 법적·제도적 뒷받침을 받아 새 궤도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라고 평했습니다.

정치권 넘어 공직사회·재계까지 모두 '사정 대상'

집권 3년차의 '사정'이 정치권만 향한 것은 아닙니다. 공직자와 재계까지도 사정대상이었습니다. 특히 공직사회는 5년마다 '사정'을 겪는 셈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집권 3년차던 지난 2000년 6월 이한동 국무총리를 임명합니다. 이미 '공직비리사정'이 화두인 시점이었습니다. 당시 김 대통령은 SBS <대통령과의 대화>에 출연, "정부는 이번이 마지막 결전이라는 생각으로 검찰, 경찰, 감사원 등을 총동원, 비리를 척결해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00년 11월 공직자와 공기업 임직원, 사회지도층을 대상으로 한 고강도 사정을 진행하기로 합니다. 이 총리는 국무총리 주재 사정관계 장관회의를 개최하면서 세부적인 논의를 이어갔습니다. 김 대통령은 그로부터 한 달 뒤인 12월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현재까지 각 부처 자체감찰을 통해 총 438건의 비위사실을 적발해 조치 중이고 검찰과 경찰의 사정활동으로 지방자치단체장과 부실기업주 등 322명이 적발되고 114명이 구속된 것으로 보고받았다"라고 밝혔습니다.

노무현 정부 역시 임기 반환점을 앞두고  4대 주력 과제로 ▲ 반부패 투명사회 구축 ▲ 선진화를 위한 동북아 거점국가 건설 ▲ 국가균형발전 ▲ 정부혁신 설정 등을 설정합니다.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는 2004년 9월 '제3차 반부패기관협의회' 회의에서 "지금이 부패추방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라면서 사정활동을 독려합니다. 두 달 뒤인 11월엔 비록 기소권은 없지만 고위공직자와 그 가족등을 대상으로 한 '공직부패수사처' 설치 법안도 국무회의에서 의결됩니다.

이 총리는 2005년 1월 국가청렴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APEC 반부패 투명성 심포지엄' 축사에서 "반부패 개혁은 장기적인 진지전"이라며 "부패 네트워크의 고리를 하나하나 끊어내고 사회 전체적으로 더 이상 부패가 발붙일 수 없다는 의식 개혁까지 완수되는 날 반부패 개혁은 완결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10월 김황식 국무총리를 임명합니다. 무엇보다 이 대통령은 그해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 철학으로 '공정사회'를 제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검찰의 한화·태광그룹 비자금 수사가 진행됐습니다. 20여 차례의 압수수색이 이뤄졌고 300여 명이 소환됐습니다. 그러나 성과 없이 '표적수사'라는 오명만 뒤집어썼습니다.

정치권에서도 '공정사회' 기조가 곧 '사정정국'으로 연결될 소지가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실제로 그해 11월 청원경찰법 입법로비 의혹이 불거지면서 검찰이 10여 명의 국회의원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집니다. 야당은 이를 '표적사정'이라고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여당도 정치후원금까지 들여다보는 검찰 수사에 마뜩치 않은 반응이었습니다. 이 때 청와대는 '기획사정설'을 부인합니다.

2011년 4.27 재보궐선거 패배 후 '사정'은 공직사회로 확대됐습니다. 이 대통령은 '공직비리와의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이에 따라 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실에서는 공직기강 점검 강화 및 첩보활동 확대 등을 지시합니다.

성찰 없는 '사정', 역풍만 불지 않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일자리 창출을 위한 중소기업인과의 대화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일자리 창출을 위한 중소기업인과의 대화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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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역대 정부가 임기 중반 '사정'을 선택했습니다. 점점 약화되는 국정동력을 다시 확보하고 국민의 호응을 이끌 수 있는 '히든카드'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이는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과를 내지 못한 사정은 결국 '표적수사', '정치보복'이라는 역풍을 맞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정'을 택했던 역대 정권들도 반짝 효과를 얻는 데 그쳤습니다. 오히려 사정정국에 따른 정치적 긴장 고조로 본래 추진해야 했던 국정과제를 놓치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박 대통령의 이번 선택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지금 상황을 보면,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입니다. 정작 '부패와의 전면전'을 선언했던 전임 국무총리가 검찰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정치개혁'을 강조하고 있지만 검찰은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된 친박 3인방(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서병수 부산시장·유정복 인천시장)에 대한 자금추적도 안 한 상황입니다.

결국 황 후보자의 '정치개혁'은 그 출발부터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정'의 사전적 의미는 "그릇된 일을 다스려 바로잡는다"입니다. 지금 바로잡아야 할 그릇된 일은 무엇일까요.

○ 편집ㅣ최규화 기자



태그:#황교안, #박근혜, #사정정국, #정치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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