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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사이에 멍이 이렇게 많이 생겼다.
 이틀 사이에 멍이 이렇게 많이 생겼다.
ⓒ 김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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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이여? 팔이 우째 그렇다냐잉?"

나는 그저 웃었다. 팔의 상처는 심각한 것이 아니었고 보이지 않았어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여름이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낮 동안 볕이 뜨거워 공기가 텁텁했다. 답답함을 이기지 못한 나는 긴팔을 걷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잊어버리고는 두 팔을 걷어 올렸다.

그 순간 나만의 비밀이 룸메이트에게 들통 나 버렸다. 비밀로 하고 싶었다. 팔에 멍이 들었다는 것은 열심히 하지 않고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불성실했던 것은 아니지만 정신을 집중하지 않았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아직도 맞고 다녀? 큰일이네. 혹시 얼굴도 맞고 있어잉?"

잠시 서울을 다녀왔을 때 진담이 섞인 농담으로 친구가 말했다.

"너, 설마 맞는 건 아니지? 그런 거야. 사실대로 말해봐. 우리 사이에 못할 말이 어디 있냐?"

친구는 의문스러운 눈으로 나를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그래서 나는 팔에 멍이 든 이유를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팔에 든 멍을 보면 드라마나 영화에서 누군가와 싸움이 벌이지고 난 뒤나, 맞고 난 후에 생기는 멍과 많이 닮아 있다. 그런데 이것은 매를 맞아서 생긴 상처가 아니다. 아니 이건 매를 맞은 것이나 다름없다.

정신을 집중하여 몸과 마음을 하나로 일치시키지 못한 내 잘못으로 인해 팔을 맞았으니 맞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 나는 활을 쏘는 여자, 여사무라 불린다. 처음부터 활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쏘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무기로서의 활이 떠올랐고,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이 많은 내게 정적인 것은 맞지 않다고 여겼다.

그런데 국궁은 무기로서의 활이 아니었다. 마우스를 움직일 때마다 나타나는 화살표처럼 화살의 끝이 뾰족한 것이 아니라 타원형으로 되어 있어 과녁에 맞고 튕겨져 나오게 되어 있다. 과녁에 맞추기 위한 것이지 꽂히게 하는 것이 아니니 무기와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활터 '초파정' 사대에서 바라본 과녁이다.
 활터 '초파정' 사대에서 바라본 과녁이다.
ⓒ 김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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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활터에 간 첫날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3월 2일이다. 활쏘기에 관심이 많던 룸메이트는 활터에 한 번 들러보고 싶다며 함께 가 보자고 했다.

'초파정'이라는 활터에 갔을 때 여러 명의 어르신들이 숫자가 적힌 글자 위에 서서 활을 쏘고 계셨다. 나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차 안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활을 쏘는 어른들이 사라지고도 한참이 지났지만 룸메이트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룸메이트를 찾으러 들어갔다. 한 남자가 긴 활을 오른손에 들고 시위를 당기는 것이 보였다. 그는 바로 룸메이트였다.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본 여러 회원 분들이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아이고, 여성 분이 다 오시고 참말로 좋은 일이네. 활을 쏘실라고요잉?"

나는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한 번 해보셔잉? 요거 해볼만 한디. 그라믄 기둘리기 심심헝께. 한 번 당겨라도 보셔잉."

나는 재차 거절하지 못하고 활을 받아들고 사법이라는 분의 가르침을 받고 난 후에 활을 잡아 당겼다.

"잘 댕기시네. 근디, 왼손잽인가벼요? 우리 활터에는 왼손잽이가 없는디."

활을 가르치는 사법은 왼손잡이이건 오른손잡이건 배운다고 하면 얼마든지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거기다 여자 회원은 회비가 무료라는 말을 작은 소리로 말했다. 회비가 무료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손목 인대가 늘어나 4개월 동안 물리치료를 받았었는데 다시 탈이 나고 싶지 않았다. 여자 회원이라고는 오십 대 주부 두 명이 전부였다. 한 분은 양궁을 배운 경험이 있는 분이셨고 또 다른 한 분은 이미 전국 대회에서 상을 여러 번 탄 경험이 있는 베테랑이었다.

"잘 허시네. 이야, 처음 하는 게 맞는 감. 아주 안정감이 있네."

사대에서 활을 쏘고 들어오신 어르신들이 활을 쏘는 내 모습을 보시며 연신 칭찬을 하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우쭐하여 신사가 되겠다며 약속해버렸다.

어르신들이 활을 쏜다. 밭에서 일하다 말고 와서는 활을 쏘고 다시 일터로 가신다.
 어르신들이 활을 쏜다. 밭에서 일하다 말고 와서는 활을 쏘고 다시 일터로 가신다.
ⓒ 김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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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연습을 하기 위해 매일 활터로 갔다. 하루에 두세 시간씩 열심히 했다. 활을 쏘는 연습을 하면 할수록 손바닥에는 굳은살이 생겼고 시위를 당기는 왼손 엄지손가락에는 물집이 잡히고 피멍이 들었다. 그렇게 이십 일을 연습한 후에 주살을 했다. 화살 끝에 줄을 매달아 쏜 화살이 다시 되돌아오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진짜 화살을 쏘기 전에 많은 연습을 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주살을 하고 나서 집궁식을 거쳐야만 진짜 활을 쏠 수 있다고 했다. 주살도 무던하게 잘 했다. 사법님은 나를 큰소리로 칭찬하며 올해 안으로 단을 따게 하고 말겠다는 포부를 말씀하셨다. 그리고 한 달이 되었을 무렵 집궁식 날짜가 잡혔다. 그리고 며칠 후에 주살을 연습하다 시위(활의 줄)에 얼굴을 맞고 말았다. 집궁식 날 돼지 머리를 올리고 술을 따르며 속으로 빌기도 했다.

'과녁도 잘 맞히고 다치지 않게 해주세요. 열심히 할 터이니 다치지 않게 부탁드립니다.'

얼굴에는 멀리서 보아도 티가 날 정도로 커다란 멍이 생겼다. 보랏빛 멍이 광대뼈를 따라 볼을 지나 턱까지 내려왔다. 멍을 감출 수가 없었다. 감기에 걸렸다는 핑계로 마스크를 쓰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시위에 맞아 얼굴이 퍼렇게 멍이 들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란디 우째 얼굴을 맞는 것이여. 깍지손(활을 잡는 손)이랑 줌손(화살을 잡는 손)을 잘 쥐어짜면 얼굴은 맞을 수가 없을 틴디."

"국력이 아직 없어서 그라제. 다른 정에서도 얼굴이랑 팔을 많이 맞는다더만. 나도 처음배울 때 얼굴이며 팔이며 이곳저곳에 피가 많이 났었어. 걱정헐 거 없어. 다 괜찮아져."

내 얼굴에 멍은 한 달 이상 갔다. 그런데 얼굴의 멍이 가실 무렵 내 몸 어딘가가 또다시 멍이 들기 시작했다. 바로 나의 오른 팔이다. 활을 쏘기만 하면 이상한 소리가 났다. 이 소리는 활이 시위를 벗어나는 소리와는 달랐다. 시위가 몸의 어딘가에 부딪히는 소리였다. 처음 몇 번은 신사이기에 그렇다며 사람들이 위로해주었다. 매번 시위가 내 팔을 때렸다. 아파도 나는 전혀 티를 낼 수가 없었다.

시위가 당겨지고 화살이 날아가는 순간 사람들은 과녁을 향해 시선을 모으고 있기에 시위가 내 팔을 때렸다는 사실을 다 눈치 채지는 못했다. 알았어도 내가 티를 내지 않으면 말하지 않았다. 그러니 어떻게 아프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시위가 팔을 때리는 순간 화살은 과녁이 아닌 다른 곳으로 날아갔고 아야, 소리는 밖으로 새어 나오지 못한 채 입 안에서만 맴돌았다. 활을 쏜 지 두 달이 다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내 팔에는 멍이 가시질 않고 있다. 처음에는 통증이 심해 사람들에게 팔을 맞았다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부끄러워 말도 못한다. 집으로 돌아와 멍든 팔에 약을 바르고 빨리 낫기를 바랐다.

이제 큰일 났다. 날은 더워지고 셔츠의 팔 길이는 짧아지니 감추고 싶어도 감출 수가 없게 돼버렸다.

활은 활을 쏘는 이의 몸과 마음이 하나로 일치 될 때, 활과 내가 한 몸이라는 느낌이 오면 화살은 정확하게 과녁을 향해 날아가 탕, 하고 커다란 소리를 낸다. 잡생각이 조금이라도 끼어들면 시위를 벗어난 화살은 과녁이 아닌 다른 곳으로 날아 가버린다. 

활과 화살이다. 왼쪽에서 일곱 번째 활이 내것이다.
 활과 화살이다. 왼쪽에서 일곱 번째 활이 내것이다.
ⓒ 김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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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활터, #활, #화살, #과녁, #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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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경의로움에 고개를 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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