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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댁, 고성 할머니 문병 가는데 같이 가실래요?"
"고성 할머니가 편찮으세요? 어디가요?"

고성 할머니는 개울 건너 우리 집에서 빤히 보이는 곳에 사신다. 몇 해 전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혼자 사시는데 엄청 부지런하시다. 내가 일어나는 시간에 밭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실 정도니까. 걸음걸이는 약간 특이하지만 멀리서 봐도 금방 알아 볼 정도로 허리가 꼿꼿하시고 무슨 일이든 척척 잘 하신다. 무척 강단 있어 보였는데 입원을 하셨다니 놀랄 수밖에 없다.

고성 할머니 병문안

고성할머니가 농사 지은 양파가 실하다.
▲ 햇양파 고성할머니가 농사 지은 양파가 실하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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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는 자동차를 가진 집이 꽤 된다. 그 중에는 트럭이나 봉고 등 생업에 필요한 용도의 자동차가 있고, 승용차는 좀 젊은 사람들의 출퇴근용이다. 나머지 주민들은 거의 독거노인이나 두 내외분이 같이 살아도 연세가 많으시기 때문에 자동차 없이 생활 하신다. 자동차의 필요성도 잘 못 느끼신다는 편이 더 맞는 표현이겠다.

그런 분들 사이에 끼인 우리 내외는 그야말로 늙지도 젊지도 않은 어중간한 입장이다. 게다가 동네에서 사람도 승용차도 한가롭게 놀고 있는 집은 우리 집뿐이다. 남편이 시골에 살면서 동네 주민들을 위해 가장 보람 있게 하는 일이 있다면 아마 어르신들의 발 노릇을 하는 것일 게다. 그런데 요즘은 내가 우리 동네 발이 될 때가 오히려 더 많다. 그 이유는, 어느 시골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바깥 어르신보다 안 어르신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날도 마당에서 풀을 뽑고 있는데 옆집 월평댁이 고성 할머니 병문안을 가자고 했다. 나는 뽑을 풀이 많이 남았지만 얼른 옷을 갈아입고 미리 알아서 차에 시동을 걸었다. 동네에서 나처럼 나이대가 어중간한 아주머니 다섯 명이 같이 가기로 했다. 내가 차를 가지고 가지 않으면 동네 아주머니들은 버스를 몇 번씩 갈아타거나 택시를 불러서 병원까지 가야 되기 때문이다. 차에 타고 보니 다들 놀라서 어리둥절 놀란 토끼 눈들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언제부터 편찮으셨대요?"
"언제부터 편찮으셨는지는 모르겠는데 어제 새벽 1시에 수술을 하셨대요."
"그럼 병원에는 누가 모시고 갔대요? 우리도 오늘 아침에 월평댁이 전화해서 알았는데."

할머니와 제일 친하다는 아주머니가 의아해 하면서 묻자 월평댁이 그 내막을 얘기했다. 월평댁네 집 역시 할머니 집이 빤히 보이는 관계로 무심코 매일 그 집을 보게 된단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집에 사람 얼씬거리는 걸 못 봐서 찾아가 봤더니 대문이 잠겨 있더란다. 핸드폰을 해도, 집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고, 자녀들 전화번호는 모르니 점점 더 불안해져서 오늘은 동네 사람들 불러서 담이라도 넘어가 보려고 했단다.

그러다가 문득 자녀들끼리 친한 집이 생각나서 그 집에 전화를 해서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할머니 아들 전화번호를 알게 됐고, 입원하신 사연도 알게 됐단다. 병명은 복막염.

병원에서 고성 할머니를 만났다. 얼굴은 그만하신 것 같고 말씀도 곧잘 하셨다. 병원에 오신 사연을 묻자 그만 눈물을 글썽이셨다.

"광주에 있는 아들한테 전화를 혔제. 급하니까 아무 생각도 안 나더만. 맨날 전화하던 이장네 전화번호도 기억이 안 나더라니까."
"그러니까 할머니, 평소에 대문이랑 현관문 잠그지 말고 계세요. 그래야 누구든 오며 가며 들여다보지요."
"그려, 이번 마을 회의 때 혼자 계시는 어른들은 대문이랑 현관문 열어놓고 계시라고 혀야 쓰겄네. 동네 전화 번호표에 자식들 번호도 넣으라하고."

그게 좋겠다며 돌아가며 한마디씩 하고 할머니를 위로했다. 복막염은 갑자기 생기는 병인데 혼자서 얼마나 다급하고 고통스러우셨을까. 일반적으로 복막염이라면 맹장이 터지는 걸로 알고 있는데, 대장에 청공이 생기는 복막염도 있단다.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란다. 간병인의 말을 빌리자면, 한두 시간만 더 늦었어도 할머니는 돌아가셨을 거란다.

필자에게 주려고 뽑아 놓은 양파 중에서 좋은 것을 고르고 계신다.
▲ 고성할머니 필자에게 주려고 뽑아 놓은 양파 중에서 좋은 것을 고르고 계신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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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아버님께서 혼자 사실 때, 주무실 때도 현관문을 다 열어놓고 계시던 생각이 났다. 심지어 우리랑 같이 사시면서도 방문 사이에 빗자루를 끼워서 조금 열어놓고 주무시기도 했다.

우리 집은 담이 없어서 누구든 드나들기가 용이했다. 내가 귀촌하면서 담을 쌓자고 했더니 시아버님과 남편이 '여태껏 담 없이 살았는데 무슨 소리냐'며 극구 반대했다. 그래도 기어이 담을 쌓자고 조르자 절충안으로 펜스를 치기로 했다. 여전히 집안이 훤히 다 들여다보였으나 길고양이나 지나는 개가 못 들어와서 그나마 좋았다.

그런데 남편의 하는 양이 참 기가 막혔다. 지나가는 동네 사람 다 붙잡고 우리 집 대문 여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택배 아저씨나 가스 배달 아저씨에게도. 아니, 가르쳐 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손을 넣고 열어보라고까지 했다.

"아짐, 어디 가세요? 잠깐 이리 와 보세요. 우리 집 대문을 열려면 손을 이렇게 집어넣고 이 쇠막대를 옆으로 살살 밀면 돼요. 한번 해 보세요."

남편은 시범까지 보여 가면서 설명을 했다. 그러려면 뭐 하러 대문을 달았느냐고 내가 고시랑거리면 그냥 빙긋이 웃기만 한다. 그러다가 지난 여름, 기어이 일이 터지고 말았다.

더워서 창문을 열어 놓고 자고 있는데 마당에서 사람 소리가 들렸다. 눈을 떠 보니 아직 새벽이다. 그런데 말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바로 귓가에서 들렸다. 깜짝 놀라서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나는 그만 기함을 하고 말았다. 눈 두 개와 내 눈이 마주친 것이다.

그 눈은 창문을 통해 안방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웃집 할머니가 뭐 물어 볼게 있다면서 그 이른 시간에 우리 집 대문을 손수 열고 마루까지 거침없이 들어오신 것이다. 그 때 놀란 걸 생각하면 지금도 기가 막히다 못해 화가 난다. 할머니가 가신 뒤에 그 불똥은 남편한테로 튀었다.

"거 봐, 그러니까 담 쌓고 잠금장치 있는 대문 달자고 했잖아요. 세상에 새벽바람에 물어 볼 것 있다고 남의 집에, 그것도 걸어 논 대문을 직접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밖에서 사람을 부르든지 해야지. 진짜 매너 없네."
"시골에 살면 그런 거지 뭐. 할머니들이 그런 걸 아시나."

아, 정말 얄미웠다. 새벽에 오신 할머니보다 남편이 더 미웠다.

혼자 사는 어르신들 집을 알아둬야겠다

고성할머니 뽕나무밭에서 필자가 오디를 따고 있다.
▲ 오디 고성할머니 뽕나무밭에서 필자가 오디를 따고 있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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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할머니께서 주신 양파를 메고 좋아라 폼을 잡은 필자
▲ 인심 고성할머니께서 주신 양파를 메고 좋아라 폼을 잡은 필자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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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은 나도 익숙해진 건지 이웃 사람이 새벽에 오건 밤중에 오건 별로 신경이 안 쓰인다. 오히려 고성 할머니의 일이 있고 난 뒤에는 담장을 안 친 것이 잘 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에 고성 할머니께서 퇴원을 하셨다고 해서 인사를 갔더니 그새 또 밭에서 일을 하고 계셨다. 할머니께, 퇴원하셨다고 해서 인사 차 왔다고 했더니 반색을 하시며 손을 덥석 잡고 '고맙다'를 연발하셨다. 벌써 일을 하셔도 괜찮으시냐고 했더니, '암시랑도 안혀' 하시며 내 손을 잡고 뽕 밭으로 가시더니 오디를 한바가지 따 주셨다. 그래도 뭔가를 더 주고 싶으신지 이번에는 양파 밭으로 데리고 가시더니 양파를 잔뜩 뽑아 주셨다.

몇 번 사양하다가 감사하게 받아서 어깨에 양파를 메고 집에 오니 그 모양새가 우스운지 남편이 웃는다. 시골 인심 참 좋다. 인사 한 번에 고마운 마음이 오디가 되고 양파가 되어 돌아왔다. 이것이 바로 시골 스타일의 나눔이 아닌가 한다.

오늘날 의술이 발달해서 백세 시대에 돌입했다고 좋아만 할 일이 아닌 것 같다. 도시든 시골이든, 젊든 늙든 간에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이럴 때 일수록 이웃의 관심이 필요하다. 나에게도 혼자 사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혼자 있을 때 아무도 모르게 죽을까봐 제일 무섭고 걱정이라고 했다.

앞으로는 그냥 생각 없이 동네를 산책할 것이 아니라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 집을 알아 뒀다가 그집 앞에서 괜한 헛기침이라도 한번 해야겠다. 그 때 반응이 없으면 살며시 방문을 열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그:#독거 노인, #독신, #복막념, #오디, #양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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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시원한 청량제,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쓴 책 : 김경내 산문집<덧칠하지 말자> 김경내 동시집<난리 날 만하더라고> 김경내 단편 동화집<별이 된 까치밥> e-mail : ok_0926@daum.net 글을 써야 숨을 쉬는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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