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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성호 전교조 위원장.
 변성호 전교조 위원장.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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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이 전교조가 스물여섯 살 되는 생일날이다. 이날 헌재(헌법재판소)가 콩 볶아 먹듯이 전교조 운명에 대한 선고를 내리기로 했다. 공개변론도 거부한 채 밀실에서 그렇게 했다. 이런 헌재의 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은 솔직히 안타깝고 아프다."

"콩 볶아 먹듯 선고일 잡은 헌재 보면 안타깝고 아프다"

전교조의 법내·법외 노조 운명을 판가름할 헌재 선고 18시간을 앞둔 지난 27일 오후 8시. 변성호(55) 전교조 위원장은 충혈된 눈자위를 어루만지면서 이 같이 말했다. 잠을 못 이룬 듯 얼굴은 피로한 기색이 뚜렷했다.

변 위원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근처 한 식당에서 홀로 저녁밥을 먹고 있었다. 18일간의 단식을 그만둔 뒤 한 달밖에 지나지 않은 터라, 밥 먹는 속도는 무척 느렸다. 덕분에 한 시간에 걸쳐 심경토로를 고스란히 들을 수 있었다.

"세계교육포럼에서 교육계 국제기구 가운데 제일 크다는 EI(국제교원노조총연맹)의 총재, GCE(세계교육시민단체)의 의장과 함께 깊은 얘기를 나눴다. 우리나라 현실이 부끄러웠다."

왜 그랬을까? 변 위원장은 "이 분들이 한국 교육혁신의 모습이 아닌 전교조 법외노조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물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분들이 정권에 의해 해직된 교사를 조합원으로 가입 시켰다고 해서 법외노조를 통보하는 모습을 한국에서 처음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사실이 그랬다. 지난 해 9월 위헌법률심판 제청으로 이번 헌재 선고의 계기를 마련해준 서울고법 제7행정부(재판장 민중기)의 판결문도 다음과 같이 잘라 말할 정도였다.

"현직교원 아닌 자의 교원노조 가입을 법으로 금지하는 입법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프랑스, 독일, 일본, 영국, 미국 등에서는 현직 교원뿐만 아니라 해고자 등에게도 조합원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왜 정부는 세계 최초로 '노조 아님' 통보를 한 것일까? 변 위원장은 "27일 공개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발언에서 보듯 전교조 불법화를 위한 공작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고 추측했다. "국정원 조직도 군대 조직과 같을 텐데 수장이 '전교조를 불법화로 정리하라'고 지시한 것에 대해 직원들이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변 위원장은 31년 동안 서울의 사립 중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왔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원세훈 발언? 군대 같은 조직의 수장이 지시했으니..."

-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2011년 2월에 직원회의에서, '전교조를 불법 노조로 해서 우리가 정리해야 될 것 같다'고 말한 사실이 27일 처음 공개됐다.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공작정치의 모습을 보여준 사건이다. 나는 실제로 국정원이 전교조 불법화를 위한 공작을 펼쳤다고 생각한다. 국정원이 일종의 군대조직과 같은 곳인데, 수장이 지시한 바를 직원들이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 그런데 법외노조 통보는 박근혜 정부로 바뀐 2013년 10월에 하지 않았나?
"이명박 정부 시절 원 전 원장의 지시 시점을 기준으로 이미 규약 시정 명령이 두 차례 진행됐다. 그리고 전교조를 '해충'에 비유한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 박 대통령은 이전 정부에서 닦아놓은 길을 걸어간 것이다. 전교조 '노조 아님' 통보는 법적인 문제보다는 정치적인 조치라고 본다.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둔 다른 수많은 노조들은 가만 둔 채 전교조에게만 칼을 겨눴지 않은가. 이건 공작이었다."

- 왜 법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단정하나?
"산업별·직종별·지역별 노조에서 해직자의 노조 가입은 이미 2004년 대법원 판례로 허용됐다. 교원노조법은 아예 학교별 노조를 만들지 못하게 해놓고 있다. 전교조는 당연히 산업별·직종별·지역별 노조다. 이는 상식이다. 그런데도 노조 아님을 통보했잖은가."

- 이제 18시간 뒤면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의 부당함 여부가 판가름 난다.
"정상적인 선고라면 헌재가 공작정치의 잘못을 바로잡아줘야 한다. 그런데 우려가 되는 게 사실이다."

- 우려의 근거는 무엇인가?
"최근 정당 해산 결정이 그렇지 않은가? 8대1이나 나왔다. 특히 이번 전교조 선고 기일은 당사자인 우리도 이틀 전에야 확실히 알았다. 우리가 낸 공개변론 신청은 무시됐다. 이번 건은 전교조 6만 조합원, 나아가 교육계 전체가 주목하는 일이다. 3000만 명의 교원을 대표하는 EI 회장도 탄원서를 낼 정도다. 그런데 헌재는 밀실 선고를 선택했다. 정치적인 결과가 나올 것 같아 걱정되는 게 사실이다."

- 그렇다면 헌재한테 기대하는 마음은 아예 없나?
"왜 없겠는가. 대법원 판례와 지난해 2심 재판부의 판결문, 그리고 국가인권위까지 해고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라고 권고했다. 노동자의 단결권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다. 단체행동권이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단결할 자유조차 주지 않는 게 말이 안 된다. 내가 만나 본 야당 의원은 물론 여당 의원 일부도 '9명의 해직자를 이유로 6만 명이 활동하는 전교조에 대해 법외노조를 통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하더라."

- 며칠 전 송도 세계교육포럼에 EI (한국) 대표 자격으로 참석했다. 외국 대표들을 만나보니 뭐라고 하던가.
"교육계 국제기구 가운데 제일 크다는 EI의 수잔 호프굿 총재와 GCE의 모니크 후유 의장하고 깊은 얘기를 나눴다. 우리나라 현실이 부끄러웠다. 이 분들이 한국 교육혁신의 모습이 아닌 전교조 법외노조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물었다. 혁신학교에 대해 얘기를 할 기회를 잡기 어려웠다. 이 분들은 정권에 의해 해직된 교사를 조합원으로 가입시켰다고 해서 법외노조를 통보하는 모습을 한국에서 처음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헌재가 헌법합치를 결정하면 세계 최초로 교원노조의 법외 노조를 허용하는 것이 된다."

교원노조 단결권 보장과 '해고자, 실업자의 노조가입 허용'은 1996년 우리나라의 OECD가입 조건이었다. 또한 해직교사에 대한 조합원 인정은 1999년 노사정위원회의 사회적 합의였다. 당시 회의록과 언론보도에 의해 확인된 결과다. ILO는 전교조에 대한 탄압에 대해 3차례에 걸쳐 긴급개입하기도 했다.

- 헌재 상황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 같다. 전교조가 진다면 조합원들이 패배감이 들지 않겠나.
"조합원들이 많이 실망할 것이다. 그게 걱정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마음이 오래 가지 않으리라고 확신한다. 결사의 자유까지 뺏는 결정이라면 그것을 인정할 국제사회와 국민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시대정신도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오래지 않아 전교조가 자주적으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 다시 합법으로 돌아올 수 있는 시기는 언제라고 보나?
"박근혜 정권이 끝나면 법외노조도 종식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명분도 없고 상식도 없는 일이니까."

"어떤 결과 나오든 박 정권 끝나면 법외노조도 끝날 것"

변성호 전교조 위원장.
 변성호 전교조 위원장.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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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일이 전교조 생일인데 법외노조 결정과 공무원 연금법 통과라는 두 개의 위기 앞에 놓여 있다.
"중요한 사안을 한꺼번에 맞게 된 조합원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우리는 위 두 문제에 대해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했다고 본다. 내일 어떻게 결정되든지 우리가 자주적으로 행동한다면 희망은 곧 생겨날 것이다."

- 그렇지만 헌재의 권위를 무시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우리가 헌재의 법리 자체를 무시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헌재는 헌법 가치를 지키라고 피 흘린 민중들이 1988년에 만들어 준 기구다. 그것에 미치지 못한 결정이 나온다면 이를 비판하는 것은 국민으로서 당연히 가진 권리라고 생각한다."

- 위원장이지만 울컥할 때는 없나?
"지지난해(2013년) 법외노조에 당당히 맞서기로 조합원들이 총투표를 통해 결정했을 때 울컥했다. 개인 희생을 감수하면서 올해 4월 서울역에 모인 선생님들을 보고도 감동했다. 28일도 좋은 결과가 나와서 기쁨으로 울컥했으면 좋겠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 <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전교조 법외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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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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