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창원에서 열린 NC와 두산전에서 또다시 벤치클리어링이 발생했다. NC가 7-1로 앞서가던 7회초 공격에서 NC 투수 에릭 해커와 두산 오재원의 신경전이 도화선이었다.

선두타자로 나선 오재원은 해커가 투구 자세를 잡고 공을 던지기 직전에 갑자기 타임을 신청했다. 주심은 오재원의 타임 요청을 받아들였다. 해커는 이 타임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공을 포수 위로 던지며 노골적으로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시작은 문화적인 차이였다. 원래 규정상으로는 투수가 와인드업을 시작하거나 세트 포지션에 들어가면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타자의 타임 요구가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그런데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타자들이 타석에서 타임요청이 잦고 심판들도 이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아서 규정 적용이 애매한 측면이 있다. 사실 투수의 투구 밸런스를 흐트러뜨리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흐름을 끊으려는 경우가 많다.

투수들은 타자들의 이런 행동에 민감하다. 특히 외국인 투수들은 이미 와인드업에 돌입하려는 시점에 타자들이 타임을 요청하는 것을 꼼수나 비매너 플레이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전력투구를 하려다가 갑자기 동작을 바꾸게 되면 신체 밸런스가 깨지는 데다, 운이 없을 경우 부상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커의 이후 반응도 좀 과했던 측면이 있었다. 오재원은 이후 1루수 앞 땅볼로 아웃됐다. 해커는 1루 베이스 커버를 들어가며 오재원을 아웃시켰다. 결과적으로 해커의 승리였다. 점수차도 6점 차로 벌어지며 해커가 여유있게 승리 조건을 충족하고 있는 상황이라 좀 더 느긋하게 대처해도 됐다.

그런데 신경전의 앙금이 남아있던 해커는 어차피 아웃되고 벤치로 들어가려던 오재원을 다시 자극하고 말았다. 해커는 오재원의 등 뒤에 대고 무언가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당시 해커의 발언은 "Get in the box"로 알려졌다. '타석 혹은 벤치에 들어가라'는 의미다.

앞선 상황에서 오재원이 타임을 요청하고 타석을 벗어난 행동과, 아웃되고 벤치로 물러나는 상황을 중의적으로 비꼰 것이다. 이미 오재원을 아웃시킨 상황에서 누가 봐도 불필요한 행동이었다.

오재원이 해커의 이야기를 정확하게 알아들었는지는 알수 없다. 하지만 오재원은 해커의 발언을 듣자마자 크게 흥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미 아웃되고 벤치로 들어가는 상황에서 비아냥섞인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발끈하는 것은 당연했다.

더구나 해커가 사용한 표현은 단어 특성상 언뜻 들으면 영어 욕설과도 혼동하기 쉬운 발음이었다. 오재원이 해커의 발언을 욕설로 알아듣고 더 흥분했을 가능성도 있다. 결국 두 선수는 고성을 지르며 충돌 일보 직전까지 갔다.

두 선수가 부딪치자 양팀 선수들도 곧바로 우루루 쏟아져나오며 벤치클리어링이 벌어진 그라운드에는 삽시간에 험악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런데 여기서 또다시 좋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두산 벤치 측에서 해커를 향하여 야구공이 날라온 것이다.

공을 던진 장본인은 두산 장민석으로 밝혀졌다. 곧이어 두산의 베테랑 홍성흔도 그라운드로 달려나와 NC 선수들과 거친 설전과 몸싸움을 벌였다. 보통은 벤치클리어링이 벌어져도 실질적인 충돌보다는 팀의 단합을 보여주기 위한 액션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은 것과 비교할 때, 이날은 확실히 좀 더 과격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 소동으로 경기는 무려 8분간이나 중단됐다.

두산은 NC에 연패를 당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경기가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신경전까지 벌어지니 두산 선수들이 좀 더 감정적인 반응을 보인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벤치클리어링에도 넘지말아야 할 선이 있다. 해커가 도발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해도 오재원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무엇보다 야구선수가 무방비인 상대에게 공을 던지는 것은 흉기를 투척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동이다.

벤치클리어링이 진정된 후 장민석은 결국 비신사적 행위로 퇴장 조치를 당했다. 그러나 경기를 지켜본 일부 팬들이 공을 던진 당사자가 장민석이 아닌 다른 선수였고, 장민석이 혼자 책임을 뒤집어썼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논란의 여지도 남겼다.

작은 오해와 신경전이 불러온 후폭풍은 컸다. 좋게 보면 양팀 모두 그만큼 이기고 싶었던 승부욕에서 비롯된 일이었지만, 조금 더 상대에 대한 존중과 성숙한 대처가 아쉬웠던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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