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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계획에 없던 중국어 공부를 처음 시작한 후, 이듬해 중국 랴오닝성 진저우시 현지대학교에 입학한 32살 늦깎이 유학생입니다. 올해 7월 졸업을 앞두고, 이후 중국을 더 가까이 느끼고자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중국의 일상생활과 유학에 얽힌 에피소드를 담담하게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기자말

버스로 이동해서 도착한 체험관. 아이들이 줄을 맞춰 서있다.
 버스로 이동해서 도착한 체험관. 아이들이 줄을 맞춰 서있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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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끝무렵에 시작한 실습도 겨울로 접어들어 막바지에 이르렀다. 푸르렀던 이파리도 색색별로 물드는 듯하더니, 이내 하나 둘 떨어지고 공기마저 차갑게 휘감아 돈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나서야 실습이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정들었던 모든 이와 헤어져야 하는 시간. 다음을 기약하며 서로를 달래보지만, 시간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무심하게 끝을 향해 나아간다. 이곳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해야 한다. 삶은 늘 반복된 이별의 순간이지만, 이번만큼은 꽤 아프게 다가온다.

선생님을 챙겨준 고마운 아이들

학교 한 편에 설치돼 있었던 지하수 펌프기. 선생님의 권유로 물을 받고 있다.
 학교 한 편에 설치돼 있었던 지하수 펌프기. 선생님의 권유로 물을 받고 있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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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습이 끝을 향해 치닫고 있을 때쯤, 학교에서 또 하나의 이벤트가 열렸다. 도시 외곽에 있는 체험 교실에서 만들기나 놀이를 즐기는 날이 다가온 것이다. 소풍이라 부르기엔 부족하지만, 분위기만큼은 수학여행 저리가라였다. 학생들은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설렘으로 가득 차 있다.

아침부터 학교는 왁자지껄한 아이들로 정신이 없다.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을 달래기도, 언성을 높이기도 한다. 그 사이 체험 교실로 안내해 줄 버스들이 속속 운동장에 들어선다. 아이들은 재잘대며 새끼 오리 떼처럼 줄 맞춰 탑승한다. 여기저기서 외국인 선생님과 같이 타고 싶어 선생님을 외쳐댄다.

"라오싀, 워먼이치쭈어츠어바! 라이쩔!(선생님, 우리랑 같이 타요! 여기요. 여기!)"

반짝이는 눈으로 뭔가 원하는 아이들을 외면한다는 것은 마음이 아픈 일이다. 하지만 이미 자리는 정해져 있었기에 애써 멋쩍은 웃음을 남긴 채 등을 돌려야 했다. 버스는 약 삼십 분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교생인 우리도 선생님을 도와 아이들을 인솔했다. 비록 산만했지만 잘 따라주는 아이들이 귀엽다.

체험 학교 운동장에 버스들이 멈춰 서고 아이들이 내리자, 한산했던 학교는 금세 아이들의 웃음으로 생기를 되찾는다. 하지만 날씨는 추웠다. 쌀쌀한 바람이 목 언저리를 훑는다. 학생들과 같이 재빨리 건물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작은 손으로 조물조물 종이접기나 만들기를 시작한다.

선생님의 설명을 경청하는 아이들. 나도 같이 머리핀과 폰 고리를 만들어 보았다.
 선생님의 설명을 경청하는 아이들. 나도 같이 머리핀과 폰 고리를 만들어 보았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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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얼른 구석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여러 색의 점토를 뭉쳐 색깔을 만들고 형태를 빚어 사자 머리핀과 펭귄 휴대폰 고리를 뚝딱 완성했다. 나도 어느새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나이도 잊은 채 웃고 떠들며 학생들과 하나가 된다.

점심 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제각기 싸온 음식을 펼쳐놓고 나눠 먹는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김밥이 아닌 빵이나 과자, 과일 정도다. 저걸로 식사가 될까 안쓰러운 마음으로 바라보는데, 여자 아이 몇몇이 쪼르르 다가와 자신들의 것을 수줍게 내민다. 극구 사양해도 기어코 손에 쥐어 주고는 자기들끼리 웃으며 자리로 돌아간다. 중국인의 베푸는 습관은 나이에 상관 없었다.

모든 일정이 끝나자 돌아가기 위해 버스 주위로 모여 들었다. 학생들은 각자 자기가 만든 예쁜 조화나 머리핀 등을 한아름 안고 재잘거린다. 아이들과 더 많은 체험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한 명 한 명을 주의 깊게 바라보며 반짝이는 미소를 눈과 마음에 새겼다.

빈말이 아니었던 교장 선생님의 따스한 배려

담당 선생님과 교장선생님. 중국에서 먹는 한국음식 또한 색다르다.
 담당 선생님과 교장선생님. 중국에서 먹는 한국음식 또한 색다르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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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기 전, 교장 선생님이 저녁 식사를 사주시겠다고 한다. 선생님은 그 날 저녁 메뉴를 꽤 오랜 시간 고심했다.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음식을 제안한다. 사실 이미 중국 음식에 익숙한지라 뭐든 상관없었다. 진저우 대표 음식인 꼬치, 훠궈, 베이징 덕, 사천 요리 등등을 거론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아무래도 중국에 온 지 꽤 되었으니까 한국 음식이 그립지? 한국 고깃집으로 가자!"

교장 선생님은 화통하고 호탕한 성격의 여장부다. 매사에 일처리도 시원시원하다. 우리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앞장서 씩씩하게 걸음을 옮긴다. 리더십 있고 어조가 분명한 그녀의 말에 홀린 듯이 따랐다.

한국처럼 맛나진 않지만, 고향의 음식은 언제나 반갑다. 푸짐하게 차려진 진수성찬을 먹으며 선생님은 중국 생활에 대한 조언을 해주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는 말도 잊지 않으셨다. 당시에는 예의상 하는 이야기로 들었다. "근처 오면 연락해"하는 한국식 인사 정도로 생각한 것. 마음은 고마웠지만, 다시 전화기를 들기는 왠지 어려워 문자로 안부만 묻곤 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진심이었다. 얼마 전 한국에 다녀온 후 죄송스럽고 고맙게도 선생님이 먼저 저녁 식사 초대를 해주신 것이다. 졸업 논문으로 바빠 그간 안부를 묻지 못했다는 핑계에 선생님은 그저 사람 좋게 웃으셨다, 아직도 부끄럽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실습, 그 마지막을 정리하며...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마지막 날은 불쑥 찾아 들었다. 평소와 다르지 않았던 하루였다. 아침까지만 해도 실감이 나지 않았건만, 실습장을 받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실습장에 적힌 날짜와 내 이름을 보니, 아쉬움과 시원함이 동시에 쑥 밀려든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다양하고 깊은 추억들을 안겨준 곳이다.

"라우싀, 하오셔부더니. 비에왕지워먼(선생님, 헤어지기 아쉬워요. 우리를 잊으면 안 돼요)."

어느새 사무실 앞에는 외국인 선생님을 배웅하기 위해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몇몇 아이는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이 작은 천사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무거운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밝은 표정으로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선생님들이 선물해 주신 마쟝과 채소절임.
 선생님들이 선물해 주신 마쟝과 채소절임.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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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챙기고 있는데 뒤에서 선생님 몇 분이 부르신다. 수고했다며 봉지를 내민다. 진저우 특산품인 씨엔차이(절임반찬, 소금물에 여러 가지 채소를 절인 것)와 마쟝(깨를 갈아 만든 장)이 싸여 있었다. 한국으로 가져가서 식구들과 나눠 먹으라고 일부러 진저우 지역 특산품을 샀다고 한다. 뭉클한 와중에도 마쟝 냄새에 진저리 치던 엄마가 생각나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사람들의 열렬(?)한 배웅을 받으며 학교를 나가는 길. 아쉬움도 컸지만, 마치 전장에서 승리한 것 같은 성취감이 들기도 했다. 자신과의 전쟁에서 이긴 쾌감이랄까. '결국은 해냈어!'라며 내 안의 또 다른 자신이 기뻐하고 있었다.

첫발을 내디딜 때 안절부절 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생소하고 두려웠지만, 어느새 일상이 됐던 중국의 실습. 생각해보니 모든 것들이 그랬던 것 같다. 실제로 경험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왜 그렇게 겁을 먹곤 했을까. 아마도 내 자신을 믿지 못해서, 나를 너무 과소 평가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번 경험을 통해 나는 대단하지 않지만, 조금씩이라면 차근차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를 성장케하고 보다 넓게 중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 평화초등학교 모든 분께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인다.

"쎄쎄따지아러. 워부능왕지니먼. 워먼시아츠이띵짜이찌엔미엔바! (고마워요. 잊지 않을게요. 우리 다음에 꼭 다시 만나요!)"

○ 편집ㅣ조혜지 기자



태그:#중국, #중국유학, #중국실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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