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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인도 총리가 지난 18일·19일에 한국을 공식 방문한 데 이어 카리모프(Islam Karimov)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이 5월 27일부터 29일까지 방한한다. 양국 정상의 방한을 두고 한국 언론은 경제협력에 대한 기대감을 표출하면서 장밋빛 전망만을 늘어놓고 있다.

예를 들면, 모디 총리가 추진하는 경제 정책인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를 소개하면서 인도가 중국을 대체하는 산업기지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에 인도에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카리모프 대통령의 방한을 다루는 언론보도 역시 대동소이하다. 언론은 그를 두고 '한국을 여덟 번에 걸쳐 방문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 깊은 대통령'이라고 소개하면서 양국 간의 경제협력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는 보도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한국 언론 어디에서도 인도와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 기업 때문에 인권침해 문제가 제기되고 있고, 이로 인해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곤혹을 치르고 있다는 보도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인권침해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곳이 지난 17일부터 22일까지 방한했던 반기문 사무총장이 활동하는 UN이라는 사실은 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이에 해외진출 한국기업의 인권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7개 공익법 및 인권·시민단체(어필·공감·희망법·국제민주연대·민변 노동위원회·민주노총·좋은기업센터)가 결성한 기업인권네트워크(KTNC Watch)는 두 차례에 걸쳐서 인도 및 우즈베키스탄 정상외교의 화려함 뒤에 놓여있는 인권침해 논란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는 포스코의 인도제철소 사업을 중심으로 살펴보며, 두 번째로는 우즈베키스탄 면화산업의 강제노동문제를 중심으로 다룰 예정이다.

UN의 기업 인권침해문제 원칙

(2015년 5월 18일,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인권위 주최로 열린 특별강연에서 UN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을 중심으로 강연하는 마이클 케이 아도 실무그룹 의장)
▲ 마이클 케이 아도 유엔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 의장 (2015년 5월 18일,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인권위 주최로 열린 특별강연에서 UN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을 중심으로 강연하는 마이클 케이 아도 실무그룹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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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날이 갈수록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초국적기업들이 직·간접적으로 인권침해문제에 관련됨에 따라, 이를 어떻게 다룰지를 두고 오랜 기간 논쟁을 벌여왔다. UN이 나서서 초국적기업에 대한 규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과 기업의 자발적인 규제에 맡기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왔다.

결국 UN은 2011년도에 'UN 기업과 인권 이행 원칙'(UN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 이하 이행 원칙)을 발표하면서 이 문제에 대한 UN 차원의 공식적인 입장을 확립했다.

이행원칙은 개별국가들이 국내기업뿐만 아니라 해외에 진출한 기업들의 인권침해 문제에 대해서도 적절한 조치를 마련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기업들이 기업 활동을 할 때에, 인권침해의 소지를 예방하는 조치를 실시(due diligence)해 인권 존중의 책임을 다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비록 국제법적으로 이행원칙이 제도화되어 가는 단계다. 하지만, UN이 공식적으로 기업에 대해 인권존중의 책임을 묻는다는 원칙을 확립함에 따라, 유럽 국가들과 국제기구들을 중심으로 이에 따른 후속조치를 실행하고 있다.

'UN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The Working Group on Business and Human Rights)은 2011년도에 UN 인권이사회가 바로 이 이행원칙을 전파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신설한 조직으로, 5명의 독립 전문가로 구성돼 있다. 현재 실무그룹의 의장은 영국 엑스터 대학교 로스쿨 교수인 마이클 케이 아도(Michel K. Addo)씨가 담당하고 있다.

이 마이클 케이 아도 실무그룹 의장이 지난 5월 18일에 국가인권위가 추죄하는 특별강연과 5월 19일에 반기문 UN사무총장도 참석했던 UN글로벌 콤팩트 한국 회의에 이행원칙을 알리기 위해 방한했다. 시민사회는 마이클 케이 아도 의장의 방한을 통해 한국 기업과 정부가 인권존중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국제사회의 경향을 인식하길 바랐다.

UN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과 포스코의 인도제철소 문제

올해 3월에 열린 제28차 UN 인권이사회를 앞두고 제출된 Communication 보고서의 일부. UN 특별보고관들이 2014년에 각국정부와 소통한 내용들이 담겨져 있다.)
▲ UN 인권이사회 커뮤티케이션 보고서 올해 3월에 열린 제28차 UN 인권이사회를 앞두고 제출된 Communication 보고서의 일부. UN 특별보고관들이 2014년에 각국정부와 소통한 내용들이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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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대와는 다르게, UN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 의장의 방한은 한국 사회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실무그룹 의장을 초청한 인권위는 그의 방한 과정에서 노동조합을 포함해 기업의 인권문제에 대응해온 시민사회 단체들과 사전 소통을 하지 않았다.

행사 진행이 기업 및 정부 관계자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관련 시민단체들의 참여가 이뤄지지 않았다. 인권위가 최근에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로부터 '등급 보류'를 당한 주 원인 중 하나가 '시민사회와의 협력 부재'라는 점에서 아쉬운 부분이다.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시민사회 내에서도 생소한 이 문제에 대해 인권위가 적극 홍보하지 않으면서 언론들도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UN이 제시한 이행원칙과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의 활동들이 한국 기업과 관련한 구체적 사례를 통해 언론에서 다뤄지지 않은 게 큰 문제였다. 하지만 이번에 방한한 'UN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은 이미 한국 기업 사례에 대해 입장을 표명한 바 있고, UN은 계속해서 한국 기업의 인권침해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요구하고 있다.

2005년부터 포스코가 인도에서 추진 중인 대규모 제철소 건설 사업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주요 인권 현안으로 다뤄진 지 오래다. 제철소 건설로 인한 주민들의 이주문제 등을 두고 마찰이 빚어지면서, 국제사회는 계속해서 사업과정에서 발생할 대규모 인권 및 환경 침해를 우려해왔다.

결국에는 2013년 10월, UN의 8개 영역에 걸친 특별보고관들이 공동으로 '포스코가 주민들의 인권보호 조치를 마련할 것'과 '한국 정부가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UN에서 8개 인권영역(빈곤, 주거권, 식수, 식량권, 집회와 결사의 자유,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 건강권, 공평하고 민주적인 국제질서)의 특별보고관들이 개별기업의 사례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낸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는 이행원칙이 발표된 이후 UN이 기업과 관련한 인권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였다. UN의 포스코의 인도제철소 사업에 대한 우려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UN의 5개영역(빈곤, 주거권, 식수, 식량권, 건강권) 특별 보고관들은 공동으로 2014년 2월에 한국 정부에 포스코 인도제철소 문제와 관련한 질의서를 발송했다.

OECD 가입 국가로서 의무를 다하지 않는 정부

한국 정부가 UN 특별보고관의 포스코 인도제철소 관련 질의에 답변한 문서 일부.
 한국 정부가 UN 특별보고관의 포스코 인도제철소 관련 질의에 답변한 문서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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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인권관련 특별보고관들이 계속해서 관심을 표명하고 있음에도, 한국 정부가 2014년 7월에 UN에 제출한 답변설글 보면 정부가 이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정부는 해외 진출 한국 기업과 관련한 문제는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OECD Guidelines for Multinational Enterprises, 아래 가이드라인) 한국연락사무소(National Contact Point, NCP)를 통해서 처리하고 있다는 답변만 내놨다.

OECD 가입국가라면 의무적으로 운영하게 돼 있는 가이드라인 연락사무소는 가이드라인을 위반하는 진정이 제기될 경우, 이를 조사하고 중재 및 시정을 권고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미 2012년 10월에 한국·인도·노르웨이·네덜란드 시민단체들은 한국과 노르웨이·네덜란드 가이드라인 연락사무소에 포스코의 인도 제철소 사업이 가이드라인을 위반하고 있다는 진정을 제기했다.

노르웨이·네덜란드 연락사무소에도 진정을 제기한 것은, 노르웨이와 네덜란드 연기금의 포스코에 대한 투자도 가이드라인을 위반했다는 혐의가 있기 때문이다.

각국 연락사무소의 진정에 대한 처리 결과는 상이했다. 우선, 노르웨이 연락사무소는 자국 연기금이 포스코에 투자하고 있는 것을 두고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을 위반했다고 결정했다. 심지어 네덜란드 연락사무소는 한국 연락사무소에 이 사안을 공동조사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산업통상자원부가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한국 연락사무소는 2013년 6월에 포스코가 가이드라인을 위반하지 않았다면서 진정을 기각했다. 기각 이유는 인도 당국이 이 사안을 현재 다루고 있어서, 한국 정부가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초국적기업의 인권침해가 현지의 사법 절차를 통해서 제대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해당 기업의 본국 정부를 통해서 사태해결을 모색하고자 하는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의 존재 의의를 한국 정부 스스로가 부정한 꼴이 됐다. 노르웨이와 네덜란드 연락사무소가 자국 연기금이 포스코에 1% 미만의 지분을 가지고 있음에도 진정을 적극 반영한 것과 극명하게 비교된다.

한국연락사무소는 비단 포스코뿐만 아니라 2002년부터 제기된 가이드라인 위반 진정에 대해서, 제대로 된 조사나 중재활동을 수행하지 않아 국제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 정부는 UN특별보고관의 질의에 답변하면서 연락사무소 활동만을 내세우고 있다. 연락사무소 설치를 해놨으니 할 일 다했다는 식인 셈이다.

한국 정부, 기업에게 인권존중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2013년도에 UN 특별보고관들이 포스코의 인도제철소 문제를 지적하자 포스코는 2014년 6월에 윤리경영원칙을 개정하면서 국제적으로 인정된 인권기준을 지지하고 인권을 존중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 기업들 중에서, 자사의 경영원칙에 국제적으로 인정된 인권 기준을 지지하겠다고 명시한 것은 포스코 그룹(대우인터내셔널 포함)이 거의 유일하다. 그러나 포스코가 말하는 '국제적으로 인정된 인권기준'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포스코 역시 영문 누리집에만 국제적으로 인정된 인권기준이 어떤 것인지를 서술해놨을 뿐 한국어 누리집에는 해당 내용을 소개하지 않고 있다. 한국 굴지의 대기업이 말하는 인권 기준이란 무엇일까? 거기에는 당연히 앞서 소개한 이행원칙과 가이드라인은 물론이고 세계인권선언과 글로벌콤팩트도 포함돼 있다. 문제는 이러한 국제 인권 기준들에 노동3권도 당연히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포스코가 영문홈페이지를 통해서  국제적으로 인정된 인권기준들을 열거하고 이를 따르겠다고 선언한 부분
▲ 포스코 윤리경영원칙 중, 인권관련 실천지침 포스코가 영문홈페이지를 통해서 국제적으로 인정된 인권기준들을 열거하고 이를 따르겠다고 선언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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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포스코 역시 자신들이 약속한대로 노동3권을 존중하고 지지하는 게 스스로 한ㄱ속에 부합할 것이다. 그리고 이 약속은 포스코뿐만 아니라 포스코의 협력사와 하청업체들에게도 적용된다. 이것이 포스코가 지지하는 이행원칙과 가이드라인의 설명이다.

노르웨이 연락사무소에 포스코의 인도제철소 사업에 대한 가이드라인의 진정이 제출되자, 노르웨이 연락사무소는 자국의 연기금이 소수의 지분만을 포스코에 투자하고 있는데도, 포스코의 인권침해 문제에 대해서 자국의 연기금이 책임이 있는지를 UN 인권최고대표사무소(Office of the High Commissioner for Human Rights, OHCHR)에 질의한 바 있다.

OHCHR은 이행원칙 13조 (b)항에 근거해 "이행원칙은 모든 기업에 적용되며, 공급망을 포함하여 기업 활동과 관련되는 곳에서는 인권침해를 예방할 책임이 있다"라는 유권해석을 내렸고, 이에 따라 노르웨이 연락사무소는 자국 연기금에 대해 가이드라인 위반 결정을 내리게 됐다.

UN기업과 인권 이행원칙 13조 (b항) : 기업은 사업관계에서, 자신의 사업활동, 제품 그리고 서비스와 직접 연결되어서 인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을 방지하거나 완화하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 설사 기업이 그러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데 기여하지 않았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기업의 사업관계란 자신의 사업활동, 제품 또는 서비스와 직접 연결된 사업동업자, 공급망에 있는 주체들, 그리고 여타 비국가 및 국가주체와의 관계를 포함한다.

이행원칙에서 말하고 있는 공급망(SUPPLY CHAIN)이란 포스코의 하청 및 협력업체를 당연히 포함한다. 따라서 포스코가 자신들이 지지하겠다고 선언한 이행원칙을 따른다면, 하청기업인 EG그룹의 노조 탄압과 그 결과 발생한 노조지회장의 자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관련 기사 : "박지만, 하늘에서 두 눈 부릅뜨고 보겠다").

노조탄압으로 자살한 EG테크 양우권분회장의 분향소를 강남 포스코 빌딩 앞에 만들었다는 장그래운동본부의 사진
▲ 자살한 포스코 하청기업 EG테크의 양우권 분회장 영정 노조탄압으로 자살한 EG테크 양우권분회장의 분향소를 강남 포스코 빌딩 앞에 만들었다는 장그래운동본부의 사진
ⓒ 장그래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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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포스코는 인도 제철소 부지의 주민들이나 하청노동자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는 비단 포스코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는 헌법에도 규정된 노동3권을 무시하는 기업이 부지기수이며, 하청과 파견을 통해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행태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정부가 기업들의 이런 행태를 조장하기도 한다. UN에서 기업에 대해 인권을 존중하라는 책임을 부여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국가가 인권보호라는 의무를 제대로 지키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한국처럼 정부가 기업의 인권침해를 묵인하고 심지어 협조하는 상황에서 UN이 제시하는 원칙은 문서 속에서나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국제사회가 더디지만 기업을 평가할 때, 그 기업이 얼마나 인권을 존중하는지를 평가하는 시대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흐름을 읽지 못한다면 정부와 기업이 강조하는 바로 그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게 될 것이다. UN사무총장이 한국인임을 자랑만 할 게 아니라, UN의 권고를 충실하게 따르는 모습을 보일 때만이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국가와 기업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이미 UN이 권고한 포스코의 인도제철소 사업문제를 진지하게 재검토해야할 것이다. 사업이 시작한지 10년이 돼가지만, 아직 사업은 제대로 시작조차 하지 못했고, 기업의 이미지만 나빠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국제민주연대 나현필 사무차장이 작성하였습니다.



태그:#포스코, #인도제철소, #UN기업과인권이행원칙, #OECD다국적기업가이드라인, #KTNC WA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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