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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 트리오 옹달샘의 장동민, 유상무, 유세윤이 28일 오후 서울 상암동의 한 호텔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인터넷방송 <옹달샘의 꿈꾸는 라디오>에서의 '삼풍백화점 생존자 비하', '여성 비하 발언' 등에 대해 사과의 입장을 발표하며 침통한 모습을 하고 있다.
▲ 장동민-유상무-유세윤, '침통한 옹달샘' 개그 트리오 옹달샘의 장동민, 유상무, 유세윤이 28일 오후 서울 상암동의 한 호텔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인터넷방송 <옹달샘의 꿈꾸는 라디오>에서의 '삼풍백화점 생존자 비하', '여성 비하 발언' 등에 대해 사과의 입장을 발표하며 침통한 모습을 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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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신체를 물건처럼 취급하는 일. 즉 여성의 외모에 대해 함부로 '물적 대상화'하거나 '여성 혐오' 발언을 하는 일이 최근 들어 빈발하고 있다.

이는 지극히 보수적인 '공식적'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새정치민주연합 장병완 의원이 방통위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의하면, 2011년 4건에 지나지 않던 차별비하 발언(여성혐오, 지역감정 조장)이 2014년 9월 말에는 634건으로 약 158배 늘었다. 이는 '삼일한', '김치녀' 등의 여성혐오 발언 분위기가 만연한 '일베'의 급부상과 무관치 않은 걸로 분석된다.

하지만 "일베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없다"고 했던가? 비단 일베 회원이 아니더라도, TV에 출연하는 남성들이 버젓이 몰지각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경우들이 있다. "내가 공연을 할 때 힘을 받을 수 있게 앞자리에 앉아 계신 여자분들은 다리를 벌려달라"고 말하는 가수 유희열이나, "여자는 멍청"해서 "숫처녀인 척하는 것이 영리한지 모른다"는 옹달샘 트리오(장동민, 유상무, 유세윤)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심지어 대학생인 필자는 예전 아이유와 은혁 사진 논란이 있었을 때, 학교 게시판에서 아이유가 "숫처녀인 척"해서, "순수성을 가장"했기 때문에 "소비자로서 손해를 봤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본 적이 있다. 여성의 순수성이 성경험으로 결정된다는 사고 방식 자체도 황당하지만, 그런 발언이 젊은 지성들이 모인 공간에서 나왔다는 건 더 경악스러웠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뚜렷하게 여성을 '물적 대상화'하는 행동들을 가려낼 수 있는 경우다. 여기에 다른 어떤 정보는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판단이 애매한 상황들이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가령 최근 '예쁜 공주 논란'의 당사자인 칼럼니스트 곽정은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곽정은과 택시기사의 변증법

지난 21일 트위터에 올라온 곽정은씨의 트윗.
 지난 21일 트위터에 올라온 곽정은씨의 트윗.
ⓒ 곽정은 트위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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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의 발단은 지난 21일 곽씨가 택시를 타면서 택시기사와 하게 된 대화에 있다. 기사는 "주말인데 좋은 데 놀러 가느냐"고 물었고, 곽씨는 "일하러 가는데요"라고 답했다. 기사는 "이렇게 예쁜 공주님들도 일을 하러 가느냐"고 되물었다.

이 때문에 곽씨는 "중간에 내려 지하철'을 타려고 했다. 이유는 "낯선 사람에게 외모에 대한 평가 섞인 말을 듣는 것이 매우 불편"하며, "예쁜 여자가 왜 일을 하느냐는 모종의 전제도 괴이"했기 때문이라는 거다. 또 "공주"라는 지칭도 "어리고 미성숙한 애 취급"하는 듯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이 일이 알려지자, 첨예한 논란이 생겼다.

한 쪽에는 택시기사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선다. 곽씨를 두고 "인생 피곤하게 산다"고 하거나 "저런 소리를 들으면 어머 정말요? 호호 감사해요. 이게 정상"아니냐는 등의 의견이 쏟아진다. 칭찬으로 받아들이면 원만하게 넘어갈 일을, 괜히 문제로 불거지게 한다는 식의 주장들이다.

반대 쪽에는 곽씨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선다. 한 논자는 "칭찬이든 조롱이든, 남의 외모를 함부로 거론하는 것은 보편적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주장한다. 이유는 "생김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인격체를 물적 대상화"하는 일이며, 이것이 "남을 불쾌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관련 기사: 곽정은 '예쁜 공주' 논란... 한국언론 수준이 이렇다)

대체 어느 쪽 말이 일리가 있을까? 이런 경우 우리 사회는 공정함과 세심함을 시험받게 된다. 물론, 여기서 공정하라는 건 상대적 힘의 불균형 관계를 무시하고, 단순히 기계적 중립을 지키라는 의미가 '결코' 아니라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누군가를 비난할 때, 얼마나 중요한 맥락들을 고려하나?

우리가 누군가에게 도덕적 책임을 지우려면, 중요한 맥락들을 대충 자신의 평소 정치적 위치에 따라 퉁치는 식으로 수집하고 사회적 여론을 형성하는 데 기여해서는 안 된다. 그건 해악이다. '나비효과'라고 들어봤는가? 나비의 아주 작은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의 태풍으로 이어질 수 있듯 아주 사소한 간과가 큰 파국을 야기할 수 있다. 때로는 휩쓸리는 분위기에서 자신을 의도적으로 분리해, '거리두기'하고 보충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① 관계된 사람들 사이 힘의 균형과 약자에 대한 공감
② 행위의 때와 장소
③ 행위의 방식(언어, 신체적 움직임 등)
④ 행위의 내용(결과와 동기 등)

한국 사회의 일상생활에서, 여성은 약자로 위치할 경우가 많다(여기서 병역 문제나 데이트 경험을 거론하며 논점을 일탈하는 건 난센스다). 일단 신체적 힘이 남성보다 약하고, 성폭력에 남성보다 많이 노출돼 있다. 이는 통계적으로도 증명된다. 그렇다면, 젠더 문제에서 여성을 '경향적으로' 약자로 상정하고 최우선적으로 공감하려는 건 옳으며 소중한 태도이다.

때와 장소 그리고 행위 방식도 중요하다. 가령, 늦은밤 골목에서 홀로 귀가하는 여성에게 처음보는 남성이 "예쁜데?"라고 말하는 건 불쾌감을 초월해 실존적 공포감을 가져다 준다. 이런 경우는 나쁜 놈이거나, 개념 없는 나쁜 놈이거나 둘 중에 하나다. 비난 받아도 싸다.

택시는 좁은 공간이다. 좁은 공간에서, 젊은 여성 승객과 중년 남성 기사의 공존은 여성에게 심리적 불편함을 줄 수 있다. 게다가 택시 관련 성범죄도 심심찮게 보고된다. 여기서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은 상대적 약자인 여성이라는 일반적 원칙이다.

또한, "예쁜 여자가 왜 일을 하느냐"는 기사의 말은 그 자체로 보면 명백한 잘못이다. "공주"라는 지칭도 "어리고 미성숙한 애 취급"처럼 느껴질 수 있다. 곽씨는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의식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불쾌할 수 있는 말이었고, 실제로 불쾌했다. 그 불쾌함은 존중 받아야 한다. 이에 대해서 우리가 비난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그런 비난이야말로 사회의 '심리적 관성'이며, 문제되는 상황에 대한 '익숙함'이 나은 보수적 태도일 수 있다.

여성의 감정으로만 '물적 대상화' 판별... 성윤리는 임의적인 게 돼

지난 2014년 10월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CGV에서 열린 MBC에브리원 <더 모스트 뷰티풀데이즈> 제작발표회에서 서브MC 칼럼니스트 겸 방송인 곽정은이 질문에 답하며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 '더 모스트 뷰티풀데이즈' 곽정은, 큰 언니 역할 지난 2014년 10월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CGV에서 열린 MBC에브리원 <더 모스트 뷰티풀데이즈> 제작발표회에서 서브MC 칼럼니스트 겸 방송인 곽정은이 질문에 답하며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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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택시기사에 대한 비난의 무게를 결정하려면 '곽정은의 택시'가 '늦은밤 골목'같은 공간이 될 수 있는지 신중해야 한다. 다른 특수한 정보들이 주어지기 시작하면, '여성 배려 우선'이라는 일반적 원칙이 적용될 수 있는지 재고 되어야 한다. 가령, '동승자'가 있다면 말이다.

우리는 "예쁜 공주님들"이라는 표현에서, 단지 동승자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을 해볼 뿐이다. 하지만 맥락을 알지 못하니 곽씨의 140자 트윗 몇 개로 그 택시가 실제로 어떤 공간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도 택시가 젊은 여성에게 보통 어떤 공간인지 운운하며 휩쓸리는 건, 섬세하지 못한 편의주의적 발상일 뿐이다.

한편, 비록 택시기사의 발언이 그 자체로는 틀렸고 센스없는 발언이었다 할지라도 그가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중요하다. 의도는 상관없고 실제로 곽씨가 기분 나빴으니 충분하다는 결과주의적 태도는 도덕을 임의적이고 편파적인 걸로 만든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 곽씨가 아픈 만큼, 중년 남성의 시시한 사상도 중요한 고려 대상이다.

만약 기사의 진의가 "주말에" "놀러" 가는 게 마땅한 노동자가, "일하러" 간다는 사실에 대한 안타까움이라면? 심지어 그게 직장에서 상대적 약자일 수 있는 "여자"에 대한 것이었다면, 이 어리숙한 기사 안에는 맑시스트나 페미니스트가 꿈틀 거리고 있을 수도 있다. 내막을 확인할 길이 없다. 다시 강조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건 곽씨의 140자 트윗 몇 개뿐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몸은 그 자체로 일종의 '매체'다. 좋든 싫든 내 몸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진다'. 문제는 여기에 정당하고 배려있는 의미부여가 되느냐지, 누군가 의미부여를 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어떻게 느낄지) 확실하지 못하면 침묵하라"는 혹자의 주장은 틀렸다. 독심술을 쓰지 않는 한, 확실한 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여성을 "예쁘다", "꽃같다"고 표현하는 건 지시적 의미로만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누가 상대방을 "예쁘다"고 했고, 여성이 어떤 예쁜 물건 취급을 당한 거 같다고 '느꼈기' 때문에 해당 표현은 여성을 물건 취급한 것이라는 주장은 억지다.

그런 표현은 맥락적 의미에 따라 ① 타인이 가지는 특수성을 '인정'하는 방식일 수도 있고, ② 어색한 공간에서 손님과 라뽀를 형성하기 위해 건내는 인사말, 즉 '립 서비스'일 수도 있다. 처음보고 안 보고는 중요하지 않다. 처음봤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말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동기를 고려할 때는, 그것이 실제로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잠시 접어두어야 한다. 두 가지를 마구 뒤섞는 건 임의적이고 편파적인 판단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곽정은과 택시기사가 될 수 있다

물론, 필자는 택시기사가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 몇 가지 불확실한 맥락과 동기를 차치하더라도, 그의 발언은 나쁜 결과를 낳았고 충분히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그리고 곽씨가 생각하는 젠더 관념이 보다 진보적이며, 우리는 그리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몇 가지 있다.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반드시 어떤 '제물'이 필요할까? 어떤 윤리 의식의 담지자는 결국 구체적 개인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상대방의 책임을 정확하게 잴 수 있는 충분한 맥락들을 우리는 파악했는가? 아니라면 곽씨는 물론이고, 택시기사보다는 심리적 에너지를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다가 좀 더 쏟자.

누구라도 곽정은과 택시기사가 될 수 있다. 고작 140자 트윗 몇 개로는 우리는 누구에게도 현명한 재판관일 수 없다. 우리가 해야할 생산적 논의는 끝임없이, '악당'을 찾는 게 아니다. 이미 고민 됐어야 할 것은 젊은 커리어 우먼과 중년 남성 사이의 상호이해가 부족한 구조다. 도대체 무엇이 서로의 젠더 관념을 이렇게 좁히지 못할 정도로 간극을 만들었느냐다.

필자는 해당 택시기사 개인보다, 대한민국의 중년 남성들이 곽씨의 트윗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봤으면 좋겠다. 더 충분한 이해는 더 충분한 개선을 낳는다. 결핍되고 간과된 부분들은 겉잡을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 누구라도 곽정은과 택시기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더 약자일 가능성이 높은 여성에 우선적으로 감정이입을 해야한다는 말은 절반만 맞다.

"보편적"인 "인권"을 다룬다는 몇몇 인권주의자들조차, 감정 만을 주요 요소로 고려해 "물적 대상화" 딱지를 남발하려고 하는 일은 실망스러운 일이다. 이제 사람을 물건 취급, 즉 물화(物化)시킨다는 게 뭔지 좀 더 엄밀해질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우리는 좀 더 많이 대화하고 인정해야 한다. 인정하는 게 동의하는 건 아니다. 설사 그게 누군가의 낡고 시시한 젠더 사상일지라도 말이다. 인정이 우선해야, 그걸 제대로 고칠 수 있다.


태그:#곽정은, #곽정은 택시, #곽정은 택시기사, #예쁜 공주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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