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농구 '적색신호' 26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KBL센터에서 이재민 KBL 사무총장이 승부조작 파문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전창진 감독이 KT 감독으로 있던 2014∼2015시즌이 진행되던 지난 2월말부터 3월 사이 5경기에 대해 사설 스포츠 도박 사이트에 돈을 건 혐의를 포착하고 이달 초 출국금지 조치했다고 이날 밝혔다.

▲ 한국프로농구 '적색신호' 26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KBL센터에서 이재민 KBL 사무총장이 승부조작 파문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전창진 감독이 KT 감독으로 있던 2014∼2015시즌이 진행되던 지난 2월말부터 3월 사이 5경기에 대해 사설 스포츠 도박 사이트에 돈을 건 혐의를 포착하고 이달 초 출국금지 조치했다고 이날 밝혔다. ⓒ 연합뉴스


프로농구가 또다시 승부조작 논란에 휩싸였다.

남자 프로농구 전창진 KGC 인삼공사 감독이 수차례에 걸쳐 사설 스포츠 토토에 3억 원을 걸고 도박을 한 혐의로 수사망에 올랐다.

강동희에 이어 두 번째... 재발 막지 못한 KBL

현직 감독이 승부조작 혐의를 받게 된 것은 지난 2013년 강동희 전 원주 동부 감독에 이어 두 번째다. 2년 전에도 농구계가 받은 충격은 컸다. 현직 감독이 승부조작 혐의에 연루되어 실형을 선고받은 것만으로도, 국내 프로스포츠를 통틀어 최초였던데다, 강동희는 설명이 필요 없는 한국농구의 아이콘 중 한 명이었다. 당시 KBL은 강동희를 영구제명했고 뼈를 깎는 자정 노력과 재발 방지를 약속하며 팬들 앞에서 공식 사과까지 해야했다.

전창진 감독의 승부조작 추문은 2년 전 강동희 사건 이상의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전창진 감독은 현재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베테랑 감독이다. 현역 감독 중 다승 2위, 우승 3회를 기록 중이며 국가대표 사령탑도 두 번이나 역임했다.

지도자로서는 드물게 프론트 주무 출신으로 밑바닥부터 시작하여 프로농구 최고의 명장으로 떠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코트 위에서 간혹 불같은 성격과 고집스러운 지도방식을 보여 그를 바라보는 시선엔 호불호가 엇갈렸지만, 인간적인 매력 탓에 선수단 사이에서도 신망이 높았고 현재 농구계에 그를 추종하거나 영향을 받은 농구인도 적지 않다.

2년 전 승부조작 파문의 당사자였던 강동희는 전 감독이 동부 사령탑에 있을 당시 코치를 거쳐 그의 후임으로 감독 자리에 올랐다. 강동희는 지도자로서 전 감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사석에서는 허재 전 KCC 감독까지 함께 '절친 3형제'로 불리며 호형호제할 만큼 친분이 두터운 사이이기도 했다.

전 감독은 강동희가 승부조작으로 몰락하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인물이다. 훗날 전 감독은 인터뷰에서 강동희가 검찰에 소환되던 시점에 그를 만나기 위하여 직접 찾아갔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강동희 사건으로 KBL 10개 구단 사령탑들이 대국민 사과를 하며 고개를 숙일 때 전 감독도 그 자리에 있었다.

이처럼 모든 면에서 모범을 보여야할 농구계 맏형급이자, 승부조작의 결말을 누구보다 잘알고 있었을 인물이, 또다시 이런 추문의 당사자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농구팬이 받았을 배신감과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공교롭게도 팬들이 붙인 전창진의 별명인 '전토토'가 마치 예언처럼 현실화되어버린 것은 우연일까.

승부조작 의혹이 처음 제기된 이후, 한동안 연락두절 상태였던 전 감독은 최근 구단과 다시 연락이 되어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로서는 의혹만 제기되었을뿐 아직 구체적인 혐의가 입증된 것이 아니기에 섣부른 판단은 이르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적어도 확실하게 드러난 것은, 프로농구를 비롯한 스포츠계에 승부조작의 망령이 아직도 버젓이 횡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창진 감독만 처벌한다고 문제 해결되지 않는다

프로농구 승부조작·도박 의혹 전창진 감독 출국금지 승부조작 의혹을 받는 남자 프로농구 KGC인삼공사의 전창진(52) 감독이 출국금지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전 감독이 KT 감독으로 있던 2014∼2015시즌이 진행되던 지난 2월말부터 3월 사이 5경기에 대해 사설 스포츠 도박 사이트에 돈을 건 혐의를 포착하고 이달 초 출국금지 조치했다고 26일 밝혔다.

▲ 프로농구 승부조작·도박 의혹 전창진 감독 출국금지 승부조작 의혹을 받는 남자 프로농구 KGC인삼공사의 전창진(52) 감독이 출국금지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전 감독이 KT 감독으로 있던 2014∼2015시즌이 진행되던 지난 2월말부터 3월 사이 5경기에 대해 사설 스포츠 도박 사이트에 돈을 건 혐의를 포착하고 이달 초 출국금지 조치했다고 26일 밝혔다. ⓒ 연합뉴스


KBL은 전창진 감독의 혐의가 만일 사실로 밝혀질 경우, 제명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전 감독 개인에 대한 처벌로 끝나는 것이 핵심이 아니다. 전창진 감독 같은 인물조차 승부조작에 연루되었다. 사실상 프로농구 전반에 걸쳐 승부조작의 마수에서 자유로운 성역이 없다는 의미다.

이는 강동희 사건 때부터 우려되었던 시나리오다. 당시에도 일부에서는 '농구계에서 승부조작에 연루된 것이 과연 강동희 한 명 뿐이었겠는가'하는 의혹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강동희에게 마수를 뻗힌 세력이 있다면 다른 농구인에게는 과연 접촉을 안 했을까?' 혹은 '감독 한 명만으로 아무도 모르게 승부를 조작하는 게 가능한가'하는 점도 상식적으로 누구나 생각해낼 수 있는 추론이었다. 그러나 강동희 개인의 처벌만으로 모든 의혹은 묻혔고 농구계에서는 그 이상으로 문제를 키우는 것 자체를 원하지 않았다.

KBL은 당시에도 엄중한 대처를 강조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사태가 또 벌어졌다. 이것만으로도 농구계가 여전히 승부조작의 유혹에 무방비 상태였다는 게 증명된다. 이번에는 단지 전창진 개인의 혐의를 밝혀내는 것을 넘어서 농구계 전반에 대한 심층적인 조사가 불가피한 이유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이번 사태가 결국 농구계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미 이번 사태만이 아니더라도 KBL과 한국농구계를 바라보는 농구팬들의 신뢰는 바닥이었다. 아시안게임 우승 등으로 인한 호재에도 불구하고 몇 년째 뒷걸음치는 KBL의 행정과 여론과의 소통 부재, 태업과 고의 패배 논란, 프로농구의 인기 하락 등이 겹쳐 농구계는 사면초가에 빠져있었다. 여기에 2년 만에 다시 터진 승부조작 논란은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던 한국농구의 위상에 치명상을 입힌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은 단지 특정인의 일탈을 넘어서 한국농구계에 은연중에 만연해있던 매너리즘과 도덕불감증에 기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파벌-학벌 문화로 그들만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한국 농구계 특유의 문화는, 우리 사회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상식보다는 자신들 집단 내부에서만 통용되는 룰에 따라 좌우되는 폐쇄성을 강화시켰다.

2013년 당시 승부조작 파문과 함께 농구계를 강타한 고의 태업과 경기 포기 논란도 그 일부라고 할 수 있다. 드래프트에서 신인 선수 상위지명권을 얻기 위하여 고의로 지고 무성의하게 경기를 운영하고, 샐러리캡 규정을 위반하는 것 등이 '내 사정'만 중요한 농구인에게는 크게 죄책감을 느낄 사안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2004년에는 문경은, 우지원, 김주성 등이 개인 기록 타이틀을 차지하기 위하여 동료 선수들과 담합하여 기록 밀어주기 경쟁을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것도 엄밀히 말하면 넓은 의미에서의 승부조작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들이다. 그러나 KBL은 언제나 여론이 악화되면 그제야 부랴부랴 외양간 고치기에 급급할 뿐이었다. 고의 태업이 문제가 되자 드래프트 제도를 개선했고, 기록 조작 논란이 나오자 개인 기록 시상식을 폐지하는 것으로 수습했지만, 정작 논란을 일으킨 당사자나 구단을 제대로 처벌한 적은 없었다. 이런 이들이 시간이 흘러 베테랑 선수가 되고, 지도자가 되며, 결국 농구계 지도층 인사들이 되었을 때 과연 후배들에게 무엇이 옳고 그른지 똑바로 가르쳐줄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누가 한국농구에 사랑을 보내달라고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프로농구 경기를 보면서 팬들이 선수들의 투혼과 감독의 용병술을 신뢰하지 못하고 석연치 않은 장면이 나올 때마다 '혹시'하는 의심이 든다면, 어떻게 농구를 즐길수 있을까. 한 번 잃어버린 신뢰는 쉽게 회복할 수 없다. 어쩌면 진정으로 영구제명 당해야할 것은, 전창진 감독만이 아니라, 한국농구가 이 지경으로 추락할 때까지 방치한 KBL과 무능한 한국 농구인들 전체인지 모른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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