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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아래에 놓여진 나무통에 토종벌들이 둥지를 틀었다.
 바위 아래에 놓여진 나무통에 토종벌들이 둥지를 틀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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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보이는 나무통에 파리 같은 곤충들이 분주했다. 시골에서 자란 탓에 예리함이 발달했다. 딱 보니 토종벌통이다.

"그거 찍어서 뭐하게?"

아내의 만류에도 가파른 언덕을 기어올랐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벌들이 달려들까'하는 경계심이 앞섰다.

본능이겠다. 토종벌은 아주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스스로 벌침을 내어 놓지 않는다. 그것은 곧 목숨과 맞바꾸는 것이란 걸 벌들도 안다.

말벌이나 쌍살벌, 땅벌과는 달리 토종벌은 침을 사용하면 죽는다. 박힌 침을 빼낼 근육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가까이 다가가도 벌들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카메라 셔터를 연속해서 눌렀다.

인내하는 데 한계에 다다랐나보다. 윙윙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내 주위를 빙빙 도는 개체수도 늘었다. 더 이상 머무는 걸 용납하지 않겠다는 경고다. 이럴 땐 피하는 게 상책이다. 한두 번 경고 후 무자비한 공격이 이어질 거다. 

타협, 왕이 둘이라고 다투지 않는다

농부들은 토종벌 유인을 위해 양지 바른 곳에 벌통을 놓아 둔다.
 농부들은 토종벌 유인을 위해 양지 바른 곳에 벌통을 놓아 둔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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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곳에 나무통이 놓여 졌을까. 또 토종벌들은 왜 그곳에 찾아 들었을까. 과거엔 바위 틈 또는 홈이 깊게 파인 나무에 집을 짓고 사는 토종벌이 가끔 목격됐다. 그러나 요즘은 산속에 자생하는 벌들을 찾기가 힘들다.

토종벌을 기르는 농가에게 4월과 5월은 분주한 때이다. 밖으로 나가는 벌들을 단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토종벌은 봄철에 번식한다. 알에서 일벌과 수벌들이 일제히 깨어난다. 여왕벌이 탄생하는 시기이고도 하다. 한집에 여왕이 둘일 순 없다. 파벌이 형성된다. 기존 여왕벌을 따르는 부류와 처녀 여왕벌을 추종하는 세력이다. 다툼은 없다. 합의에 의해 출가할 집안이 결정된다.

나기기로 결정된 집안의 일벌들은 꿀을 모으러 가는 대신 새집 구하기에 나선다. 최적의 장소를 발견한 벌은 동료들에게 날갯짓 혹은 몸짓으로 위치정보를 알린다.

이사 날짜를 잡았다. 여왕벌을 둘러싼 일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군집을 이루기 때문에 한꺼번에 멀리 날 수는 없다. 몇 미터 날다가 멈추기를 반복한다.

농민들에게는 이때가 기회다. 여왕을 가운데 두고 뭉쳐진 벌들을 달래 빈 벌통에 넣는다. 다시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일까. 벌들은 농부가 마련한 벌통에서 그냥 눌러 사는 경우가 다반사다.

남겨진 토종벌의 슬픈 이야기

분봉을 시작한 토종벌이 여왕벌을 둘러싸고 나무에 모였다.
 분봉을 시작한 토종벌이 여왕벌을 둘러싸고 나무에 모였다.
ⓒ 지오리골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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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벌을 기르지 않는 농가는 이 시기가 절호의 기회다. 커다란 원통 모양의 나무를 1미터 정도 길이로 잘라 가운데를 파내면 원통이 된다. 뚜껑을 만들고 벌들이 드나들 수 있는 작은 구멍을 냈다. 토종벌통이 완성됐다.

농부는 양지바른 바위 아래에 벌통을 가져다 놓는다. 소똥은 필수다. 벌통 주위에 빈틈없이 소똥을 바른다. 그 냄새가 벌들을 유인하는 어떤 마력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농부들은 예부터 그렇게 해 왔다.

토종벌 농가에서 미처 분봉하는 녀석들을 잡지 못한 벌들 그룹은 바위틈에 놓여 진 벌통에 둥지를 튼다.

"내가 키우던 벌이니 돌려주시오"라는 말을 한다면 그건 억지다. 주변에 토종벌을 키우던 농가가 유일해도 그런 말은 하지 않는다. 관리를 소홀히 했거니 또는 멀리서 날아온 녀석들이겠거니 여긴다. 산골사람들의 순수한 정이다.

양지바른 곳에 놓아둔 벌통에 토종벌이 깃든 것을 확인한 농부는 밤이 되길 기다린다. 한밤중 완전히 어둠이 덮일 무렵, 농부는 지게를 지고 나선다. 벌들이 드나들던 입구를 막았다. 텅 빈 아래쪽엔 준비해 간 보자기를 둘렀다. 지게에 벌통을 진 농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장독대 옆, 미리 준비해 둔 널찍한 바위 위에 벌통을 내려놓곤 구멍을 열었다.

이튿날, 벌통 입구에 수백 아니 수천 마리의 벌들이 모여 있다. 여왕벌을 제외하고 모두 밖으로 나온 듯하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왜 자신들이 여기에 와 있느냐는 눈치다. 상황판단은 오래하지 않았다. 한 마리 두 마리가 벌통 주변에 원을 그리며 날았다. 이사한 집의 위치를 기억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토종벌과 농부는 한 가족이 되었다.

희극이 있으면 비극도 있다고 했던가! 바위틈 벌통이 놓여 있던 자리엔 수십 마리의 벌들이 모여 있다. 왜 이곳에 모였냐고 물었다. 외박을 했단다. 순간 바람난 녀석들이라 생각했다. 아니다. 전날 꿀을 찾아 멀리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고 했다. 또 다른 녀석은 길을 잃어 이제야 집을 찾았다고 했다.

이사한 집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이렇다 할 방법이 없다. 강제로 봉지에 넣어 이사한 집 앞에 놓아두어도 이 녀석들은 급작스런 상황에 적응을 못한다.

바위 아래 모였던, 여왕벌을 잃은 벌들이 하나 둘 자리를 털고 날았다. 남의 집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공격을 당하기 때문이다.

외톨이가 된 녀석들은 꿀을 따 목숨을 연명할 줄도 모른다. 여왕이 사라진 슬픈 현실, 아직 이슬도 마르지 않은 이른 아침이다. 나뭇잎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광태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기획담당입니다.



태그:#토종벌, #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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